노안

벨라 베테...


그날의 노안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거점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다만...



벨라 베테

더 이상 관여하면 거점 입장도 위험해져, 무기를 파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계야.



노안

레이첼 대장은 거점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자취를 감췄어.


노안

나중에 벨라가 있는 거점도 사고가 났던 걸까? 그녀는 왜 적조 속에 있을까?


적조 환영

이리와, 내가...알려줄게...


노안

...


적조 환영

가지 마.


노안

안 돼. 09번 의료 구역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는 자신이 결코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적조 속에서 답을 찾고 싶은 의문이 많더라도, 이제는 출발해야 한다.


노안

...다음에 또 만나자, 벨라.


언제부터 그는 '베테'라는 성을 쓰지 않게 됐을까? 노안은 미처 곰곰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는 습관대로 그녀의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말한 뒤 인근 거점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전투 개시




노안

미안, 09번 의료구역에 지원이 필요해, 부탁...


구조체

빨리 도망쳐! 뒤에 수많은 침식체가 있어!


구조체

우리 팀 동료도 구하지 못할 지경이다!



노안

괜찮아?


구조체

고맙군...크윽,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인 줄 알았어.


노안

부상을 입었어. 좀 쉬고있어.


구조체

조심해, 침식체가 또 온다!



노안

조심해!



노안

멈춰!


침식체

...



노안

멈췄어?


구조체

침식체가 너의 명령을 듣고 있는 거야?


노안

승격자의 GEASS는 음성제어를 통한 거였나?


노안

한번 시도해 보자...그 녀석들을 물리쳐!




노안

우연의 일치가 아니야...



구조체

정말로 침식체를 통제할 수 있는 거냐?!


노안

아니, 나도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어.


구조체

승격자다! 빨리 물러나! 다른 녀석들과 합류한다!


노안

...



침식체에게 명령을 보내려고 시도한다

뒤로 물러나게 하기        자폭시키기 ← 선택




전투 종료




구조체대원1

승격자라고?!


전투에서 발을 뺀 구조체가 마침내 지원을 요청했다.


구조체대원2

우리 거점이 습격당한 것도 네가 저지른 거야??


노안

아니, 아니야! 나도 방금 온 거라고!


노안

내가 있는 09번 의료구역은 습격을 당한 뒤에 사방이 적조로 둘러싸여있고 통신도 끊겨서 그들에게 방호복이 필요했어. 그래서 내가ㅡㅡ


구조체대원2

승격자의 말을 믿으라고?!


노안

난 승격자가 아니야! 단지...


노안

나도 내 자신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이해할 수 없어. 너희들이 나를 경계할 수 있겠지만 내 말만큼은 꼭 믿어줘!


노안

09번 의료구역에는 아직 사람이 많은데다 여과탑의 출력이 제한돼 있어 이대로 가다간 사고를 당하게 될 거야.


구조체대원3

네가 우리를 속여서 죽일 속셈인지 어떻게 알아!


노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를 믿을 수 있겠어??


구조체대원4

도저히 널 믿을 수 없어!!


구조체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 노안에게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칼과 총알이 급히 그의 몸을 스치고 핏자국을 여러 번 남겼지만 그는 끝까지 반격하려 하지 않았다.


구조체대원1

능력이 있으면서 피하지 마!


여성 구조체는 부서진 돌계단을 뛰어오르며 높이 차이를 이용해 손에 든 긴 칼을 노안에게 휘둘렀다.


구조체대원2

도망만 치는 거야??


노안

나는 09번 의료 구역 사람들을 위해 구조를 요청하러 온 거야.


구조체대원1

거짓말로 가득 찬 승격자군!


노안

그게 아니라...!


해명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사방팔방에서 총알이 쏟아졌고, 노안은 뒤로 물러나 구조체의 포위망 속에서 한 발짝씩 떨어졌다.


구조체대원4

죽여라!


그의 명령에 따라 잿더미 속에 잠복해 있던 구조체들이 빠르게 튀어나와 탈출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봉쇄했다.


그가 뭇사람에게 찔리려는 순간,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는 부쩍 높아졌고 수많은 선홍색의 뾰족한 가시가 그의 발 밑에서 터져나와 조금도 통제되지 않은 채 사람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노안

조심해!


날카로운 가시들이 곧 최전방의 구조체를 찌르려 하자 노안은 황급히 맨손으로 붙잡았지만 뾰족한 가시들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발버둥치며 그의 손바닥을 찔렀다.


노안

...!


구조체대원4

이래도 승격자가 아니라고 하는 거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기를 들어 노안을 찔렀지만, 그 날카로운 가시들은 화살로 이뤄진 포대처럼 언제든 급습할 준비가 돼 있었다.



노안

미안하지만 난 이 힘을 통제할 수 없어,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마!


구조체대원1

넌 도대체...


노안

지금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너희들에게 조금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노안

내가 구조 요청을 하러 왔고 09번 의료구역 사람들이 적조에 갇혔다는 점 만큼은 믿어줘.


여성 구조체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단말기에 통신 요청을 보냈다.

    

구조체대원2

어때?


구조체대원1

그 녀석 말대로 09번 의료구역에 응답이 없어.


구조체대원3

이것이 함정이라면, 우리는 지나가다 죽을 수도 있어.


노안

아직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곳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을 도와줘. 함께 가는 건 어떨까? 사람이 많으면 더 안전할지도 몰라.


구조체대원1

어느 거점이든 자기 자신조차 돌볼 겨를이 없잖아!


구조체대원2

탈주자를 조사하러 온 엘리트 소대는 아직 근처에 있지만 그들에게 여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어.


구조체대원3

일단 요청은 해보자고.


노안

...고마워.


구조체대원1

이 자식은 어떻게 할 거야? 저 녀석 자료상의 승격자와는 달리 보이긴 하는데.


구조체대원2

저 녀석도 엘리트 소대에 맡길까?


구조체대원3

글쎄, 그들이 역량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는 저 녀석의 정체에 달려있겠지.


노안

그럼 난 여기에 남을게. 감시가 필요하면 09번 의료구역에서 지원받으면 될 거야.


구조체 일동

...


구조체들은 각자 눈빛을 교환하며 조용한 소리로 잠시 의논했다.


구조체대원1

구조요청을 보냈고 그들과 합류한 뒤 09호 의료구역로 함께 갈 예정이다.


노안

고마워.


구조체대원1

너를 감시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네가 방금 보여준 전투 능력으로 볼 때… 네가 공격할 의사가 있었다면 우리 몇 명은 대응할 수 없었겠지.


노안

그럼 여기 있을게.


구조체 일동

...


구조체대원1

우리가 정말 널 믿어도 될까?


노안

믿어줘.


구조체 일동

...


숱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안위를 놓고 타협했다.


구조체대원4

엘리트 소대에 맡기지, 그들은 곧 올 거야.


노안

...


모두를 떠나보낸 노안은 날카로운 붉은 응집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노안

...난 도대체...


꼭 승격자가 아니더라도, 수격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무슨 이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노안

모두의 적이 되고 싶지 않아, 이 힘을 제어할 수 없다면, 그들이 말하는 엘리트 소대를 오게 하는 게 낫겠...


???

...잠깐.


그윽한 골목길에서 누군가의 허약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노안

혹사? 어떻게 따라온 거야? 적조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혹사

안 돌아온 지 너무 오래돼서...걱정했어...


노안

별일 없어, 이미 구조 요청을 보냈으니까. 넌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그녀는 오히려 걱정스럽게 노안의 손만 바라보며 이 문제를 소홀히 여겼다.


혹사

...네 손에 상처가...


노안

잠깐, 오지 마. 난 아직 이 뾰족한 가시들을 통제할 수 없어, 난 아마...


혹사

승격자라고?


노안

...


혹사

나를 해치고 싶어?


노안

물론 싫지만 나는 통제할 수 없어.


혹사

그럼, 통제하고 싶은 거니...


노안

응.


혹사

승격자를 찾고 싶어? 승격자만이 그 힘을 통제할 수 있어.


노안

...왜 그렇게 잘 알지?


혹사

왜냐하면 나도 탈주한 구조체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야.


노안

무슨 뜻이야? 너도 한때 탈주자였다는 거야?


혹사는 대답 대신 노안의 두 눈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노안

혹사, 오지 마.


혹사

괜찮아...난 다치지 않아. 나는 제어할 수 있어.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노안의 다친 손을 잡을 때까지 그 날카로운 가시들은 아무런 군더더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노안

너는 도대체 누구지? 알려줄 수 있어?


혹사

응, 너라면 알려줄 수 있어. 하지만...먼저 이 상처를 치유해줄게.


그녀는 간단한 공구를 꺼내 부드럽게 청년의 손에 난 상처를 복구했다.


혹사

이런 '이상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다면, 넌 자신이 상처주기 싫은 사람을 해치지 않고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노안

구해...? 내가 널 만났을 때 네 주위의 동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혹사

그들은...거절할 수 없는 일을 거절해서 벌을 받은 거야.


노안

벌?



???

...말을 안 듣는 아이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해.


그 말을 듣고 어두컴컴하게 뒤덮였던 그 시절이 마치 노랗게 불이 켜지는 것처럼 조금씩 또렷해졌고, 그 미약한 단서 덕분에 청년은 막힌 생각을 풀어나갔다.


물밀 듯 밀려오는 이 기억 속에서 그는 앞에 있는 혹사를 유심히 바라보며 근심과 당혹스러움이 섞인 표정을 짓다가 문득 깨달은 뒤, 점차 어떤 사실을 받아들인 것에서 오는 개운함으로 변해갔다.


노안

혹사, 너...


혹사

...응?


말을 하려다 멈칫하고, 궁금증을 안은 채 몇 초를 되짚어 보았지만, 그는 결국 적절치 않은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노안

너 남자지?


혹사

...



혹사

벌써 기억이 났구나.



노안

틀림없어, 그때… 날 구조체로 개조한 사람이 바로 너였어, 맞지?


혹사

응...



노안

왜 거짓말을 한 거지?...으, 그게 아니야.


노안

맨 처음에 널 만났을 때, 너는 성별을 숨기지 않았는데 내가 잊어버린 거겠지...


혹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탄식 섞인 조소가 터져나왔다.


노안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원래 우리 곁에 잠복해 있던 승격자가 바로 너였어?


혹사

음, 맞아…. 난 네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날 받아들일 수 없을까 봐, 네 옆에 있어.


혹사

나와 함께 돌아가자. 너의 '이상'은 이미 몸에 싹이 텄어. 너에게 그 힘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줄게.


노안

...


자신이 그토록 완강하게 거절했던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멋대로 답변했다가는 '그'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노안

안 돼, 난 아직 내 모든 기억을 찾지 못했어. 네가 한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어.


혹사

이전의 일을 회상하는 것은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노안

그것도 엄연히 내 기억이고, 내가 알아서 판단할 거야.


혹사

인파에 휩싸여 진압당하는 사건을 포함해서... 모두 기억하고 싶은 거야?


노안

뭐?


혹사

네 기억이 지워진 건 이번이 네 번째고,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승격자의 힘을 주체하지 못해 통제 불능이 되면 마치 걸어다니는 표적처럼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돼.


혹사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어.


노안

...무슨 소리야?!


혹사

내 말은, 나는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데, 너는 많은 수의 사망자를 보기만 하면 의식의 바다에 혼란이 와…. 이런 일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겠지.


노안

...네가 어떻게 말하든 상관 없어...


혹사

아직도 모든 기억을 되찾고 결정을 내리고 싶어?


노안

물론이야.


혹사

그래, 지난번에도 그랬고, 그때도 똑같은 말이었지만, 매번 대답을 하기 전에 의식의 바다가 혼란에 빠졌었어.


혹사

괜찮아, 그래도 기억을 되찾고 싶은 만큼 나도 네 소원을 들어줄게.


혹사

이리 와, 슈렉...


그는 조용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혹사

네가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가족이 되는 순간까지 항상 인내하면서 함께 할게.








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