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람 호에 실린 모든 생명은 이 순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았고, 절망의 비명과 절규를 쏟아내며 불빛과 함께 흔들리면서 무너져 내렸다.



8:41 a.m.


하층 객차 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고, 노안이 통풍관을 넘자 30여 명의 상층 경비병들이 서민 객차 안으로 들이닥쳐 가뜩이나 붐비는 통로를 단단히 둘러쳐 수많은 사람들이 원망과 비명을 질렀다.


노안

(무슨 일이지)


통풍관을 타고 경비병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다 마루바닥에 피가 묻어 있는 질질 끌린 자국이 조금씩 눈에 띄더니, 곧이어 아사의 옷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노안

...!


그의 부러진 뼈는 근육과 피부를 뚫고 반쯤 굳은 피를 머금은 채 공기 중에 노출됐고, 머리도 온전치 못한 채 이빨 빠진 입만이 죽음을 앞둔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얽힌 밧줄이 온몸을 부자연스럽게 묶여있었고, 주변의 경비병들은 의도적으로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이 비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상층 경비병1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어도 상관없다. 이 다음에 수송부대의 다른 핵심 인원들이 열차레일에 질질 끌려다니며 죽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주마.


상층 경비병1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물건을 어디다 숨겼는지 순순히 밝혀.



레이첼

...


상층 경비병2

레이첼, 이번에는 그냥 해명만 하고 벌만 받던 이전의 사소한 다툼과는 다르다.


상층 경비병2

이것은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사건이다. 네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갈등은 더욱 악화될 거야. 상부에서 말한대로, 오늘 밝혀내지 못하면 모두 죽을거라고.


레이첼

충돌이 악화된다? 상층의 귀족나리들이 사람들을 급사시키고, 자살시키고, 두들겨 패서 다쳐도 내버려 두고, 심지어 직접 때려 죽이는데, 어째서 악화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상층 경비병3

그래서 네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해결될 일이고?


상층 경비병2

우리도 너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모두' 일하는 입장인데, 이렇게 흉한 꼴 볼 필요가 뭐 있겠나. 물건만 내놓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야.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레이첼은 냉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통풍관 입구 쪽을 바라봤다.


노안

...


노안은 알고있었다. 레이첼이 그에게 보내는 '여기 있다'라는 신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은 통풍관의 어두침침함에 의존해야 하고,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레이첼

...그런데 말이야, 가끔은 네가 반딧불이를 어깨에 걸어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노안은 품에 안고 있던 태엽 반딧불이를 슬쩍 꺼내 꼬리에 달린 작은 전구를 점등하고 통풍관 입구에서 살짝 흔들었다.


레이첼

...


상층 경비병2

뭘 이렇게 꾸물거리는 거냐, 누군가를 기다릴 속셈인가?


노안

...


상층 경비병2

네가 만일 파견된 두 소대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말한 김에 알려주지. 그들은 이미 죽었다.


경비병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 레이첼에게 동영상을 보여줬다.


상층 경비병2

이 겁쟁이 덕분에 오늘 일석이조를 거두었다고.


그는 웃으면서 아사의 시체를 걷어찼다.


레이첼

좋아, 너희들과 함께 가지.



수송대장 신야

레이첼! 그럴 순 없ㅡㅡ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경비병들이 발포한 총알 두 발이 이미 신야의 어깨를 스쳤다. 그의 뒤에서 한 젊은 남성이 외치자 군중들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함성과 항의를 보냈다.


노안

(지금 움직여야 해!)


상층 경비병2

너희들 모두 한데 뒤엉켜 있는데, 수류탄 한 방 먹이면 몇 명이 죽을까?


수송대장 신야

**!! 그러고도 너희들이 인간이냐!?


레이첼

그만둬!! 신야!! 여기에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를 죽일 셈이냐!!


수송대원 웨이란

누님!! 우리가 이렇게 보낼 수는...


총성이 다시 그들의 말을 끊었고, 사람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노안은 들고 있던 단검을 객차 지붕의 등불 위로 던졌고, 어둠과 수많은 유리 파편이 순식간에 인파 속으로 떨어졌다.



상층 경비병2

경보를 울려라!


수송대장 세나

움직여!


이 신호를 받은 수송대원들은 망설임 없이 재빨리 옆의 경비병에게 달려들었다.


어둠과 혼란이 가시지 않은 틈을 타 노안은 통풍관에서 재빨리 뛰어내려 수류탄 핀을 빼내려던 경비병을 향해 석능검으로 찌르고, 그가 들고 있던 예비 무기로 있던 장검을 빼앗아 동료들에게 내던졌다.


수송대장 신야

잘했다!


경비병들은 조금이나마 충돌에 대비했었지만, 이들의 저항이 이처럼 단호할 줄은 미처 몰랐다.


상층 경비병1

어서 잡아...! 윽!!


신야는 아직 쓰러지지 않은 경비병에게 달려갔고, 정면에서 내리친 무기를 튕겨내며 어둠 속에서 몸을 기울여 날카로운 칼을 방호가 약한 목구멍에 찔러 넣자 입에서 피가 터져나오며 경고를 알리는 말이 허공에 가로막혔다.


다음 순간,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뒤섞였고, 거의 모든 사람의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였다.


비상등이 다시 객차를 비추자 30여 명은 애꿏은 서민들과 함께 침묵의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은 남은 생을 재촉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레이첼

이런 때에 경비병을 죽여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어.


수송대장 신야

마침 나도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수송대원 웨이란

지금 전쟁을 시작하자, 더 이상 끌면 그 녀석들은 더 많은 놈들을 보낼 거라고!


수송대장 세나

우리는 너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


레이첼

...좋아!


레이첼은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성큼성큼 뛰어넘어 아래층 객차에 있던 경보기를 내리쳤고, 수송부대 총대장 신분증을 꽂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강제로 멈췄다.


레이첼

수송부대에 합류했었을 때, 그날의 말을 기억하고 있겠지?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그녀는 적의 피가 묻은 주먹을 꽉 쥐었다.


수송대원 웨이란

모두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희생자들을 위로해 주자. 그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레이첼

이제, 그것을 실현할 때가 왔다…!



그들이 쟁취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상층 귀족들은 곧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차리고 만장일치의 허가를 받아 하층부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모든 무력을 파견했다.


그동안 참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재빨리 열차 칸 근처에 모여 있던 무기를 들고, 원치 않거나 무력한 서민들은 계속 후방으로 이동했다.


양측은 오셀람 호 중앙 하단의 객차 안에서 만나 맞대결을 펼쳤다.


초반에는 상층 경비병들이 자신의 훌륭한 장비를 이용해 압도적 우위를 점했지만 하층민들은 레이첼과 다른 핵심 구성원들을 따라 우회 전술을 구사했다.



전령

열차 곳곳에서 밀고 나가다가 속속 매복 공격을 당해버렸습니다…. 이미 소대 단위 이상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상층 경비 지휘관

제기랄...그 쥐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냐!!! 그놈들을 어서 찾아내!



이들은 객차에 대한 자신들의 익숙함을 이용해 통풍관, 지붕, 예상치 못한 각종 엄폐물에서 게릴라를 펼치고, 열차의 길목과 조명을 차단하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함정'을 마구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뾰족한 가시, 깨지기 쉬운 유리상자, 끊어져 땅에 드리워진 전선, 심지어 구석에 방치된 우산뼈일 수도 있는 조잡한 함정들이었다.


보잘것없지만, 붐비는 혼전 속에서 이런 잡화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도구로 변신한 것이다.


노안은 경비병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상층 구역으로 철수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이내 자리를 지켰다.


레이첼

하, 그 상층 귀족들이 어떤 수를 썼길래 저 녀석들이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 수 있던 걸까.


이곳에 잔류한 경비병들은 곧 새 무장을 갖추고 다시 공격했다.


중화력에 밀리면서 우회 전술의 효과도 미미해졌다.


절박한 사람들은 그들의 난공불락의 압제를 흔들기 위해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레이첼

우리의 오랜 인내는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쓰러지면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꼴을 당하겠나?!


수송대원

그들과 맞서 싸우자!!!


수송부대는 무장과 전력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열차의 좁은 위치에 배치된 인원과 방어선에 의존하여 지금까지 상층 경비병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스스로 정면 승부를 시도할 때는 이 모든 이점이 사라졌다.


노안의 옆에 있던 수송대원은 함성을 지르며 손에 든 무기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노안의 곁에서 달려갔지만, 옆에 쓰러져 있던 누더기 의자에서 스쳐 지나가는 붉은 빛은 알아채지 못했다.


노안

조심해!!



하층칸에서 생활하며 곤욕을 치렀던 사람들은 그날이 오기를 꿈꾸었다.

많은 이들의 바람 속에서 포화가 뒤엉킨 굉음을 넘어서면,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평화, 공정, 자유가 찾아올 것이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의지를 굳게 다짐했고, 상층칸의 경비병들의 숫자를 누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막상 접전이 시작된 순간, 그 속에 녹아든 사람마다 생명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연기와 어둠이 하층칸을 막았고 사방에서 폭음과 비명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무장한 상층 경비병들은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고, 군중들은 그들의 훌륭한 장비들로 인해 죽어나갔다.


오셀람 호에 실린 모든 생명은 이 순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았고, 절망의 비명과 절규를 쏟아내며 불빛과 함께 흔들리면서 무너져 내렸다.



헐거운 차 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통해 노안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피를 보았다.


이 새빨간 액체와 파편, 잡동사니, 인간의 신체조직이 뒤섞이며 좁은 통로에 낭자했다.


바닥에는 아직 푹신푹신하고 온기가 서려있는 몸뚱이로 뒤덮여있어 도저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누군가가 아예 차문을 폭파시켜 수많은 몸뚱이와 유혈이 질주하는 열차에서 내던져졌고, 터널 벽에는 진한 핏빛 자국을 길게 남겼다.

.


무수한 생명과 꿈, 무수한 갈등과 편견, 무수한 억압과 적개심이 모두 죽음과 함께 흘러갔다


어제까지 시끌벅적하던 객차도 연이은 폭발과 함께 잠잠해졌다.


다음 날 새벽, 수송부대의 생존자는 50명이 채 안 됐고 전선에서는 더 이상 함성이 들리지 않고 총성만이 요란했다.


이들 옆에는 수천 명의 시신이 피와 함께 침묵하며 전과를 알리고 있었다.


마지막 몇 명의 적을 제거하면 잔존한 사람들이 연결칸을 넘어 상층칸으로 돌진할 수 있다. 연결칸을 넘고 넘어 상층칸으로 끊임없이 돌진했다.


그러나 그 처참한 승리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연결칸에서 기이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ㅡㅡ!!!


거대한 구형 기계체 한 대가 굉음과 함께 마루를 밟으며 시체를 지나쳤고, 아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붉은 레이저를 발사했다.


다음 순간, 조명 시스템이 망가진 열차가 터널로 진입했다.


7초동안의 짧은 어둠이 걷히자 많은 사람의 시야에 이미 목숨을 잃은 9명의 사람들을 발견헀다.



수송대장 신야

***! 승산이 없으니 이런 장난감따위에 의지하는 건가!!


신야는 달리면서 경비병의 시체 옆에서 기관단총 한 자루를 주워 기계체에 대고 몸을 돌려 난사했지만, 그 탄환들은 금속 껍데기에 튕겨져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수송대장 신야

**! 왜 이렇게 딱딱한거야!


수송대장 세나

그럼 좀 비켜봐!


그녀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유탄발사기를 메고 신야의 옆으로 돌진했고, 신야가 안전지대로 후퇴하는 순간 개량형 대전차 유탄은 이미 청회색 포연을 뚫고 거대한 물체를 들이받았다.



노안

해치웠나?


수송대장 세나

젠장.


불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이한 소리가 다시 전방에서 들려왔다.


수송대장 신야

전혀 죽을 기미가 안 보여!


노안

세나,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수송대장 세나

딱 한 발 남았어!


수송대장 신야

어떡하지? 경비병은 아직 뒤에 있어! 레이첼은??


노안

대장은 이미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앞으로 향했어. 저것때문에 지금 갈라진 거야.


노안

우선 후퇴하자! 객차 연결칸과 중형 방화문을 이용해서 차단하고 정비 시간을 확보하자고.


수송대장 신야

그래, 지금은 물러설 수밖에!


수송대장 세나

가면서 쓸만한 거 보면 잊지 말고 주워!


세 핵심 멤버의 명령에 따라 각종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수송대원들은 서로를 엄호하며 하층칸으로 빠른 걸음으로 철수했지만, 거의 궤멸 직전이었던 상층 경비병들은 원형기계 뒤에 숨어 승기를 틈타 공격을 이어갔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이봐, 저 경비병들을 좀 봐!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보니 원형 기계체의 엄호 아래 지붕을 타고 오르는 경비병들이 보였다.


수송대장 신야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노안

우리와의 교전을 피해...뒤로? 잠깐만! 뒤에는 전부 참전할 수 없는 민간인들이야!


수송대원 지미

그놈들은 항상 저런 식으로 위협을 가했었어!! 어떡하지? 지붕을 타고 그 녀석들과 싸워야 되나?


수송대장 세나

안 돼, 머릿수가 너무 많아, 귀족양반께서 아직도 이렇게 많이 숨겨 두셨을 줄이야.


노안

레이첼이 집계한 숫자에 따르면 오슬란 주변의 호위병일 가능성이 높아.



레이첼

세나, 노안, 다수의 호위병들이 우리를 우회해 빠져나갔어!


수송대장 세나

나도 봤어, 이제 어떡하지??


레이첼

후퇴하자! 지금 오셀람 호는 204터널 앞에 있는데, 그 터널 높이로는 지붕에 올라타도 자유롭지 못할 거야.


레이첼

그리고 열차가 204터널에 진입한 뒤 15분 정도 지나면 모두 G열차칸에서 철수해 안전보호를 철저히 하고!


노안

G열차 칸? 거긴 왜?!


레이첼

폭파시킨다!



9:01 a.m.


겨울 하늘이 방금 전에 피어오른 먹구름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배어내자, 주위에 큰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질주하던 열차가 204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G열차 객차 중간 지점에서 이탈했다.


상층 객차는 전방의 관성에 의해 한참을 더 달린 뒤 5㎞ 떨어진 선로에 멈춰섰다.



하층 객차는 폭발과 함께 크게 흔들렸고, 폭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화물칸도 전복됐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일찍이 대비를 했었고, 뒤쪽의 서민 객차 안은 대부분 무사했다.


노안

신호 확인, 앞쪽도 멈춰섰어.


수송대장 세나

뒤쪽에서 이렇게 많은 열차칸들을 잃어버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걸, 귀족들에 눈에는 이것 하나하나가 전부 돈이잖아.


수송대장 신야

그 거대한 군용기계도 따라왔나?


노안

아직은 없어.


아직 싸울 수 있는 멤버 대다수는 레이첼을 따라 앞쪽에 남아있고, 지금은 세나, 신야, 노안, 지미라는 이름의 수송대원, 일벌부대원 마이크만 함께 있었다.


수송대장 신야

다들 우선 열차칸을 떠나자, 양쪽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만일 따라잡히면 공든 탑이 무너져버린다.


수송대장 세나

밖에 나가면 안전할까? 경비병도 기민하게 움직인다고.


수송대장 세나

쉿! 무슨 소리 안들려?!


머나먼 하늘에서 수송대원들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소음이 들려왔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헬리콥터인가?!


바로 다음 순간, 강렬한 불빛이 부서진 객차를 연달아 삼켰다.



수송대장 신야

미친 놈들!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노안

일단 엄폐물을 찾아!


탄알은 폭발하는 연기를 뚫고 군중에게 발사되었고, 약간의 불꽃과 함께 객차의 벽과 바닥에 탄흔을 남겼다.


수송대원 지미

윽!


후방의 지미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왼쪽 어깨에 한 방 맞았다.


노안은 지미를 일으켜 세우려다 뒤따라오던 마이크가 뒤를 잡고 벙커로 끌고갔다.


노안

지미!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려다 다시 한 번 세나에게 눌렸고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고개를 저으며 노안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포기해, 지금 나가봤자 한 명 더 죽을 뿐이야.


총에 맞은 지미는 통증 때문에 계속 신음했고, 빽빽하면서도 제멋대로 갈기는 총알이 그의 옆을 스쳤지만 명중하지 않았다.


지미는 벙커 쪽으로 기어오르려 했지만 조금만 움찔해도 총알이 그의 팔다리에 떨어졌고, 강한 광선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방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들은 죽어가는 지미를 농락하고 있었다.


수송대장 신야

***!!! 전부 죽여버리겠어!!!!


수송대장 세나

바보야! 아직도 모르겠어! 이게 그 녀석들의 목적이라고!


지미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단지 엄폐물 배후의 사람들을 끌어낸 후 직접 사살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수송대원 지미

아파...너무 아파...


나이로 치면 소년일 뿐인 지미는 총상의 통증으로 온몸을 떨었고, 떨림과 함께 쏟아진 눈물이 피를 씻어내며 앳된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심한 고통을 참으며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기어갔고, 온몸에 흙탕물이 묻었음에도 권총을 들고 앞을 향해 흐느꼈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지 않고 웅장하고 눈부신 빛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수송대원 지미

아아아아아....너희들...너희들...


하지만 강한 빛에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총을 잡을 힘조차 없었다. 유탄으로 목숨을 아끼고 있는 귀족들을 죽이는 것, 그것이 지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쳇',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몇 발의 총알이 지미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며 그의 쉰 절규를 그치게 만들었고, 쓰러진 시체는 여전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눈물과 피는 그의 맑은 눈동자를 흐리게 만들었다.


수송대장 신야

개자식...쓰레기 새끼들!


일벌부대원 마이크

그런데 이제 우리 어떡하지….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어.


수송대장 신야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도 단지 죽기만을 기다릴 뿐, 그렇다면 차라리 나가서 그들과 싸우자!


수송대장 세나

그렇다면 아직 싸워야 할 때가 아니야...저길 봐.


세나는 G열차 칸이 끊어진 쪽을 가리키며 상층 경비병이 있던 자리 바로 옆을 가리켰고, 마침 이 칸의 갑문 바로 옆에는 오셀람에서 과거 암모니아-3 융합에너지를 사용하기 전, 비상시 객차 문을 열었던 장치가 있었다.


수송대장 세나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압축된 고열가스가 있어. 나는 예전에 정비부대원들에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그 가스가 새어나올 수만 있다면, 그놈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수송대장 신야

그때쯤이면 우리가 흩어져서 숨어있다가 동시에 기습공격을 가할 수 있겠군…우리에게 폭발물이 남아 있을까? 대전차 수류탄 같은 거라든지...


일벌부대원 마이크

그게 있었다면 진작에 썼겠지!


수송대장 신야

그럼 아무 의미 없어! 우리가 그걸 파괴할 방법이 없는데…


수송대장 세나

나는 그것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내가 가까이 가게 할 수만 있다면 드라이버 하나면 충분해.


신야는 그녀를 보고 몇 초간 침묵한 후, 얼굴을 찌푸렸다.



수송대장 신야

안 돼...


수송대장 세나

동시에 발포만 할 수 있다면, 5초만 엄호한다면… 아니, 3초면 충분해, 엄폐물을 통해 저쪽 길로 접근할 수 있어.


수송대장 신야

안 된다니까! 이렇게 하는 게 자살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아까 나한테 그런 식으로 설교했잖아!


수송대장 세나

그치만 어떡해...지금 그것만이 유일한 살 길인걸. 그리고 전에 레이첼이 말했잖아, 시비가 붙으면 무조거 내 말을 들어주라고 말이야.


수송대장 신야

**! 기억 안 난다고!


연이은 사격음이 다시 들려왔고, 여러 발의 총탄이 엄폐물 가장자리를 스치며 날카로운 충격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젠장...포위하고 있어!


수송대장 세나

머뭇거릴 겨를도 없어, 내가 셋을 셀테니까, 너희들은 동시에 총을 쏴 3초 이상 화력 엄호를 해줘! 상대 진영이 흐트러지면 각자 흩어지자고, 알겠어?



노안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


모두가 입을 다문 와중에 노안만이 대신 물었다.


수송대장 세나

응, 다른 방법은 없어.


수송대장 세나

겁내지 마, 아직 사람들이 살아있잖아. 우리가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내 선택이 옳아.


수송대장 세나

참, 신야...지난주에 너가 말한 거에 동의할게. 앞으로 우리 같이 살자고 했었지.


수송대장 신야

뭐? 이제와서 말하는 거야?!


수송대장 세나

그래, 이미 늦었지.


신야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세나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울려 퍼졌고 그것은 그녀의 삶의 카운트다운을 대변하는 듯했다.


수송대장 세나

3!


그 짧은 3초가 지나면 그녀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닌, 죽음의 신의 품에 안긴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수송대장 세나

2!


신야는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손에 든 소총은 발포 준비의 위치에 놓였다.


수송대장 세나

1!


그녀는 다음 순간 죽음을 각오했고, 그간 동료의 죽음에도 익숙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1초 동안 마지못해 동료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는 최후의 나약함이었다.


수송대장 세나

발사!


포효와 총성이 수송부대 엄폐물 뒤에서 들려왔다.


천천히 포위하고 있던 경비병들은 적의 화력을 가늠할 수 없어 각자의 엄폐물 뒤로 몸을 움츠리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총알을 피했다.


눈치 빠른 녀석이 오른편 엄폐물 뒤에서 빠른 속도로 뛰쳐나왔지만 화력에 밀려 사격의 정확성이 떨어졌다.


수송대장 신야

사격을 멈추지 마라!


그것이 지금 그들이 유일하게 세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눈물 대신 포효와 총탄을 쏟아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슬픔에 짓눌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불과 3초 만에 수송부대의 탄약이 고밀도의 화력를 일으키며 하늘을 뒤덮었고, 불빛이 꺼지는 순간 상층 경비병의 포효가 현장을 장악했고, 차례로 엄폐물 뒤에 있던 수송대원 몇 명을 제압하며 꼼짝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경비병들은 비명을 질렀다. 뜨거운 가스가 문가에서 뿜어져 나와 그들의 진형이 혼란에 빠졌다.


상층 경비병

***! 그 여자다! 죽여라!


짧은 총성과 폭발음이 몇 차례 들리면서 세나의 생명은 동료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고, 계속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기류에 휩쓸려 상층 경비병으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다.


수송대장 신야

각자 흩어져!


그 틈을 노린 세 사람은 급히 달려나와 복잡한 객차 내부 통풍관과 기관시설로 흩어졌다.



이들은 화력과 병력이 거의 열 배나 되는 적들을 상대할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상층 경비병에 비해 이곳의 지형에 익숙했었다.


어디서 발사됐는지 모를 총알이 머리 위로 높게 치솟았다. 전 객차 깊숙한 곳을 속속 밝히던 전등이 깨지고 다시 어두워지면서 경비병들은 적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갈라진 곳에 서서 객차 내부 햇빛에 노출된 이들은 살아있는 표적이 되었다.


끊임없이 총성이 울리고, 몸을 내밀어 적의 종적을 쫓으려던 경비병이 한 방에 터지는가 하면, 분명 엄폐물에 숨은 것이 명백한데도 자신들을 관통하는 총알이 어디서 발사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계속되는 인력 손실에 인내심마저 잃은 상층 경비병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엄폐물들을 중화력으로 소탕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맹렬한 폭발과 함께 수송부대의 총성은 멎었다.


상층 경비병

3인 소대를 꾸려 산개하면서 진격한다! 반드시 그들을 찾아내라!


그들은 조심스럽게 앞을 내다보았지만 뜻밖에도 총성이 자신의 등뒤에서 터져나오면서 몇 소대가 금세 무너지고, 상층 경비병들은 아수라장으로 빠져들었다.


수송대장 신야

이 쓰레기들에게 쓴맛을 보여주마!


노안은 적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빼내자 신야가 객차 구석으로 슬쩍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안

신야! 무슨 생각이야?


방금 전 경비병들이 일으킨 폭발로 불이 번지고 있었고, 공기부양장치 부근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었고, 머지않아 그곳은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게 될 것이다.


수송대장 신야

저 놈들에게서 시신을 빼앗아 올거야, 어떻게 그놈들이 거기에 머무를 수 있게 하겠나, 나는 세나를 책임질 테니...너희는 지미를 책임져...


말릴 겨를도 없이 신야는 허리를 굽힌 채 경비병의 시선 아래에서 엄폐물로부터 재빨리 객차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는 곧 세나의 옆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시체를 보기 전까지 신야는 순간 그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가 세나의 시신을 안전한 곳으로 안고 가려 하자 발밑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잡동사니 속에 감춰진 큰 덫이 그의 왼발을 덥석 물었다.


수년간의 훈련으로 이를 악물고 왼발의 통증을 거의 짓누르며 전혀 울부짖지 않았지만, 기관의 자동 음성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상층 경비병들에게 그의 위치를 특정시키기 충분했다.


신야가 있는 곳을 향해 폭우 같은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엄폐물에 몸을 숨겼지만 복부에 두 발의 총상을 입었다.


그는 이곳의 모든 함정의 위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는 결코 불가능했다.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면, 상층 경비병들이 의도적으로 이 함정을 놓아 시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수송대장 신야

***! 비겁한 놈들...!


노안과 마이크는 지미의 시신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지만 이미 신야는 경비병들의 시야에 노출되어있었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신야가 부상당한 것 같아... 아무래도 그에게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적의 수가 많지 않다고 말이야! 할 수 있겠어? 레이첼의 고양이!


노안은 손목을 돌려 단검과 석능검을 모두 손에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의 총성을 신호로 노안은 객차 안 복잡한 지형에서 신야와 가장 가까운 경비 소대에게 쏜살같이 달려갔고 손에 든 날카로운 칼날이 신야에게 시선이 집중된 경비병 몇 명을 관통했다.


그의 옆에 있던 동료는 노안의 뒤를 노렸지만, 다른 한 손에 들린 단검에 손목이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지자 비명을 질렀고, 허둥지둥 총을 갈기던 세 번째 멤버도 멀리 있던 마이크에게 맞아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노안은 신야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와 번지는 불길과 빗발치는 총탄으로부터 힘껏 끌어냈지만 발 밑의 세나의 시신은, 그녀가 무자비한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안전한 엄폐물로 돌아갔지만, 위치가 노출되는 바람에 세 사람은 다시 적의 화력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수송대장 신야

**! 전부...내 잘못이야! 세나를 데려오기는 커녕 너희들마저...


일벌부대원 마이크

뭔가 할 말이 있으면 여길 떠난 뒤에 말해.


이때 신야의 단말기에서 통신 요청음이 울렸다.


세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 노안은 신야를 일으켜 세웠고 마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탄약으로 응사하며 남은 경비병들의 접근을 막았다.


수송대장 신야

나는 신야다...지금 우리는 열차 후미에 있다...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미, 세나도...너희들은 어떤 상황이지?


수송대원 웨이란

그렇군...우리 쪽도 인력이 부족해서, 심지어...너희들의 도움마저 필요한 상황이야.


그의 목소리는 매우 빈약해서 언제든지 끊어질 것만 같았다.


수송대장 신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지? 레이첼은??


맞은편에서 한참 침묵이 흐른 뒤에야 대답이 들려왔다.


수송대원 웨이란

레이첼과 헤어졌어. 레이첼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


신야가 추궁하려 했지만 통신 쪽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산발적인 총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일벌부대원 마이크

그 거대한 군용 기계가 그들 쪽에 남아 있어 가뜩이나 승산이 없는 상황이야.


일벌부대원 마이크

이 혁명은... 이미 실패했을 가능성이 커...


수송대장 신야

그럴 수 없어...


일벌부대원 마이크

그들은 졌어...우리도 이미 졌다고!


노안

그 경비병들도 수많은 사상자를 냈어, 나는...



신야를 안고 있던 노안은 갑자기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 피는 벌써 배와 팔에 물들어 있었다.


노안

신야!?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지금 당장 지혈을 해야...


노안은 신야의 상처를 꽉 막으면서도 피가 흐르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고, 신야의 생명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노안

안 돼...


하지만 신야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 듯, 괴로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통신단말기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수송대장 신야

이것이 정녕 우리가 그토록 노력해서 바랐던 결과라면 너무 비참하기 짝이 없군...


과다 출혈로 인한 실신은 신야의 의식을 잠식해갔고, 방치하면 쇼크사의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층 경비병들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객차 안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상층 경비병

숨어 있는 폭도들은 당장 나와라!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방송에서 갑자기 한 아이의 비명소리와 그의 부모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층 경비병

폭도를 지지하는 동조자들에 대한 형 집행을 시작하겠다, 알겠나!


일벌부대원 마이크

동조자라니 *같은 소리하네! 그렇게도 인질극이 좋은 건가?


노안

사람들을 전투 속으로 말려들게 할 수는 없어...


일벌부대원 마이크

하지만 우리 둘만 남았잖아! 누가 되었든 지금 상황에서 자신을 보전하면서 모두를 구할 방법은 없다고!


노안

마지막 방법이 하나 더 있어.


일벌부대원 마이크

거짓 항복?


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폐물 뒤에서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 다음 두 손을 올렸다.


상층 경비병

사격 중지!


경비병들은 사격을 멈췄지만 총구는 여전히 벙커가 있는 곳을 단단히 겨냥하고 있었다. 이 수송부대 놈들이 얼마나 완강하고 교활하게 사냥하는지는 이미 여러 번 맛보았었다.


노안과 마이크는 엄폐물에서 손을 번쩍 들고 천천히 일어섰고, 마이크는 의식불명인 신야를 등에 업고 적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되는 불안한 느낌과 함께 엄폐물에서 빠져나왔다. 


상층 경비병

좋다ㅡㅡ그 동작 그대로 천천히 걸어와. 잔꾀 부릴 생각 말고.


그는 옆에 꿇어앉은 아이의 얼굴을 권총으로 가볍게 툭툭 쳤는데, 그 불쌍한 아이는 이미 놀라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종아리에 감춰진 그의 마지막 호신 비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납치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노안은 그 사람들 중에 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그를 잘 보살펴 주면서도 겁이 많은 여인이었다.


...


레이첼은 항상 '모든 사람이 나쁜 사람과 싸울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런 행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야.'


열차의 하층 칸에서도 이런 생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항상 전투에 힘을 보탤 수 없는 사람들이 희소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힐도 감옥에서 활동하며 계속 힘을 보태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일찍이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고, 또 얼마나 많은 찢어진 옷을 그녀가 꿰맸을까?


노안은 이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길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아직 안전하기에, 그 눈에 끝없는 두려움이 비쳐도…. 그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미약한 힘에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미안해...미안해...


노부인의 눈물이 그녀의 주름진 얼굴을 가득 적셨다.


나는 어째서...항상 이런 식으로...어릴때부터 널 감싸주지 못했어...


노안

힐 아주머니, 슬퍼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그는 힐을 향해 웃음을 짜보려 했지만 도저히 웃지 못하고 경비병의 감시 속에서 그들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줄리가 연행되기 전에 나는 분명히 바바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감히 말할 수 없었어...


그녀는 경비병의 뒤에서 흐느껴 울었다.


노안

...?


나는 그냥...그냥 그녀가 그것들을 먹는 것을 지켜봤고..그래서...그녀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어...!


힐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들이 경비병에게 접근하기 바로 전, 바로 그때ㅡㅡ



ㅡㅡ총성과 폭음이 거의 동시에 들렸다.


노안

...힐...아주머니...?


그녀가 언제 수류탄을 얻은 건지, 또 언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노안은 알 수 없었다.



미안하구나, 아줌마는 겁이 많아서 너희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나서지 못했단다.


...미안해....미안해...



노안

...


...나쁜 사람과 싸울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다.


ㅡㅡ하지만, 정말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소년은 성장을 통해 쌓아 올릴 수 있고, 노인 또한 쌓아 올린 것을 말미암아 변할 수 있다.


비록 곧 얼어붙어 꺼질 불길이라도, 이렇게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용기가 여전히 쌓여 있었다. 








이번 스토리 왤케 슬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