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종점에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의식이 설원에 녹아들어가기 전에…. 노안은 행복한 꿈을 꿨다.


그 꿈 속에서 죽은 것은 눈밭에 누워 있는 지금 자신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오셀람 호에서 무사히 살아 있었다.


의식이 공백이 되어버린 후, 그는 더없이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다.


이 꿈에서 그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오셀람 호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구조체의 간섭으로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다.


가슴에 난 총상은 지인이 선물한 기계 반딧불이에 막혀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는 이 차가운 땅에 엎드린 채 심한 통증과 함께 살아났지만, 아끼던 사람들은 모두 이 겨울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ㅡㅡ후회하니?


아득한 목소리가 다시 기억을 뚫고 귓가에 울려 퍼졌다.


ㅡㅡ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증거'를 내놓을 거야?


노안

...


ㅡㅡ왜 대답하지 않는 거야? 너의 의식마저 죽음의 기억과 동화되어 버린 거니?


목소리는 구슬프게 탄식하고 있었다.


ㅡㅡ참, 내가 09번 의료구역을 떠나서 너를 찾아갔을 때 승격자를 배척한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선물'을 남겨놨어.

너에게서 그 '마법'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틈을 타, 그들에게 가서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구해봐.

승격 네트워크의 은혜를 똑똑히 이해한 후...다시 나를 찾아와줘.



노안

...!


기나긴 기억에서 깨어나보니 청년의 몸에는 죽을듯한 환통이 남아 있었다.


노안

혹사!


그는 경고를 남긴 승격자를 부르짖었지만 상대방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노안

09번 의료구역이...!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09번 의료구역은 극도로 위험한 상태일 것이다.


그것이 음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식체에 의해 학살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노안

미안...난 여기에 있을 수 없어!



전투 개시




노안

거의 다 왔다...!


노안

아직 늦지 않았기를!



노안

탤벗! 왜 다들 밖에 있는 거야?


탤벗

네가 부른 구조대보다 침식체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탤벗

의료 구역 안은 이미 안전하지 않아. 철수를 강행해야 한다!


노안

내가 도와줄게!




노안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지?


탤벗

옆의 샛길을 따라 떠났어.


탤벗

여기에 머물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상을 입었어.



탤벗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아.


탤벗

모두들 아직 멀리 가지 않았어. 내가 입구를 지킬테니 네가 가서 그 부상자들을 확인해줘.



노안

조금만 버텨, 의료구역으로 데리고 갈게!


구조체

너희들이...승격자를 여기로 끌고 오는 바람에...


구조체

모두...죽었어...


구조체

...


노안

...이봐, 이봐...!



이 구조체는 이미 죽었다



구조체

하...너구나...


구조체

너와 탤벗이랑 얽힌 승격자가...곧 올 거야...


구조체

그런 거였어...침식체를 통제하는...능력이란...


구조체

우리를 죽이는 것 빼고는...아무것도...


탤벗

이봐! 빨리 와서 도와줘!




노안

자체 파괴 프로그램 가동.



침식체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노안

효력을 잃었어?


노안

어쨌든 이곳을 지켜야 해!



탤벗

릴리안에게...통신을 받았어...


탤벗

그들이 퇴각하는 오솔길에도…침식체가 있다…


탤벗

이러다간...다들 죽을 거야...


탤벗

너의 승격자의 힘으로...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탤벗의 침식은 이미 임계치를 돌파했다


탤벗

살려줘...침식당해서...이제 곧...


노안

그 힘을 통제할 수 없어. 지금 이미 효력을 상실해버렸다고!


탤벗

난 사람을 해치려고 한 게 아니라...승격자와 접촉만 했을 뿐이었는데...


탤벗

살...려...줘...


탤벗은 완전히 침식체로 변했다






전투 종료




청년은 붉은 순환액과 적조의 즙이 가득한 길을 홀로 떠났다.


소슬한 바람은 먼 골목길에서 가냘픈 울음을 보내며 생존자들의 처절한 실태를 호소했다.


...조만간, 적조는 이곳을 잠기게 할 것이다.


후퇴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생존자들에게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결국,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다.


노안

...


기체의 균열은 심한 통증을 유발했고, 순환액은 가슴의 상처를 타고 떨어졌다.


너무나 길었던 전투 속에서 침식체들이 부상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속수무책 '승격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드물더라도 그는 모든 것을 다했다.


연약한 보호장갑은 이미 수차례 타격을 맞고 깨지면서 기체조직을 그대로 드러냈다.


청년은 상처로 자신의 내부 조직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더 공격을 받으면 영락없이 적조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ㅡㅡ이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

노안,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어?


노안

...



노안

장래?


하지

응, 미래의 꿈이나 비전, 그리고 자신에 대한 바람 같은 거 있잖아.


노안

...나중에...나는...


환상과 전설을 그리는 만화가로 거듭나고 싶어.


노안

부지런하면서도 착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될 거야.


노안

그리고...


공정하고 믿음직한 의사가 되고 싶어.


노안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모두의 발목을 잡지 않을 거야.


노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이런 절망적인 환경을 바꾸고 싶어.


노안

엄마와 레이첼의 기대의 부응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야.


하지

정말로?


노안

왜?


하지

만약 정말로 그런 미래를 동경한다면,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 거야?


노안

...


해낼 수 없기 때문에


노안

...아마도, 실현하기 좀 힘들 것 같아서.


하지

내가 아는 노안은 어렵다고 해서 자신의 소원을 포기하지는 않아.


하지

게다가 너는 영웅이 되고 싶어하잖아?


노안

...그럴 리가 있겠어.


하지

하지만 항상 이곳의 환경을 바꾸고 싶고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고… 이처럼 영혼에 새겨진 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


노안

내 영혼에 이런 게 새겨져 있다고?


하지

응, 이미 영혼에서 살갗으로 새어 나와 얼굴에 쓰여져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니까 미소가 차마 나오지 못한 거겠지.


노안

...


하지

다시 한번 물어볼게.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어?


노안

...장래에...



노안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모두를 지켜줄 수 있는...



노안

...'영웅'...



단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현실은 꿈과 동떨어져 버렸고, 지금의 그는 타협하고 싶은 당초의 바람조차 이루지 못했다.


'영웅'을 동경하던 그 아이는 이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죄인이 됐다.


노안

...혹사, 근처에 있지?


탤벗은 승격자의 힘이 모두를 도와주기를 죽기 직전까지 기다렸었다.


레이첼이 죽을 때까지 그 단말기를 믿고 노안이 다시금 수송부대를 재편성해 다시 항쟁을 벌이길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 레이첼의 말을 듣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는 바람에 모두의 희생과 소망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야 할까?


노안

무언가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이 원래 증오했던 길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영혼과 그것에 새겨진 소망도 포기할 것이다.


이 마지막 한 가닥의 위로를 안고 그는 으슥한 숲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이 길마저도 바꿀 수 없다면?


이 길에서 겪은 경험, 적조에 잠긴 생명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계획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ㅡㅡ선별하여, 약자를 포기한다.


한 번 발을 들이는 순간,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자유롭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분명했다.


마치 레이첼처럼 거역할 수 없는 권력과 협력하는 것을 선택하면, 그 권력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평생 후회하게 될 상처를 줄 것이다.


노안

...아니야, 그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결과가 아니야...


┘┘!!


노안

...?


무언가 희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승격자┘┘┘——?!


그 목소리는 초조하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노안

....승격자...


...비극적인 장면과 뒤에서 습격당한 군중들을 목격한 사람은, 으레 '무사'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던가?


——┘┘┘거기 서!! 멈춰┘┘!!


...상대방은 여전히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이 때문에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몸의 '비정상'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다. 그것이 통제 불능이든 효력을 잃은 것이든, 도무지 규칙을 찾을 수 없었고, 그것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노안

...


앞의 가로등을 건너면 미지의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고, 미지의 장소에서 결말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했고, 머물 수도 없었지만, 뒤에 있던 총알이 막연한 말을 대신하며 그의 팔을 스쳐 두 줄의 핏자국을 남겼다.


그는 새로운 아픔을 딛고 차츰 의식이 혼란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등뒤에서 그 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알아들었다.


ㅡㅡ이게 마지막 경고다, 멈춰!!



노안

...


노안

...마지막 경고...?


ㅡㅡ만약 승격자에게 갈 생각이라면 나는 총을 쏠 수밖에 없어!!


이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탈주자 중의 하나라고 여기는 것이었을까?


노안

...그것도 맞을지도.


청년은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있던 너덜너덜한 장갑판을 힘껏 잡아당겼다.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안

마지막 경고라고 했지. 그럼...다음에는 조준을 해줘.


기억 속에 잠든 그 회한과 눈앞에 펼쳐진 비정상의 범죄는 진흙이 되어 미래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상을 포기한 영혼은 죽었고, 그 다음은 육신의 소멸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만약 악을 도살하는 사명을 가진 이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노안

...왜 그래? 아직도 쏘지 않은 거야?


지휘관

너는...전에 그 기억상실에 걸린 구조체?


노안

...맞아.


지휘관

도대체 의료구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노안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지휘관

(1)(여기에 다른 사람은 없어)

(2)(죄를 묻는 것도 먼저 사실을 밝힌 뒤의 얘기야)


노안

내가 진실을 말할 거라고 믿어?


지휘관

(1)(나의 판단을 믿어)

(2)(네가 먼저 말해야 내가 믿을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어)


노안

...


지휘관

탈주자와 승격자를 조사하는 것이 우리의 이번 주요 임무야.


지휘관

우리는 임무 수행 중에 구조 요청을 받았어.


지휘관

승격자의 활동신호도 인근에서 감지됐었지.


지휘관

9번 의료구역 사람들은 이곳에 탈주자들이 승격자를 맞이하고 있다고 알려왔어.


지휘관

그들이 말하는 게 너를 가리키는 거야?


노안

...어쩌면 그럴지도.


지휘관

어쩌면?


청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길에서 마주친 이상함을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지휘관

...승격자에게 개조되었다고?


노안

...맞아.


지휘관

그러니까 너는 결코 자원했던 게 아니라는 거네.


노안

하지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노안

내 몸에 걷잡을 수 없는 이상함이 있는 한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


노안

혹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막기 위해 나는...


지휘관

만약 통제할 수 있다면?


노안

...응, 그 승격자를 찾아가서 그 능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할 생각이었어.



지휘관

아니, 나와 함께 공중정원에 갔으면 해.


지휘관

그곳의 과학 연구자는 너의 그런 이상함을 해결하는 것을 도와줄 거야.


노안

...과학자...


지휘관

만약 네가 여전히 무고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행위를 증오하고 있다면


지휘관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고, 승격자를 따라가지 마.


지휘관

너는 아직 선택할 기회가 남아있어.


노안

...선택할...기회?


지휘관

너는 나와 함께 공중정원에 가는 것을 선택한 후에 살아갈 수 있어.


지휘관

아니면 승격자가 되기 전에 여기서 죽음을 선택하거나.


노안

이것도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휘관

미안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어.


지휘관

승격자가 한 명이라도 더 나오는 것을 지켜보지 않을 거야.


노안

...


노안

내가 당신과 함께 간 후에 당신이나 동료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렵지 않아?




[1]

지휘관

(1)(그런 상처입은 몰골로?) ← 선택

(2)(나는 엘리트 소대의 실력을 믿어) ← 선택

(3)(지금의 너는 거의 움직일 수 없겠지)


노안

...


[2]

지휘관

(1)(그런 상처입은 몰골로?)

(2)(나는 엘리트 소대의 실력을 믿어)

(3)(지금의 너는 거의 움직일 수 없겠지) ← 선택


노안

통찰력이 좋구나.




노안

그럼, 내가 당신에게 질문 하나 해도 될까?


지휘관

말해.


노안

만약 내가 당신 말대로 공중정원까지 가더라도 그곳의 연구자들도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을거야.


노안

그리고 나는 승격자가 될 기회를 놓쳤고...혹은 탤벗이나 다른 '탈주자'들이 바라는 대로 퍼니싱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없었어.


노안

마음속 '올바른 길'을 위해 바꿀 수 있는 힘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지휘관

(1)(물론 옳은 선택이야)

(2)(그것은 바꿀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굴복의 연약함이야)


지휘관

연구자들이 잠시 손을 쓸 수 없다고 해서,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


지휘관

이곳에서 전사한 군인들은 모두 지금의 참혹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였어.


지휘관

이런 환경을 만든 것은 퍼니싱 바이러스와 승격자들이야.


지휘관

네가 그 힘이 목적이라면, 그들의 하수인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해야 하겠지.


지휘관

이것은 희생된 전사들에 대한… 배신이자, 모독이잖아!


노안

...


지휘관

표정을 보니 너도 이런 답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노안

맞아.


노안

하지만 나는 이 답이 주는 결과에 막막했던 적이 있고, 정확히 말하면… 지금도 막막해.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빙산처럼 무거웠던 오랜 꿈은 그렇게 쉽게 녹일 수 없었다.


지휘관

승격자들이 고집하는 '선별'에 동의해?


노안

물론 동의하지 않아. 나에게는 평범한 생명도 유일무이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의지에 따라 생존과 죽음의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해.


노안

그리고 어떤 생명이 살 자격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이 아니야.


지휘관

그러면 인류의 과학 기술 진보가 너에게 원하는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믿어줘.


지휘관

설령 그 결과조차 기다림이 필요할지라도.


노안

...


지휘관

게다가 너는 나의 초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고 메모로 남겼었잖아.


지휘관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야.


노안

메모...?



어리둥절한 가운데 노안은 출발 전 고마움을 전하는 메모를 확실히 남겼던 기억이 났다.


메모 말미에 그는 이런 말을 썼다.


'나도 당신의 초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기억을 되찾은 뒤 당신과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솔직하게 설명할게.'


노안

이럴 때 그런 얘기를 왜 꺼낸 거야?


지휘관

(1)(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것 같으니까)

(2)(나와 함께 가기를 바라니까)

(3)(승격자가 더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그 대답을 들은 청년은 조용히 웃었다.


노안

...그래.


공중정원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아직 알 수 없는 걱정과 의혹이 많았지만, 그 몇 안 되는 선택 속에서도 그는 영혼이 지향하는 길을 따르기로 했다.


노안

당신과 함께 공중정원으로 갈게.



노안은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간 지휘관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가로등을 지나 그 손을 잡으려 할 때, 그의 등뒤에서 심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노안

...윽!


빨갛게 달아오른 순환액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고, 청년은 상처투성이의 어깨를 간신히 돌려야 뒤에 있는 보랏빛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안

...혹사...너...


혹사

...


노안

어째서...


혹사

안 돼...이럴 때 날 떠날 순 없어..


지휘관

누구냐?!


혹사는 대답 대신 중상을 입은 노안의 뒤에 숨어서 전방의 지휘관들을 훑어보았다.


혹사

...그레이...레이븐...?


지휘관

그레이 레이븐의 휘장을 알아봤어?


혹사

...너는 인간...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인간...지휘관...? 레븐쉬...?


지휘관

(1)(레븐쉬?)

(2)(그레이 레이븐 소대 전 지휘관을 알고 있어?)


혹사

...그 사람...레븐쉬는 이미...그는 이미 죽었었지.


혹사

...하아...


혹사는 청년의 몸에 박힌 단도를 재빨리 뽑아 들고는 인간에게 향했다.


노안

그만 해, 혹사...!


노안은 상대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기체는 상처투성이라 정상적인 행동을 유지할 수 없었다.


혹사

...너의 기체는 워낙 많은 것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버텨낸 것만 해도 이미 기적이야.


지휘관

(발포)


혹사

...소용없어, 이런 것 따위.


혹사는 총알의 궤적을 예단하듯 쉽게 위험을 피했다.


인류가 취약한 무장으로 미지의 구조체와 싸우려 하자 낯익은 그림자가 질풍처럼 돌진해 날카로운 칼날을 앞세워 적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루시아

ㅡㅡ혹사!!!!


상대의 정체와 이름, 성격을 일찍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그녀는 가차없이 허약해 보이는 몸뚱이를 향해 가장 매서운 공격을 퍼부으며 혹사를 몰아붙였다.


혹사

...루시아...?


어째서인지 상대방은 다소 깜짝 놀란 표정이었고, 이내 혼란에 빠졌다.


혹사

아니야...넌 이미...


지휘관

루시아, 그녀를 알고 있어?


루시아

제가 진작에 말씀드렸어야 했었습니다, 지휘관님.


루시아

그는 바로 레이 레이븐 소대의 전 지휘관이었던 레븐쉬와 연결했던 승격자입니다.




[1]

지휘관

(1)(승격자?) ← 선택

(2)(잠깐, '그'라고?)


루시아

틀림없어요. 그가 레븐쉬와 고위직들에게 끊임없이 기만하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2]

지휘관

(1)(승격자?) 

(2)(잠깐, '그'라고?) ← 선택


루시아

네, 그 당시 제가 그를 만났을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노안

큭....


정말 경우없는 행동이지만 청년은 차마 참지 못해 기침으로 헛웃음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

라미아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루시아

아니요, 옷차림과 목소리만 바뀌었습니다.


루시아는 혹사의 목덜미에 있는 '장식물'을 가리켰다.


루시아

그 외에는 얼굴도 기체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휘관

...



루시아

그때 네가 완전히 죽었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건 내 실수였어.


혹사

...완전한 죽음은 없지...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혹사

방금 생각이 났어...


혹사

승격자가 된 그 루시아와 지금 앞에 있는 너...하하....


혹사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깨어난 거야...너와 다른 점이라면...또 다른 나는 확실히 죽었다는 거지.


혹사

말해줘...루시아,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루시아

우리는 구조 요청을 받았어.


루시아

뒤에 있는 침식체들도 너의 걸작이지.


혹사

...너는 그들을 구했어?


루시아

당연하지! 근처 거점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도와줬어. 어째서 네가 그들에게 손을 대려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부상자들은 모두 치료받았고 이미 무사히 이송되었지.


혹사

...상관없어, 이쯤 되면 그들도 필요 없으니까.


루시아

네가 무슨 계획이든 상관없어, 오늘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네가 여기에 있다면, '종이학'도 근처에 있겠지?


혹사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루시아

그 녀석을 불러내, 한번에 처리해줄 테니까.


혹사

아니, 용서해줘...루시아.


혹사

나는 이미 인류와 함께 살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에 다시는 그 당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야.


루시아

방법? 무슨 방법이지?


혹사

그건 아직 비밀이야.


혹사

나는 지금 이 '방법'을 위해 나와 동행할 파트너를 찾고 있어.


혹사

계획이 다 끝나면 순순히 죽어줄게.


루시아

네 말따위 더 이상 믿지 않을 거야!


혹사

내가 여기서 죽임을 당해도 똑같은 방식으로 깨어날 거야.


혹사

우리는 이 무의미한 투쟁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루시아

갈 생각 마!


루시아가 전방으로 돌진해 혹사를 찌르던 찰나, 주변의 경치가 무수히 번쩍이는 불빛처럼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주변의 모습이 모두 흔들려 조준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루시아

...시각모듈을 교란하다니!


지휘관

(발포)


혹사

말했잖아, 이런 쓸데없는 공격은 소용없다고, 이건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는 다시 한 번 날아오는 탄환을 가볍게 피했다.


노안

원래 이런 상태가 시각모듈이 방해받아서 생기는 거였어?


혹사

내가 엮은 꿈 속에서 잠이 들기를...


칠흑같은 환상이 퍼지고 무수한 잔해가 땅에서 손을 뻗어 루시아의 발걸음을 묶었다.


그러자 거대한 뱀 모양의 기갑 한 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커다란 의자로 변신해 그와 청년을 받쳤다.


루시아

'종이학'의 소리인가?! 지휘관, 조심해요!


혹사

안심해, 난 너희들을 해치지 않을 거야.


혹사

다음에 봐...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새로운 지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