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내려다보았다. 

 


나선 탑의 붉은 빛이 하늘을 찌르고, 모든 에덴의 인공 천막은 고장 속에서 눈부신 붉은색을 통과시키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흔들리며 곧 무너질 것 같다. 과거에 질서를 대표하던 낙원은 이제 통제 불능의 지옥이 됐다. 

 


한 청년이 빠르게 공포에 질린 군중을 뛰어넘어 혼란 속에서 어떤 낯익은 모습을 찾으려 한다. 리와 따로 행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레이는 임무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케로베로스 소대의 임무는 언제나 니콜라가 직접 전달해 왔으나, 이번에는 지휘 계통으로 어불성설의 출격 지시가 내려졌다. 암호화 링크로 총사령관에게 연락해도 반대편에서는 통신이 점유되고 있다는 알림만 들려온다. 가는 곳마다 통제 불능이 빚어내는 혼란이 만연했고, 경고 방송은 여러 차례 반복된 끝에 무의미한 전자음이 되었다. 눈앞의 광경만으로도 공중정원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수중의 단말기로 이미 수없이 같은 통신 요청을 보냈으나,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에서 용솟음치는 불안을 억누르고 고개를 든다. 한두 사람의 모습이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부상을 입은 주민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그중에 한 여성의 우아한 뒷모습은 혼란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 보였다. 마치 환경에 대한 절대적인 장악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그녀가 있는 한 통제력을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머레이: (감사원 인물인가? 그녀들이 왜 여기 있는지……)

 



 

이스마엘: 라스티, 생명의 별은 이미 만원이야. 그녀는 나에게 맡겨. 


라스티: 여기서 치료한다고요?

 


이스마엘은 대답 대신 침착한 웃음을 유지하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라스티: …………

 


라스티라는 감사원은 부상 입은 사람을 부축해 이스마엘에게 맡겼지만, 눈빛은 계속 그녀를 응시하고 있어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듯했다. 



이스마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라스티: 하? 전……


이스마엘: 아니, 뒤에 계신 분께 말하는 거야. 

 


머레이: …………당신의 통찰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뒤에 있는 시선을 볼 수 있으시다니요. 

 


머레이는 그동안의 인사치레로 대처하려 했지만, 구조물을 파악하는 듯이 쳐다보는 두 눈이 자신을 완전히 꿰뚫어 보는 듯하여 머레이는 웃음기를 살짝 거둔다. 

 


이스마엘: 단지 너의 초조함을 느꼈을 뿐이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그녀는 그 말을 다시 반복했다.

 


머레이: 사형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계속 이곳에서 그를 찾았는데…… 혹시 여러분들은 그를 보신 적이 있나요?

 


머레이는 단말기에서 리에 대한 자료를 꺼내며 러스티가 눈길을 주는 걸 눈치챘지만, 그녀는 그것을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린다. 

 


라스티: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 그가 바로 네 형이라고?? 이스마엘 선배 이스마엘 선배, 이 사람이 바로 방금 계류장을 습격한 거 아니에요?


머레이: 계류장을 습격했다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라스티: 하아, 우리는 계류장 위치에서 전투가 발생했고, 수송기 한 대를 빼앗아 지구로 간 것도 모자라 적지 않은 구조체를 다치게 했다는 경보를 받았어. 감사원 부대의 업무도 아니고, 이걸 신경 쓸 겨를도 없는데……

 


이 후배가 자신의 머리끝을 배배 꼬면서 또 쉴 새 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걸 보고 이스마엘은 아무 기색도 없이 말을 받는다. 

 


이스마엘: 내가 설명해줄까?

 


라스티: 좋아요~

 


라스티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물러났지만, 시선은 언제나 곁에 있는 선배를 떠나지 않는다. 

 


이스마엘: 우리도 처음에 명령받았을 때 또 지휘 계통의 혼란으로 인한 잘못된 명령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현장에 도착하니까 피격당한 구조체가 이 영상을 꺼냈어. 

 


이스마엘은 단말기에 비디오를 투영하고, 머레이는 구조체 병사들과 충돌한 리를 잘 볼 수 있었다. 

 


머레이: 형……설마……

 


설마 그도 통제 불능인 지휘관의 영향을 받았을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머레이에게 빠르게 부정당한다. 그는 형의 눈빛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의를 가지고 전장으로 달려가는 눈빛이다. 대표적으로는……

 


머레이: ……그는 또 말없이 가장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해요.

 


무력감과 분노가 동시에 마음속에서 솟아오르고, 그 뒤로는 공포와 슬픔이 뒤따른다. 그가 아무리 많은 어둠의 경로를 손에 쥐고,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아무리 미리 대비하더라도 단신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형의 뒷모습을 붙잡지 못한다. 머레이의 마음속에는 그가 공중정원을 떠나 지상에 가도록 강요하는 강렬한 충동이 솟아오른다. 그는 손수 형을 막거나 그와 함께 사방에 위기가 깔린 탑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는 형의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보는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머레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 발 더 앞서 갔어야 했는데.

 


그는 계류장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스마엘: 때로는……

 


이스마엘은 머레이가 떠나는 모습을 이대로 지켜보려다,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듯 천천히 입을 연다. 

 


이스마엘: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어려움과 고생을 함께 나누기보다는 자신에게만 맡기는 쪽을 선택할 거야……너도 그렇지 않니?


머레이: 저는……


이스마엘: 핏줄로 연결된 사람은 마치 씨앗과 토양처럼, 서로 의지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야. 그러나 싹이 트면, 식물은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지. 지금의 그는 어쩌면 땅과 다소 거리가 있는, 푸른 하늘의 큰 나무로 성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이게 그가 땅과의 약속을 저버린다는 걸 의미할까?


머레이: ……


이스마엘: 미안, 내가 너의 시간을 빼앗았니?


 

그녀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었으나, 하얀 눈동자는 시종일관 허무한 웃음을 머금고 잇어 마치 머레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스마엘: 아무쪼록 네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랄게. 너에게도……너의 육친에게도. 


머레이: ……네. 당신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라스티: …………

 


...

 



 

머레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혹시 지금 형이랑……연락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한 통신이 단말기에 뜨고, 방해로 선명하지 못한 화면 속에서 머레이의 모습이 보인다. 내 생각으로는 그는 언제나 여유롭고 따뜻했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숨김없이 초조함이 가득하다. 

 


지휘관: 리는 방금 나에게 기체 교체 권한을 달라고 했어. 


머레이: ……이건 당신의 명령이야, 아니면 형의 선택이야?

 


머레이의 말에는 나를 질책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헛되이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지휘관: 그는 그 탑으로 가서 방사능의 근원을 해결하기로 결정했어. 


머레이: 과연……그는 끝까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고, 나에게는 막을 기회조차 없었던 거네. 

 


통신 너머의 머레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쓴웃음을 짓는다. 

 


선택 1

지휘관: 너는 나보다 네 형을 더 잘 알잖아. 그렇지 않아?


선택 2

지휘관: 어쨌든……그는 리니까. 


 

머레이는 리가 결정한 일이 절대 변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형이 승산도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도 안다. 


 

머레이: 그래도……너무 무모해……

 

지휘관: 리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했겠지.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와 함께 모든 위험을 분담할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계속 함께 싸워나갈 거니까. 


머레이: ……같이 싸운다, 라…… 형은 머리가 좋으니까, 대부분은 냉정하게 최적의 해결 방법을 찾을 거야. 하지만 이럴 수도 있지……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침착하게 실행에 옮길 거야. 

 


머레이의 목소리는 억누를 수 없는 떨림을 띠며, 그동안 그의 모든 말보다 더 진지한 구걸을 한다. 

 


머레이: 만약 그렇게 된다면……부디, 그를 막아줘. 내가 부탁할게. 

 

선택 1

지휘관: 반드시 그럴 거야. 


선택 2

지휘관: 이건 내 책임이야. 


머레이: 그러면……나도 할 일이 있어. 

 


머레이는 더 이상 화면에 눈길을 주지 않고, 밖의 지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머레이: 형은 당신에게 맡길게,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이 말을 마치자 통신이 두절되었다. 

 


지휘관: ……


 

머레이의 마지막 눈빛이 왠지 불안하다. 다시 한번 리에게 통신 요청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머레이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루시아: 지휘관!

 

지휘관: 나 여깄어. 


루시아: 다른 소대의 지휘관들도 그런 증세에 빠진 경우가 많았고, 엘리트 소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휘관: 그들이 나와 연결하도록 해. 


리브: 당신의 의식에 엄청난 부하가 걸릴 거에요. 일단 한계를 넘어서면, 그때 사이먼 지휘관처럼……

 

지휘관: 알고 있어. 상황이 급박하니, 먼저 일부 전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야. 그러지 않으면 무의미한 희생이 늘어나. 


리브: 하지만……!

 

지휘관: 내가 대체 링크를 추적하고 연결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울게. 


리브: ……알겠습니다……하지만, 한계일 때에는 반드시 중지해주세요.

 

지휘관: 응, 내 몸 상태는 리브에게 부탁할게. 


리브: 네, 저에게 맡겨주세요!

 

지휘관: 다른 소대에 계속 지원 요청을 보낼게.


루시아: 알겠습니다!

 


...

 



 

카무이: 임무 완료. 대장, 그쪽은 어때?


크롬: 방금 [kuroName]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서쪽으로 가서 지원해야 해. 그리고 이상 구조체를 제압한 뒤 [kuroName] 곁으로 데려가야 한다. 


카무이: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구조체와 링크한다고?


크롬: 내가 지휘관의 부담을 나누는 데에 협조하는 거야. 진영의 상태를 재정비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반드시 할 수 있는 일부터 착수해야 해. 


카무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는 여전히 루시아와 리브만 있어? 리는? 


크롬: 아직 소식이 없어. 방금 통신에서 [kuroName]이 그가 기체를 교체하고 그 탑으로 향했다고 언급하셨어. 


카무이: 혼자서?! 이 녀석 자꾸 왜 이래!


크롬: 이미 지나간 일이야. 지휘관과 리의 판단을 믿자. 우리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지원하러 간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카무이 먼저 가. 


카무이: 응. 

 


반즈: 조심히 움직여. 지름길에는 온통 감염체 밭이야. 


카무이: 문제없어!


 

...

 



 

같은 시각. 

 


라스티: 선배~! 여기는 이미 해결했어요. 우리 다음 장소로 가요. 


이스마엘: 그래…… 내가 마무리를 지을게.

 


그녀는 조용히 대답하며, 돌아서서 여전히 혼란 속에 있는 공중정원을 바라본다. 

 


라스티: 그럼 선배에게 맡길게요! 나는 구석에서 쉬어야……아니, 짐 챙길 준비나 해야지!

 


통로 가운데에 놓인 게슈탈트가 중계하는 실시간 지구 영상에는 이미 눈부신 붉은 빛이 나타나 있다. 

 


이스마엘: …………

 


더 높은 위도의 ‘계단’을 향해…… 이 파멸의 빛은 단지 그것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마엘: ……예상보다 이르네. 모든 게 가속하고 있어. 

 


이스마엘의 귓가에 게슈탈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게슈탈트: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계단을 오를 수 있든 없든 간에 인도하게 될 겁니다――


이스마엘: 나나미, 아직 여기에 있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한 이름을 말한다. 

 


게슈탈트: 그녀는 파멸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 ‘지금’의 그녀는 확실히 바꿀 수 없어. 


게슈탈트: 참고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정보 베이스를 업데이트하십시오. 


이스마엘: 그럴 필요 없어. 그녀에게 선물을 받은 사람은 이미 출발했어. 한때의 ‘균형’은 이미 깨졌고, 인류는 퍼니싱과 맞설 가능성이 생겼어. 다만, 계단이 너무 일찍 내려와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그다음……

 


이스마엘은 실시간 영상 속의 지구를 살며시 회전시킨다. 그러나, 한쪽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라스티: 선배……이스마엘……

 


...

 



본ㆍ네거트: 보아하니 나선의 탑이 확실히 나타난 것 같군요. 

 


하이디: 네, 선생님. 

 


날개 달린 소녀가 앞에 있는 남성에게 인사를 올린다. 

 


하이디: 그 여성분……자비로운 자도 그것 때문에 움직이시겠죠……그녀는 인류를 도울까요?


본ㆍ네거트: 우리는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가 인류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건 확실하며, 인류가 어떤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는지 기대되는군요. 나선의 탑이 예상보다 일찍 나타났고, 그로 인해 인류가 일찍 퇴장하게 된다면 다음 여정은 더욱 지루해지겠죠. 하지만, 이들이 생존할 수 있든 없든, 나선의 탑은 승격 네트워크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칩니다. 승격 네트워크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우리도 연루되기 때문에, 인류는 물론 승격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별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 항상 같은 기준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며, 또 그 ‘신인’을 불러와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

 



 

롤랑: 드디어, 또 만났네.


???: 내 말이. 저 탑은…… 도대체 뭐야?


롤랑: 너는 그 선생님 곁에 그렇게 오래 남았는데도 소식을 못 들었니?


???: ……난 단지 배신자일 뿐이야. 이런 일을 그가 나에게 알려줄 리가 없어. 


롤랑: 하……내 앞에서는 이런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배신자 아가씨. 


???: ……좋아. 

 


라미아: 이렇게 하면 되지?


롤랑: 역시 이 모습이 좀 더 익숙한걸. 돌아온 걸 환영해, 오랫동안 실종된 라미아 아가씨. 


라미아: 어……이 말은 지난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롤랑: 아무래도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너와 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잖아. 


라미아: 그, 그 얘기는 그만해. 근데 이 탑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라?


롤랑: 결국 나는 아직 그 선생의 동료가 아니라서 많은 걸 듣지 못했어. 하지만, 그가 이 날을 예상하고 준비했다는 건 알고 있지. ……하, 원래 그의 ‘속임수(聲東擊西)’는 단순히 적조가 바다에 퍼지는 일을 은폐하기 위해 배신자를 선동하는 걸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적조가 바다에 퍼진 것도 그의 다음 계획과 관련이 있거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걸지도 몰라. 


라미아: 정말 이 지경까지 온 거야?


롤랑: 누가 알아? 지금 모든 게 그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쓸모없는 배신자 무리에서도 모든 선별을 통과할 수 있는 승격자가 나타났으니, 정말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이 연극은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을 뿐이야. 정말로 또 다른 변화가 있을지도 몰라. 


라미아: 그러면 그가……그 배신자들 속에 내가 섞여 있다는 걸 눈치채진 않았겠지?


롤랑: 글쎄. 아니면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 오랫동안 행방불명된 너 같은 사람에게 정보를 물어봐도 자신이 얻을 건 없다고 생각했거나. 


라미아: ……하지만, 배신자로 위장한다는 건 네 생각 아냐? 너, 나랑 따로 행동한 후에 어떻게 됐는데?


롤랑: 그는 나에게 루나 아가씨의 정보와 선택권을 주었지. 그리고 나는 그 선택권을 루나 아가씨에게 줬어. 지금의 그녀는 이미 달을 떠났으려나? 내가 루나 아가씨를 찾는 동안, 너는 계속 혹사와 그 특별 게스트랑 놀고 있었지 않아?


라미아: 대부분의 시간은 단지 그를 도와서 배신자를 데려오는 데에 그쳤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도 그 ‘게스트’를 어떻게 할 수 없었어. 


롤랑: 아무것도 얻은 게 없네. 


라미아: ……그, 그렇기는 하지만, 완전히 그런 건 아냐……


롤랑: 아? 뭘 알아냈는데? 우리가 루나 아가씨를 찾아가는 참에, 한번 말해봐. 


라미아: 어, 그 혹사에 관한 건데. 그의 의식이 엄청나게 복사됐어. 그 대행자는 이런 기술을 익히고 있는데, 만약 지금의 혹사가 죽으면, 그는 의식을 복제해서 다시 혹사를 만들어 낼 거야……

 


...

 


광풍이 사람의 비명을 지르며 거친 대지를 헤맨다. 아무도 살 수 없는 고농도의 퍼니싱 바이러스 속에서 가냘픈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선다. 

 



 

혹사: …………

 


그는 높은 탑을 그만 바라보고, 옆에 있는 이합 생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쉰다. 

 


혹사: 너희는 모두 살아있어…… 지난번에는, 내가 너희를 지키기 위해 죽은 거겠지.

 


혹사는 이미 자신을 격려하는 데 익숙해진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이어 그 옆에 있는 다른 그림자를 향해 걸어간다. 

 



 

하이디: 혹사. 

 


뒤에 있던 소녀가 그를 불렀고, 혹사는 고개를 돌린다. 그녀 옆에는 아직도 마술사의 중절모를 쓴 여성이 서 있다. 

 


???: 안녕, 혹사 군. 아직도 날 기억하니?


혹사: 릴리스 아가씨…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릴리스: 물론 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아니, 지난번에도 고맙다고 말해야 했는데, 직접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서 아쉬웠어. 그 후로는 우리 처음 보는 거 맞지? 잘 부탁해. 지금부터 나는 바로 너의 동반자이자, 새로운 승격자야. 


혹사: 승격자……선생님이 내린 결정인가? 기억이 안 나요.


릴리스: 지난번에도 넌 이렇게 물었어. 걱정하지 마, 이 모든 건 내가 자원한 거니까.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내가 다 감수할 거야. 


혹사: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나요?


릴리스: 그럼. 위험한 만큼 재미가 따라서, 특등석에 앉아 이어지는 풍경을 보기 위해 본ㆍ네거트 씨에게 오랫동안 부탁했어. 더구나 너희들은 지금 바쁘지?


혹사: …………선생님이 예견한 미래가 이미 눈앞에 다가왔으니, 그는 확실히 더 유능한 조력자가 필요할 거예요. 그러면……환영합니다, 릴리스 아가씨. 


릴리스: 고마워, 본ㆍ네거트 씨가 임무로 나를 불렀으니, 우리는 이만 가볼게. 


혹사: ……네. 


하이디: 혹사……선생님이 한 말씀 전해달랬어. ‘여기에 머물지 마세요. 당신은 승급이나 수격 이외의 가능성을 찾았답니다. 임무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시험품에 계속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혹사: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라……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시종일관 침묵하는 모습을 쳐다본다. 

 


혹사: ……그를 처리해야 해?


하이디: 선생님은 ‘혹사가 좋다면 그를 남겨 두세요. 다만 지금은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답니다.’라고 하셨어.


혹사: 알겠어. 마지막으로 물어본 다음에 그를 봉인할게. 

 


하이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스와 함께 떠난다. 새빨간 하늘 아래, 오직 혹사와 그 부서진 그림자만이 남아있다. 

 


혹사: ……당신도 이미 들었겠지, 이건 나의 마지막 질문이야. 이 탑은 이미 선생님의 모든 예측을 증명했어. 이러한 재난에 직면했으니, 인간도 구조체도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어. 당신의 기억 속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손에 힘을 쥔 사람뿐이니까. 당신이 차에서 쫓겨난 지 이미 한참이 지났고, 계속 내가 당신을 돌보고 있잖아, 안 그래? 

 


혹사: 결정을 내려야 해……괴물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