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

...엣? 잠깐만요! 아이라, 트로이, 들리세요?

저희가 방금 전에 확실히 "화서"에게 중상을 입혔는데, 또, 또 다시 전투 상태를 회복했다구요?



아이라

"곡"도 다시 일어섰어요.

차례차례 격파하는 걸로는 소용 없을 것 같은데요?


시카

만일 양측 전시장이 연결되어 있던 거라면...

저희가 "화서"와 "곡"을 동시에 이겨야 한다는 뜻일까요?


아이라

음~홍앵소대의 케미 테스트, 지금 시작합니다!


시카

저희 쪽은 주로 레나 씨가 작전을 수행하고 있어요. 저희의 전투상태를 제가 아이라 씨의 단말기를 통해 동기화 할게요!

아이라 씨는 실시간 상황에 따라 전투 리듬을 맞춰주길 부탁드릴게요.


아이라

문제없어요!



시카&아이라

...바로 지금이에요!


시카

성공했어요!



전투 종료




트로이

아이라, 바로 지금이다!


아이라

이걸로...끝이에요!


트로이는 톤파로 "곡"이 쥐고 있던 용창을 날려버렸고, 이어 아이라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칼날은 "곡"의 몸을 베었고,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충분히 큰 상처를 남겼다.

광선날에 녹아버린 몸은 그 안의 기계 구조를 드러냈고, 아크와 불꽃이 번쩍이자 "곡"은 마침내 그동안의 여유로운 태세를 잃었다.



'곡'

훌륭하다...!

보아하니 반대편의 전투도 끝난 모양이군...승리는 그대들의 것이다, 내방자.


트로이

마, 말을 했다...!?


'곡'

내방자, 내가 대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아이라

아무튼 미리 설정된 대사만 할 줄 알았는데....


'곡'

...

확실히, 네 말이 옳아. 나는 가짜와 다름없는 '모조품'이다. 아니, 아직 그보다도 못하지.

나는 단지 비슷한 외모를 부여받고 사이비 인격을 심어 이 전시관에 걸맞는 '인상'으로 만들어 낸 위작일 뿐이야.

심지어 진정한 구룡의 모습을 본 적조차 없고, 오직 이 몸을 이루는 재료만이 구룡에서 생산된 것일 뿐이다. 세르반테스 선생은 세부적인 방면에 상당히 집착하거든.


아이라

하지만 넌...자신이 '곡'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


'곡'

후후, 이것은 결코 처음부터 의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떠한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어느 순간을 반복하는 '역할꾼'에 불과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에는 바다를 끼고 잉태한 웅장한 순환도시, 안거낙업(安居樂業)하는 한 무리의 백성들, 그리고...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모든 것을 지키려는 왕이 있었다.

그 꿈은 마치 내가 정녕 누구인지 사유하게 만드는, 지울 수 없는 신기루와 같았지.


아이라

...어떤 결과를 얻었어?


'곡'

아무것도 없다. 나는 빈 껍데기, 하나의 무대장치다. 나는 단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야.

마치 화지의 색점처럼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지 않는다.


아이라

그럼 또 어째서...


트로이

자기의 역할만 잘 하고 싶은게 너의 바람이라면, 그런 얘기를 우리에게 해줄 필요도 없지 않나?


'곡'

왜일까...그 꿈의 종착지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완벽한 모사 그림에 한 군데의 오류를 더 넣었을 뿐이지만,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나'의 신분으로 너희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지.

...오랫동안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도저히 알 수 없는 질문을.

만약 그대들이 진짜 구룡에 가 본 적이 있었다면, 나에게 알려줘...

그곳 사람들은 지금 어떤 일을 겪고 있지? 구룡도시는 여전히 황금시대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나?

곡이라는 왕은 정말로 명군인가? 그녀가 이끄는 구룡은...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이라

...미안해. 네가 말한 이런 것들을 대답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구룡에서 온 여러 사람들을 알고 있어.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구룡이 자신들이 바라는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 길에는 과거, 현재, 나아가 미래에도 무수한 장애와 역경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포기를 말한 적이 없었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곡'

그런가.

그걸로 충분해.

그대들을 환영한다, 내방자.

그대들이...선생이 원하는 답을 가져오길 바란다.


"곡"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고 데이터 칩 하나를 아이라의 손에 건네줬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았고, 이름조차 붙지 않은 "몸체"는 잠시 멈칫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아이라

...


아이라는 침묵하며 "곡"이 마지막으로 건넨 것을 받았다.


트로이

세르반테스의 또 다른 기억 데이터인가...


아이라

이번에도 제가 읽을게요, 괜찮겠죠?


트로이

물론이다.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칩을 기체의 데이터베이스에 꽂았다.



>>>확인ㅡㅡ세계시간 조정, 2:47AM, UTC+8<<<



칼, 미켈레 선생은 어디에 있나?


>>>확인ㅡㅡ질문자의 신원은 구룡 최고 지도자, 미켈레 선생의 좌표위치 확인, 에러 발생ㅡㅡ상대방이 응답기를 끔<<<

>>>메모함에 녹음 1부 추가로 확인ㅡㅡ재생<<<

>>>오늘 구룡도시에 가서 구경 좀 할 테니, 나를 찾지 않아도 돼ㅡㅡ메모자 : 미켈레<<<

>>>확정된 일정 확인ㅡㅡ구룡 지도자와의 사적 면회...이상실행 감지, 감정모듈 경미한 과부하, 자체점검 복구중<<<

>>>확인ㅡㅡ2급 비상사태, 해결방안 찾기, 충돌행동범위 제한, 대응조치 발동 불가<<<

>>>비상행동모드로 전환, 시스템 소프트 재시작<<<



죄송합니다. 미켈리 선생은 지금 안 계십니다. 아침 일찍 구룡도시 안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제가 선생의 스케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입니다. 이로 인해 곡님의 시간이 낭비되거나 심기가 불편해지셨다면, 저는 선생과 함께 보상 조치를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방하다. 원래 정식 만남은 아니니 외교상의 문제는 없을 거야.

게다가 구룡 도시의 시경과 풍광이 미켈레 선생을 매료시킨 것이니, 통치자로서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귀하의 너그러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모처럼 여유를 갖고 정무를 처리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은 실로 고달프다. 원래는 미켈레 선생과 예술 문화 분야에 관한 방면의 문제를 토론하고 싶었는데, 그대는 그의 조수로서 틀림없이 평상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저는 미켈레 선생을 도와 생활 잡무를 처리하는 기계체에 불과하며, 인류의 예술에 대해서는 그리 식견이 높지 않습니다.


그런가? 나의 혈족 중 하나는 기계체가 인간부터 더 투철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만.

그대가 주인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기고 주인과 한담을 나누는 건 어떠한가?


...당신의 지시를 삼가 따르겠습니다.


그는 굳이 곡이 자신을 초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경우라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곡을 따라 시가지에서 중앙의 금지된 도시로 걸어갔다.

곡은 그를 데리고 전당 앞에 있는 높은 누각에 이르니, 이곳의 전시대는 구룡의 경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곳은 '천문대'로, 천 년 동안 구룡의 흠천감(欽天監)은 이곳에서 성상(星象)을 관찰하고 역법을 제정했다.

나는 한가할 때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매우 조용해서 문제를 사색하기 좋고 친우를 만나기 적절한 장소지.

동시에, 구룡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칼은 곡의 시선을 따라 앞을 내다보았고, 눈 아래 도시는 바둑판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새해가 다가오자 거리에는 불을 붙일 화등과 전통 색종이들이 가득 걸려 있는데, 비록 이때가 여전히 낮이라 할지라도 황혼이 지난 후, 도시 아래의 야경이 얼마나 번화하고 장관을 이루게 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군중이 북적이며 향간을 누볐고, 그 안에서 칼은 미켈레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시도했지만, 단 한순간만에 포기했다.


그동안 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보아하니 그대는 결코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아 보여.


다만 선생의 전언을 있는 그대로 전해 드렸을 뿐입니다. 곡님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어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는 훌륭한 이론가일 뿐만 아니라 행동력 또한 실로 놀라워.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뭇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절대 완수할 수 없는 임무다.


선생께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셨고, 그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이 작품을 완성할 것입니다.


그대는 그가 완성할 수 있다고 믿나?


줄곧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


선생은 항상 자신감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칼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 아래의 구룡도시를 바라보았다. 생명력과 장중함이 공존하는 웅장한 도읍지였고, 미켈레의 목표는 그 이상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술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곡님, 질문 하나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말해보게.


외람되지만...구룡도시는 구룡에게 있어 무엇을 대변하죠?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의제인지라 아마 한두 마디로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한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증명.

그것은 구룡이 존재한다는 증명으로, 구룡도시가 어느 날 무너지지 않는다면, 구룡의 사람들은 구룡의 미래에 대해 기대감을 가질 것이야.

구룡도시는 수천 년 전 이곳에 우뚝 솟았었고, 그것은 문명의 무게에 의해 지탱되어 왔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에 벽돌을 더해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을 남긴다.


???

흥,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런 가식적인 말을 하는 건 이제 지겹지도 않아?



혐오감이 다소 섞인 중성적인 목소리가 곡과 칼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비리야?

과학이사회에서 돌아왔어? 어째서 나 한테 한 마디의 연락도 안 한 거지?


비리야

내 스케줄을 왜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거지? 설마 나를 환영한답시고 길마다 사람을 배치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게슈탈트의 개발이 일단락되어 과학이사회에 계속 머무르는 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 여기엔 나의 옛 작업실이 있고, 효율을 고려하면 당연히 돌아와야겠지...다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구룡은 여전히 조금도 변화가 없네. 똑같이 시끄럽고 짜증스러워.

모처럼 조용한 곳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네가 먼저 발을 들여놓고...기계체까지 데려왔네?


내가 기계체와 이야기하는 게 놀라워? 비리야?


비리야

너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전혀 관심 없어, 다만....


비리야는 칼의 검붉은 눈동자에 의혹과 주시의 눈길을 보냈다.


비리야

절대 이성의 창조물로서, 넌 어째서 그런 웃기지도 않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지?


무엇을 말입니까?


비리야

도시는 추악한 인간관계의 집합체에 불과하고, 타고난 결함을 지닌 인간문명이 일정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탄생한 기형적 산물이야.

번지르르한 겉모습은 허영으로 쌓아올린 그림자, 우민을 통제하기 위해 심어놓은 허상이지.

세계를 디지털로 계량화할 수 있는 기계체가 아직도 이 도시의 본질을 계산하지 못한 것일까?


...저는 확실히 최신 연산모듈을 탑재하지 않아 당신이 말한 이론에 필요한 데이터의 수량을 알 수 없습니다.


비리야

쳇...됐어. 낙후 모델의 고물이 나의 '이상'의 표준에 도달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


비리야, 만일 네가 정말로 '이상'속의 창조물을 만들어낸다면, 너는 어떻게 그것이 너와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거지?

만약 그것이 너의 기대에 어긋난다면, 너는 그것에게도 실망할 거야?


비리야

...무의미한 궤변이야.


비리야라는 이름의 청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경멸하듯이 돌아섰다.

칼은 수척한 청년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침묵하며 바라보았다.


비리야의 관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구룡도시에 마냥 빛나는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왜 이런 형식을 대체하기 위한 더욱 양질의 사회 모델을 채택하지 않는 건가요?


후후, 기계체에게 있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

사실 딱히 복잡한 이유가 있거나,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야.

우리는 단지 이렇게 선택했을 뿐이다.


...

>>>기록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