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거센 바람이 모래 먼지와 함께 휘몰아친다. 붉은 큐브가 높은 탑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좁은 감옥을 만들어 방향 감각을 흐리게 한다. 거친 돌멩이가 인조 피부를 스쳐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베인 아픔에 비해 발밑의 진동이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다. 시야 내는 온통 아수라장이고, 귓가에 들리는 건 울부짖는 소리뿐이다. 주위의 모든 게 격렬한 진동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여기는……현실인가? 기억을 더듬어보고, 기억의 실마리를 잡고, 파손된 장면을 짜깁기하려 노력한다. 

 



 

알파: 내가 기억하기로는……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

 


알파는 의식의 폭풍 속에서 힘겹게 걷는다. 그녀에게 주마등 같은 그림이 떠올랐는데,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녀는 사건의 시작점을 찾기 시작한다. 

 



 

무롤: 루시아……진짜 너야?

 


또 이 기억이다…… 빙원 위에 선 알파는 눈앞의 옛 친구를 바라본다. 

 



 

진: 루시아, 우리랑 같이 공중정원으로 돌아가지 않을래?

 


눈앞의 광경이 거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내민다. 지잉…… 갑자기 솟아오른 전자기 장벽이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은 건 가장 혐오스러웠던 기억이다. 눈앞의 장벽을 허무니 옛 친구는 이미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알파: 그레이 레이븐……


리브: 루시아, 우리 돌아가요. 


리: 지휘관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루시아: 응, 나 왔어. 


알파: 루시아……

 


알파가 손에 든 군번줄을 살펴보니 이미 수많은 마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날개와 방패로 이루어진 문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세 인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알파도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녀가 손에 움켜쥐고 있던 군번줄을 움켜쥐자 이상한 것을 느낀다. 손을 펴자 어느새 군번줄이 알파의 손아귀에 깊숙이 스며들어 마치 어떠한 각인처럼 보인다. 

 




 

루나: 언니?


 

어느새 빙원은 사라지고 따뜻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목에 걸린 군번줄은 알파의 움직임에 따라 가벼운 소리를 낸다. 

 


알파: 난 괜찮아…… 그냥 불쾌한 일이 생각나서 그래. 네가 원하는 건 찾았어?

 


루나는 눈앞의 해양 박물관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루나: 내가 찾는 물건은 여기에 없어. 

 


고택에서 잠시 만난 후, 루나는 마치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도시의 폐허, 원시적인 정글을 지나 차가운 설원을 가로질렀으나…… 끝내 결실이 없었다. 

 


알파: 전에도 물어봤지만……아직도 찾는 물건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거야?


루나: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것 앞에 있으면 내가 찾던 물건이라는 걸 반드시 알 수 있어. 그건 승격 네트워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야. 


 

승격 네트워크라는 여섯 글자를 들으니 알파는 최근 잦아진 채널 잡음도 루나가 찾으려는 물건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파: 여기에는 없으니 우리 다음 장소로 가자. 


루나: 근데 언니 좀 짜증 나 보여…… 그 채널 잡음 때문에 그런 거 맞지?


알파: ……괜찮아. 무시하니까 익숙해졌어. 

 



 

알파: 그때부터 채널 잡음이 더 심해진 것 같은데……우리는 계속 찾고 있었지……그 탑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에도.

 


알파가 태도를 붉은 큐브에 꽂자 검붉은 액체가 기둥에서 흘러나왔다. 

 


알파: 빨간색……그 탑도 원래 붉은색이었어. 

 


액체가 미끄러지면서 잠시 잊혔던 기억들이 물 흐르듯 밀려온다. 

 


...

 


무너진 빌딩은 자갈과 철근을 겹친 언덕이 되어 진로를 완전히 막았다. 천재지변 앞에서 난공불락의 모든 보호는 깨진 유리가 되었고, 자신을 파괴한 후 남은 조각으로 산자의 발걸음을 계속 막았다. 폐허로 이뤄진 담벼락에 갑자기 검붉은 초점이 나타났다. 그것이 커지면서 돌과 철근이 진창처럼 녹아내렸고, 한 줄기 빛이 눈앞의 장애물을 관통했다. 공기 중에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순백의 소녀가 들어 올린 손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사이엔 아직 가시지 않은, 탁탁거리는 붉은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루나: 장애물은 이미 제거했으니 우리 계속 가자, 언니. 

 


알파는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있는 붉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 고농도의 퍼니싱이 선명하게 감지됐지만, 왠지 모르게 알파의 마음속에는 꺼림칙함과…… 포착하기 어려운 혐오만이 스쳤다.


 

알파: 요 며칠 잦은 지진도 저 탑 때문인가?


루나: 그 진동들은 단지 저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온 여파일 뿐이야. 


 

알파는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지하를 유심히 감지했다.

 


알파: 지하에도 비정상적인 퍼니싱 활동이 있어. 적조뿐만이 아니야. 방향도 모두 그 탑의 위치고. 그 탑은 무엇을 하는 거지?


루나: 그게 나타났다는 건 퍼니싱이나 인간 둘 중 하나가 시련받는 상황이라는 걸 말해. 시련을 거친 자는 규칙을 바꾸는 기회를 얻어. 


알파: 무슨 진부한 동화처럼 들리는군. 

 


루나는 미소를 지으며 찬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루나: 아마 이 탑을 만든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야. 

 


이어서 이내 웃음을 가다듬고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눈빛에는 무언가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루나: 근데 언니, 그 탑은 확실히 환상을 현실에 투영하는 능력이 있어. 그 탑을 통과하면 우리의 생각이 이루어질지도 몰라. 


 

갑자기 루나는 붉은색의 하늘로 통하는 탑을 바라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루나: 어떤 사람이 이미 탑에 오르기 시작했어. 인류가 기선제압 했네. 


알파: 계속 가자. 그게 네가 계속 찾던 거잖아. 네가 정상에 다다르고 싶다면, 상대방이 아무리 앞서도 내가 그를 끌어내릴 수 있게 도와줄게. 


 

루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알파는 문득 가까이 있는 루나와 자신과의 거리가 한없이 멀어지는 걸 느꼈다. 이것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루나에게 한 발짝 다가가도록 했다. 

 


알파: 루나, 넌 또 승격 네트워크로 뭘 하려고 그래?


루나: ……언니, 어쩌면 우린 그 타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알고 싶은 게 있어. 그 탑은 결코 우리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지만, 여전히 과정의 중요한 일환이야. 


 

...

 



 

알파: 우리의 생각……

 


이 생각이 알파의 머릿속을 맴돈다. 

 


알파: 도대체 그게 뭔데?

 


그 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났지?
 


...

 



 

루나: 아무래도 이 시련은 인류의 승리인가 보네.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탑은 하늘로 곧장 뻗어 있었고, 눈길이 닿는 끝에는 우거진 하늘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붉은 입자가 셀 수 없이 많은 세류(細流) 속으로 뛰어들자 탑의 광채가 숨 쉬듯 반짝이며 그것들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알파: 인간의 기술로는 아직 이런 일을 할 수 없어. 저 전환 현상이 탑의 기능인가?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세류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류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명한 붉은색이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어졌다. 

 


루나: 일단 떠나자. 근처의 퍼니싱 농도가 곧 0으로 떨어질 것 같아. 그렇다고 승격자가 이합 생물처럼 죽지는 않겠지만, 저 탑의 방사 범위 내에서는 행동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알파: 저 탑이 결국 지구 전체의 퍼니싱을 전환하는 걸까?


 

그때가 오면 이들, 승격자는 어떻게 될까……

 


루나: 저건 시련의 값어치이자 진화의 상징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야. 승격 네트워크는 아직 결정적인 종착점에 도달하지 못했어. 하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시작됐지. 승격 네트워크도……

 


눈앞의 광경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루나의 입술 사이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귓속에는 휘몰아치는 광풍만이 남아 있었다. 승격 네트워크가 어떻게 되는데? 공간을 휩쓴 폭풍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붉은 큐브 기둥은 우후죽순처럼 무성하게 자라며 흔들리는 의식 공간을 지탱하면서도 몇 안 되는 틈을 비집는다.

 



 

알파는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무게를 느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 순간 수렁이 그녀의 허리와 배까지 이르렀다. 몸부림치는 알파는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 검붉은 호수가 점차 알파의 목을 잠기게 한다. 그녀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자신이 또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파: 기억나……

 


기억을 더듬을수록 빠져드는 속도도 빨라진다. 

 


알파: 선별과 관련이 있었지……

 


호수에는 조금의 잔물결만 남아 있다. 자취를 감춘 알파는 의식의 심연으로 떨어졌다. 

 


전투 시작

 



 

알파: 이건…… 그레이 레이븐 소대 때의 나인가? 과거의 잔상……이제는 무슨 소용이지……흥……이런 생각이나 할 시간은 없다. 얽힌 기억들…… 누구에게서 왔든 간에……방해가 된다면 베어버릴 뿐이다!

 





 

감염체: 끼릭――!


허약한 구조체: 젠장! 루시아는 어딨어!? 걘 반드시 증원을 불러서 우리를 구했어야 한다고!


알파: 이건…… 하, 히로한테는 뼈저린 추억이었겠지. 그 임무에서 히로는 혼자 있을 때 여러 감염체와 조우했고, 무롤과 진도 감염체에 발이 묶였었나. 내가 히로를 찾았을 때 그의 몸에는 강화 의족이 하나도 없었어…… 그도 항상 이 일로 나에게 와서 울었지――쯧, 이걸 기억하는 건 무의미해. 그때의 풍경을 재현하고 싶은 건가? 좋아, 내가 같이 해주지. 


 

 




총을 든 구조체 A: 무롤, 전선을 사수해!


총을 든 구조체 B: 너의 그 말만을 기다렸다고!


총을 든 구조체 A: “좋아. 3, 2, 1! 루시아, 우리랑 같이 가자!”


알파: 무롤과 진……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의 느낌을 잊을 뻔했어. 비록 회상뿐일지라도……

 




 

알파: 내가 속해 있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이게 마지막 임무였던가. 그 뒤로, 무롤, 진, 히로……지루한 추억은 이제 사양하지……그들은……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있어서는 안 돼.


 

 




알파: 끝났어. 진, 히로……너희……


히로: 루시아, 네가 어떻게……


알파: ……


히로: 네가 공중정원을 배신하다니! 승격자와 거래를 성사시켰어!


무롤: 분명히 레븐쉬는 널 그렇게 믿었을 텐데!


알파: 쳇……이게 도대체……


진: 모두 다 같이 이 그레이 레이븐의 반역자를 타도하자!

 



 

???: 영원히 이별이다, 루시아. 

 




전투 종료

 


불길과 포연이 하늘을 물들이고, 고요와 죽음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짜증 섞인 고함이 그치지 않는다.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움켜쥐는 게 유일한 의사소통 도구이다. 무감각하게 이미 천만번 해 본 동작을 반복하며 단련된 전투 본능만으로도 가장 빠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칼을 잡고, 휘두르고, 길을 막는 자의 머리를 자른다. 칼을 잡고, 휘두르고, 적의 무기를 벤다. 칼을 잡고, 휘두르고, 잡고, 휘두르고, 잡고, 휘두르고…… 세상은 하나의 빛깔만 남은 듯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약육강식의 선별은 이렇게 간단하다. 종착점을 코앞에 두고……

 


루나: 종점은 없어. 이건 영원히 끝이 없는 고리야. 

 


누군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다시 고개를 들자 종점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이게 몇 번째인가? 이런 선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의문과 동시에 완벽했던 형세에 구멍이 뚫린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알파를 향해 밀려온다. 

 



 

알파: 아니야……

 


검은 그림자가 허리를 잘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결말을 맞았지만, 어딘가 불쾌했다. 이런 선별이 결국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지칠 줄 모르는 행진자들은 조금씩 발걸음을 늦추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림자에 잠복한 괴물이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며, 모두 무섭고 추한 모습으로 세상에 버림받은, 버려진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파의 손놀림은 점점 느려지지만, 사고와 감지는 더 명확해진다. 폭풍에 흔들리는 연처럼 멀리 떠다니면서도 끈끈한 실이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알파: 여기서 멈춰야 해. 

 


더 이상 계속해서 실제로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건 이것은 자신이 실천하려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알파는 뒤에서 선이 자신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녀를 다시 혈로로 끌고 가려는 괴물을 물리치며, 그 뒤에 있는 약한 비단실을 보호한다. 

 


루나: 그 탑의 결말이 정해졌으니, 승격 네트워크도 달라지겠지. 


알파: 우리가 이용하려는 건 바로 이 변화고. 

 


승격 네트워크는 왜 달라졌을까. 자신과 루나는 그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알파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쌓일수록 답이 나오지 않아 진실은 의도적으로 한 획을 긋는 듯했다. 실이 당겨지면서 알파는 괴물의 포위망에서 벗어난다. 죽음의 비린내가 점차 사라지고 등 뒤에서 푸른 풀의 향기가 은은히 전해진다. 알파는 자신이 어떤 막을 뚫고 지나가는 걸 느낀다. 그리고 부드러운 잔디밭을 밟았다. 

 



 

루나: 언니, 드디어 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