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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0 극지의 어둠



오로라



숲을 지키는 자의 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의 장막이 드리운 뒤였다.


다이아나 : 우리 기지는 숲 남쪽의 더 깊은 곳에 있어.

다이아나 : 하지만 너희들은 북부의 신무르만스크 항구로 가야 한다며. 그래서 일단 근처의 임시 영지로 온 거야.

다이아나 : 오늘 밤은 일단 여기서 쉬어, 불편한 게 없으면 좋을 텐데.

다이아나 : 아, 잠깐만...


말을 마친 다이아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리 :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일어나는 이 일들, 전혀 현실감이 없어.


루시아 : 나도...


리브 : 그래요... 제가 생각해도 꽤 신기한 체험인 것 같네요...


리 : 저런 형태의 구조체는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봤어...


루시아 : 소문...?


리 : 응. 내 생각이 맞다면 그녀들은 구조체 중 아주 보기 드문 부류--돌연변이형 구조체일 거야.


리브 : 돌연변이형이라... 구조체는 인간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아닌 육체를 가졌다면 사고 모형 또한...


리 : 맞아. 쉽게 말하면 의식 안정성을 조금 포기하고 더 강력한 전투력을 얻은 방안이지.

리 : 하지만 의식이 너무 불안정하고 개조 후 인격의 안정성마저 보장할 수 없는 탓에 공중 정원은 이런 방안을 완전히 금지시켰지.


다이아나 : 그레이 레이븐, 불 다 피웠어.


리 : 이건...?


다이아나 : 우리 지역의 특산품, 솔잎차야. 그리고...

다이아나 : 우리 숲을 지키는 자들만의 비법으로 만든 후르츠 케이크야.


리브 : 고마워요. 와... 진짜 맛있어 보이네요...


리 : (지휘관님이 먼저 약을 드셔서 다행이야.)


루시아 : 그러고 보니 그쪽 대장은 어디 갔지?


다이아나 : 로제타는 야간 순찰을 나갔어. 요즘 숲에 침식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

다이아나 : 우리 지역에서는 정말 이상한 현상이야.


리 : 여긴 고위도 지역이라 평소에는 퍼니싱 농도가 낮고 침식체들 수도 적을 거야.


루시아 : 너희들이 지키고 있는 숲은 여기뿐이야?

루시아 : 아까 너희들은 항구를 출입할 수 없다고 한 것 같던데. 왜지?


다이아나 : 별거 아니야. 그냥... 우리 전통일뿐이야...


루시아 : 전통?


다이아나 : .....


리브 : 와, 저것 좀 보세요!


잔뜩 흥분한 리브의 목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리브 : 정말 예뻐요...


루시아 : 리본처럼 하늘거리네...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보기 드문 장관을 감상했다.

평소라면 뭐라고 구시렁댔을 리도 그저 찻잔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루시아 : 아무리 잔인한 전투가 벌어져도...

루시아 : 산과 강 그리고 우리 머리위의 하늘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리브 : 지구는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리 :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되찾으려 하는 거지.


리브 : 네...


다이아나는 불빛을 사이에 두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묵묵히 관찰했다.

그들의 여러 모습은 다이아나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그들에게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 : 아!!!


루시아 : 무슨 소리지?


모두들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고 다이아나도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을 꽉 쥐었다.


다이아나 : 인간 신호가 감지됐어... 북쪽에서 온 거야...

다이아나 : 그리고 그 뒤로... 침식체 신호가 보여!


??? : 살, 살려줘!


다이아나 : 이 목소리는...

다이아나 : 이반?


다이아나는 앞발을 들더니 숲 깊은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리브 : 지휘관님...


이름 : 우리도 따라가보자.


리브 : 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숲 깊은 곳, 벼랑 끝 공터 위에서 우뚝 서 있는 로제타는 회색 해수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로제타 : 그래... 드레이크...

로제타 : .....

로제타 : 하지만... 난 이미 결정을 내렸어...

로제타 : 신무르만스크 항구는 이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어...

로제타 : 내 결정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로제타 : .....



로제타 : 어째서... 드레이크... 넌 항상 날 이해해 줬잖아...

로제타 :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로제타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나스카 : 대장!


로제타 : .....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로제타는 방금 전 표정을 숨기고 다시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 : 로, 로제타 누나!


로제타 : 이반?


이반이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비틀거리며 눈밭을 달려 로제타를 향해 다가왔다.


다이아나 : 어제 또 혼자 숲을 넘어... 우리를 만나러 왔더라고...


나스카 : 우리가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면 침식체들한테 잡아먹혔을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우릴 도와줬고.


리브 : 이반이 당신에게 꼭 직접 해야 할 말이 있대요...


나스카 : 그냥 대장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이반 : 아, 아니에요!

이반 : 로제타 누나, 저...


로제타 : 무슨 일이야?


이반 : 드레이크에 대한 일이에요... 드레이크가 또 항구로 다시 돌아왔어요...


로제타 : 그 정도 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한테 올 필요는 없잖아...

로제타 : 난 이미 알고 있었어.


이반 :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어요. 항구 사람들 모두... 무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로제타 : .....


이반 : 요즘 침식체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어른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어요...

이반 : 어제 항구의 항해사들이 드레이크를 발견했어요. 드레이크가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다들 화를 내기 시작했고요...

이반 : 무서워요... 행여나...


로제타 : 알겠어.


로제타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로제타 : 더는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어. 올라와.


이반 : 네...


이반은 잠깐 망설이더니 쑥스러운 얼굴로 힘겹게 로제타 등에 올라탔다.


로제타 : 내가 앞에서 신무르만스크 항구로 향하는 길을 알려줄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

로제타 : 억지로 따라붙을 필요는 없어. 내 발자국을 따라와.

로제타 : 다른 숲을 지키는 자들은 계속 여기 주둔한다. 항구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마.


-전투 후-



??? : 이봐! 너희들!

??? : 거기 서!


컨테이너 옆에서 전자 작살포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어부 : 외부인이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시아 : 우리는 공중 정원에서 온 그레이 레이븐 소대야, 나는 대장 루시아라고 해.


어부 : 쳇, 그레이 어쩌고 그런건 난 모르겠고... 공중 정원에서 왔다고?


리브 : 네...


어부 : 그래. 선장 의회쪽에서 이미 공지가 내려왔어. 물자 교환을 대가로 공중 정원 사람들은 곱게 보내주라고 했지.

어부 : 공중 정원 겁쟁이들이 여기는 무슨 일로 행차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어부 : 너희들 우리 쪽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아들었나? 따라와!


리브 : 겁쟁이요...?


루시아 : .....


어부 : 됐어. 이 부두에서 기다려!

어부 : 너희들의 수송기를 타고 우주로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마.


리 : .....


어부 : 응? 저쪽에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 가봐야겠어. 명심해. 괜히 끼어들지 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둣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는데 어떤 소동이 일어난 것 같았다.


루시아 : 로제타야...


로제타의 거대한 체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더 눈에 띄었다. 그의 다리에 바짝 달라붙은 이반은 사람들 사이에 묻혀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선원 : 너 또 그 기계 외뿔고래가 "걱정"돼서 온 거지!

선원 : 그 망할 기계 외뿔고래가 나타날 때마다 항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선원 : 그리고 숲을 지키는 자인 너는 규칙을 위반하고 추방당한 죄인이잖아...

선원 : 그런데 자꾸 규칙을 어기고 이곳에 돌아오다니, 게다가 그 망할 외뿔고래도 감싸고!

선원 : 그걸 사용해...


로제타는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을 내려다보았다.


선원 : 맞아...

선원 : 네 장창은 우리 국경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해.

선원 : 지금 항구 전체가 침식체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 외뿔고래와 함께 또 소란을 일으키다니.

선원 : 숲을 지키는 자들에게 충성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로제타 : .....


이반 :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로제타 누나는 드레이크가 얌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위로하기 위해 여기로 온 거라고요!

온 김에 침식체들도 처치해 줬고요!

이반 : 그리고 몇 년 동안 숲을 지키는 자들도 최선을 다해 남쪽 숲을 지켰어요! 여러분은 그녀들을 항상 무시했지만 단 한번도 맡은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이반 : 그저 여러분들이 보지 않았을 뿐이에요!


선원 : 너 이 자식! 한두 번 몰래 넘어간 게 아닌가 봐?


이반 : 로제타 누나, 누나도 우리를 도와서 침식체를 처치해 줄 거죠? 맞죠?


로제타 : .....


선원 :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 꼬맹이네. 평소에 우리가 너한테 어떻게 말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

선원 : 우린 북극 항로 연합의 일원이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 집단과 고향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선원 : 바이러스가 폭발한 그날부터 우린 스스로의 힘으로 고향을 지켜왔어. 그 어떤 배신도 용납할 수 없다.

선원 : 배신자는 절대 신뢰할 수 없어. 퍼니싱 바이러스에 침식될 수 있는 로봇들도 마찬가지고!


리 : 말 참 이쁘게 하네.


로제타는 여전히 침묵으로 대응했고 안하무인의 자태를 유지했다.


어부 :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얼른 너희 숲으로 돌아가라고!


항구 주민들은 무기를 들고 로제타를 조준했다.


사람들 : 그래! 숲으로 돌아가!


루시아 : 지휘관님, 이 일에 개입해야 할까요?


이름 : (개입한다.)


루시아 : 그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때 항구 근처의 해수면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계 외뿔고래가 수면 위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외뿔고래가 일으킨 물살로 인해 항구에 정박한 선박들이 흔들렸다.






인물 프로필

이름 : 다이아나

생일 : 11월 1일

혈액형 : O형

숲을 지키는 자 중 한 명으로, 로제타가 침엽수림을 떠난 동안 임시로 리더를 맡은 사슴 인간형 돌연변이 구조체다.

머리 위의 사슴뿔 구조는 그녀를 상징하는 특징 중 하나다.





로제타 독백 중간에 들어간 삽화는 로제타 외전에 나오는 삽화로 로제타가 인간 시절의 모습임. 로제타와 드레이크는 아주 옛날부터 서로를 알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