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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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그는 집에서 묽은 우유로 끓인 오트밀에 이따금 딱딱한 육포 따위를 먹으며 산다.

"남김없이 먹어라."
"네, 아버지."

가정환경이 어려운 집안은 절대로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툼한 고기는 기본에 폭신한 하얀 빵에 곁들여 크림 스프와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다.
소년은 이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다.
알콜 중독이신 어머니는 오늘도 아침부터 맥주를 드신다.

아, 오늘도 시련이 있겠구나. 라고 소년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어제 맞은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리지만 소년은 웃고있다.
그는 눈치를 보며 부모님의 느긋한 식사에 맞춰 자신의 식사도 끝내었고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와 함께 설거지를 준비한다.

오늘은 부모님이 좀 많이 남기셨다. 조금 행복한 날이다.

주린 배와 고통이 가시지 않는 몸을 이끌어 모포를 덮기 전 헤진 성경을 펼치고 달빛을 전등 삼아 오늘도 기도를 한다.
이 성경도 사준 것이 아닌 주변 교회의 인상 좋은 천사가 준 것이지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성경을 보고 눈을 찌푸리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으로 허락을 받았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아버지는 일, 어머니는 산책하러 나간 사이 방을 정리 및 청소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어머니는 보통 점심에 들어오시지 않고 늘 외식을 하신다.
그렇다면 점심에 부모님의 아침처럼 신선한 채소와 폭신한 하얀 빵, 크림 스프에 두툼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오트밀에 아주 저렴한 묽은 우유, 딱딱한 육포와 끝이 상한 채소 따위의 되먹지도 못한 음식이지 만약 부모님이 먹는 것을 먹다가 들키는 날에는 어머니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맞다 끙끙 앓으며 잠들어버린다.

오늘도 맛없는 음식을 먹고 정리를 한다.
다른 아이들은 글을 배우려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부모님은 돈이 아깝다며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 밖에 나가는 것은 그의 가정환경이 들킬까 봐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주말에만 나갈 수 있고 그때마다 성경을 읽기 위해 하얀 날개와 머리 위의 링이 햇볕에 비추면 반짝이는 아름다운 천사님에게 글을 배운다.

"라휘벤은 글 배우는 게 조금 늦네요."
"..."
"괜찮아요. 느리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배우는 것이 중요해요. 저도 날개짓이 느린 편이었는 걸요."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함일까, 소년은 밤마다 기도를 드린다.

"신이시여, 저의 시련은 언젠가의 행복을 위한 것 임을 알기에 오늘도 기도를 드리옵니다. 저의 고통 또한 달란트가 되어 천국에서의 안녕을 바라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부모를 증오하지 않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 기도드리옵니다."

그리고 오늘, 소년의 인생은 바뀌었다.

"잘 잤니?"
"...?"
"오늘 아침은 크림 스프란다."
"라휘벤, 찍어 먹는 빵도 준비해두었지. 베이컨, 괜찮지?"
"여보, 베이컨이 너무 두툼한거 아니에요?"
"식감 좋겠구만 뭐 어때."

그는 성인을 맞이하였고 아버지는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어머니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하여 자신의 볼을 꼬집었지만, 이는 틀림없는 사실.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정하게 얼른 나오라고 한 뒤 자신의 방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자 소년의 두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제 기나긴 시련을 끝내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방문 밖을 나선다.

향긋한 크림 스프 냄새.
오트밀은 보이지도 않고 자신이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만큼 많은 빵과 깊은 접시에 담긴 수프, 그리고 베이컨과 야채.

"남겨도 괜찮단다. 라휘벤."
"이것 좀 마셔볼래?"

어머니가 컵을 내미셨다. 보기만 해도 묽지 않은 우유.
오트밀과 같이 끓인 우유가 아닌 그냥 먹는 우유는 정말로 고소했다.
오늘 하루부터 나는 시련이 아닌 오직 천국과도 같은 삶만 존재하는구나. 틀림없다. 어머니는 맥주가 아닌 우유를 마시고 있으시고 아버지는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밥 다 먹으면 외출 좀 하자꾸나."
"우린 먼저 일어날게. 천천히 먹으렴. 탈 나면 큰일이야."

평소와 같이 부모님의 식사 시간에 맞추려 했지만, 음식을 많이 남긴 채로 그냥 일어나셨다.
거짓말인 줄 알았지만 정말 횅하니 사라지시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이것이 꿈인가 싶었다.
다시 볼을 꼬집었다.

역시 다 먹을 수가 없어 결국 남겨버렸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시지 않고 웃고 계신다.

"엄마 옷 어떠니?"
"엄청 아름다우세요. 아빠도 단정하시구요!"
"다행이로구나."

주말이 아닌 평일 외출. 주말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이 꽤나 많다.
양손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너도 나이가 다 찼구나. 아비 된 노릇으로 선물을 하나 주마."

생일 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선물.

휴도 라휘벤.
자신의 풀 네임이 적혀있는 도장이다.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그는 오늘 부모님과 시장을 둘러보았어. 뱅글뱅글 도는 장난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탕과 엿과 같은 달콤해 보이는 군것질거리, 형형색색의 천으로 이루어져 있는 단정하거나 아름다운 옷, 나무로 조각한 광대나 강아지.
집 안에서만 생활하였다고 해도 무방할 그가, 주말에는 교회만 다니던 그가 처음으로 본 세상은 정말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성경에 서술된 천국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아들아, 도장 한번 써보고 싶지 않느냐."
"네!"

소년은 부모님이 사주신 사탕을 오물거리며 번듯하고 하얀 건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안녕... 하세요!"

듬직한 오크나 미노타우르스가 이곳저곳에 서 있는 게 조금 무섭지만 작은 고블린이 자신을 향해 친절하게 웃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인다.
고블린은 붉은 인감을 내주고 부모님이 찍으라는 곳에 열심히 도장을 찍는다.

휴도
라휘벤.

휴도
라휘벤.

휴도
라휘벤.

"네, 확인 끝났습니다. 흠... 뭐 문제 될 건 없군요."

그날 저녁 소년은 과일 샐러드에 포도 주스를 곁들였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려요!"

오늘 소년은 넘쳐흐를듯한 행복함에 파묻혀 감사 기도를 까먹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다.
식탁 위에는 쪽지와 은화 세 개가 남겨져있다.

[일이 생겨 나간다. 어디 가지 말고 일주일 동안 집에서 생활해라. 청소 잘하고]

소년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어제의 행복은 일주일 뒤부터 다시 진행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착한 아들은 일주일 집 안에 있는 고기와 빵, 가끔 야채를 사 먹으며 생활을 한다.
일주일 뒤, 점심을 먹는 와중 누군가 집을 두드린다.
부모님일까? 문은 잠가두지 않았는데?

문을 열자 어제 본 듯한 거대한 오크 두 명과 차가운 인상의 엘프 하나가 종이뭉치를 들고있는 것이 소년의 눈에 보인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소년의 다리는 풀린다.

"휴도 라휘벤씨 맞으십니까?"
"당신의 집은 약속한 대로 저희 회사에 귀속 됍니다."
"그리고 금일로 부터 3개월 뒤, 당신이 빌린 사십 금화의 월 이자는 팔 금화입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종이 뭉치에서 한 장을 꺼내 소년에게 내민다.

[하잘 대부업]

소년은 엘프가 손짓을 하자 덩치 두 명에게 이끌려 자신의 집 이었던 곳에서 내쫓긴다.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 집에 얼씬도 하지 않는것을 권유하지. 말로 할때 말이다."

15살, 성인이 된지 10일도 안되어 막대한 사채빛과 함께 부모에게 버려졌다.
그는 성경과 부모님에게 받아 사용하다 남은 은화 단 하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울다 지쳐 쓰러지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 것이 삼 일.
그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강제로 정신이 들어버린다.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아픔도 무엇도 느끼는 것 없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소년의 정신은 의외로 굳건했다.

절망감에 갇혀있기엔 주린 배가 소리를 지르기에 소년은 무작정 아무 가게로 들어가 일을 시켜달라고 하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성인이 된 어린 소년은 임금의 절반이나 받았으면 감지덕지 였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점주에게 내쫓기기 일 수 였다.

"밥이라도 먹여주는 것을 고마워 해야지... 뭐 돈? 당장 나가! 너 없어도 일한 인간들 많아!"
"힘도 없이 비리비리 해가지곤... 임금 전부를 챙겨주는건 힘드네. 이거라도 받는게 어딘가. 에잉... 그냥 오우거나 받을껄..."

돈이라도 받은 날에는 육포나 빵을 사먹었다.
날이 갈 수록 음식을 먹지 못해 힘도 쓰지 못하고 하물며 씻는것은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처지라 더러워지고 더욱더 허약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신이시여, 저의 시련은... 언제쯤 끝나옵니까..."
"아, 제 기도에 응답해준 것은 그저 유희었던겁니까."
"제발 신이시여..."

헤지고 눅눅해진 성경을 신의 우상 삼아 정말 절실하게 기도를 드렸지만 삶은 소년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

"은화가 아닌 골드를 가져오라고 저번달에도 말하지 않았나?"

험상궃은 오우거 아저씨가 은화는 돈도 아니라는듯 소년에게 던져버렸지만 덕분에 오늘은 굶지않아도 된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상황으로 봤을때... 원금은 커녕 이자도 못 낼 상황으로 판단됍니다. 안타깝지만 귀하는... 노예의 신분으로 저희의 상품으로 판매됍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소년은 반항조차 할 기운도 없이 죽은듯이 끌려간다.
다만 불긋하게 달궈진 인두가 자신의 어깨에 나비처럼 앉을때 내지르는 절망가득한 소리와 함께 소년의 어깨에 바뀐 신분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가 가지고 있는것은 닳아해진 성경과 숨겨놓은 부모님이 주셨다고 남은 은화 하나가 전부, 철창에 갇힐때 간부에게 성경을 빼앗길 위기에 쳐했다.


"자비로운 간부님... 제... 제발 이 책 만은 봐주세요. 은... 은화를 드릴게요!"


자신의 추억이라면 추억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성경마저 빼앗긴 소년.

그는 작은 철장에 박혀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식사다."


약간 단단한 흑갈색빵과 물, 옥수수 스프.

그리고 그 옆에 놓여진 성경과 은화 하나.


"...감사합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기를 바라마. 뭐, 종교는 없지만 기도는 해주지."


평소 집에서 먹던 음식 수준과 비슷해 거부감은 없었다.


"...저의 시련은 단 하루의 꿈만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다음날, 경매가 시작되었다.


"20!"

"40!"

"97!"


....


"120."

"120? 120? 120! 축하드립니다! 낙찰입니다, 다음 노예는...!"


소년은 이미 희망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될 인간에게 인솔 되었고 내내 땅만 보던 얼굴을 들었다.

자신의 주인이 될 인간.


"...네, 그렇습니다. 이제 이 노예는 고객님의 것이고 이름도 내키는대로 지어주시면 됍니다."

"그런가."

"골드,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용품이 필요하시다면..."

"필요없다."

"넵, 그럼 살펴가십쇼!"


올곧게 뻗은 두 뿔.

새벽같이 푸른 피부.

검은 자위에 금색 눈동자.


"...가지."


악마,


[현재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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