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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눈을 뜬다.

 

낯선 천장이다.

낡은 오두막 천장에는 깜빡이는 전구가 매달려있다.

 

당신은 영문도 모른 체 몸을 일으킨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을 텐데….’

 


당신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곱씹으며 멍하니 손을 내려다본다.

 

당연하게도 지금 당신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다.

 


‘이게 뭐지? 꿈인가?’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상황에 당신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쉰다.

 

꿈이라기엔 온몸의 감각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럼 몰래카메라? 아냐, 친구도 없는 내게 누가 몰래카메라를 하겠어?’

 

‘설마…. 납치? 나도 모르게 인신매매라도 당한거야?’

 


혼란에 빠진 당신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럿의 발걸음, 목소리다.

 

 


당신은 긴장한다.

 

영문도 모른 체 낯선 곳에 끌려와 어떤 험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은 서둘러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 밖으로 도망쳐나갈 수 있을 만한 곳, 하다못해 조금의 저항이라도 해볼 무기라도 찾아볼 요량이었으나 오래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오두막 창문은 창살로 단단히 막혀있었으며, 무기로 쓸 만한 날붙이도 없다.

 

발걸음과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당신은 급한 대로 녹슨 캐비닛 뒤에 몸을 숨긴다. 침상 아래에 스프링처럼 삐져나온 철사를 잡아 뽑는다.

 

벽에 딱 붙어 몸을 숨긴대도 공간이 여의치 않아 훤히 보이는 곳이고, 무기로 사용한대도 상대에게 쿡 찌르는 순간 맥없이 옆으로 휘어질 얇은 철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간절하다.

 


“…그래서 이 사안을 어떡하자는 검까? 우리가 맘대로 정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슴까!”

 

“그러니까 브이야,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그만. 모두 정숙해주시지요.”

 


그들은 문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동시에 요란하게 오가던 그들의 잡담역시 그친다.

 

달칵, 문고리가 돌아간다.

끼이익 맞물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서서히 문이 열린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기에 컨테이너의 어둠에 익숙해진 당신은 눈을 찌푸린다.

 

환한 빛 너머로 서너 무리의 인영이 보인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으나 당신은 그들이 당신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소리를 지르며 캐비닛에서 달려 나온다. 손에 들린 철사를 그들에게 향한 체 달려든다.

 

이 다음의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은 아까 보았던 낡은 오두막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당신의 두 손은 케이블 타이로 묶여있고, 곁에는 처음 보는 여성이 앉아있다.

 

여성은 정돈되지 않는 긴 더벅머리를 하고 있으며, 한쪽 눈에 길게 흉터가 나있다.

색이 바란걸 보아하니 상당히 오래전에 생긴 흉터로 보인다.

 

흉터가 새겨진 곳의 눈은 이미 오래전에 실명된 모양인지 탁한 색이었다.

 

당신이 깨어난 걸 인지한 모양인지 그녀의 멀쩡한 눈동자가 당신을 향한다.

 


“오오, 드디어 깨어났지말임다. 몸은 좀 괜찮으심까?”


 

그녀는 그 어떤 폭언도 협박도 하질 않는다.

 

오히려 선의가 담긴 듯한 일상적인 어투로 안부를 묻는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얼굴로 무심하게 던지는 일상적인 질문이었기에 당신은 더 무서워진다.

 


“제발….”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지만 당신은 울상 짓는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험악한 얼굴의 여성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당신의 몸에서 장기를 하나 둘 꺼내는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제발 살려주세요오오…. 흐엉 ㅠㅠ”

 

“어…, 어? 자, 잠시만. 가, 갑자기 왜 우시는 검까? 이, 인간님?”

 

“전 건강하지 않아요…. 맨날 스마트 폰만 들여다봐서 눈도 나쁘고, 건강관리 같은 거 하나도 안하고 고혈압이 있는데다, 장염에 치질까지 있단 말이에요…. 흐읍, 저, 저, 그리고 또 비염도 있고요…, 담배도 피는데다…. 술도….”

 

“허이구…, 이건 또 뭔 일이래?”

 


그때,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며 그녀의 동료가 들어온다.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후드를 눌러쓴 여성이다. 뭔가 기다란 막대 같은 걸 들고 있다.

 

그녀가 저 긴 몽둥이로 당신의 뚝배기를 내리쳐 처리할 것이라 생각을 하니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흐흑, 나, 난…. 아직…, 아다도 못 땠는데…. 흐읍, 흑, 이씨, 엄마…. 살려줘어어….”

 

“…야, 얘 왜 이러냐?”

 

“제가 한 거 아님다! 그냥 인간님께서 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하…, 그래. 들짐승도 눈빛으로 겁주는 네 녀석을 인간님 신변보호에 맡긴 내가 잘못이지.”

 

“아니 , 유이님? 저는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했슴다. 인상도 안 썼슴다?”

 


당신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분명 험악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두 여성임에도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은 한 없이 가볍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들이 당신을 지칭하는 단어.


 

인간님.

 

당신은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저…, 저기요?”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을 부른다. 당연하게도 두 여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꽂힌다.

 

역시, 험악한 인상의 그들과는 대조되게 지나치게 유순한 분위기다.

 

당신은 불현듯 떠오른 가설 하나를 떠올린다.

말도 안되는 가설이지만, 애당초 이 상황 자체도 충분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차피 혼자 힘으로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

 

당신은 ‘호랑이 굴에 잡혀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용기를 낸다.

 

당신은 최대한 눈을 깔아 그들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입을 웅얼거린다.


 

“다, 당신들은 호, 혹시…. 바, 바아이―,”


 

당신은 또박또박 말하려 했으나, 저도 모르게 떨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질근 감는다.


 

“―바이오로이드 인가요!?”


 

당신은 저도 모르게 크게 나온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막는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로 힐끗 그녀들의 눈치를 보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오히려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 무언갈 가늠하는 시선으로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점점 아무런 반응 없는 침묵이 계속되자 당신은 몇 초 전의 당신을 저주한다.

 


‘아마 정신 나간 미친놈이라 생각하겠지.’

 

‘어쩌면 미친놈의 장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사히 풀어주지 않을까?’


 

마침내 길었던 침묵이 끝나고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자 당신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근 감는다.

 


찰칵.

당신의 손을 묶고 있던 케이블 타이가 끝어진다.


당신을 풀어준 여성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뒤로 물러난다.


분명 무언가 위해가 가해질 것이라는 당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쪽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당신에게 모종의 ‘예’를 표할 뿐이다.

 


“반갑습니다. 인간님. 먼저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걸 축하드립니다. 인간님의 말대로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저는 펙스 사의 커넥터 유미 모델이고, 아까부터 인간님의 곁을 지킨 험악한 녀석은 블랙리버 사의 브라우니 모델입니다.”

 

“아잇, 유이님. 험악한 녀석이라니 인간님께서 잘 못 들으면 오해하지 말임다. 제가 비록 생긴 건 이래도 마음만큼은 여린 한 떨기 꽃이지 말임다.”

 

“한 떨기 꽃은 개뿔. 한물간 젖이겠지.”

 

“유이님! 방금 그건 병영부조리지 말임다! 저 완전 성적 수치심 느꼈지 말임다! 성군기 위반이지 말임다!”

 


당신은 그제서야 아까와 같은 분위기로 서로 투닥거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어디선가 익숙하다는 것을 떠올린다.

 

말끝마다 ‘슴다’를 반복하는 험악한 얼굴의 여성은 단지 한쪽 눈에 큰 흉터가 나있고, 머리가 조금 길뿐. 영락없는 라스트 오리진 속 브라우니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런 브라우니를 향해 가감 없이 거친 말로 대꾸하는 짧은 머리의 여성역시, 옷과 헤어스타일이 조금 달라졌을 뿐. 영락없는 라스트 오리진의 유미의 모습이다.

 


“하핫, 이게 뭐야….”


 

생각지도 못한 현실에 당신은 헛웃음을 뱉는다.

 

당신은 그제야 처음 말머리에 지금 라스트 오리진 세계로 접속하시겠습니까?’ 라고 적혀있던 것을 떠올린다.

 

언제나와 같이 밈 적으로 사용되는 게시글이라 생각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Yes]를 눌렀다는 사실도.

 


‘그런데 진짜로 라스트 오리진 세계에 들어왔다고?’


 

당신은 현실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볼을 꼬집어본다.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한 감각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것을 자각하자마자 당신에게 물밀 듯 생각들이 밀려온다.

 

오프닝과 같이 철충들에 대한 정보들이 아니다.

 

처음엔

불안.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아야하지?’



다음엔

걱정. 



‘난 평소에 공략을 만들지도, 철충들이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무지성으로 공략 따라하기만 했는데?’


 

‘내가 사령관처럼 잘해낼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죽는 건가? 죽는 건 싫은데? 그냥 도망쳐버릴까?’



그리고

환희.



‘잠깐, 어차피 철충들은 바다를 무서워하잖아? 별의 아이 같은 건 적당히 FAN파인가 뭐신가만 피하면 되고.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내 말만 듣는 섹돌들 대리고 살면 주지육림 씹 가능 아니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당신은 힐끗,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커넥터 유미와 브라우니를 훑어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험악한 인상들 때문에 겁이 났지만, 당신의 말 하나에 죽고 사는 섹돌들이라는 걸 알게 되자 뒤늦게 그녀들의 아름다운 외모가 보인다.

 

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있음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유려한 곡선하며, 쫙 붙는 타이즈 너머로 강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미드라인까지.

 

현실에서라면 뭇 남성들의 마음을 훔쳤을 SS 도네급 미녀들을 당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른 침을 삼킨다.

 


‘그럼 일단 한 번 가볍게 즐겨볼까?’


 

“아 맞다. 그리고 인간님. 혼란스럽겠지만 우선 하나 아셔야될게―,”

 

“벗어.”

 

“…네?”

 

“철충 같은 거 알게 뭐야. 일단 너희 둘 다 입고 있는 옷 전부 벗어. 명령이다.”


 

당신은 방정맞게 솟구치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자위를 하며 추접한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된 지금은 아니다.

 

당신은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권력을 손에 쥐고 환희한다. 이제 비참했던 현실과는 영영 안녕이다.

 

당신은 이제 최후의 인간으로써 오직 당신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미녀들과 함께 오르카 호에서 주지육림의 삶을―,


 

“…뭐해? 빨리 입고 있는 옷 전부 벗으라니까? 알몸도게자를 해봐야 정신 차릴 건가?”


 

당신은 짐짓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그녀들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그녀들은 당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

 

되레 이상한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까 와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다.

 

당신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보통 인간님들은 다 이런 겁니까?”

 

“하아…, 씨발. 어쩐지 뭔가 쌔하더라니…. 꽝이었나보네.”

 

“아무래도 ‘그 사령관’님이 특이하시다는 린네씨의 말이 맞는 모양임다.”

 

“그야 그렇겠지…. 내가 그 사령관님이라도 이런 쓰레기들이 다시 생겨나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을 거야.”

 

“어떻하심까? 구제함까?”

 

“…그럴까?”


 

철컥, 어느새 꺼내든 소총을 장전하는 브라우니를 보며 당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옆에는 철망으로 막힌 깨진 유리창, 뒤에는 낡은 침상. 도망칠 곳은 없다.

 

당황한 당신은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인간의 명령이라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던가.

 


‘난 인류가 멸망한 이후 100년만에 나타난 유일한 인간인데, 어째서―.’


 

“그렇지만 그 사령관님이 사라지신 이후, 나타난 두 번째 인간이지 않습니까. 섣부른 결정은 지양하시지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브라우니와 유미의 흉흉한 기운이 조금 가라앉는다. 입구엔 붉은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여성이 서 있다.

 

자유로운 복식의 앞선 두 바이오로이드들과는 다르게 최대한 단정하고 말끔한 복식을 입은 바이오로이드다.

 

품이 넓은 외투를 통해 최대한 살이 드러나지 않으려 노력한 듯 보였으나 가슴 부분의 압박감은 여지없이 드러나는, 그리고 얼핏 보이는 목에 찬 구속구가 눈에 보이는.


붉은 늑대 귀를 가진 소녀.


 

“…펜리르?”

 

“제 개체명에 대해 아는 걸 보아하니 멸망 전에 제법 직급이 있던 인간이었던 모양이군요. 뭐 깨어난 직후 지금까지 내보인 태도를 보아하니, 멸망 전에 어떤 삶을 보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군요.”

 

“아, 아냐…. 나, 난 그저…. 너, 너희는 바이오로이드잖아? 바이오로이드는 인간들에게 헌신하게는게 당연하잖아? 나, 난…. 멸망 이후 인간ㄴ―,”

 


스릉, 당신의 목에 날카로운 철제 검이 밀려들어온다.

 

날카롭게 내뿜는 살기에 당신은 몸을 뻣뻣이 굳힌 체 숨을 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뇨. 당신은 인간님이 아닙니다. 물론 생물학 적으론, 저희들과 다른 인간이라는 종에 분류되긴 합니다만…, 언제나 저희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간님은 우리들에게 직접 결정권을 넘겨주시고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숨어들기를 택한 사령관님. 지고하신 그 분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당신은 그저…. 벌레일 뿐이죠.’ 그렇게 말하는 펜리르의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진다.

 

칼날이 목 깊숙이 파고든다. 목젖 위로 서린 감각과 함께 뜨거운 감각이 퍼진다.

 


 

이어 당신은 마침내 깨달는다.

 

이곳은 당신이 지금껏 게임으로 즐겨왔던 라스트 오리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모든 것이 끝났고, 당신이 최초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들은 더 이상 당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에게 무조건 적인 호의도 내비치지 않을 것을.

 

당신은 완전히 낯선 세계에 아무것도 없이 혼자 떨어진 이방인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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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두 번째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