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동호대교 위를 반쯤 지났을때 턱하고 멈췄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았다.
유상아, 이현성, 한명오, 꼬마, 김남운, 나.
착해빠져 현실을 직시 못하는 여자, 바보같고 열정만 있는 남자, 쓸데가 없는 꼰대, 아직 쓸데가 있을지도 의문인 꼬맹이, 미친놈.
꽤나 오합지졸 같다고 생각했다.

"으아! 저게 뭐야!!"

나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틀어 그가 뭘 봤는지 확인했다.
뱀같이 생긴게 전투기의 잔해를 뜯어먹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무덤덤했다.
어룡, 저 크기면 씨-서펜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놈이겠지.
어룡이 이쪽을 번뜩이며 보자 한명오가 기겁했다.

"우아아!!"

그 상황에서도 나는 무덤덤했다.
어룡이 다리 밑으로 쑥 내려가 사라졌다.
우리가 시나리오로 저 놈을 만난게 아니라면 적어도 저 놈과 부딪힐 일은 현재는 없다.
아마도.
나는 고개를 든 사람들 얼굴을 살폈다.
단 둘 빼고 모두 기색이 아까보단 나아졌다.
조금 창백해진건 어쩔 수 없고.
예외인 둘은 김남운과 이 꼬마다.
김남운 이 새끼는 내 도움으로 살았단게 굴욕적인건지 겨우 살았다는 충격인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꼬마는, 어째 안색이 똑같다.
아니 유료화 이전보다 안색이 좋아진 것 같기도.
곳곳의 멍자국과 교차해가며 이유를 끼워맞춰본다.
아마도 옆에 있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한 것 같다. 아마도 그 여자가 죽었기에 안색이 좋아진 것 같다. 그래도 정상적인 애는 아니지만.

[등장인물, '김남운의 생존으로 두 개의 성좌가 당신에게 미미한 호감을 표합니다.]

성좌, 멸살법에서 '그 자식'이 가장 죽이고 싶어했던 존재이자 딱히 반갑지 못한 존재.
나는 시스템 알림을 대충 지웠다.
그러자 다시 알림이 떠올랐다.

[당신의 자비에 네 개의 성좌가 강력한 호감을 표합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죽을때까지 두 개 이상의 성좌에게 호감을 받기는 힘들다.
그런데 넷이라니.

[성좌들이 당신에게 500코인을 후원합니다.]

내가 지켜보던 존재가 역으로 날 본다니, 기분이 새롭다.
물론 좋은 쪽으로 새로운건 아니다.
500코인은 고맙게 생각한다.

"독자씨, 괜찮아요?"

고개를 들자 유상아가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고 싶어하던 그녀가 살았단건 결국 많은 생명을 짓밟았다는 의미다.
내가 알던 유상아는 이제 없다. 물론 그녀가 알던 나도 이제 없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는 못 구했어요."
"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잖아요."

나는 머리가 고깃조각처럼 터져나간 노인의 사체를 보았다.
암만봐도 끔찍하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상아가 목덜미를 만지며 말했다.

"그리고, 감사해요."
"네?"

이 여자, 또 뭔 소리를 하려는걸까.
슬슬 이런 성격도 버렸으면 하는데.

"곤충망을 제 쪽으로 던져주신거요."

그녀가 멋쩍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건 고의가 아녜요, 상아씨가 살아남아야했고 살아남을 자격이 있으니 살아남은거에요."
"아···"

조금 실망한 눈빛이다.
옆에서 멍때리는 꼬마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정 감사인사를 하고 싶으면 얘한테 하세요."

그녀도 봤을 것이다. 내가 던진 곤충망은 이 꼬마의 것이란걸.
내 생각이 맞았는지 유상아가 고개를 숙였다.

"곤충망을 독자씨께 빌려준 것, 정말 고마워."

그러자 꼬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꼬마에게 물었다.

"미안한데, 이름좀 알려줄래?"

꼬마가 내 쪽을 보고 입을 움직였다.


*


[이야, 많이들 사셨네요?]

도깨비가 우리를 가르키며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거기 백발도 살아있는거죠?]

고개를 끄덕이자 도깨비가 메세지를 날렸다.

[불광행 3434열차 3807칸 생존자:김독자, 이현성, 유상아, 한명오, 이길영, 김남운]

그 이름들을 되뇌였다.
그리고 한 네번째 순회의 중간쯤 도깨비가 말했다.

[이제 우리 성좌님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어요! 와! 정말 기쁘죠? 행복하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도깨비의 표정이 굳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냥 해보세요!]

도깨비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 앞에 파란 선택창이 보였다.

"독자씨, 이게 뭐에요? 두 이상한 선택지가 있는데."

선택을 잘못하면 죽는다. 아까 한 그 짓거리보다도 위험한게 여기서 실수 하는 것이다.
나는 진정하고 말했다.

"다들 선택창을 읽어주세요!"

그러자 유상아가 처음으로 말했다.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랑···"

시작부터 쎄다.

"여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누가···"
"후자로 하세요."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는 간단하다. 엄청난 뒷배다. 아마 여기로 들어가면 위험하진 않겠지.
그리고 이현성이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말했다.

"강철의 주인이랑···"
"그걸로 하세요."

이쪽은 강철의 주인이 아니면 뭣도 아니다.
아마 씨-서펜트에게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수준까지 갈지 모른다.
그 다음은 이길영이 말했다.

"전 선택지가 하나에요."
"어쩔 수 없지, 그걸로 하자."

한명오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하려 했다.

"아, 그쪽은 말 안 해주셔도 되요, '한명오씨'."

평소처럼 부장이라 안 불러서 굳은건지 내가 친 벽때문에 굳은건지 표정이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김남운은 허공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아마 '심연의 흑염룡'이겠지.
묻는건 관두고 이제 내꺼를 보았다.

<배후 선택>
1.악마같은 불의 심판자
2.심연의 흑염룡
3.긴고아의 죄수
4.은밀한 모략가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는 어디까지나 악마 '같을' 뿐이다. 그러니 천사쪽일 것이다. 그리고 불의 심판자니 우리엘이겠지. 우리엘은 강하고 확실한 스킬을 준다. 하지만 제약이 크다.

'흑염룡'은 강대한 힘을 준다. 하지만 정신을 갉아먹고 결국에는 학살자가 되었다가 죽는다.

'긴고아의 죄수', 즉 제천대성은 멸살법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간간히 묘사만 될 뿐.

'은밀한 모략가'는 솔직히 뭔지 모르겠다.
멸살법을 다시 봐도 안 나왔다.
확실한건, 약한 축인게 분명하다. '흑염룡'보다 끔찍한 이름이라니.
약자인게 분명하다.

[10초 남았습니다.]

이제 결정할 시간이다.
나는 선택창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결정했다.

[배후 선택이 끝났습니다.]



오랜만 같은 기분에 졸리기도 해서 퀄이 많이 떨어지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