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가 돌아왔다.
그의 그 큰 키가, 평범한듯 미형인 얼굴이, 넓은 어께가, 쩍 벌어진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죽을 일도 없다, 사라질 일도 없다.
그렇다면 그를 사랑해도 되는걸까.
나는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계속 들이댔다.
매일 아침 그의 집에 찾아가 그를 깨우고 매 끼마다 밥을 챙겼다.
그는 그럴때마다 조금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나는 그 선을 기꺼이 넘었다.
최후의 벽도 넘었는데 그깟 선 넘어줄 수 있었다.
데이트 신청도 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그럴때마다 "나 보러 오지 말고 소설이나 쓰는게 낫지 않아?"같이 모진 말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나리오때까지만 해도 욕조차 하지 않았던 남자다.
그런데 왜 내게 모질게 구는걸까.
정말 내가 싫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성의를 보였다.
그가 짜증을 낸다면 어제보다 더 맛있는 밥을,
그가 나를 거부한다면 어제보다 더 깨끗한 옷을,
그가 내게 모질게 군다면 어제보다 더 편한 아침을 선물했다.
딱히 싫은 일상은 아니였다.
매일 아침마다, 매 끼마다 본인이 사랑하는 남자를 볼 수 있다.
이건 여자로서 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하지만 이 나날도 금방 깨졌다.
어느 날 내가 늦잠을 자버렸다.
원래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버렸다.
그랬기에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빠르게 번호를 누른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다.
원래였다면 그가 깼을 시간이다.
나는 이질감을 느끼며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진 않았을까, 죽진 않았을까.
매일 그런 생각을 했었다.
겨우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런 상황이라니.
나는 쿵쿵대는 심장을,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러자 문이 끼이익하며 열렸다.
그가 누워있었다.
침대에 누워있었으면 모를까 문 앞이였다.
그가 작고 옅은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김독자를 살짝 안자 몸이 불덩이같아 놀랐다.
"한…수…"
그가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죽은 줄 알았다.
그랬기에 그의 가슴팍에 귀를 대 숨을 쉬는지, 심장은 뛰는지 확인했다.
새액하며 폐가 움직이고 있었다.
콩콩처럼 약하게 심장이 뛰었다.
나는 급하게 '한밤중의 밀회'를 발동해 메세지를 날렸다.
[유중혁! 김독자가 쓰러졌어!]
그러자 한 2분정도 지나자 문이 뜯어지며 유중혁이 들어왔다.
그가 아랑곳하지 않고 김독자를 업고 병원까지 달렸다.
*
[…이제 그들이 아빠를 잊기 시작했다는 뜻이야, 한수영에게는 말하지…아.]
늦었다.
그가 병실에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느라 모이라고 일러뒀던 곳에 늦게 도착했다.
그래서 듣고 싶었지만 동시에 듣기 싫었던 말을 들어버렸다.
김독자가 죽는다.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돌아오는게 기적일 것이다.
정희원과 유중혁, 유상아, 두 꼬맹이는 김독자를 탓했다.
말하지 않은 그를 탓했다.
나는 그를 탓할 수 없었다.
거의 24시간을 함께했다.
그럼에도 그가 위태롭단걸 모른 내가 미웠다.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미쳐버린 사람처럼 노래방에 가 소리를 질렀고 피시방에 가 마음 껏 게임을 했다.
그럼에도 더욱 괴로웠다.
가슴을 옥죄이는 구멍이 더욱 커져갔다.
결국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두 눈을 감은 채 곱게 자는 그를 보고 있자니 서있기 힘들었다.
여태 쉬지 않았던 숨이 내뱉어졌다.
억지로 막아뒀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나는 주저앉아 그의 손을 잡고 울었다.
아마 살면서 가장 오래 울었던 것 같다.
지쳐도 울었다.
과호흡때문에 숨이 안 쉬어져도 울었다.
결국 눈물이 마른듯 더이상 눈물이 나질 않는 상황이 와서야 겨우 말을 했다.
"너 혼자 가면 난 어떡하라고! 이 머저리야!"
화풀이를 해버렸다.
잘못한 것도 나였다. 사과해야하는 것도 나였다.
그럼에도 대상을 김독자로 잡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는 거칠어진 숨을 뱉어내고 말했다.
"…내일 다시 올게."
나는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서 가려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나를 잡아줬다.
나는 기쁜마음과 슬픈 마음이 공존한단게 무슨 의미인지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사랑해."
"…뭐?"
"사랑한다고."
그의 고백에 나는 놀랐다.
꿈을 꾸는건 아닐까.
아니면 오늘이 만우절인가?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며 단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정말이야?"
그러자 김독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이상 버티질 못했다.
매말랐다고 생각한 눈물이 다시 터지려했다.
그걸 알아챘는지 김독자가 팔을 벌려줬다.
나는 그에게 안겨 폭풍같은 감정을 쏟아냈다.
사랑한다고 미친듯이 말해보고, 아무 말 없이 흐느껴보기도 했다.
그의 품은 그 어느곳보다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행복했다.
*
그 후로 우리는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같이 간식도 먹고, 영화도 봤다.
놀이공원도 가보고, 바다도 가봤다.
그리고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어느날 김독자가 내게 폭탄같은 제안을 했다.
"우리, 결혼하자."
"뭐?"
"결혼하자구."
한번쯤 떠올려봤던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느낌이 쎄해 그에게 물었다.
"…왜?"
"응?"
"왜 서두르는건데?"
그러자 김독자가 입은 미소지었지만 눈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이제 한달도 못 버텨."
"얼마나 남았는지는 너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내 몸 상태를 보고 말하는거야, 그래서 뭉뚱그려 말한거고."
그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손이 조금 흐릿하게 보였다.
그걸 내가 확인하니 김독자가 다시 장갑을 꼈다.
"결혼, 해줄래?"
고민 됐다.
그와 결혼하는건 좋다.
그가 애를 1000명만 낳자해도 낳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결혼식에 나는 웃을 수 있을까.
그가 죽는단걸 아는데도 웃을 수 있을까.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답했다.
"응."
*
그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청혼 받은지 정확히 4주 뒤, 우리는 결혼식장을 걷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조금 불편한 표정이였지만 나는 그걸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식장에 들어서기 전 내게 말했다.
"난 아마 식중에 사라질거야."
"뭐?"
"결혼식을 망쳐서 미안해."
나는 복잡한 심정이였다.
그렇지만 서약을 시작하자 내가 결혼한단게 실감이 나 복잡한 심정이 조금 씻겨져 내려갔다.
그리고 결혼반지를 끼우고 키스를 시작했다.
김독자가 평소보다 더 격하게 키스했다.
그 이유를 난 알고 있었다.
감았던 등의 감각이 사라졌다.
안았던 탄탄한 몸이 사라져간다.
나는 그걸 느끼면서도 최대한 그를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맞닿아 있던 입술의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울고 있었다.
눈물 한방울이 주르륵 뺨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한손으로 들고 남은 한손은 사라진 그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천천히 식장을 걸어나갔다.
미친 사람이라 욕해도 상관 없다.
그는 살아있다.
내 앞에서 사라졌을 뿐 살아있다.
그렇게 믿기에 나는 그 결혼식을 망치지 않고 끝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집으로 갔다.
넓은 집이였다.
조용한게 작업하기 좋아보였다.
김독자와 살았을 집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없다.
인정해야한다.
이제 내 옆에 김독자는 없다.
나는 그와 맞춘 결혼반지를 그의 사진 앞에 두며 말했다.
"언제든 돌아와, 김독자."
*
그가 떠나간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동료들도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연락도 뜸해졌다.
나는 그가 없는 생활에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그날도 나는 첨삭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똑똑하고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번에 시켰던 타블렛인가 하고 문을 열었다.
그 곳에는 익숙하고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나는 그를 발견하고 웃으며 말했다.
"다녀왔어?"
그러자 김독자도 따라웃으며 말했다.
"응, 다녀왔어."
쓰다보니 초라해졌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