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던 겨울날이었다. 눈이 오는 날답게도 한겨울이던 날은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설화는 빨갛게 물든 손을 바라보았다. 창틀을 붙잡은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도 손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날이 꽤 추운가 본데..."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챙겨 입고 나갔던 적이 없었다. 냉기저항이 있다곤 하지만, 이설화는 목도리와 털장갑을 챙겼다. 여러 겹으로 씌워줄 생각에 목도리 서네개와 장갑 두세 켤레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병원에 일은 없었지만, 병원을 들리는 이유는 꼭 일 때문만은 아니다.

 집보다는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항상 병원에 들리는 사람을 기다리며, 이설화는 병원을 향해 걸었다. 말도 잘 듣지 않는 못난 환자라 그런가, 흰 얼굴을 볼 때면 분노와 비슷하나 다른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곤 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기에, 그 감정은 걱정을 퍽 닮아 있었다. 간질간질한 감정이 만들어낸 한조각. 그 한조각은 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흰 길에 작은 발자국이 찍혔다.


-


"아, 설화씨. 꽤 오랜만이죠?"


 병원에는 흰 사람이 서 있었다. 추운 날에도 목도리 하나 두르지 않아 뺨이 붉어졌음에도 희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드러난 맨살도, 옷도 전부 희었다. 그는 흰색을 띄는 사람이었다.

 비현실적으로 흰 것이 꼭 차가운 눈을 닮았다. 이설화는 장갑을 신기고 목도리를 둘러주며 말을 꺼냈다.


"....추운 날에 찾아올거면 따뜻하게라도 입고 다녀요. 장갑도 좀 끼고."

"다음부터는 그러겠습니다."

"독자씨, 몇번이나 들었던 말인 것 같은데요."


 하얀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점차 휘어지기만 하던 입이 열렸다.


"설화씨, 혹시 오늘 시간을 좀 내실 수 있나요?"

"...그러죠. 오늘은 일도 없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냥, 눈사람을 같이 만들면 어떨까 싶어서요."


 실없는 웃음처럼 실없는 이유였다. 오늘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 정도야 모를 리가 없었고, 동거 직전의 사이니 하는 제안일것이다.


"그러죠. 이곳에서 만들건가요, 아니면 공원에서요?"

"공원으로 가죠. 그러고 보니 장갑은 필요없겠는 데 그만 벗어도,"

"만들기 직전까지는 신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눈사람이 뭐고 간에 집으로 데려가고 싶거든요."


 이어진 말에 입이 굳게 닫혔다. 전에 마비독에 중독되어 끌려갔던 기억이 잊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태연하나 어째선지 떨리는 미소만을 띄우더니 말없이 공원으로 향해 걸었다.


 햐얗던 것은 포근한 눈을 닮았는 지, 맞잡은 손은 꽤 따뜻했다.


-


"다 만들은 것 같은 데, 어때요?"


 하얀 입이 휘어지며 웃음을 짓는다. 커다란 눈덩이를 셋이나 쌓아올려 만든 눈사람을 뿌듯하게 느끼는 듯 싶었다. 덩달아 웃음지으려 했을 때, 눈사람과 그처럼 흰 사람, 그 위로 눈을 실은 바람이 불었다.


 하얀 눈을 닮은 사람이 눈사람의 곁에 서고서 웃고 있었다. 하얀 눈이 바람에 흩날린 탓인가, 눈사람의 곁에 있는 것이 눈사람인지 사람인지가 구별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날이 풀리면 사라지던 눈사람처럼 사라져버리곤 하던 사람이었다.

 함께 웃고 싶었던 시간에 떠나가버리는 사람. 불행하게도, 이 순간은 웃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가 사라지던 순간들과 다를 것 없이.


"...가지마요, 제발."


 홀린 듯이 붙잡았던 것은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녹아내릴 눈사람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한동안 마음을 부정하곤 했던 것도 그 이유일것이다. 눈사람은 손을 가까이대면 녹아버리니. 조금이라도 가까이에 있고 싶거든 가까이에 있으면 안되는 것이, 모순적인 게 꼭 그를 닮았다.

 어릴 적에 만든 눈사람은 제 손으로 인해 녹아버리곤 했었다. 그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는 제 손으로 죽일뻔한 사람이었다. 한기에 빨갛게 물든 이설화의 손이 떨렸다. 살릴 수 있는 것이 많은 손이라 하나, 죽일 수 있는 것또한 많은 손이었다.

 빨갛게 물들은 손에 붉은 피가 겹쳐 보인다. 그 아래로 이어진 피 자국을 보지 않더라도 그 피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지독하게 느껴지는 혈향마저 풍겨온다. 흰 눈을 도화지 삼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아아, 그 앞에는-.


"....설화씨, 이설화!"


 피에 물들지 않은 손이 몸을 붙든다. 어른거리던 핏자국은 허상이라는 듯이 사라졌고, 시야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차갑지 아니한 따스함이 물감이 번지듯 퍼져온다. 떨리던 숨이 점차 가라앉는다.

 닮았다는 말은 결코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이 틀리지 않길 바라며 이설화는 김독자를 조심스레 안았다.


 눈사람이라면 전해질 수 없을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