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 이전의 키리오스 제자 이야기가 궁금해서 한번 써봤음.

이런저런 전독시 설정 다 생각하기엔 너무 머리 아파서, 그냥 흔한 무협 토대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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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오스가 두번째 제자를 들이게 된 것은 단순한 계기였다.

   

 하늘에서 매섭게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속죄하듯, 거세게 들이치는 빗방울 속에서 빗소리보다 더 크게, 더 구슬프게 울음을 토해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무공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동네 불한당들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자신의 나약함을 게워내고 있었던 한 사내. 거대한 세상이 두려워 몸을 한껏 웅크리고 어깨를 들썩이던 작디 작은 사내.

   

 키리오스 눈에는 그가 무척이나 작게 보였다. 소인인 자신보다도 한참이나 작게. 

   

 그의 마음에 생긴 우스운 가엾음 때문에, 키리오스는 첫번째 제자를 잃고 다시는 제자를 들이지 않기로 한 자신과의 맹약을 어기고 새로운 제자를 들였던 것이다.

   

 “우선 찌르기 천 번이다.”

   

 “예? 찌르기를 천 번이나요? 굳이 왜….”

   

 “내가 설명을 해준들 네놈이 이해할 턱이 있나? 물론 설명해줄 마음도 없고.”

   

 백청문에는 매일 새액새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사내는 나약하지만 정직했다. 백 번의 찌르기를 하고 토를 하고, 또 백 번의 찌르기를 하고 다시 한 번 구역질을 해도 꼬박꼬박 천 번이라는 고된 횟수를 완성했다.

   

 키리오스는 처마에 매달아 놓은 쟁반에 앉아, 매일 사내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딱히 첨언하거나, 자세를 교정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사내가 구역질을 할 때마다 냉철한 목소리로 ‘다시 시작’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계절이 흘렀다. 장맛비가 추적이던 여름이 떠나고, 낙엽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다.

   

 사내는 더 이상 찌르기를 하며 구역질을 하지 않았다. 반나절의 시간 동안 천 번의 찌르기를 마치고, 헉헉대며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뿐이었다.

   

 “스승님, 육체도 단련된 것 같은데 저도 내공이라는 것을….”

   

 “닥쳐라.”

   

 “아니….”

   

 “이거나 익혀라. 오다 주웠다.”

   

 키리오스는 등에 짊어진 거대한 책 하나를 사내에게 던졌다. 무공서였다. 사내는 천천히 책의 표지에 적힌 제목을 읽었다.

   

 「‘속성으로 배우는 내공심법! -혼원공 편-‘」

   

 “화산파의 내공심법 아닙니까? 저는 백청문의 제자인데 왜 이걸―”

   

 “너같이 거대한 놈은 내 심법을 배울 수 없다.”

   

 백청문의 모든 무공은 본디 소인인 키리오스의 몸에 맞춰 설계된 것이기에, 내공심법조차 소인이 아니었던 사내는 익힐 수 없었다.

   

 사내는 더 이상 그의 스승에게 반문하지 않고 책을 펼쳤다. 제자에게 자기 문파의 무공이 아닌 다른 문파의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스승으로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그는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자존심 강한 자신의 스승이 가져온 이 무공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내는 알 것도 같았다.

   

 키리오스는 드문드문 여러 무공서를 가져왔다. 때로는 청성파의 대라검법을. 어쩔땐 화산파의 육합검법을. 정 가르칠 만한 무공이 없을 때에는, 사내도 배울 수 있게 개량한 백청문의 무공을.

   

 그리고 사내는 매일매일 그것을 익혔다. 아침에는 무공서를 분석하고, 점심에는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운기조식을 하며 차곡차곡 내공을 쌓았다.

   

 “스, 스승님!”

   

 츠츠츳―

   

 “강기입니다! 스승님의 백청강기입니다!”

   

 “그래. 참 하얗구나.”

   

 사내는 많이 강해졌다. 언젠가 그의 스승이 던져준 백청강기의 묘리가 적혀있는 무공서를 통해 강기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로.

   

 그가 백청강기를 구사하는 데에 성공한 이유로, 그의 성장은 가속이 붙었다. 그는 무공에 자유자재로 강기를 불어넣어 위력을 강화 시킬 수 있었고, 이젠 강기를 쏘아보내는, 즉 검강(劍罡)을 구사하는 경지까지 성장했다.

   

 “스승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웬만하면 다시 찾아오지는 마라.”

   

 어느덧 완연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는 백청문을 떠났다. 무릇 무사라면 강호로 떠나 강호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법. 그 역시 완연한 무사였다.

   

 다만 스승의 바램과는 달리, 사내는 자주 백청문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 객잔에서 점소이에게 행패질을 하는 질 나쁜 양아치를 손 봐주었다는 일로, 정사지간에 속해 있는 한 문파의 검객을 격퇴시킨 일로, 사파의 백대고수를 하루하고 반나절의 결투 끝에 쓰러뜨린 일로.

   

 원최 밖으로 잘 나다니지 않는 키리오스는 그의 제자 덕에 세상사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약하지 않는 제자가 찾아올때 마다, 그는 애써 싫은 척 욕바가지를 퍼부우면서도 사내가 좋아하던 약과가 한가득 담겨있는 봉지를 툭 던지곤 했다.

   

 그리고, 사내는 한동안 백청문을 찾지 않았다.

   

 네 번의 계절이 지나고, 다시 한 번 또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그날 역시 장맛비가 매섭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다시 백청문의 문을 두드린 사내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선연한 상처를 입고 나타난 그는, 키리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전인화]를 전수해주십시오.”

   

 그가 나약했을 때, 그는 정직했다. 고로 그가 강해졌을 때, 그는 정의로웠다.

   

 키리오스는 그의 제자 덕에 세상사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강호는 폐관을 마친 천마의 후계자를 등에 업은, 마교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너무도 정의로웠던 사내가, 마교와의 전쟁에서 몸을 사릴 리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마교인들을 척살했고, 수십 수백의 마교도 시체 위에서는 언제나 푸른 백청의 강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는, 천마신교는 너무 강했다. 무림맹에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급 인사를 필두로 각 문파에서 최강을 자처하는 제자들을 모아 마교에 대적했지만 턱 부족이었다.

   

 “누누이 말했듯, [전인화]는―”

   

 “[백청강기]도 제가 사용할 수 있게 개량하지 않으셨습니까!”

   

 처음으로, 사내가 스승의 말을 끊었다. 스승은 화내지 않았다. 뿌연 물안개 너머로 보이는 제자의 눈동자 속, 너무도 작지만 확고한 세계가 단단히 그 안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무공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천하제일의 귀재라든가, 강호의 절대고수로 군림할 수 있는 수준은 죽어도 아니었다.

   

 키리오스는 사내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구파일방을 너머 강호에 이름을 떨칠, 기껏해야 백대고수의 중반 언저리 정도. 그것이 사내가 가진 재능의 총량이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무공을 배웠느냐.”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재능을 아득히 상회하는 정의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정도’라는 말에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어쩌면 키리오스의 백청문이 아닌, 정파의 거대 문파에서 수련하는게 더 어울렸을 정도로.

   

 스승은 제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웠다.

   

 ‘무공을 배워서, 절 괴롭힌 패거리들을 패주고 싶어서요,’

   

 ‘사내로 태어났으면, 무공을 배워 강호로 나가는 것을 모두 꿈꾸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러한 말들이라면 어땠을까.

   

 “나약한 자들이 더 이상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 어떤 검보다도 날카로운 문장이 키리오스의 가슴 깊숙히 파고들었다.

   

 “너같이 하찮은 놈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저같이 하찮은 놈들끼리 모인게, 이 세상이니까요.”

   

 마당에 고인 물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세상을 바꾸는 건 너같은 놈들의 몫이 아니다. 절대고수, 천하제일인, 고금제일인. 이러한 자들의 몫이지.”

   

 “그러면 스승님은 왜 가만히 계십니까?”

   

 순간 키리오스에게 온 세상에 흐르는 빗방울들이 모두 멈추는 듯 했다. 바닥에 일렁이는 물결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도, 천천히 흐르는 제자의 뺨에 맺힌 핏방울도.

   

 키리오스는 강했다. 너무도 강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그가 ‘역설의 백청’이라 불린 까닭이었다.

   

 [피스랜드]에서도, 지금도.

   

 아직 무림에는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위력은 약하겠지만,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최강의 초월좌가 된 키리오스에게는 상당한 개연성의 제약이 걸려 있었다.

   

 명분이 없으면, 함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몸.

   

 키리오스는 그 날을 떠올렸다. [피스랜드]로 귀환했던 날을. 자신의 세계에 닥친 재앙을 단숨에 해치울 힘이 있으면서도, 밤하늘의 성좌들처럼 무력하게 그것을 바라봐야만 했었던 그날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긴 시간 내내 키리오스의 마음 깊숙히 박힌 또 다른 문장이었다.

   

 키리오스의 몸이 점점 허공으로 떠올랐다.

   

 “내가 이름도 없는 너를 거뒀을 때, 부디 언제나 바른 길로 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줬었지.”

   

 스승의 차가운 음성에, 제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키리오스가 <제1무림> 전체에 메아리가 칠 정도로 강렬한 음성을 토해냈다.

   

 [네놈같은 제자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이 현, 네놈을 파문하겠다.]

   

 

   

*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스승의 파문 선언을 들은 제자는 스승에게 마지막 큰절을 올린 후 곧바로 자리를 떴고, 향간에 한 백청의 무사가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무림맹의 마교척살단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릴 뿐이었다.

   

 무료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찌르기를 하는 제자도, 평상에 앉아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운기조식을 하는 제자도, 신이 나서 세상 소식을 스승에게 떠들어 대는 제자도 없었다.

   

 장마는 계속되었다. 일주일 내 거센 비가 세상을 집어 삼킬 듯 쏟아졌다. 폭우로 인해 십만대산에서 마교척살단이 난전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제자는 언제나 스승에게 세상사를 알려줬다. 스승이 알기 두려워 했던 소식 마저도.

   

 아직 먹구름은 가시지 않았지만, 여름 내내 쏟아지던 빗방울들이 그친 어느 날이었다. 흑빛 먹구름 사이로 여우볕이 백청문 마당 안으로 새어 들어왔고, 그 볕 속에 무림맹의 상징을 매단 한 낯선 무사가 서 있었다.

   

 낯선 무사에게서 낯선 냄새가 났고, 낯선 목소리가 들렸으며, 낯선 소식이 전해져왔다.

   

 「백청문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한 검사가 마교의 후계자가 천마로 재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기억이 되풀이 되는 것 같았다.

   

 오십 년 전이었던가, 아마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 싶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일렁였다. 그것이 분노였든, 처절한 슬픔이었든 당장 그것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콰과과과광―

   

 하늘에서 기둥이 솟구쳤다. 푸르고, 또 하얀. 전격으로 가득찬 백청의 기둥.

   

 백청문 일대의 모든 건물들이 바스라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지상에 푸른 섬광이 일렁였고, 수십 수백 번의 번뢰가 내리쳤다.

   

 스승의 손에서 [순백의 역설]이 울음을 토해냈다.

   

 마치 스파크가 튀듯, 불안한 음성이 떨렸다.

   

 “내 제자가 죽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