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설화. 신을 삼킨 성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설화. 빛과 어둠의 계절이...]

.

.

.

눈앞에 떠오르는 메세지를 바라본 한수영이 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소멸했던 시스템이 돌아왔다.


그렇다는 것은....


아까부터 미친듯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이설화의 병원 앞에 차를 세운 한수영은 김독자의 병실을 향해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병실 앞. 4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방문했던 바로 그 문 앞에, 마침내 한수영은 섰다.


병실 앞에는 그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월드 투어 도중 급하게 돌아온 우리엘과 제천대성, 흑염룡,디오니소스.


명계에서 달려온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수경을 필두로 한 방랑자들.


누구보다도 이날을 고대했던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까지.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던 그들 이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문고리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먼저 이 광경을 확인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문고리를 붙잡은 한수영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는 문.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숨을 들이킨 한수영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똑바로 하려 노력하며, 병상으로 다가간 한수영은 눈앞의 존재의 옷깃을 붙잡았다.


혹시나 환영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걸 확인할 의무가 있었기에, 손에 쥐여진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한수영."


너무나 그리웠던 목소리에, 그만 울음을 터트린 한수영이 그의 품에 안겼다.


가슴께에 실린 미약한 무게감을 느끼며 잠시 침묵한 김독자는,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다들, 오랜만 입니다."


비로소 그자리에 있던 모두가 마음놓고 눈물을 흘렸다.


"혀엉!!!"


"아저씨!!!!"


자신의 양 팔에 매달린 아이들을 시작으로, 자신이 진짜인지 확인해보겠다는 듯 그를 주무르는 손길을 만끽하며, 김독자는 생각했다.


역시 자신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행복이라고 말이다.



그날, 전 세계의 신문에는 한가지 소식이 대서특필 됐다.


-구원의 마왕이 돌아왔다.


*

그날 이후로 김독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일행들과 해후를 나누고.


이제는 도깨비 왕이 된 비유와 함께 부활한 시스템을 조율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스템의 부활로 산재한 문제들을 처리하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듯이 바쁘게 일을 처리하던 김독자의 눈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김독자."


"한수영. 여기는 어쩐 일로..."


"그냥, 바람이나 쐬자고."


그리 말한 한수영은 막무가내로 김독자를 옥상으로 끌고 올라갔다.


"자. 먹어."


입안으로 들어온 레몬사탕의 신맛을 음미하며, 김독자는 노을이 지는 서울의 광경을 바라봤다.


"어때?"


감작스런 한수영의 질문에 김독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위로 수많은 설화가 떠올랐다.


이 도시에 깃든 설화들을 물끄럼이 바라보던 김독자는, 이내 눈을 뜨고 말했다.


"....아름답네."


"그래. 아름답지."


그들은 잠시동안 한담을 나눴다.


"이지혜 걔는 공부 진짜 못하더라. 뭔놈의 성적표에 F가 수두룩 해."


"그럴거 같았어."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는 이길영과 신유승, 음식집을 차린 장하영, 이설화와 식을 올린 유중혁.....


그가 없었던 시간동안 무수히 쌓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한수영은, 이내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 어디 아프냐?"


"뭐?"


"그냥. 왠지 기운없어 보이길래."


"......"


그 말을 들은 김독자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는다.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묵묵히 그를 기다려주는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걸 누려도 되나 싶어서."


그는 이 세상을 구했다.


-당신의 ◻️◻️은 종장입니다.


멸망의 시대가 끝을 맺었고,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았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셀수없을 정도로 많았다.



동시에 그는, 이 세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당신의 ◻️◻️은 영원입니다.


일행들은 몇번이나 그를 죽여야 했고, 마지막까지 원치않는 구원을 받아야 했다.


그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자신이 이런 평화를,행복을 누려도 되는 것인가.


사람들의 슬픔을 바탕으로 재건된 도시에, 자신이 발을 디뎌도 되는 것인가.


등등의 생각에 잠겨 침울해진 김독자의 볼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여간 김독자. 이 멍청한 새끼는 바뀌는게 없어요."


"으브읍."


어딘가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김독자의 볼을 잡아당기던 한수영이 말했다.


"네가 뭐 메시아야? 자기 희생해가면서 사람들 구해놓고 또 그따구로 굴어?"


"아니..."


"그래. 니말대로 니가 존나 이기적으로 굴긴 했지. 그거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것도 사실이고.


근데. 우리는? 네가 자기가 여기 있을 자격이 있을 자격이 있네 없네 그러고 있으면 너 구한다고 세계선을 넘어다닌 사람들은, 우리가 한 노력은 뭐가 되는데?"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니라..."


우물쭈물하는 기색의 김독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한수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네가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는 알아. 근데 그 고민이 자꾸 그런 방향으로 흐르면, 내가 억지로라도 그 고민을 들어낼거야. 그것만 알아 둬."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돌린 한수영이 옥상에서 나가기 직전 말했다.


"넌 그냥 김독자야."


-끼이익


그 말을 끝으로, 멀어져가는 한수영의 등과 닫히는 문을 처다보던 김독자의 고개가 숙여졌다.


-뚝.뚝.


흐르는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신은 구원의 마왕인가, 아니면 가장 오래된 꿈인가.


둘 다 아니었다.


자신은 김독자였다.


거기서부터, 이 엉킨 매듭을 푸는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었다.


"....비유."


아직 물기가 남은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퍼져나가자, 바앗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에서 한명의 소녀가 등장했다.


"응.아빠."


"전에 말했던 그거, 혹시 준비됐니?"


미묘한 표정을 지은 김독자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비유가 대답했다.


"그럼요. 진작에 준비 해놨죠."


비유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조그만 케이스가 나타났다.


그것을 조심스레 낚아챈 김독자는 뚜껑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 보더니, 다시 케이스를 닫고 그것을 소중하다는 듯 꼭 쥐었다.


"고맙다."


비유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선 김독자는 계단참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다음으로 풀 매듭이 정해진 것 같다고.


그의 손에 쥐어진 케이스 속에는 한쌍의 반지가 곱게 담겨있었다.


*

"이제야 좀 봐줄만 하네."


창 밖으로 보이는, 조금은 더 밝아진 듯 한 김독자의 모습을 보고 한수영이 내린 평가였다.


"너는 그 표정이 어울려."


"뭐가?"


"흐갹!"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김독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한수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뭐야!!"


분명 방금 전 까지 밖에서 애들이랑 놀아주고 있던걸 봤는데?


그런 의문을 가지고 창 밖을 내다 본 한수영은 그제서야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아바타>?"


"맞아."


그렇게 말하고 헤실헤실 웃는 김독자를 보며, 한수영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일로 온거야?"


"다른게 아니라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손을 내밀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여행갈래?"


한수영은 김독자가 말하는 '여행'이 단 둘이 놀러 가자는 의미인줄 몰랐고, 그렇기에 순순히 긍정을 표했다.


"좋네. 요즘엔 전부 다 바빠서 다들 쉬지도 못했으니까. 이참에 휴가삼아 갔다 오는것도 괜찮겠다."


그렇게 말한 한수영이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에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있는 김독자가 비쳤다.


"나는 우리 둘만 가자고 한건데."


"...에?"


1초.


놀란 한수영이 굳어버렸고


4초.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으며


6초.


고개를 숙인 한수영이 '미친 김독자' 따위의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10초.


한수영이 승낙의 표시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볼까?"


한수영의 승낙에 밝게 웃은 김독자가 그녀의 손을 붙잡자 그들은 어느샌가 [X급 페라르기니] 에 탑승해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몰아치는 상황의 연속에, 잠시 멍해져 있던 한수영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가는건 좋은데, 애들이 잡으러 오면 어쩌게?"


안그래도 김독자가 사라지는데 트라우마가 있는 김컴 일행이었다.


설령 김독자가 여행간다는 말을 남기고 왔어도 '그 몸으로 무슨 여행이냐' 고 반대했을 그들인데, 만약 말도 없이 사라진걸 알아챈다면....


갑자기 드는 오한에 한수영이 몸을 떨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다는 듯, 싱긋 웃은 김독자가 말했다.


"걱정마. 말릴 수 있을 만한 사람들한테 부탁하고 왔으니까."


"누구?"


"비유랑 우리 어머니 아버지."


도깨비왕에 신화급 성좌. 거기다 명계의 안주인과 공단의 실질적 지도자 까지. 


그정도면 날뛰는 일행들을 말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실컷 즐겨야지."


그리 말한 한수영은 차량 시트에 몸을 맡겼고, 창밖을 구경하거나 김독자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

"도착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든 걸까.


김독자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 한수영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와...진짜 예쁘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와 모래사장.


한수영이 즐겁다는 듯 웃으며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김독자는 '도깨비 통신' 을 열고  수신함을 확인했다.


발신자를 비유로 설정하자 떠오르는 몇통의 메세지들.


-부탁하신 일 다 끝냈어요.


-채널은 전부 닫았고, 서울도 폐쇄되서 한동안 밖이랑 접촉이 안될거에요.


매세지를 확인한 김독자가 자판을 두드렸다.


-역시 비유밖에 없다. 고마워.


-뭘요. 저는 '엄마'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김독자가 비유의 답장을 보고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형. 인터넷 차단 완료했어요.


이번 일을 위해 미리 한동훈과도 입을 맞춰 둔 그였다.


"야!! 여기까지 와서 폰만 보지 말고 너도 들어와!"


"알았어. 금방 갈께."


자신을 부르는 한수영의 목소리에, 급히 한동훈에게도 감사인사를 보낸 김독자가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완전한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


한편, 서울의 김독자 컴퍼니 사옥.


"그러니까. 독자씨는 그냥 단순히 여행을 떠난거고, 우리가 반대할까봐 <아바타> 까지 쓰면서 몰래 나간거 라고요?"


[성좌.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네."


김독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이라도 그를 잡으러 가려던 정희원은 이설화와 페르세포네의 설명을 듣고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말도 없이 사라진건 그렇다 쳐도 서울 폐쇄랑 인터넷 차단에 채널까지 막아놓은건 도대체 뭐에요?"


"뭐, 아저씨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지."


한껏 침울해져 있는 아이들의 볼을 쿡쿡 찌르던 이지혜가 말했다.


"그나저나 사부, 사부는 아저씨가 떠난거 알고 있었어요? 나는 사부가 제일 화낼 줄 알았는데."


이지혜의 물음에, 유중혁이 답했다.


"그놈이 멀쩡한 건 알고 있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멍청한 김독자가 밀회방 통합해 놓은 걸 까먹는 바람에(....) 김독자와 한수영의 대화를 약간 엿들은 그는 둘이 여행을 떠났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


이미 둘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둘의 관계가 진전되기를 바랬다.


김독자가 쓰러져 있던동안, 한수영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다녀온 그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자기 알 바가 아니지 않은가.


온전히 그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지.

.

.

.


어찌저찌 일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온 유중혁은 곧바로 이설화의 방으로 들어갔다.


"중혁씨? 갑자기 왜..."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설화의 볼을 쓰다듬으며, 유중혁이 속삭였다.


"오늘 밤. 괜찮은가."


아무래도 둘의 소식이 자신에게도 열기를 불어넣은듯 했다.


평소보다 더 욕구를 주체하기 힘든걸 보니 말이다.


이설화도 마찬가지 였는지, 홍조를 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밤, 그들은 질 수 없다는 듯 격렬하게 서로를 탐했다.



*


".....모처럼 잘 놀고 있었는데."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한수영이 말했다.


분명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거센 빗방울이 쏟아졌다.


그 탓에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둘은 황급히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비오는 것도 나름 운치있어 가만히 있던 김독자는 우울해하는 한수영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기다려 봐."


[마왕화를 발동합니다.]


검은 날개를 펼친 김독자가 바다 위로 날아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나중에 쓸 곳이 따로 있어 꿈 장악력을 쓰지는 못하지만, 이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용스킬 '책갈피'를 활성화 합니다!]


[전용스킬. 바람의 길 Lv.???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극성에 다다른 바람의 길이 먹구름을 몰아내며, 하늘이 맑게 개었다.


"휴."


식은땀을 닦아낸 김독자가 한수영의 곁으로 착지했다.


"다시 갈까?"


"이야. 김독자 꽤 하는데?"


"그럼. 내가 누군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은 둘이 해변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 얘 김독자 너 닮았다."


"이자식이...근데 저거 크라켄 아니야?"


"맞네. 시스템 복구되면서 괴수들도 다시 나타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걸 눈앞에서 볼 줄이야."


"잡아올까?"


"됐네요. 저거 잡아서 뭐하게."


"....유승이 선물?"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린 한수영을 보며, 김독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것' 을 언제 건네줘야 어색하지 않을까.


하루종일 한수영과 놀면서도 타이밍만 재던 김독자는 속이 타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각이 안나오는데...'


이러면 기껏 그 난리를 치면서까지 단 둘이 놀러온 의미가 없지 않나.


'휴...조급해 하다가 일 엎는 수가 있다.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겠지.'


답답한 감정을 애써 내리누른 그는 안색이 안좋아 보이는 한수영에게로 다가갔다.



"한수영. 어디 아파? 안색이 안좋은데."


'너 때문이잖아 이 멍청아!!'


목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겨우겨우 참은 한수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김독자를 째려봤다.


다 큰 성인 남녀가, 그것도 서로에게 감정이 있는 두명이, 단 둘이서 여행을 온다는 게 무슨 뜻 이겠는가.


'당연히 그럴 작정으로 온 줄 알았는데...'


눈치라곤 1도 없는 이 오징어는 고백의 ㄱ도 꺼낼 생각을 안한다.


'사실 김독자는 나한테 관심이 없고, 나 혼자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낸 그녀가 김독자에게 말했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각자 품은 고민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어느새 어둠이 사위를 덮었다.


"한수영. 우리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좋아!"


이제 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한 독자는 별을 핑계로 한수영을 끌어냈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우와...여긴 시골이라 그런가 별이 진짜 잘보인다."


"응. 되게 예쁘다."


한수영이 말하는 별과는 조금 다른 별을 바라보던 김독자가 대답했다.


"정말 예뻐."


흘리듯 진심을 내뱉었으나,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한수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거 지금 나보고 예쁘다고 한 거 맞지? 그렇지?'


물론, 김독자 본인만의 생각이었다.



"한번 올라가 보고 싶네..."


별을 바라보던 한수영이 무심코 말했다.


"그랬으면 말을 하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대답한 독자가 말했다.


"넌 아직 내가 누군지 잘 모르나 봐."


[꿈 장악력을 발동합니다.]


독자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주위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은하수 한 복판에서, 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래뵈도 가장 오래된 꿈인데, 그정도도 못해주겠어?"


"우와아..."


자신부터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면서, 한수영은 주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광경을 보던 김독자는 이내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다.


"수영아."


"으.으응?"


그리고 한수영도 이제 떄가 됐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아공간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꺼낸 김독자가 한수영에게 다가갔다.


케이스에서 반지를 빼내고는, 잔뜩 긴장한 한수영의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긴장과 기대, 불안과 기쁨이 뒤섞인 한수영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김독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고백 멘트를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좋아해. 수영아."


입 밖으로 나온것은 단순하고도 투박한 말 한마디 뿐.


그럼에도 독자의 진심을 전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고


이날만을 고대했던 한수영의 눈물샘을 터트리기엔 차고넘쳤다.


"너무 늦었잖아...이 바보야..."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독자의 품에 안긴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한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독자가 말했다.


"너한테는 너무 많은걸 받아서, 최대한 정성스럽게 전해주려고 하다 보니까.....조금 늦었어. 미안해."


그 후로도 한참동안이나 독자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한수영이 이제야 진정됐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둘의 눈이 맞았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을 맞춘 둘 사이에는 혀와 혀가 엉키는 소리 서로의 타액이 흐르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푸하...."


격렬했던 키스가 끝나자, 둘의 눈은 애욕(愛慾)으로 번들거렸다.


빛나던 별들은 어느새 침실로 변하였고, 거대한 침대에 몸을 뉘인 김독자의 위에 한수영이 올라탔다.


"그동안은 전부 네가 나한테 해주기만 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한다?"


그리 말한 한수영은 독자의 셔츠를 벗기며 그의 목덜미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윽..."


목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쾌락에 김독자는 미약한 신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수영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독자의 어깨를 깨물었다.


"크윽?! 이게 무슨..."


"파하. 이제부터 네가 내꺼라는 표시."


소유욕과 애정이 한가득 들어찬 눈동자를 빛내며, 한수영이 말했다.


"이제 넌 내꺼니까...다시는 도망가면 안돼. 알았지?"


그렇게 말한 한수영은 이제 나신이 되어버린 서로의 몸을 맞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으음..하읏..."


맨살과 맨살이 마찰하며 느껴지는 야릇한 감각을 만끽하던 한수영은, 이내 독자의 물건에 자신의 음부를 가져다 댔다.


"그럼...넣는다..."


한수영의 허리가 내려가며 독자의 물건이 그녀의 안을 가득 채웠고,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교성을 내뱉었다.


"하응!아앙! 하아앙! 흐으읏!"


그렇게 얼마간  허리를 흔들던 한수영의 귓가에, 한껏 달아오른 김독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윽, 수영아. 나 더 못 버티겠어.."


"나도 곧 갈거 같아..흐읏! 우리 같이..."


더는 한계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던 김독자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안에 자신의 씨앗을 들이부었다.


"하아아앙!!"


그와 동시에 이전과는 비할 수 없는 교성을 내뱉으며 몸을 떠는 한수영.


잠시동안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던 한수영이 피와 정액이  섞여나온 자신의 하복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있지. 나는 이번이 처음 이었는데...너는 어때?"


"나는 처음은 아니.....미안. 사실 나도 처음이야. 그러니까 울지 마."


그 모습이 귀여워 조금 장난을 치려던 김독자가 울먹거리는 한수영을 보고는 다급히 말을 바꾼다.


"김독자 너....진짜 나빴어!!!"


"미안.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화 풀어. 응?"


자신이 귀여워서 그랬다는 말에 마냥 기분이 나쁘지만은 안았던 한수영이 조금은 누그러진 기세로 앙 팔을 활짝 벌린다.


"그럼...이번에는 네가 해보던가."


김독자는 자신의 물건이 다시 몸을 일으키는걸 느끼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

.

.

둘은 오랜 세월동안 쌓인 애정과 욕구를 전부 풀어버리겠다는 듯 격렬하게, 아주 오랫동안 사랑을 나눴고, 그 둘이 다시 서울에 발을 디딘 건 그로부터 2주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뭐에요, 독자씨 은근 남자다운 면도 있었네요?"


초췌한 얼굴로 허리를 부여잡은 한수영을 본 정희원이 면면에 짖궂은 미소를 띄워올리며 장난을 쳤고, 이현성은 어쩔 줄 모르고 쭈뼛대다가 겨우 "축하드립니다." 한마디만을 남기고 도망쳤다.


[그래서, 식은 언제 올릴 생각이니?]


"역시 결혼하면 5월 아니겠어요?"


두 어머니는 당장 결혼식 날짜부터 잡으려 하였다.


"나는 언니가 아저씨같은 사람이 취향일 줄은 몰랐는데, 의외다."


"아저씨, 아저씨 결혼식 때 부케는 제가 받아도 되죠?"


".....왜이리 등골이 오싹하지. 여튼 축하해요 형."


놀랐다는 듯 한수영을 바라보는 이지혜와 둘을 바라보며 음험한 미소를 짓는 신유승. 왜인지 모를 오한에 시달리는 이길영. 서울 상공에 거대한 축하 메세지를 띄운 한동훈과 과거를 헤집는 듯한 얼굴로 둘에게 미소를 보낸 이설화와 유중혁 까지.


마지막으로, 둘 사이에서 새롭게 발아하는 설화를 바라본 비유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엄마 소식을 기다리겠다고는 했는데.. 그렇다고 벌써 동생이 생길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비유의 폭탄 발언에, 놀란 일행들이 김독자와 한수영을 쳐다봤다.


"하하하..."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김독자와 얼굴을 붉히며 곧장 방으로 숨는 한수영.



아무래도, 김독자 컴퍼니의 올해는 시끌시끌 할 듯 하다.







--

전개상 19씬이 있는게 더 매끄러울 것 같아서 넣긴 했는데 아무래도 관련 묘사가 처음이다 보니 영.......


쓰다보니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10000자가 넘어가버렸네.


다들 읽어줘서 고맙고 혹시 보고싶은 주제 있으면 댓글로 말해주라. 아이디어 짜내기가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