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모음


***


"전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쉴틈없던 일과가 지나가고.

가방을 싸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내게 불쑥, 소영이가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윤지원! 여기서 뭐하냐? 집에 안가?"


"응? 안 그래도 가방 싸고 있었는데..."


"아, 그래? 난 또... 모르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도 기초적인 상식은 다 알거든..."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며 교실 밖으로 나선 그때.

문득 소영이가 나를 불러새우며 말했다.


"...아. 그나저나 너 집이 어디라고 했더라?"


"집? 그게 왜 궁금한데?"


"왜 궁금하냐니? 궁금한데 이유가 필요해?"


"너 나랑 친한 친구였다면서 그것도 몰라?"


"....뭐?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잠시 까먹은거 뿐이거든?!"

"아, 아무튼 가방 다 쌌으면 나와! 오랜만에 집에 같이 가자."


"굳이...?"


"뭐? 내 친구가 기억을 잃었다는데, 걱정이 안되는게 이상한거 아니겠어?"

"됐으니까 빨리 나와! 언제까지 친구를 걱정시킬 심산이야?"


기억상실증이라는 병명이 꽤나 쇼킹하게 다가온걸까.

오늘 하루 내내 소영이는 왠지 모르게 나를 과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무슨 어린 아이인줄 아나. 과보호할 건덕지가 어디있다고...


하지만 내게 별 다른 선택지가 있나.

기억을 잃은 바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주변인에게 의지하는 것 뿐일텐데 말이다.


잠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옛말에 머리로는 모를지언정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던가.

꼭 그 말 처럼 나는 분명 처음가는 길임에도 척척박사마냥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또한 익숙한 길을 걷다보니 이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늘상 밟던 보도블럭, 한여름엔 덩이줄기가 가득했던 울타리.

1년 365일 내내 울창한 가로수와 여전히 고장난 채로 깜빡거리는 신호등까지.

기억속에 남아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차츰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읍... 하아... 신기하네."

"정말 효과가 있어. 역시 학교에 오길 잘했다니까."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나한테 한 말이야?"


"어잉? 아, 아니...! 그냥 혼잣말 한거야... 혼잣말."

"뭐랄까, 새로운 버릇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헤헤..."


"후훗, 예전부터 넌 늘 그런 아이였지."

"어딘가 항상 특이하고 신기한... 너만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곤 했어."


"그, 그래...?"


애수에 젖은 소영이의 눈빛을 보니 가슴이 아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몹시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으로 나 이외의 타인에게 나의 과거에 대한 언급을 듣는 순간이 아니던가!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 나 자신의 과거.

기억상실이라는 콤플렉스가 주는 이면의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순간.

그렇기에 내가 다름에 올 소영이의 말에 몹시 큰 기대를 품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너무 티를 내고만 것일까.

소영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대화의 주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오늘 학교 생활은 어땠어? 할만하든?"


"응? 아... 꽤 괜찮았던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아쉬운건 사실이었다만.

그래도 뭐, 기회는 언젠가 또 다시 올테니까.


"괜찮아 보이긴 하더라~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그, 그건 잠을 잘 못자서 그런거야...!"


"잠을 못 잤다고? 글쎄... 왜 일까?"

"밤에 무슨 짓을 하면 잠을 못잘까~? 후훗."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놀리지 마!"


"아잇, 장난이야 장난! 너는 어떻게 반응하는 모습이 예전이랑 똑같구나!"

"하아... 이러니까 또 옛날 생각이 나네.안 그래?"


"음..."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비록 소영이 말처럼 예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없던 추억도 생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니까 아까 괜히 내 기억 생각만 하며 캐물으려던게 괜히 미안해지네...'


뭐, 그건 그만큼 소영이와의 만담이 내겐 한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는 의미겠지.

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래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친구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팔자 좋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누가 괴롭히거나 그런 애는 없었고?"


"응. 다행히도 없었어."

"주변에서 다들 잘 해주니까 오히려 안심이었다고 해야하나?"


"다행이네... 난 솔직히 걱정했어."

"너가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그랬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기우가 아니었나 싶다 야."


"음... 솔직히 문제가 아예 없던건 아니었어. 다만..."


"다만?"


"...다만 나도 모르게 몸이 막 움직이더라고."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이 다 끝나가거나 이미 끝난 뒤였어. 신기하지?"


"헤에... 그런 경우도 있나."


소영이는 나의 말을 못 믿는 눈치인지 어색한 웃음만을 터트릴 뿐이었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보기로 했다.


"맞다, 의사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내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대."


"...."

"...오, 진짜? 그거 다행이네."


"그치? 그래서 나도 기대중이야."

"정말이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안 그래?"


"..."


"...듣고 있어?"


"어? 으, 으응! 무... 물론."

"기억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소영이는 조금 미묘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두 눈과 입가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함? 이 느껴진다고나 해야할까.

뭐랄까, 방금까지의 소영이와는 조금은 다른 궤의 인식에 보다 더 가까웠다.


"그, 그런데 말이야 지원아.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응? 물론이지."


긴장탓에 한껏 마른 목구멍을 침을 삼켜 달래고.

나는 천천히 옴짝달싹하는 소영이의 입술에 보다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기억을 되찾고 싶은 이유가 있어...?"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게까지 서두를 이유가 있냐고..."


"이유... 라고 묻는다면 엄청 많은데."

"그래도 그중에서 한 가지만 고른다면..."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긴장한듯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살짝 깨문 입술.

누가 뭐래도 이후 튀어나올 나의 대답에 잔뜩 집중한 듯한 모습이었다.


"...끄응."


이럴 때 고민하면 할수록 대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던가.

나는 그냥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예전으로 돌아가서 다시금 모두와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모두가 나를 위해서 걱정해주고 있으니까. 소영이 너처럼 말이야."


"...뭐?"


"아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내 주변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들을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내가 분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응, 단지 그 뿐이야!"


"오우... 야, 너 약간 의외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알고... 하여간..."


"응? 그야 내 곁에서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친구가 너니까?"

"그리고 너가 말했잖아. 그... 부... 뭐시기 친구라며."


"그랬... 었지...?"

"하지만 뭐랄까, 조금 당황스럽다? 하하... 하하하!"


소영이는 불현듯 고개를 돌린 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한 말 때문에 부끄러운 듯한 뉘앙스였다.


'이렇게까지 당황할 정도인가... 괜히 미안해지네...'


젠장. 저런 반응을 보이면 나도 괜스레 무안하단 말이야.

거리낌없이 먼저 다가오던 모습은 어디가고 저렇게 당황을 하니...

부랄친구라 공표한 것 치고는 아직은 거리감이 꽤나 남아있는 느낌?


'아니면 오히려 정말 가까운 친구라서 어색하게 느껴진걸까?'

'하... 모르겠다. 괜히 생각하면 할 수록 머리만 더 아파져...'


내가 의심병에 걸린것인지는 몰라도 은연중에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과민반응 같긴 하다만, 내 주변 인물들이 인물이다보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저기, 소영아."


"으음? 왜?"


"그... 뭐랄까, 조금 세삼스러울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럴바엔 차라리 확실하게 물어보는게 나을수도 있다.

불신을 어줍잖게 해소하고 의심을 이어나갈 바에는 차라리...


"이상하게 들어주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저기..."

"우리... 친구 맞지?"


"...뭐?"


비록 순간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나와 그녀 사이에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감각을.

소름끼칠 정도로 고요한, 그래서 더욱 두려운 정적을 말이다.


"...꿀꺽."


그 정적을 깬것은 누군가가 침을 넘기는 소리.

그것은 나의 목으로부터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너... 너도 참...!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친구지!! 내가 말한거 못들었어? 부ㄹ..."


"아니, 알지. 아는데 말이야..."

"그냥 뭐랄까...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어색... 한 기분이라니...?"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지원아..."


아차, 말이 너무 심했나?

속절없이 흔들리며 빛을 잃은 소영이의 눈동자를 보니 나의 실언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았다.

무언가 잘못된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이미 준 인사불성, 짐작컨데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듯 싶었다.


"나, 나는 너를... 그러니까 나는..."


"미, 미안해 소영아!! 내가 말을 너무 생각없이 했...!"


"친구... 친구라니... 우린 친구... 친구가 아니었나...?"

"하... 하하하... 맞네 친구... 하하하...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거네...?"


"그, 그런게 아니라...!"


"하하.... 다 부질 없었어... 하하하, 하하!!! 하하하...!!!!"


젠장, 어째서 또 이렇게 되어버리는건데.

어째서 누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엄마에게 그랬던 것 처럼.

나란 인간은 어째서 항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건데.


무언가 이상하잖아?

어째서 매번 이런 결과가 나오는건지.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겐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저지른 참극을 수습할 의무가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전심을 다해 외쳤다.


"자, 자자잠깐만 진정해봐...!! 내가 말 실수를 했어!!"

"소영아, 미안해!!! 실언을 한 내 탓이야!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거야!!"


"..."


"내 잘못이야... 내가 말을 괜히 이상하게 하는 바람에..."

"난 별 다른 의도가 아니었어!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랬던 것 뿐이야... 널 의심하거나 그러려던 의도는 절대 아니었어...!!"


"..."

"...진짜?"


"무, 물론 진짜지!! 진짜고 말고...!"


충혈된 흰자위 사이로 그녀의 짙은 흑갈빛 눈동자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에 터질것만 같던 나의 가슴도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나 안심은 아직 일렀다.


"...알았어."

"믿을게. 대신..."


"대신...?"


"내가 너를 믿은 것 처럼 너도 나를 믿어줘."

"우린 친구잖아... 부랄친구.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


소영이의 목소리는 차분하였으나 그녀의 눈빛은 그러지 못했다.

속을 꿰뜷는 듯한, 다분히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인상의 눈빛이.

익숙하기 짝이 없는 귀기 가득한 그 특유의 소름끼치는 눈빛이.

나는 그저 한 없이 두려울 뿐이었다.


"..."

"응, 믿을게. 믿고 말고."


"...고마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확신 없는 대답 뿐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후로 소영이가 내게 이전과도 같은 눈빛을 보여준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받은 인상이 사라지는 것은 또 아니었다.


"..."


"..."


나와 소영이는 이후 한참 동안을 말 없이 걸었다.

물론 그녀가 싫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만 아무래도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소영이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더 이상 내게 불필요한 대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걷다보니 익숙한 2층집이 골목길 너머로부터 모습을 드러었다.


"어라, 저기 너네 집 아니야?"


"응? 어... 그, 그런 것 같네."

"그, 그럼 이만 가볼게. 바래다줘서 고마웠어."


"그래,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내일 보자!"


정말이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리기라도 한걸까.

이제는 소영이의 저 실없는 웃음마저도 미심쩍게 느껴진다.


"으응..."


아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아무리 의심스럽고 어색하다고 할지언정.

지금 내가 누리는 일상에는 문제가 없으니말이다.


내겐 나를 늘 생각하고 염려해주시는 어머니가 있고.

누구보다 날 아끼고 사랑해주는 예쁜 누나가 있을 뿐더러.

내 일을 마치 제 일인 것 마냥 도와주는 친구도 있지 않은가.


그리 특출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난데도 하나 없는.

아마도 이 세상의 어느 누군가는 간절히 바랬을지도 모르는 삶.


그렇게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건만...


"아, 저기... 지원아."


"어... 어어? 방금 불렀어?"


"그게... 다른건 아니고 있잖아..."
"방금 전 일은... 그... 잊어줘. 부탁이야?"


"..."

"응. 알겠어."


어째서일까.

이토록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것은.


***


"...다녀왔습니다."


"어머, 돌아왔구나 지원아?"

"오늘 학교생활은 재밌었니?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고?"


집에 돌아오니 은은한 음식향기와 함께 어머니가 나를 맞이해 주셨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 저녁이 무엇이냐고 살갑게 여쭈어보았겠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냥... 괜찮았어요."


"목소리 톤이... 많이 낮구나."

"혹시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네? 아니, 그런건 아니고... 조금 피곤해서요."

"오히려 좋았어요 학교생활은! 아이들도 잘 대해주고, 친구도 사귀고..."


"어머어머... 정말 다행이구나!"

"엄마는 우리 지원이가 혹시나 적응하지 못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그건 그렇고 크흠! 뭐 잊어버린거 없니?"


"네?"


어머니께선 못마땅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기 시작했다.

행여나 내가 실수라도 한게 있나 싶어 우물쭈물하던 무렵, 어머니의 양 팔이 좌우로 갈라지듯 벌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알지못하고 해매는 내가 답답하셨는지, 어머니께선 한숨과 함께 말씀하셨다.


"하아... 돌아오면 엄마 안아주기로 약속 했잖니!"


"아... 아아!! 맞다... 죄송해요."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뭐..."

"중요한건 우리 아들이 재미있는 학교 생활을 보내고 왔다는 것 아니겠어? 이리오렴."


나는 활짝 벌려진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그녀를 껴안았다.

곧이어 연하게 퍼지는 향수 내음이 포근한 감각과 함께 나를 휘감음이 느껴졌다.

비록 어색함은 여전했으나, 나는 마지못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기운에 몸을 맡겼다.


"정말이지... 고작해야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나 보고 싶었는지..."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그럼에도 잘 이겨내줘서 정말 고마워 아들!"


"쿨럭... 아, 알겠으니까 좀 풀어주세ㅇ..."


"싫어. 엄마는 더 안고 있을거야."

"그도 그럴것이 하루종일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걸... 엄마에게도 조금의 욕심은 허락해줘!"

"조금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이대로..."


"네 뭐... 정 그러시다면야..."


"...잠깐."


기분탓일까?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당황하기도 잠시, 어머니께서 한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하셨다.


"ㄴ, 네? 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


"잠깐만, 잠깐만 가까이 와보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의 얼굴이 나의 가슴팍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다음은 배. 그 다음은 어깨. 어머니의 오똑한 콧날사이로 흐르는 기류의 감각이 나의 온 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그녀를 때어놓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팔 힘은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자, 잠깐만요 엄마...!!"

"갑자기 냄새는 왜... 앗...! 가, 간지러워요...!!"


"...지원아.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


"네...? 질문이라뇨? 갑자기 왜..."


"엄마 눈 똑바로 보고!"


"ㄴ... 네엡!!"


순간 귓가에 작렬하는 어머니의 일갈에 나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머잖아 평온을 되찾으신 어머니는 평소의 나긋나긋한 말투로 다시금 나를 압박하기 시작하셨다.


"혹시... 오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여자 아이들이 있었니?"


"네? 그게 무슨..."


"무슨이라니, 엄마 앞에서 거짓말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니."

"엄마 입으로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지금의 지원이 몸에서는 굉장히 고약한 냄새가 나는걸?"


"고약... 이요?? 그럴리가, 오늘 분명 샤워를 하고 갔..."


혹시나 싶어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고약한 악취는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약하다라는 말 보단 향기롭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은은한 꽃향기가 나고 있었다.

그렇다기엔 오늘 향수를 뿌린 기억이 없는데... 어머니의 냄새와도 다소 거리가 있고.


'그렇다면 대체 이 냄새의 주인은 누구지?'


"...아."


맞다. 소영이.


그제서야 오늘 학교 일과 내내 소영이와 함께 다녔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하루종일 붙어있었으니 냄새가 옮겨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테지만.

문제는 이것을 어머니께서 아셨을 때의 일이었다.


내가 복학하기 전날 밤, 그러니까 어젯밤.

어머니께서 내게 신신당부 하셨던 말씀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절대 여자들과는 엮이지 마렴.'


그날의 공포스러웠던 분위기, 소름끼치는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그때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였기에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셔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 뭐니? 방금의 그 '아' 는?"

"혹시 엄마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걸까...? 우리 지원이는?"


"아아, 아뇨오! 그럴리가요... 무언가 착각을 하신게 아닐까 싶은데..."


"..."


"..."


나는 차마 어머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눈빛이었다.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광택을 잃어 칠흑만이 남은 어머니의 눈동자가.

내면을 꿰뜷어본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매서운 그녀의 눈빛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쨰서 이토록 두려워 하는지, 대체 무슨 영문이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본능만이 남아 내게 하염없이 소리칠 뿐.


"그, 그러니까 엄마..."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거짓말 할 생각이라면 접어두렴."

"엄마는 지원이를 사랑하지만 거짓말 하는 지원이는 사ㄹ... 아니,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주렴. 지원이도 엄마 사랑하잖니? 그치?"


"그.... 그러..."

"그, 그러니까 저는요 어머니..."


"으흠?"


"그... 그러니까아..."


낭패였다. 변명은 커녕 말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온 몸의 근육이 서로 담합이라도 한 듯 단단하게 굳어 한 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침묵을 지키며 공포에 떠는 것 뿐이었다.


"....죄, 죄송해요."


"하아... 지원아, 이리와."


"죄송해요...! 어머니, 저는..."


"알아, 엄마도 다 안단다 지원아."

"아무래도 엄마가 우리 지원이를 너무 몰아새운 것 같구나... 미안해."


"죄송해요 어머니...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머니를 이렇게나 두려워 하는거지?


처음 눈을 뜬 순간, 나는 스스로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제법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의 기억에는 여전히 많은 구멍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감각.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공포의 기억은 어째선지 필요 이상으로 선명하다.


차마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의 감각, 공포의 기억.

다만 그것은 기억이라기엔 왠지 모르게 몸부터 움직이는 반응에 보다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원아 괜찮니...? 지원아? 지원아??"


"죄송해요잘못했어요앞으로다시는안그럴게요제가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어머니제발부탁이니한번만봐주세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


"지, 지원아 갑자기 왜 그래??"

"괜찮ㄴ... 어머어머 세상에...!!! 지원아!!!"


.

.

.


눈 앞이 빙빙 돈다. 


세상이 노랗게 물들어간다.


온 몸이 차갑다. 


입 안이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채워저만 간다.


무엇보다 숨. 숨을 쉴 수가 없다. 


마치 커다란 무언가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나 도와주세요.


나 좀.


나 좀 살려주세요.


.

.

.


"지원아... 지원아 괜찮아?? 눈 좀 떠봐!!"


"읏, 쿨럭...!! 우웩..."

"으, 으음... 누, 누나...?"


"그래...! 누나 맞아!! 알아볼 수 있겠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돌아온 누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나 얼굴 보여? 혹시 손가락 몇 개인지 구별이 가겠어?"


"대체... 쿨럭!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누나는 갑자기 또 왜... 언제 온거야? 학교간거 아니었... 우왓!"


"다행... 다행이다...!! 지원아... 흑, 다행이야...!!"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 두려운 감각이 온 몸을 애워싸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리 만치 평온하고 편안한 기분이다.


"나... 또 쓰러졌구나."


누나의 차가운 눈물 방울이 점차 나의 가슴팍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흐느끼는 누나를 달래면서도 조금 전의 일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정말이지, 너가 어떻게 되어버리는 줄 알고...!!"


"내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이, 일단 이것 좀 놓고 이야기 하자... 응? 누나, 부탁이야."


"훌쩍, 우웅..."


누나의 손아귀에서 풀려나고 난 뒤에서야 나는 비로소 주변 환경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탁 트인 거실에 홀로 누워있는 나.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통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 빛 하늘과 내 머리위로 은은하게 내려앉는 거실등의 줄기.

아마도 내가 의식을 잃은 시점으로 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은 듯 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무슨 이유와 맥락에서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걸까.


어머니의 훈육? 압박?

물론 어머니께서 내게 조금 과하게 대한 느낌은 일부 있다만.

그렇다고 정신을 잃고 패닉에 빠질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행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뒷사정이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볼만직 하지만.

말 그대로 내가 알지 못하는데, 지금의 내게 있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어째서 발작했느냐, 라고 생각하는 중이지...?"


"어, 어어? 어떻게 알았어??"

"누나 혹시 독심술이라도 쓰는ㄱ..."


"너가 깨어나고 난 뒤로 처음 겪는 발작일테니까...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이상하진 않을거야."

"그건 나중에 찬찬히 설명해주는 것으로 하고,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으응... 다행히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그나저나 엄마는? 엄마는 어디가셨어?"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물 젖은 눈빛으로 나를 애석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엄마는 약국 다녀오신다고 하셨어."

"나중에 도착하시면 알려줄테니 지금은 먼저 들어가 쉬고 있어."


"응... 알겠어."


누나의 말처럼, 아무래도 생각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복학한지 단 하루만에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진 탓일까.

지금의 내게 있어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것은 휴식이었다.


"그럼, 먼저 올라가있을게."


"으응... 나도 나중에 올라갈테니까 그때까지 편히 쉬고 있어."

"누나는 엄마가 오실 때 까지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먼저 자도 괜찮아."


"응. 고마워 누나."


"...나도. 지원아."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누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긴, 하나뿐인 동생이 또 한 번 눈 앞에서 쓰러졌는데 걱정되는게 정상이겠지.

행여나 누나는 과거 내가 기억을 잃기 전, 쓰러진 모습을 최초로 발견한 장본인이니 말이다.

일말의 이상 반응에도 가슴이 철렁하는게 당연할 것이다.


"후우... 여전히 커튼도 안 친 상태네."


거진 12시간만에 다시 찾은 누나의 방은 여전히 어둡고 칙칙했다.

과연 여기가 사람 사는 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조차도 종종 소름이 끼칠 정도니 말 다했다.

창문에 설치된 두꺼운 암막 커튼이 그 특유의 어둠과 분위기에 한 몫 하기라도 하는걸까? 


하지만 내가 깨어나기 전 까지 누나는 계속 이런 환경에서 살아왔을텐데.

누나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던걸까?


'아무렴 무슨 상관이야. 무시하기로 했잖아 윤지원.'

'어차피 좋든 싫든 가족이야. 괜히 들춰봤다 좋을거 하나 없어.'


복잡한건 싫었기에 나는 옆으로 누워 급히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늘 그렇듯, 졸음은 전혀 몰려오지 않았다.

잠은 커녕 오히려 이전까지의 피곤이 싹 가신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도달한 결론은 순정이었다.

나는 다시금 허리를 아래로 한 채, 이불을 가슴까지 올리며 똑바로 누웠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바로 졸음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잠 진짜 뒤지게 안 오네... 양이라도 새봐야 하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뭐 그런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는 또 없는 노릇이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나는 드넓고 빈 천장을 도화지 삼아 천천히 양들을 한 마리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빈 천장에 양이 한 마리. 빈 천장에 양이 두 마리. 빈 천장에 양이... 빈 천장에...


잠깐.


"이상하다... 누나 방, 원래 전등이 없었나?"


처음에는 착각인 줄로만 알았으나 눈을 씻고 보아도 여전했다.

누나의 방 천장에는 천장조명을 포함한 그 어떠한 기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토록 어두웠던거구나... 애초에 조명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사람 방에 조명이 없는게 말이 되나? 하다못해 천장인데?'


그렇다고 조명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아까전만 하더라도 책상 위에 스탠드 조명이 존재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이 방에 존재하는 조명의 전부라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조명을 켰다.

그러자 미약하게나마 주변이 밝아지며 어두웠던 나의 시야를 한 층 더 확장시켜주었다.

나는 밝아진 시야를 토대로 다시 한 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음? 저 구멍은 뭐지?"


그러자 머지않아 이상한 점을 또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누나 방의 천장, 그러니까 전등이 있어야 할 곳에 자그마한 구멍 여러개가 뜷려있다는 점이다.


설마 요즘 유행한다는 몰카일까 싶어 확인해봤자만 전자기기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일말의 기능도 없는, 무쓸모의 구멍이자 무언가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잔상이었다.


보통 구멍을 뜷는 작업은 모든 작업의 순서에 있어 선행되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작업의 초석이자 이후 시공할 수많은 작업들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즉,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천장에 구멍을 뜷지는 않았으리라는 의미다.


'천장에 구멍을 뜷을 이유가 보통은 잘 없는데.'

'혹시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설치하려고 하시나?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때어냈거나."


천장에 미약하게 남은 잔흔으로 짐작컨데 그것의 정체는 아마 조명.

그것도 십자형 형광등 조명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어머니는 그 조명을 때어내신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분명 잠에 들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잠은 커녕 추리 소설이나 찍어버리고 말았다.

어쨰서 이토록 잡생각이 많은지. 이래서야 학교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이나 하겠어?

그래도 급격히 많은 생각을 한 덕인지는 문득 졸음이 솔솔 밀려오기 시작했다.


"...!!! ... .... .. ...!! ...!!! ... .. .....!!!!"


아랫층에서 시끌벅적한 소음이 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진 말이다.


"아씨 또 뭐야... 누구 싸우나?"


자세히 들어보니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였다.

있는 힘껏 소리도 꽥꽥 지르고 언성도 높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쟁점은 그래서 목소리의 주인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누나? 누나라기엔 누나가 저렇게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머니? 만일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면 누나가 진작에 내게 알려주기 위해 왔을터.

그렇다는 즉슨... 침입자?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빗자루 한 개를 집은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너머로도 들릴 만큼 시끄러웠던 언쟁소리가 한 층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천천히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데! .... ....이 있...!!"


'후우... 후우... 정신차려라 윤지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가 케빈이 되는거다...!!'


"....이 있냐구요! 대답해 보세요 엄마!!!"


"...?"


누나의 목소리.

그것은 분명히 누나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엄마라니. 그렇다면 언쟁의 대상이 어머니라는 뜻?

나는 빗자루를 조용히 내려놓은 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원이 상태 몰라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거에요??"


"..."


"세상에, 누구 때문에 지원이가 저렇게 되었는데!!!"

"그새를 또 까먹고 그런...!!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미안해."


"매번 말만 미안, 말만 미안....! 행동을 좀 바꾸시라구요...!!"

"본인의 행동 때문에 애 한 명 죽일 뻔했으면 좀 알아 차려야 할거 아니냐구요!!!!!"


지금 대체 내가 무엇을 듣고 있는거지?

죽어? 내가? 맥락은 물론이고 대화의 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와 누나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뭐, 뭐어? 죽...?! 하, 윤지솔....! 말이 너무 심하잖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죽인다는 말을...! 너 엄마에게 대체 그게 어떻게 되어먹은 말버릇이니...?! 어??"


"하아... 지원이, 죽다 살아났어요... 그런데도 느끼신게 하나 없으신거에요??"

"우리 가족... 엄마 아들!! 제 동생!!! 죽다 살아났다구요...!! 엄마 때문에...!!!!"


"...."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네?"

"저도 제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다는건 잘 알고 있지만... 제발!!!"

"우리 지원이 좀....!! 부디 이번만큼은 지키게 해주ㅅ..."


털썩.


"???"


"????"


"아."


이런. 

빗자루를 벽에다 새워두는게 아니었는데.


"...빗자루?"


"호, 혹시 거기 지원이니...?"


"허업....!!"


나는 재빨리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까치발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들의 예리한 감을 피하기엔 무리였나보다.


"...지원아? 거기 있으면 일단 내려와보렴!"

"미안, 우리가 많이 시끄러웠지? 깼으면 잠시 이야기나 하자꾸나..."


"어, 엄마가 사과를 하고 싶으시다는데...!"

"혹시 괜찮다면 잠깐만 내려와줄 수..."


우당탕탕탕!


"지, 지솔아 지원이 잡아!!"


"네... 네엡!!"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가 누나 방으로 숨어든 뒤였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방 분위기가 더더욱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아...! 하아...!"


내가 대체 무엇을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평범한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젠장. 호기심에 그만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진실에 한꺼풀 더 가까이 다가간 대가는 그닥 좋지 못했다.


쾅! 쾅! 쾅! 쾅!


"지원아!! 지원아!! 문 좀 열어봐, 지원아!!"


"지원아? 엄마란다... 엄마가 잘못했어...! 그러니 한 번만 문 좀 열어주렴...!!"


"하아... 하아... 읏, 하아... 하아..."


나의 귀를 옥죄는 저 소리가 노크소리인지, 심장소리인지는 몰라도.

더이상 아무런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귀를 틀어막았다.

따뜻한 이불 속,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편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접어들며.

편안한 일상을 위해 알지 말았어야할 지식을 망각 너머로 넘겨버리기 위해 말이다.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지금은 단지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조용히.

혼자서.


고독의 틈 너머로 말이다.


***


전에 썼던 5-1화와 새로 쓴 분량을 합쳐 본래 목적에 맞는 분량으로 재편집함

이번화는 아마 역대급으로 떡밥을 많이 넣은 것 같은데, 지원이의 과거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실마리가 보일거라 생각

개강 이슈 때문에 앞으로 자주는 올리지 못하겠지만 완결까지 쉬지않고 달릴것이니 부디 걱정은 붙들어 매주십쇼

그럼 다음화로 돌아오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