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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어느 지방에는 도시 하나가 있다. 이곳은 강이 흐르는 넓은 평원이 있고, 질 좋은 광산이 있었으며, 각종 채집물이 풍부하게 자라는 푸른 산도 존재했다. 이는 한 눈에 봐도 축복 받은 도시임을 알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근 미개척 던전이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났고, 거기서 나타나는 마물들의 위험도도 상당히 높아진 수준이었다.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도시도 아니었던 이곳은 결국 빠르게 쇠퇴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수많은 돈을 들여 용병들을 끌어모은 한 남녀가 나타난다. 이 두 남녀는 돈으로 계약한 용병 부대를 이용하여 당장 위협이 되는 미개척 던전들을 하나 둘 격파해갔고, 도시의 정세는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마물들도 모두 소탕한 이 용병 부대들은 의무를 끝마친 듯 많은 수가 흩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돈을 지니고 있던 남녀는 돈으로 도시의 일부를 사들이고 건물을 하나 올리며 이곳에서 새로운 계약을 맺은 용병들과 세력을 일구게 되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이미 도시를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 되어 도시를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용병 길드라고 부르며 노른자위 같은 주변 자원들을 이용해서 계속해서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세력의 중심에는 여전히 많은 돈과 무력으로 길드와 도시를 쥐락펴락 하는 젊은 남녀가 있을 뿐.


사실상 도시는 이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으음..."


도시 한 가운데, 5층보다 더 높게 지어진 듯한 건물의 제일 위층에서 한 여성이 찻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지니고 있지만 가능하면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지금도 다소 풍만하게 보일지언정 온몸을 싸맨 듯한 옷을 걸친 채였다. 그런 그녀가 낮게 침음한다.


"대체..."


꽤 큰 근심거리가 있는 듯, 다른 누구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잣말을 되뇌던 그녀는 어느새 찻잔에 담긴 액체를 모두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찻잔을 손에 놓지 않던 그녀는 곧 잔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쓰게 웃으며 몸을 크게 뒤로 젖혔다. 고정되지 않은 가슴이 무섭게 출렁거리지만 그런 말세기적인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영광을 지닌 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뭘까... 이 싱숭생숭한 느낌..."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하면서 눈을 감더니 다시금 아까 직속 연락망으로 전달 받은 내용에 대해 떠올렸다. 

그것은 평소와는 다른 보고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선명해질 듯 말듯 묘한 기시감 때문이기도 했다.


―시꺼먼 마물이 발견되었다.

―시꺼먼 마물은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시꺼먼 마물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곧 사라졌다.


시꺼먼 마물, 그녀는 시꺼먼 마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드래곤의 발에 짓밟혀도 버틴다는 엄청난 내구성을 지닌 어둠 슬라임일 것이다.

수없이 망치로 내려쳐도 되려 망치가 부서지는 축복 받은 내구성을 지닌 반면에 약점도 너무나 명확한 이 녀석은 빛 한 줄기만 쬐어도 증발하고 마는 엄청난 취약점도 마저 지니고 있는데, 던전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개척단들은 횃불을 이용하거나 혹은 마법사의 힘으로 빛을 쬐게 하여 처리하게 된다.


이런 개성 넘치는 특징을 지닌 마물이라서 그런지 장비 제작에 관련된 연구에 몇 번 사용되기도 한 것 같지만 빛이라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포기하기도 했고, 던전에 잘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마물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어둠 슬라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떠올리다가 곧 의문의 영역까지 사고가 닿는다.


시꺼먼 마물은 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곧 사라졌는가?


일부 마물에는 지성이 있다. 이것은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기도 했으며 이어서 그녀가 과거에 보았던 사례도 있었다. 그게 정말 마물이었는지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그는 둘째로 치더라도 일부 마물이 보이는 지능적인 행동들은 여러 번 관찰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이 느껴지는 문제였다.


"어둠 슬라임이 던전 밖에서 발견된 것도 모자라서, 인간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다가 사라졌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요. 그녀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지닌 상식선으론 이해할 수 없는 구석 투성이다.

그나마 떠오르는 것은 3년 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들렀던 던전에서 발견된 이상한 어둠 슬라임 정도인데.


"이미 깨끗하게 처리한 놈이 다시 부활해서 찾아왔을 리도 없고 말이야..."


의문은 점점 깊어져 가는데, 답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향하는 그녀. 곧 창문에 손을 얹으며 바깥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눈에 담는다.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딛고 지금껏 일구어낸 깨끗하고 푸른 들판과 하늘의 모습. 3년 전과 비교해서 완전히 다른 지역이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다. 그도 그럴게 근 1년은 넘게 토벌과 소탕을 반복해서 들판 위에 보이는 마물들의 흔적을 소거 시켰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며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정돈하고 가라앉힐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녀가 창문 밖의 풍경을 만끽하는 동안, 저 멀리 나무 밑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집중된다. 그 시선에는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한동안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 보기만 하던 정체불명의 시꺼먼 마물은 용무를 마쳤는지 곧 바로 등을 돌려 되돌아갔다.


되돌아간 시꺼먼 마물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원래부터 인간의 형태라고 할 수는 없었고 무언가 덧씌워진 듯한 모습이다.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습한 숲 속으로 몸을 날리는 시꺼먼 존재는 어둠과 분간이 되지 않아 언뜻 시야에서 사라진 걸로 착각을 부를 정도였다.


이곳 드넓은 숲은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 시꺼먼 존재는 갑작스레 마물 하나와 마주쳤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장소인 탓에 외형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붉고 위협이 가득한 눈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이 마물은 다짜고짜 달려들어 어둠 속에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팔을 휘두른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꺼먼 존재가 갑작스러운 습격에 온 몸이 터져나간 걸까?


"아, 씨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욕설, 어둠 속에서 살점이 찐득하게 달라붙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불쾌한 소음과 동시에 시꺼먼 존재는 온몸에 달라붙은 살점들과 혈액을 털어내고 떼어낸다.


"거지 같네 진짜..."


거친 말을 쏟아내는 그 존재는 쏜살같이 몸을 날리면서도 불만이 많은지 궁시렁댄다. 그리고 생각했다. 단지 주먹으로 한 대 쳤을 뿐인데 억하고 터져버린 마물과 스스로에 대한 고찰보다는 최근 저런 좆밥버러지들이 어디서 자꾸 기어 들어오는지 의문이라고. 그는 방금까지 있었던 거대한 마물의 위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졸졸, 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부근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숲의 외곽이었다.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 숲의 풍경은 잔잔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가끔 숲 외곽을 터전으로 잡은 야생동물들 몇 마리가 개울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는데 그 작은 평화를 깨부수듯 시꺼먼 물체가 기척도 없이 나타나 그나마 개울 물이 고인 곳에 몸을 던진다.


첨벙하고 물이 튐과 동시에 깜짝 놀란 야생동물들이 도망치고, 어느새 개울에는 시꺼먼 존재만이 홀로 서있게 됐다. 허나 그 존재는 야생동물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든 말든 무관심한 느낌으로 온몸에 달라 붙은 피와 살점들을 씻어내고 있다.


잠시 뒤, 깨끗하게 씻겨져 반들반들하게 빛을 내는 시꺼먼 존재는 여전히 무심하게 주변을 돌아보더니 곧 땅을 박차고 재빠르게 몸을 날린다. 그 존재가 향하는 방향은 방금 나타났던 숲의 깊숙한 곳. 다시금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파고 들어간 그 존재는 익숙한 듯이 이곳저곳을 박차며 방향을 틀고 더욱 깊은 중심으로 나아갔다. 빠르게 몸을 날린 덕분인지 목적했던 장소에 금방 도달한 그 존재는 대각선으로 파인 공동으로 들어선다.


이런 장소에 있을 법한 공동은 대개 던전이었고, 실제로도 그것이 맞았다. 이 넓고 어두우며 깊은 숲 속에 외로이 자리 잡은 이 작은 던전은 1년 전, 난데없는 침입자들에 의해 완전히 정복 당해버렸다. 그 정복자 중 하나가 바로 방금 들어간 시꺼먼 존재였고, 그 존재는 지금 자기네 집 안방처럼 던전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은 던전에 익숙해지면 그다지 헤맬 일도 없었기에 시꺼먼 존재는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넘어 어느 순간 연구 설비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한 장소까지 닿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손님이 왔음을 알아차린 여인이 뒤쪽에 자리 잡은 책장 뒤에서 다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왔다면 왔다고 인기척이라도 내던가 말이라도 하셔야죠!"


"아, 그게... 죄송해요. 요즘 인기척 없이 다니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참나... 그걸 핑계라도 대는 거에요? 고작 일주일 싸돌아다녔다고 그런 핑계를 대시네."


팔짱을 끼며 불만을 드러내는 여인은 익숙한 은발에 쭉 빠진 각선미를 지닌 마녀였다. 주점 겸 여관을 운영하던 그 마녀 말이다. 그녀는 머나먼 타지까지 이동해 작은 던전에 다시금 뿌리를 내린 듯 보인다. 게다가 긴 세월 동안 밖을 나가 햇빛을 보지 못했는지 하얗고 부드럽던 피부가 지금은 창백함을 넘어 핏줄까지 비쳐 보일 정도로 투명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생기가 가득했던 피부는 던전 내의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연구에 빠져 지내던 탓인지 약간 거칠하기까지 했다. 완전히 여성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본연의 아름다움은 크게 퇴색되지 않고 도리어 약간 병약한 느낌과 함께 보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감돈다.


"미안해요. 대신 몰래 도시에 들어가서 빵 좀 몇 개 사왔으니까 드시고 마음 푸셔요."


"아니 몰래 도시에 들어가면 어떡해요! 들키면 어쩌려구!? 물론 빵은 주세요."


마녀는 여전히 말과 행동이 다르고 발작에 가까운 불평 불만을 내뱉긴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한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시꺼먼 존재는 군소리 없이 쓴 웃음을 지으며 빵을 건넸다.


"어머, 이건... 진짜 오랜만이네. 크림이 잔뜩 발라진 이거... 그러니까..."


"케이크."


"맞아요. 케이크...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대체 식량으로 각광 받고 있죠 이거..."


대체 어디서 그런 허황된 말을 듣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꺼먼 존재는 여전히 쓰게 웃으며 별다른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녀는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살짝 얼굴을 굳히며 의문을 표했다.


"여기서 까지 그 시꺼먼 거 걸치고 있을 필요 없지 않아요?"


"아, 그런가요. 금방 벗을 게요."


"천, 천천히 해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니까."


다만 케이크를 받은 것에 마음이 크게 들떴는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여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익숙해진 시꺼먼 존재는 실제로 그녀가 불만이 많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흐뭇한 마음으로 신속하게 자신을 덮고 있던 시꺼먼 물질을 벗어냈다. 다만 진짜로 벗었다기보다는 한 곳으로 모아서 작게 휴대용 화 시켰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후우, 간만에 벗으니까 아주 시원하네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엄청나게 쾌적함을 느끼고 있는지 시꺼먼 무언가를 벗어낸 사내의 얼굴은 화사함이 만연해있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 벗은 거에요? 진짜?"


"굳이 벗을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해야 하나... 세척도 해주고, 통풍도 되고, 온도 조절까지 해주는 만능 의복에 가까운 녀석이다 보니..."


"그래도 중간에 한 번 씩 벗으면서 다니지 그랬어요."


"그것도 그렇긴 한데, 굳이 벗어서 만약에 닥칠 위험을 무릎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쓱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마녀는 평소처럼 날카롭게 한마디 쏘아붙일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손에 든 포장된 케이크를 보며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남자는 그런 마녀의 모습을 보며 어색했던 웃음이 아닌 호감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흐뭇하게 웃고 말았다.

물론 그렇게 웃는 모습이 마녀에게 들켰다면 마녀는 얼굴을 붉히며 사내에게 평소 자주 쓰는 핵꿀밤을 연달아 먹였겠지만 사내도 바보는 아니라서 적당히 눈치껏 그녀의 신선한 일면들을 눈에 담아 기억으로 남긴다.


"뭐,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꼭 몸은 씻어요. 당신 없는 동안에 개울 물을 이용한 수도를 끌어왔거든요."


"오, 진짜요? 역시 마녀님이 없으면 이런 식으로 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은 꿈도 못 꾸겠다니깐요. 감사합니다!"


사내는 한껏 환해진 얼굴로 후다닥 샤워를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녀는 살짝 붉어진 뺨과 함께 무언가 깊은 고심이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그걸 사내가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3년 간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왔지만 그가 여전히 자신에게 손조차 대지 않는 걸 보고 상심을 해야 할지, 아니면 신사적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허나 최근 들어선 그가 신사적인 게 아니라 자신을 여자로 보고 있지 않은 걸까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역시 내가 너무... 막 대해서 그렇겠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마녀는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킬 뻔 했던 자신의 태도를 다시금 되돌아본다. 저 남자가 울면서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자극 받은 모성애로 말미암아 그를 도와주겠다 나섰지만, 그 때문에 그와 자신의 관계는 갑과 을처럼 자연스레 정렬되고 말았다. 초창기 때야 그에게 무슨 말을 해도 그가 웃으면서 받아주니 별문제를 못 느꼈지만, 중간에 한 번씩 크게 다투기도 했고, 그로 인해 그와 관계가 파국을 맞이할 뻔도 했기에 그녀로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태도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달라붙은 그녀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었고, 객관적으로 보면 독기가 조금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까칠한 태도는 그대로였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그와의 관계가 정말로 최악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물론 사내 쪽에서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너무 익숙해진 탓에 도리어 살짝 독기 빠진 모습에서 더 없는 호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으니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간다면 되지 않을까. 


"하아..."


애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그녀는 결국 다시 연구를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연속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저 사내를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없던 의욕도 생기고, 착잡한 마음도 다스려지니 금세 집중에 빠져 무아지경까지 이르른다.




-다음에 계속




이젠 내가 뭘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겟다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