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시점 -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가람이가 이렇게 될때까지 몰랐다니..

그동안 술이나 마시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람이에게 신경써주지 못한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잠들지도 못하고

그저 가람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정오가 지나서야 가람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혹시라도 어제 일을 기억하는걸까..?

괜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가 긁어부스럼일까봐

나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깨어난 가람이에게 몸은 좀 괜찮냐는 인사를 하고

가람이와 눈을 마주쳤을때

가람이는 내게 웃어주지 않았다.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다.

항상 나와 눈을 마주치면 미소지어주던 가람이였는데..

습관처럼 입꼬리가 움직이긴 했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람이는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가람이는 어제 같이 나오던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 뒤는 못봤을꺼야.. 이미 그땐 정신을 잃고 쓰러지던 중이였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그냥 거래처 사람이야.. 라고 대답했다.

가람이는 아무 일도 없었지..? 라고 한번 더 물어봤고

나는 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척을 하며 당연하지, 우연히 거기서 만났을뿐이야.

라고 대답해버렸다.


다행히도 가람이는 이제 안심이 되었는지

그럼 괜찮아.. 라며 내게 웃어주었다.

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듯한 미소였지만

쓰러질 정도로 피곤했던 가람이니까.. 

그런거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다.


가람이는 정말 피곤했는지 이제 다시 자고 싶다며

집에 돌아가달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제대로 잠을 자지못해서 그런지 엄청나게 피곤했다.

하지만 그만큼 배도 고팠기때문에 냉장고를 열어봤다.

냉장고 속엔 가람이가 만들어둔 음식들이 있었다.

그제서야 병원에서 봤던 가람이의 손이 상처투성이였던게 이해가 되었다.

분명 칼질에 익숙할텐데도 그렇게 베일정도면 얼마나 힘들었던걸까...

죄책감때문인지

아니면 나는 그 음식을 삼킬 자격이 없는건지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가람이가 해준 소중한 요리를 남길순 없었기에

억지로 물과 함께 삼켰다.

남은 음식은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단히 씻은 후 침대에 들어가 잠에 들었다.


일어났을때 당연하게도 가람이가 없었다.

가람이가 없는 집은 너무나도 적막하고 허전했다.

가람이가 퇴원하고나면 정말 잘해줘야지...

다음번엔 내가 먼저 일어나서 아침준비도 하고 깨워줘야겠다. 라고 결심했다.

그럼 그때는 다시 환하게 웃어주겠지..?

가람이가 웃는 모습을 떠올리자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퇴근을 빨리했다.

평소에 가던 바에는 가지 않았다.

병문안을 위해 곧바로 가람이를 보러갔다.

병원으로 가는길에 가람이가 좋아하는 귤이 보여서 조금 샀다.

가람이가 좋아하는... 귤 ...?

귤을.. 가람이가.. 좋아했었...나 ... ?


매번 내가 주는거라면 다 좋아했었는데...

가람이도 나도 좋아하는 귤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가람이는 귤을 잘 먹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도 열심히 까서 내 입에 넣어주고 먹는걸 지켜봤을뿐...

가람이는 내가 무엇을 줘도 고마워했다.

내가 선물을 잘 골랐기 때문에 그런건줄 알았는데..

혹시 그게 아니라면...?


오한이 들었다.

가람이가 좋아하는게 뭔지 떠올려보려고 해도

가람이는 나와 함께한 모든걸 다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척을 한걸까..?

이제야 깨달은 나의 무신경함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야 가람이랑 잘맞는거지..

똑같은걸 좋아하는거 일수도 있잖아..?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가람이의 병실 앞이였다.

하지만 여전히 속은 울렁거리고 손끝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괜찮아..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지..

아직 늦진 않았어..

그렇게 되뇌이며 가람이의 병실문을 열었다.


가람이는 링거를 맞고 있었다.

걷어진 소매로 여기저기 멍든 곳이 보였다.

손가락의 상처도 보였다.

내 마음이 베이고 멍든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아냐..! 이럴수록 내가 힘내야지...

애써 밝은척하며 가람이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건 싸늘한 시선뿐이였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왜..? 왜 날 그렇게 보는거야...?

다른 사람이랑 헷갈린거지..?

나 서연인데... 가람아...?


가람이는 내가 출근한 사이에 그 남자가 찾아왔다고 했다.

이미 봐서 아시겠지만 서연이랑 전 이미 친밀한 관계라서요.

그러니 이제 이혼해주시겠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아닌데.. 그게 아닌데... 

필사적으로 오해라고 그 남자의 거짓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람이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깨어나서 물어보았을때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아무 사이도 아닌데 키스도 하고.. 모텔도 같이 들어간거야..?

가람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싸늘하게 내 가슴에 꽂혔다.

가람이는 처음부터 다 봤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가람이에게 거짓말을 했고,

가람이는 이제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난 필사적으로 그런게 아니라고

내가 사랑하는건 가람이 너밖에 없는거라고 해봤지만

가람이는 또 거짓말! 거짓말거짓말거짓말!!!

바빠서 늦는거라며! 아무일도 없었다며! 우연히 만난거라며!!!

... 날 사랑한다는것도 거짓말이지...?

니 말은 이제 아무것도 못믿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가람이는 제발... 널 보고 있으면 내가 죽을것같아... 살려줘... 라며 내게 빌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병실에 간호사가 찾아왔다.

울고있는 가람이를 보더니 환자에게 안정이 필요해보이니 나가달라며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 머리가 멍해졌다. 손발엔 힘이 들어가지 않고

눈에선 고장난듯이 눈물만이 흐르고 있었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내겐 사치처럼 느껴졌다.

닫힌 가람이의 병실 문 앞에서

그저 손가락을 깨물고 소리죽여 눈물만 흘릴뿐이였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어나보니 침대 위였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생각나는건 가람이가 내게 빌던 장면...

속이 울렁거려서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다.

먹은게 없어 게워낼것 또한 없었다.

그저 헛구역질만 했다.

또다시 고장난 것처럼 눈에선 눈물이 새어나왔다.

변기를 부여잡고 한참동안이나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점심때가 지났다.

침실을 나와 거실로 나왔더니

주방과 식탁이 보였다.


항상 나오면 주방엔 가람이가 있고

식탁엔 가람이가 해준 요리가 있었는데... 

마치 지금도 가람이가 주방에 서있는것만 같았다.


상상 속 가람이는 돌아서서 내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하지만 곧 웃는 얼굴 위로 살려달라며 울던 가람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벅지나 뺨을 꼬집어봐도 고통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 식칼을 꺼내어 손목을 그어봤다.

그래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르륵 흐르는 피를 보고 있으니

내가 요리를 해주겠다고 식칼을 들었다가 손가락을 베이자

눈물을 글썽이며 걱정해주던 가람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젠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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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조금 더 써야하지만 시간도 늦고 해서 여기까지만 썼습니다.

이제야 서연이의 후회파트가 시작되네요.


독백과 서술만 하다가 대사와 섞으려니 참 어색하네요.

제 필력이 모자란 탓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