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랑 사귀면 어때?"


 너와 사귀던 시절에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 그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고민하다 빙글 웃고는


 "착해서 좋아."


 라는 답변을 돌려주곤 했다.

 착하다-

 네 주변 사람들은 너를 보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너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네가 나를 보며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고... 그래. 그건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신호였다. 바보도 아니고 그걸 누가 몰라.

 나는 그런 너를 간보듯 밀고, 당기다가. 너는 내 손에 이끌려 밀리고, 당겨지다가.


 "야, 너 나 좋아하냐?"

 "... 으, 응..."

 "아, 씨. 고백은 남자가 먼저 해야 될 거 아냐."

 "미안해."

 "... 빨리, 다시 해봐."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되어도 너는 달라진 게 없었다. 언제나 착했다. 나에게 맞춰주는 착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데이트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 내가 좋아하는 거리,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먹고 싶은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선물도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만 나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하는 것이 싫어서 때때로


 "다른 여자한테도 이러는 거 아니지?"


 라고 묻곤 했다. 그럼 너는 웃으며 고개를 젓고 자랑스레 대답하는 것이다.


 "너 만나고 나서는 안 그래. 너한테만 이러는 거야."


 착하기만 했던 네가 그렇게 대답해줄 때면 나는 퍽 설레곤 했다. 너에게 설렜던 몇 안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1년... 시간이 지나고. 우리 사이는 식었다.

 정확히는 내가.

 너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설레게 만들어주진 않았다.

 편안함은 설렘과 동음이의어가 아니었다.


 그때 쯤의 나는 설렘을 찾았다. 너 몰래 다른 남자와 연락을 했다. 그냥 친구인 척, 사심 없는 척 접근하는 남자들.

 그런 남자들과 연락을 하면 설렜다.

 너 몰래 클럽도 갔다. 나를 은근하게 더듬는 손길들. 그게 설렜다.

 선은 넘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스릴.


 그러다 어느 날엔가, 선을 넘었다.

 남사친이라고 집적대던 친구와 단 둘이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 모텔에 갔다.

 술에 깨보니 남자 몸에 안겨 앙앙대고 있던 나.

 이게 뭘까.

 그제야 깨달았다. 선을 넘었구나.


 설렜다.


 그 순간의 짜릿함과 설렘. 그것을 잊지 못하고, 나는 너 몰래 그런 관계를 하나 둘씩 만들어갔다.

 이런 나를 네가 발견하면 어떨까.

 너는 그때도 착한 사람일까?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어느샌가 주말부부처럼, 일주일에 겨우 두 번이나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약속했던 카페에 미리 도착해있던 너는 울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우리, 헤어지자."

 "... 뭐?"

 "미안해. 더 이상은 내가 못 버틸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봉투를 하나 던지고 갔다.

 사진들. 여러 남자들과 손을 잡고 모텔에 가는 내 뒷모습. 어디서 이걸 구했나.

 당황했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게 오늘은 아닐 줄 알았다.

 너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너는, 이미 나의 밀회를 알고 있었다고.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잠깐의 외도라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기다렸노라고.

 하지만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했다.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너에겐 아무런 답이 없었다.

 너는 마지막까지 착한 남자였다.


 네가 떠나고 나서도 그런 방탕한 생활을 몇주간 이어갔다.

 나를 원하는 남자는 많았고. 나는 설렘을 즐겼다.

 그러나 예전만큼 설레지도, 짜릿하지도 않았다.


 뒷소문이 돌았다. 내가 몸을 함부로 놀리는 걸레같은 년이라고.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손가락질 했다.

 그 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외로워졌다. 이런 싸구려 관계에 질렸다.

 연애를 시작했다. 나와 잤던 누군가와 사귀었다. 얘는 몇번째 남자였더라. 세어보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남자는 너와는 달랐다. 친절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그런 건 그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잠깐이나마 나를 리드해주는 그것에 호감을 느꼈지만. 잠깐이었다.

 그 사람에게 나는 트로피였다. 혹은 단순한 성욕 배출구. 그는 단 한번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 후로 몇 명의 남자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너 같은 남자는 없었다.

 네가 그리워졌다. 너의 옆과, 너의 옆에서 웃고 있던 내가.

 너의 친절함. 상냥함.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나에게 맞춰주던 네가.

 떠나고 나서야 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너는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나 때문에 겨울 내내 담요를 가지고 다녔다. 어느 날엔가 장발을 한 남자 연예인을 보고 저 머리가 멋있다고 하니 그날부터 머리를 길렀다. 생리통에 끙끙 앓고 있을 때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생리통에 좋을 음식을 잔뜩 싸들고 왔다. 야채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자기도 잘 먹지 못하는 야채를 쏙 빼먹곤 했다.

 그런 사소한 배려들이 그리워졌다.


 너를 찾았다. 연락은 되지 않았다. 문자도, 카톡도, 전화도 모두 차단당했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 네가 일하는 곳을 찾았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 앞에서 기다렸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주변 사람들과 웃으며 나오는 너.

 네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아니, 사랑하고 있음을.

 너에게 다가갔다.

 너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다시 웃어주었다. 그때. 우리가 처음 보았던, 그리고 처음 사귀었던, 네가 나를 보던 그 날들처럼. 웃어주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응... 너는?"

 "나야, 뭐. 똑같지."


 웃으며 말하는 너의 옆에서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여자.

 너는 그녀에게 웃으며 소근거린다. 귓속말로.


 저 년은 뭔데 내 남자한테 집적대는 거지? 화가 났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만남이니까. 고작 이런 걸로 망치고 싶진 않아서.


 "여긴 무슨 일이야?"

 "그냥 지나가다가, 괜찮은 카페 있다고 해서 들렀는데. 네가 보이길래."

 "그랬구나. 재밌게 놀다 가."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뒤돌아서는 너. 그리고 그 여자.

 이게 끝이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너를 붙잡았다.


 "저기!"

 "응? 왜?"

 "... 그... 우리... 다시... 예전처럼..."

 "... 미안해. 그건 힘들 것 같아."

 "... 어째서?"


 너는 곤란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한다.


 "나 사귀는 사람 있어서."

 "... 그것 때문이야?"

 "저기요. 그쪽은 양심도 없어요? 무슨 자기가 먼저 바람 피워놓고 이제와서..."


 네 옆의 여자가 달아오른 얼굴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댄다. 이 여자가,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이구나.

 그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나보다 얼굴도, 몸매도 어디 하나 나은 게 없어보인다.


 "이 여자야?"

 "응. 맞아."

 "내가 이 여자보다 못한 게 뭔데?"


 너는 나에게 웃으며 대답한다. 환하게 웃으며.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주거든."

 "... 나도, 나도 너 사랑해.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미안. 네가 나한테 했던 건... 사랑은 아니었던 거 같아."


 너는 그렇게 떠나갔다. 웃으면서.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을 남기며.

 너보다 좋은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너보다 좋은 사람이 의미가 있을까. 네가 아닌 사람이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너무 늦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몇 주간 네 회사 앞을 따라다녔다.

 너는 처음엔 우연이라는 말을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곤란하다고. 그렇게 말했다.

 되돌아가고 싶다고. 되돌아갈 수 없냐고 물어도, 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울고 불고 매달려도 네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아래 글에 웃는 게 폭력 어쩌고 있길래 꼴려서 써봄

 마무리를 어케해야될 지 모르겠어서 급마무리...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