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ㄱ나니 - 후회물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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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뭐가 뭔지

난 인지조차 못한 무지

난 네 허점만 찾고서 못 박고서

우쭐대며 내 빈틈 메꿨어


널 딛고 큰 척했고

겉멋 찾고 모두를 깔봤건만

네 훔친 가치 붕괴된 채

몹시 보챘던 네 실체


- 서태지 <오렌지> 中 -












"...성열아 잠시만!"


'장난치는거야, 분명. 성열이가 나한테 화낼리가 없잖아. 잠깐 삐진거야... 조금만 냅뒀다가 달래주면 괜찮을거야, 진심이 아니겠지'

 

'그냥 밤에 집에 박혀서 전화 좀 씹었다고 그럴리가 없어. 아니? 응. 최성열, 넌 나한테 그러면 안돼. 내꺼니까, 다른 남자는 안중에도 없으니까. 난 너 없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으음, 당연하고 말고. 이제 밀어내기는 적당히 하고 좀 당겨줘야 할 것 같아. 그럼 좋다고 다시 따라다니겠지'


'며칠 냅두면 다시 돌아오겠지, 나도 그렇듯이 걔도 나 없으면 못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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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불켜고. 너희들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야? 창문도 좀 열고! 커튼 열고! 거기 뒤에 자는 애들 좀 깨워!"


성열이가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다.

많이 화난건가? 학교를 빠질 정도로?


초등학교 때부터 개근을 놓치지 않던 성열이가 그럴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건가? 아픈건가?


"오늘 성열이 아파서 빠진다고 연락 왔다. 한번도 안빠지던 녀석이 원..."


"쌤! 왜 아프다는거에요? 성열이?"


"야 니가 여자친구인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아픈 놈은 쉬라고 두고, 저번에 끝난 곳부터 펴"


"야 근데 니네 둘 헤어졌다면서 진짜야?"


"아니에요 쌤, 그럴리가 없잖아요"


정말로 아픈거겠지, 서로 얼굴보기 껄끄러워서 그런걸거야.

나한테 화냈던게 민망해서, 나한테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먼저여서.


괜찮냐고 문자를 먼저할까? 아니야, 이러면 다음에 또 그럴걸?

친구들도 그랬잖아, 남자가 더 좋아하는 연애가 오래간다고.

확실히 니꺼라는 각인을 시켜야, 한눈팔지 못한다고.


그래, 이번 한번만 못 이기는 척 기다려줄게. 대신 다시 돌아올 때는 정말로  확실하게 혼내줄거야.

그 소꿉친구라는 김채윤 그 짜증나는 년도, 다시는 접근 못하게.

걔는 나보다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고, 집안도 별로잖아.

경쟁상대로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꺼림칙한건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어쨌든 우리는 서로만 바라보면 되는거야, 항상 그래왔잖아.


내일 다시 학교에 오면, 당분간은 좀 아는 척도 하지 말아야겠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걸

그렇게 해야 성열이는 나한테 묶여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말 좀 몇번 걸어주면 좋다고 다시 따라다니겠지.

이번 시위만 받아줄게, 하지만 다음은 없을거야.


빨리 돌아와, 조금 밉지만 보고싶은걸.


성열이는 다음 날 학교에 돌아왔다.

나는 마음 먹었듯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딱 일주일만, 그래 일주일만 모른체하자.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게, 차갑게 대하는거야.


와서 말을 걸어도 무시하자.

지가 별 수 있겠어? 나 없으면 못사는거 뻔히 아는데.


그래도 내심, 와서 한번은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기대했어.

그런데 왜 내 근처에 조차 와주질 않는거야?

왜 집에 가서도 문자 한 통 주질 않는거야?

내 시선을 왜 자꾸 피하는거야?

이번 반항은 조금 기네? 알겠어, 그래도 내가 받아줘야지 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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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성열이는 나에게 한번도 문자를 보내거나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이제는,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나를 일부러 피한다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점점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날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왜? 어째서? 이유가 궁금했다.

세상 어떤 남자친구가 저렇게 여자친구를 무시하는지.

궁금해서,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서 그를 하교길에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내 평생 상처로 남을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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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우산을 던졌던 그 날, 홧김에 우산을 던져버려 잘생긴 네 얼굴에 피가 흐르던 날.

왜 그랬을까 후회하던 그 날처럼 오늘은 비가 왔어.


복도 모서리에 숨어 너희 반을 지켜보다가, 니가 나오는 걸 몰래 따라갔어.

우산을 들고 도착한 곳은 김채윤의 반 앞.


왜?

어째서?

비 오는 날이면 항상 나에게 왔었잖아.

왜 그 년 반 앞으로 가는건데?

왜 나한테 문자조차 안해?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그 년이 나오자마자 나에게만 보여주던 환한 미소를 걔한테 보여줬어


"채윤아 비 많이 온다 그치?"


"응, 나 오늘 집까지 데려다 줄거야?"


"그럼, 데려다 줘야지"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냥 집만 같이 가는걸거야.

나한테는, 나한테는, 나한테는, 아직 시위 중인거야

봐봐, 어쩌면 내가 지켜보는 걸 알고서 저러는거일수도 있어

질투 유발하려고, 최성열 너 진짜 얌체 같아졌다?

거의 성공했네? 지금이라도 나한테 오면 다 용서해줄게.

모른 척 해줄테니까 지금이라도 와서 용서를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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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현관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멈춰선 둘, 맞잡은 손, 마주치는 입술들, 부끄러워하는 너와 그 년.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뭘 본거지? 왜? 둘이? 

너 내 하나뿐인 남자친구잖아, 나는 너의 하나뿐인 여자친구고.

순간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에서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참을 수가 없었다.


터벅터벅


짝!


돌아가는 너의 고개, 당황한 너의 눈빛


"너 지금 나 두고 바람피는거야? 그것도 김채윤 이 년이랑?"


"...너 지금 무슨소리 하는거야? 우리 헤어졌잖아"


"... 이유진 또 너 성열이한테....!"


"아냐 채윤아, 내가 얘기해볼게 가만히 있어줘"


"하아, 유진아. 그 날 우리 헤어졌잖아. 내가 아니라, 니가 이럴거면 다른 남자 만난다고 헤어지자고 했잖아 기억 안나?"


"...헤어지자고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어. 너 그걸 어떻게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내가 항상 하는 습관이잖아"


"유진아, 누가 헤어지자는 말을 습관처럼 해. 너 뭐가 잘못된건지 모르겠어? 너 나한테 평소 하던 짓, 미안하지도 않아?"


"이렇게 된거 솔직히 말할게, 나 너랑 사귀면서 정말 힘들었어. 죽고 싶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혔어. 니가 나한테 

사랑이 아니라 차가운 눈빛이랑 친구들앞에서 나 깎아내릴때마다 이게 사랑이 맞는건가 싶었어. 니가 내 인간관계 다 끊고

나 고립시켜서, 세상엔 항상 나 혼자였어.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했어,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 아니 그냥 따뜻한 눈길 한번 받은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 우리 처음엔 좋았잖아, 서로 사랑했잖아. 

니가 왜 그렇게 변한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매일같이 채찍만 때리고 당근은 하나도 안줬잖아. 심지어 밤에는 연락도 안됐잖아

니가 어디서 무얼하는지도 모르는 채. 매일같이 다른남자 만날거다 얘기하고, 내가 그 말에 고통스러워하면 놓아주고. 나는 세상사람들이 다 이렇게 연애하는 줄 알았어. 이렇게 사랑이 고통스러운건가, 내가 사랑을 바쳐도 보답받지 못하는 걸 견디는게 사랑인가?

항상 나에게 물었어"


"근데 그 날, 니가 내 얼굴에 우산을 던진 그 날. 피 때문에 내 세상이 빨갛게 물들었을 때 정신이 들더라. 무언가 잘못됐다고.

그래서, 너랑 다시 만나면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


"너, 나 사랑하긴 했어? 내가 너의 마음 속에 있긴 했어?"






"...지금도 사랑하는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다. 어느 순간부터 성열이의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해졌다.

내가 원할 때만 그에게 연락을 했다.

'밀당'이라는 변명 하에.


친구들이 그래야 한다고 했다.

여자가 잘해주면, 남자는 떠나간다고.

나도 처음에는 심한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내 사랑을 구걸하는 너의 행동과 태도

처음보는 너의 표정과 감정

내 행동과 표정의 미묘한 변화 하나에 민감해진 너


짜릿했다.

마치 마약처럼,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락 받지 않는 척하면서도,

내심 그와의 문자는 전부 확인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며

알 수 없는 욕망과 감정이 차오르는걸 느꼈다.


이렇게 밀어내기만 하는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약에 중독된 약쟁이처럼 끊임없이 반복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무뎌져갔고, 점점 더 큰 쾌락과 감정을 찾아 나섰다.


더욱 더 모질게 너를 채찍질했다. 

더욱 더 아프게 너의 목을 졸랐다.

나의 죄책감은, 너와 더 함께하기 위함이라는 핑계 아래 옅어지기 시작했다.


"성열아, 미안해 나도 잘못한거 알고 있어"


"근데... 근데... 나한테 매달리는 널 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었어. 사랑받는 기분이었단 말이야. 내가 전부 잘못했어, 어?"


"야, 이유진. 성열이 이제 내 남자친구니까 앞으로 둘이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


"너 그거 알아? 성열이가 항상 나한테 전화해서 울던거? 너무 힘들다고, 나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보답받지 못해서 너무 아프다고.

너 그러고도 니가 여자친구야? 넌 성열이 사랑한게 아니야, 그냥 소유하고 싶었던거지.  너만의 애완견이 필요했던거야.

착한 성열이는 그것도 모르고 너한테 마음 다 받치고 상처받은거고"


"넌 이렇게 좋은 남자 가질 자격없어, 너보다 먼저 고백 못해서, 너같은 여자 만나게 해서 상처받은 내 자신도 미워. 그래서 앞으로 잘해줄거야, 너한테 받은 상처 다 잊게. 너란 여자 생각도 안나게 사랑해줄거야"


"그러니까 그냥 꺼졌으면 좋겠어, 성열이는 너 마주치는 것 마저 상처거든"


믿을 수가 없었다. 둘이 사귄다고?


"성열아, 나 떠나는거야? 아니야 잘못했어 미안해, 버리지마... 내가 앞으로, 앞으로 시키는 거 다할게"


"나 너 없으면 못 산단 말이야,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고, 내 마음엔 너밖에 없단 말이야. 제발 그 년한테 가지마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무릎끓고 빌게... 끄윽...."


눈물을 참아보려 했지만, 눈에서 눈물이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동안 모질게 대해서, 날 떠나버리게 만들어서... 내가 성열이었으면, 진작에 참지 못하고 떠났을거야

그러니까 미안해... 제발 나 버리지마... 나 너 없으면 너무 깜깜하단 말이야...."


"유진아"


"유진아, 고개들고 나 봐봐"


땅바닥에 처박은 얼굴을 들라고 말했다.

얼굴이 너무 엉망진창일 것 같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다시 받아줄거라는 기대감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유진아, 난 너 가져본 적도 없고. 난 너 버린 적 없어, 니가 나 버린거지, 아니야? 항상 날 거부하던 건 너였잖아,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두 발짝 도망갔잖아. 내 사랑만 받아먹었지, 나한테 사랑 준 적 없잖아"


"그래도, 채윤이 덕분에 우울함 많이 떨쳐냈어. 채윤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너한테 목줄 채워진 채 끌려다녔겠지, 너의 사랑 구걸하면서"


"이제 그만하자, 서로 상처야"


"...아냐! 너 그 년한테 속은거야! 우리 평생 함께하기로 했잖아, 평생... 미안해 제발, 다신 안그럴게..."


"유진아, 그만하자. 나 이제 너 얼굴 보는 것 조차 힘이들어, 난 그날 널 놓아주었는걸.

너도 이제 그만 날 놓아줘, 나 좀 살려줘..."


"나 못났다면서, 한심하다면서, 니가 나한테 너무 아깝다면서, 연락도 안되잖아, 항상 헤어지자면서

바라는대로 해주겠다고, 왜 이제와서 이래? 내가 터지기 전에 그랬으면, 다 용서했을거야. 

이제와서 이러면, 더 힘드니까 하지마. 나 한심하고 니가 아까우니까 놓아주겠다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와 그년을 보며, 난 비를 맞으며, 웅크리며 우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비 때문에 차가워지는 몸보다, 그가 없어 차가워지는 마음이 날 더 아프게 했다.


"...아냐, 나 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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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항상 그를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따라다니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그가 항상 하던 문자와 전화도 항상 내가 보내기 시작했다.

차단을 했는지 전화를 받거나 답장이 오는 일은 없었지만.


성열이의 기분이 이랬을까?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란 것이.


그년과 성열이 둘이서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에 비수를 꽂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항상 헤어지자고, 다른 남자 만날거라고 협박할때마다 항상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냐, 이것보다 몇 배는 아팠겠지. 나는... 나는 왜 그랬을까.


매일 밤 너에게 문자를 보내, 니가 나한테 그랬듯이

답장은 오지않네

매일 밤 너에게 전화를 걸어, 니가 나한테 그랬듯이

받는 일은 없네


너도 매일 밤 이런 기분이었을까

항상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기다리는 것.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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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썼던 글 중에



'야스가 두려워서 거부하는 후순이 때문에 자존감 낮아져서 포기한 후붕이'

->  ㅎㅌㅁ 보고 회로 돌아가서 써와봄 - 후회물 채널 (arca.live) 


를 언젠가는 채윤이와 성열이로 이어서 쓸거임


채윤이도 후회 예정이라고 우효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