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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것만 같던 눈물도 곧 멈추게 되었다.


"그러지 말고 들어와. 춥다."

나는 집 문을 열고서 말한다.

후붕이가 나에게 문을 열며 배려를 해준다.

이런 배려를 내가 받아도 되나 싶다. 나는 죄인인데.


"...응."

후순이 대답하며 일어났다.

그렇지만, 후붕이의 호의를 무시해선 안된다.


날 싫어하는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들어온다.

그의 마음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를 집안에 담담하게 들여보내주는 것.

그리고 아까 내가 울고 있었을때 날 떨쳐내려 하지 않은것.

최소한 그가 날 혐오하진 않는다.


나는 후순을 집으로 들여주었고,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잠시만 기다려. 차를 내올게."

후붕의 집안을 살핀다.

허름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집이었다.


"...응."

후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후순이를 만났는데, 생각보다 내 마음은 고요했다.

후붕이의 집에 이렇게 앉아있으니, 안 그래도 넘치던 죄책감이 더 넘친다.


뭐, 상관없나?

상관 없을리 없다. 눈을 돌릴곳을 찾는다.


잠시 뒤를 돌아 후순을 쳐다본다.

천장을 쳐다본다.


후순은 어두운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있었다.

후붕이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난 그걸 애써 무시했다.


예전의 반짝이던 그 눈은 어디로갔을까.


참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쳤던 눈물이 살짝 흐른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


*


차를 마신다.

후붕이가 달인 차를 마신다.


정적이 흐른다.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후순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그에게 사과해야한다. 분명 지금이 기회겠지.


후순이가 머뭇거린다.

나는 침착하게 기다린다.


어째선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전번엔... 미안했어."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분명 헤어지자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아까부터 자꾸 뭐가 미안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때 오해해서 미안해... 네가 바람 핀줄 알았어..."

그때 오해한 것에 대한 사과.

아아. 그때구나.

후순이가 바람을 피러 나간 것.


"생각해보면 네가 바람을 필 리 없었는데..."

다시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때 바람 쐬러 나가서... 뭐했어?"

어렵사리 입을 뗀다.

후붕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믿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다.


"정말... 바람 쐬러 나갔어. 그때 내가 오해했다는걸 알았고."

왜인지 안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노예로 팔았다.


"그럼... 왜..."

생각한다.


그녀는 날 노예로 팔았다.


그녀가 날 노예로 팔았다.

후붕의 시선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의 눈의 생기가 돌아왔다고. 조금 안심했다.


어째서인지 그녀에 대해 화가 난다.


"그럼...!! 왜...!!!!"

울분이 터진다.


우선 그의 화를 받아야한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수순이다.

그가 나에게 어떠한 짓을 하더라도. 그가 받은 상처보단 덜 하겠지.

각오를 다진다.


참아야 한다.

필름이 끊길것만 같다.

잊고 있었던 노예 생활이 떠오른다.

갑자기 후붕이 눈물을 흘린다.

나는 놀라 쓰지 않은 손수건을 꺼내 후붕의 눈물을 닦아주려했다.


후순이 내게 손수건을 가져다 댔다.

피가 묻은 손수건을.


'자 봐라! 이게 니 피다! 더러워서 못 써먹겠군!'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후붕이 내 손을 쳐낸다.

순백의 손수건이 날아간다.


그녀의 모습이 날 잡아갔던 기사와 겹친다.

그녀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노는 곧 공포로 바뀐다.

 후붕이 내 손을 쳐냈을 때, 잠시 멍해졌다.

그런데, 나를 본 후붕이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무슨일인가 싶어 그에게 손을 가져다댄다.


"싫...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몸의 상처가, 유난히 더 돋보이기 시작한다.

최대한 내 몸을 지키려고 몸을 웅크린다.


"후붕아... 왜, 왜 그래...?"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후순은, 날 잡아간 기사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화난 듯이 보였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오지마.

저리가.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후붕이가 중얼거린다.

어떻게 해야하지?


무서워. 싫어.

아파. 아파. 아파.


내가 뭘 했다고?


그냥 죽어버릴까?


무언가 몸에 감촉이 느껴진다.

말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제발... 제발 이걸로 그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놔... 놔!!"

날 또 잡아가려고?

그가 거칠게 저항한다.


"제발, 후붕아... 진정해줘..."

그가 저항할수록 그를 더욱 끌어안았다.

그를 놔준다면 그가 어디로 가버릴것 같았기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그녀를 떨쳐내려고 했다.


그가 나를 떨쳐내었다.

잠깐만, 어떻게?


생각보다 쉽게 떨쳐졌다.

후순이는 순간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후붕이의 팔을 잡는다.


"놔! 날 또 팔아 넘기려고?! 그럴려고 찾아온거야?!"

이미 내 머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후순이를 향해 쏘아붙혔다.


"아니야... 후붕아, 제발, 나 진짜 아무것도 안할게. 이야기를 들어줘..."

후붕이를 붙잡고서 애원한다.

내가 억을 하다는걸 알아주었으면 했기에.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그때 돌아오지도 않았으면서!"

이 말은 공포심에서 나온걸까, 분노에서 나온걸까.


지금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아니이... 후붕아아... 아니야아... 진짜..."

후붕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그때 얼마나..."

그리고 그때.


"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내 몸은 균형 감각을 잃고 쓰러졌다.


"후붕아? 후붕아?!"

감정을 너무 많이 내뱉은 탓일까.

아니면 생각을 정리해야하기 때문일까.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


꿈을 꾼다.


언제나의 악몽이다.


내가 노예로 팔려가던 그 날.

저항이 무색하게도 무참히 끌려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또 이 꿈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시점은 전환되어, 나는 지하 감옥 안에 갇혀있었다.

온 몸이 묶여있어 움직일 수가 없다.


곧 이어서 나를 산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은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았다.

어차피 이 다음은 후순이가 구하러 온다.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


내가 의아함을 느끼자, 갑자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파. 아파. 아파.'


그동안 느껴지지 않았던 고통이 내 몸을 덮친다.

'아파. 아무나. 아무나 날 좀 구해줘. 제발.'

그렇게 빌어본다.


날 때리던 사람은 어느샌가 밖으로 나갔고, 차가운 지하 감옥 안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갇혀있었더니,  뭔가가 나를 덮은 듯 다시 따듯해졌다.


시점은 변화한다.


집 안에 후순이가 있었다.

집은 난장판이었고, 후순이는 그런 집을 둘러보고 있다.

그녀는, 흙투성이가 되어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후순아?'

그녀를 불러보려고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다.


후순이는 그러던중 내가 매일 앉아있던 소파에 손을 갖다 대었고.


머리를 짚으며 주저 앉았다.


그러더니.

"아."

"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붕이를 찾아야해."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일어나서 집을 나갔다.


내 시야는 암전됐다.


*


후붕이가 쓰러졌다.

"후붕아... 정신 차려봐..."

그를 흔들어 깨워봤으나, 꿈쩍하지않았다.


다행히도, 옅은 숨소리로 그가 살아있다는건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 그를 침대에 눕혔다.

어딘가 괴로워보이는 얼굴을 짓는 후붕의 모습이 내게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다.


"뭐라도 덮어줄게 없으려나..."

옷장을 열어봤다.

그 안에는 한두가지의 옷과 작은 담요 하나만이 있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후붕이 옆에 걸터앉는다.

담요를 덮은 후붕이가 약간이나마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옛날 생각나네...'

오래 전, 비바람이 불던 그 날.


"그때는 내가 담요를 덮고있었는데. 이젠 반대가 됐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후붕이를 보고있었다.


.


..


...얼마나 지났지?


깜빡 잠들었나보다.

침대에 기대 앉아있는 내 몸을 일으켜 후붕이를 본다.


"..."

후붕은 아까보다 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또, 뭐라 중얼거리는거 같아 귀를 가져다 댄다.


"아파..."

후붕이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잠깐만, 어떡하지?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파, 아파. 죄송해요. 죄송해..."

그렇다고 이걸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지켜줄테니까... 앞으로 안 떠날테니까..."

그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한다.


"미안해... 그때 떠나서...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볼걸..."


중얼거리는 소리는 금세 사그라지게 되었고. 서로의 심장소리만이 들리게 되었다.

후붕이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편안해 보였다.


시간은 어느새 밤이 되었고, 나는 다시 침대에 기대 잠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일어날까봐 잠에 들지를 못하고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기 전까진.


나는 바로 등을 돌려 후붕이를 바라보았다.

"누구... 아, 후순이구나."

후붕이가 일어나 나를 보았다.


하지만.

"아... 아아아..."


아까 아침에. 후붕이를 만났을때와 같이.

그의 눈에 생기가 없어져있었다.


*


그녀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상관 없으려나.


일단 방금 날 다시 노예로 팔아버리지 않은걸로 조금이나마 신뢰가 회복됐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말 내가 오해한건지.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내 감정을 최대한 죽였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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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이번 화는 무려 일요일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리수를 최대한 배제하고 개연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정하고 수정해서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무리수가 있다구요?

원래는 차를 마실 때 서로 오붓하게 대화 나누다가 용서했습니다.


대신 후붕이가 생각보다 더 맛이 간거 같아요.


사실 이번 화에 용서를 해주려 했는데. 분량 조절과 개연성 확보의 문제로 다음 화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후붕이와 후순이가 느낀 생각을 한번 교차해서 적어보았습니다.

혹여나 이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음 화부터 빼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제 소설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중하고 도망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