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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줄래?"

후붕이 미소지으며 내게 묻는다.

그러나 말투는 차갑고 날이 서있다.

미소마저도 인위적이었다.


"이... 이야기? 아, 그. 그럼..."

말을 더듬는다.

메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왜 말을 더듬지?

내게 해선 안될 말이 있는건가?


그가 무섭다.

지금 그는, 내가 아는 그가 아닌것 같다.


나는 그녀를 식탁으로 가서 앉혔다.

책상 하나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반대편에 앉았다.

이 책상의 거리가, 그동안 걸어온 길보다 더 길어보였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때."

무거운 입을 뗀다.


"전망대 위에서 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했었어."

그에게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내가 오해를 했구나 생각했어."


그래.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 개새끼가. 내 머리를 내리치기 전까진.

"서둘러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하필 그날 납치를 당했어..."


허?


어이가없다.


납치를 당했다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건가?

특히 그녀는 드래곤보다 강한 S급 모험자다. 그런 그녀를 납치를 했다고?


"힉..."

그런 의심의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니 그녀가 살짝 떨었다.


무섭다.

잘못 말하면 큰일난다.

그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그래서... 정신 차려보니 마차 안이었고. 간신히 탈출했어."


그 상황에서 탈출을 했다고?


"어떻게?"


이건 순전한 호기심이다.


절대 의심이 아니다.


그렇게 나를 세뇌시켰다.


"...예전에 내가 드래곤을 잡았을때, 그때 다른 드래곤들이 왔었어."

나는 드래곤들에게 보답을 받았고, 그 덕에 마차에서 간신히 탈출할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말했다.


...기억이 난다.


예전에 마을을 걸을때.


드래곤이 마차를 가지고 갔다는.

특별할것도 없는 그 마차를 가져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간이나마 의심을 거둔다.


이것마저도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 집으로 달렸어... 너한테 돌아가려고..."

후순은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달리다가도 넘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었지만 회복력 하나만을 믿고 계속 일어났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했는데... 네가 없었고, 집안은 난장판이더라..."

그렇게 달렸으나 아무도 없던.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네가 노예가 됐다는걸 알게됐어... 내 인장을 훔쳐가서 널 노예로 만든거야..."


후순의 눈에서 조금씩 눈물이 흐른다.


"그때부터 계속 널 찾아다닌거야... 널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어... 미안해..."

거의 모든 노예상을전부 뒤졌다.

하지만 어떠한 곳에서도 후붕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부디 믿어주길 바라며 후붕의 눈치를 살핀다.


저게 사실일까?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을 들은적이 있는거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본다.


... 


나는 이 내용을 봤다.


내 꿈에서.


그때 보았던 그녀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한가지 의심이 든다.


"후순아."

우물쭈물 하는 그녀를 부른다.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면서.


"으... 응!"

그녀가 긴장한듯이 대답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내가."


표정을 바꾼다.

그의 표정이.


미소를 다시 지운 채로.

너무나도 무서웠다.


"잘때 뭔짓 했어?"

순간 당황했다.

"왜... 왜?"

후붕이가 너무 아파하길래 잠시 꼭 안았었는데.

좋지 않은 선택이었나?


"아니~ 그냥, 뭔가 의심스러워서~"

살짝 비꼬듯이 말해본다.


어떡하지?

솔직하게 말해야할까?


"응..."

거짓말 해서 볼 이득이 없다.


"무슨 짓 했는데?"


만약 그녀가 잘때 내 몸에 무슨 짓을 한거라면.


예를들어 세뇌라던가, 사람의 말을 쉽게 믿게 해주는 그런거.

그렇기에 찔러본다.


"그냥... 네가 자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진짜 잠시동안 꼭 끌어안았었어..."

솔직하게. 거짓말 없이. 그렇게 말했다.


...


화를 내지 못하겠네.


순식간에 불같던 화가 식었다.


그럼 그때 꿈에서, 느꼈던 그 따듯한 감정은.

후순이가 안아줘서 그랬던건가.


그럼 그 꿈은.


정말 후순의 기억이 맞았던거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느 한 대상의 마력이 다른 대상보다 너무 높을때 서로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면 그 마력이 다른 대상의 마력에 어느정도 옮겨 붙는다고 책에서 보았다.


아마 그 영향인거겠지.


골똘히 생각한다.

발걸음을 옮긴다.

살며시 그에게 다가간다.


"후... 후붕아... 저기... 그, 미안해... 진짜로..."

그의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손을 놓고서 머리를 바닥에 박는다.

"염치없지만... 절 다시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부디.

앞으로는 절대 그대 곁을 떠나지 않을것이기에.

그가 날 받아주길 바랐다.


그런가.


전부 오해였던거구나.

그녀가 나를 오해했듯이. 나도 그녀를 오해했다.


서로가 서로를 오해해서, 작은 오해가 얽히고 섥혀 큰 오해가 되었고, 크나큰 상처가 되었다.


"하."

어이가 없다.


실소가 터져나온다.


이제서야 조각난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하하하."


"후, 후붕아?"

그의 웃음 소리에 고개를 든다.


잠시동안 웃었다.


나는 웃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닌, 어딘가 망가진 웃음.


"진짜 어이가 없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얼빠진 그녀에게.

그가 한 말은.


"일어나. 네 말이 맞다면, 우린 애초에 헤어지지도 않은거잖아."


아마 내 평생 들은 말중에 가장 반갑고, 원하던 말일거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고.

"진...짜? 흐...흐흑... 내가, 내가 진짜 미안해... 고마워..."

그에게 안겨 울음보를 터트리며 말했다.


이렇게 보면, 나한테도 아직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있었나보다.


어쩌면 그녀가 그럴리 없다는 희망. 그 사소한 희망이.


"이번 한번만 더 믿어볼테니까."

그녀에게 말한다.


"물론이지... 앞으로는 계속 옆에 있을테니까아..."

그에게 말한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품은 어느떄보다 따듯했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에는, 약간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모험자를 관두었다는 것과 날 노예로 만든 자들의 끝이 좋지 않았다는것.


그들의 끝은 솔직히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고보니, 내가 노예가 된건 어떻게 안거야?"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미워한다고 하지만 말아줘...

어릴때부터 어느 한 상황이 보였었거든. 그때는 그게 미래인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래서 우리 집에 소파에 손을 가져다 댔을때 네가 끌려가는 모습을 본거야..."


아.

그래서 나를 찾을 수 있던거구나.


... 좀 다른거 같긴 하다.


"...지금은?"


"지금은 더이상 안보여. 아무것도. 하지만 오히려 안심이 돼."


그래. 

그렇구나.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

그녀에게 약간 아쉬운 마음을 담아 말한다.


"그래도 사랑받고 싶었어..."

그러나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뭐, 상관 없겠지.


"참. 그러고보니."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도중 후순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그 인장 지우러 가자. 나중에 귀찮아질지 모르니까."

확실히 노예를 납치하는 자들이 많다고 들었다.

길거리를 싸돌아다니는 노예는 보통 탈주노예라나 뭐라나.


"...그래."

그렇기에 승낙했다.


*


며칠 뒤 야위었던 몸의 살이 어느정도 붙었을 쯔음에 마을에 왔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갑자기 가면은 왜 써?"

내가 그렇게 물었다.


"내 얼굴은 너무 팔려있어서 곤란해질지도 몰라. 얼마만의 후붕이랑 외출인데 방해받으면 안되지."

그렇게 후순이가 말했다.


확실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녀는 전이라도 S등급 모험자.

어찌되었건 유명세는 있을테니.


일단 그렇게라도 안심을 시켜두자.

살려둔 자들 중에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몰라도 후붕이가 굉장히 곤란해지니까 안돼.


이 마을에서 마차를 빌려서 후순이가 아는 술사에게 간다고 한다.


"얼마나 멀어?"

"음... 내가 마음먹고 달리면 이틀정도. 마차로는 2주일정도 걸려."

그렇게 말했다.


후순이는 마차의 7배정도의 속도를 내는구나.

자연스럽게 감탄했다.


그렇게 마차에 올랐다.

마부석에 둘이 앉으며.

아마도 지금 우리는 가장 행복할거다.


"... 얀붕 도련님?"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마저 못들었으니까.


*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다.


"후붕아..."


여느날처럼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응 후순아 왜?"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내 눈은 더 이상 그 상황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나는 그에게 끝없이 속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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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올려서 죄송한 마음을 담아 연참합니다.


이렇게 프롤로그하고 이어집니다.


다만, 프롤로그하고는 내용이 다른데, 후순의 눈이 예전에 보여준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어쩌면 후순의 불안감이 저게 원인이었을지도?


결국 순애로 이었고 용서 엔딩을 냈습니다.

용서에 조금 무리수가 따르는거 같지만 재밌게 즐겨주셨다면 감사합니다.


완결은 아닙니다.


다음화부터는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이 될 듯 합니다

빌드업좀 더 하고...


언제나 제 12앞 소설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추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