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17화


***


"나는 이 곳에서 전차를 정비하고 있겠네."

"혹시라도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하니 말이야. 지금 시간은 한낮이라고?"


"맞아요... 거가다가 지금 이 곳은 키보토스의 중심구 D.U..."

"섣불리 움직였다간 제대로 전투도 하지 못한 채 몰려오는 학생들에게 당하고 말거에요..."


[노아의 말이 맞아. 이곳은 체리노와 미사키가 지켜줘.]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샬레로 올라간다.]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선생의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하였다.

그녀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건물 안은 한없이 적막했지만 언제 어디서 색채의 공격이 시작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


"..."


말없이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마침내 도착한 사무실.

그녀들은 잠시동안 시선을 주고받더니, 이내 서서히 대형을 갖추었다.


전방에 하루카와 유우카를 위시로 천천히 진입하는 학생들.

문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녀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부터 먼저 갈게.)"


"(응. 조심하고, 문은 반만 열도록 해.)"


끼이익.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하루카가 진입하려던 그 순간.


"...!!!!!"


"크읏...!"


파앗. 순식간에 무언가가 날아와 그녀의 머리 바로 옆 벽에 꽃혔다.

유우카가 방어막을 활성화 함과 동시에, 그녀들은 단숨에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의외로 후속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이에 안심 아닌 안심을 하며 진입한 그 순간.


"허억..!!"


그러나 사무실은 이미 그녀들이 알던 익숙한 장소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들러붙은 고약한 점액과 벽을 가득 매운 색채의 줄기들.


이와 더불어 사무실 중앙에 위치한 선생의 책상 위에는 거대한 고치가 놓여져 있었다.

무언가가 안에 있는 것을 암시하듯, 고치는 끊임없이 사방으로 꿀렁이며 기분 나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 충격적이고도 끔찍한 광경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마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얘들아... 긴장하지 말고 잘 들어.]

[지금 잠깐 분석을 해봤는데... 저 고치 안에는 색채가 잠들어 있어.]


"오...? 그럼 바로 공격하면 되는거 아니야?"


[...그러면 좋은데 문제는 지금 고치의 부화가 임박했다는거야.]

[부착하건데, 고치가 열리면 아낌없이 총알을 퍼부어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건 명령이야. 그 안에서 뭐가 나오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 쏴야해. 알겠지?]


의미심장한 선생의 말에 총기를 쥔 그녀들의 손도 덩달아 긴장으로 떨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치의 움직임이 더욱 격해지다 못해 서서히 찢어질 때 즈음, 선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외쳤다.


[지금이야, 쏴!!!!!]


타다다다당.

선생이 말한 것 처럼, 그녀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고치를 향하여 총알을 퍼부었다.

퍽퍽,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고치는 찢어져 그 안에 있던 희멀건 내용물을 토해냈다.


철벅, 철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색채.

고약한 냄새와 더불어 쏟아져나온, 기분 나쁜 형상을 한 그것은 다름 아닌 선생이었다.

정확히는, 선생의 모습을 한 무언가였지만.


"...!!"

"우욱..... 욱...!!!"


처참하게 녹아내린 피부와 드러나 흘러내린 장기까지.

차마 두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형상에 아루를 포함한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난리를 치며 온 몸에 총알을 박아넣었는데도 '그것'은 아직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 식겁한 선생은 황급히 외쳤다.


[얘,얘들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총알을 더.... 더 퍼부어야해...!!!!]


그러나 그녀들은 이미 선생의 지휘를 따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욱.... 우욱....!!!"

"선... 선생님이.... 선생님이...??"


"뭐,뭐야.... 저건 뭐야...???"

"어째서 선생님이 저기에.... 욱, 우욱...!!!!"


너무나도 끔찍한 몰골에 그만 패닉에 빠져버린 그녀들.

선생은 다급하게 그녀들을 달래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건 내가 아니야...!!!!!]

[난 여기있단다... 얘들아 제발,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때, 쓰러져 있던 그것의 몸이 서서히 발광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들려오는 끔찍한 이명음과 함께, 주변의 창들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학생들은 고통스러워 하며 무기까지 떨어트린 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얘...얘들아...!!!!!]

[젠장... 이러다간 골든타임을 놓쳐버려... 색채가 또 다시 부활하고 말거야...!!!]

[...젠장!!!!!! 내가 몸만 있었더라도... 내가 죽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나 무력하진 않았을텐데...!]


선생은 무력하게 그것의 몸이 서서히 재생되는 꼴을 그저 탄식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색채는 완벽하게 부활하고야 말았다.


"...."

"......."

"...아아."


[...색채.]

[그래, 새로운 몸을 기어코 얻고야 말았군.]


"...."

"...샬레의 선생이여."

"마침내... 이렇게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군..."


[혹시 시체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도 있나?]

[그 모습... 역시 내 시체로 무언가를 한거지?]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다..."

"...나는. 당신의 시신을 얻기위해 이 곳에 온 것..."


[더러운 녀석... 일부러 내 시체를 얻기위해 여기까지...!]


"신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신비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

"나는... 그릇을 찾기위해 이곳에 온 것 뿐... 딱히 당신을 노린 것이 아니다..."


중후하고도 울리는, 색채의 목소리.

그러나 선생은 위압감이 절로 느껴지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전혀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모두가 지쳐 기절해버린 그 순간, 색채를 붙들어 둘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그릇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지난 기회에는... 당신을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았다..."

"예언의 선지자... 그대들이 프레나파테스라 이름을 붙인 그것...."

"당신의 시체를 권속삼아... 보냈다... 그의 학생과 함께..."

"하지만... 실패했다... 원통하고... 애통스러웠다..."

"그래서 왔다... 내가 직접..."


[...!]


직접강림.

이 짧은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실로 어마무시 하였다.

분명히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전투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

선생은 애써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본인이 행차 하시면서까지 올 이유가 뭐지?]

[키보토스의 종말? 그건 안돼.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당신의 시체는... 끌어모은 나의 신비를 담기에 가장 적합힌 그릇..."

".....이렇게 모은 신비로... 나는 한층 더 권능을 얻어 전능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으음? 설마... 당신은....... 당신마저.... 아아 그렇게 된건가... 이제야 모든 것의 인과를 깨달았다....!"

"....게마트리아. 게마트리아....!! 게마트리아여.... 오오 게마트리아여.....!!!!!"


색채는 서서히 몸을 떨더니, 이내 양 팔을 쭈욱 펼치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환한 빛이 그의 몸을 감싸더니,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섬광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윽.... 으윽... 이,이런.....!!!!!]

[아, 아루... 모두들.... 안돼애애애...!!!!!!!]


키보토스는 위험한 장소다.

막말로 총기가 사탕처럼 일상으로 취급되는 동네라, 선생과도 같은 일반인 입장에선 인외마굴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그가 키보토스를 멀쩡히 활보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싯딤의 상자 속 아로나 덕분.


싯딤의 상자 속에는 신묘한 힘이 부여되어 있었다.

인과율을 무시한 채, 원칙을 어기고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힘.

그러나 선생은 그 힘의 존재도, 다루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학생과 보낸 기억이.

그와 학생의 인연이 만들어낸 일상이.

그 간절한 마음이 마침내 차원의 장벽을 넘어 기적을 일으켰다.


[리쿠하치마 아루!!!!!!!!!]


그가 자신도 모르게 전개한 보호막 덕분에 그의 학생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초 근거리에서 폭발에 직격당했음에도, 그녀들은 사소한 부상하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소홀했던 탓일까.

싯딤의 상자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으으.... 으으으...."

"뭐,뭐야... 머리가 아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루는 처참한 주변 광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고치는 물론이고 색채에 관한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세상에... 이게 뭐야? 고치는...? 고치 안에서 흘러나온 그것은...???"

"자,잠깐... 선생... 선생님. 선생님은 어디갔지??? 싯딤의 상자가...!"


[으.... 으으.....]

[으... 아루... 나 여기있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선생의 목소리.

아루는 재빨리 부너진 잔해를 파해쳐 싯딤의 상자를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상태는 이미 너무나도 심각했다.


[아,아루. 아루...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다치지 않아서....]


"선생님... 이게 대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난 싯딤의 상자.

미약하게나마 화면이 들어오는 액정의 일부분에서, 선생은 희미한 목소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어.... 어떻게 된거야... 대체 이게 무슨...!!"

"이...이거 망가지면 안되는거 아니야??? 그럼 선생님은 어디로 가는거야???"


[아루... 시간이 없어. 시간,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색,색채. 색채를, 믿지.마. 나를, 나.내 모습.을 믿지마. 알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 모습을 믿지 말라니..."

"그 전에 목소리는 또 왜 그래... 선생님 목소리가 이상해...!!!"

"선생님.... 선생님..... 정신차려봐 선생님...!!!!"


서서히 희미해지는 선생의 모습.

아루는 눈물을 흘리며 선생을 향해 처절하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안돼.... 가지마... 가지마...!!!! 또 다시 우릴 두고 가지마.... 제바알...!!!"

"이거...이,이거 고칠 수 있겠지??? 잠,잠시만 버텨줘... 내가 밀레니엄으로 가서...!"


[아루, 아.루. 아?루.]

[괜찮.아.나는 정말. 로괜.찮...아. 이거,못,고쳐.나는.곧.끝나.]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아...!!!!"

"그런 말 하지마.... 고칠 수 있을거야 분명히...!!!"


[나는. 어차피,죽,을,었어야할.운명.이야. 하지만.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이렇,게 명을.이어나갈 수 있.게된,,거야.]


"색채고 뭐고... 세상의 운명이고 뭐고 이젠 상관 없어...!!!!!"

"선생님이 없는 세계는.... 나한테 필요 없다고오..... 그러니 죽지마..."

"제발...!!!!! 선생님 힘을 내봐...!!!!!! 제발..... 제바아알....."


[아,루.괜.찮아.거의,다다닫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다, 끝났.어. 아루.수고.했.,,,,,어. 응. 고...마,워.정.말로.]

[......사랑해. 아루.]


"....선생님?"


검은색 화면.

그곳에서는 더 이상 일말의 빛도,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보아도 두 번 다시 빛이 켜지는 일은 없었다.

아루는 떨리는 손길로 액정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무슨 소리야..."

"사랑...한다니...? 사랑한다고? 나를...?"


[...]


"...뭐야, 농담하지말고 일어나.... 재미없으니까...!"

"일어나라고...!!!!! 일어나란말이야.... 재미없다고오오!!!!!"

"...사랑한다니, 그 말을 해놓고 이렇게 가는게어딨어이건반칙이잖아선생니이이이이임!!!!!!!!!"


아루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망가진 싯딤의 상자를 향해 절규했다.

뒤늦게 통해버린 자신과 선생의 진심에, 아루는 너무 늦어버린 시간과 타이밍을 저주하며 오열했다.


"왜.... 왜 하필 지금인건데...."

"왜.... 왜애애애...!!!!!! 흐윽.... 흑.... 왜 이제서야 말해준건데.... 왜애애애...!!!!!!!"

"선생님.... 아아아아 선생니이임....!!!!!! 흑.... 흑...."


첫 만남부터 해어짐까지.

그와 함께 보내온 시간.


그의 인생에 그녀가 있었고, 그녀의 인생에 그녀가 있었다.

모든 것이 그와의 인연이고, 스토리였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들.

선생과 함께 보내온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며, 아루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육체도,정신마저도 죽어버린 그는 이제 더 이상 키보토스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로 죽어버린 것이다.


"흐윽..... 흑..... 조금 더 일찍 말해주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내가 안일해서.... 내가 넘 멍청해서.... 흐윽, 흑...."

"나는.... 나는 대답도 못 했단 말야아아아아!!!!!!!!!!!!!!!!!!!!"

"사랑한다는 그 말에.... 대답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가는게 어딨어...."


어느덧 하늘로 완전히 떠오른 색채는 그 권능을 발휘하여 키보토스 전체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지진과 함께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아... 찬양하라... 이 아름다운 권능을..."

"이 아름다운 힘을.... 한없이 이 아름다운 공포를.....!!!!


"치사해.... 흐윽, 정말 치사해.... 이렇게 일방적으로...."

"훌쩍, 흐윽....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해....? 어차피 듣지도 못 할거면서.....?"


곧이어 기껏 쓰러트렸던 성소가 다시금 전 학원에 서서히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전에 상대했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키보토스 전역을 빼곡하게 매운 거짓된 성소들.

하늘 높이 솟은 성소들은 색채로 하여금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힘과 권능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두 팔을 한 껏 벌린채 키보토스 전역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공포를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신비의 전복을 위해...... 금지된 진리의 탐구를 위해...!!!!!"

"키보토스여.... 내가 돌아왔다...!!!!!!"


"...어차피 듣지도 못할거.... 기왕 이렇게 된거.... 흐윽..."

"말해줄게... 선생님..... 훌쩍, 흐윽... 그러니 꼭.... 들어줘야해.....?"


결국 완전히 각성해버리고 만 성소.

선생의 흰 양복과는 대비되는, "검은 양복" 을 입은 그는 천천히 지상을 향하여 강림하였다.

이제 이 땅에 있어, 그의 권능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감히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의 모습을 한 색채.

키보토스의 멸망을 부르짖는 종말의 예언자.

거짓되고 불경한, 적(敵) 선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흐윽, 흑....."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선생님...!"


아루는 망가진 싯딤의 상자를 들어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으로부터 흘러내린 눈물이 떨어져 먼지 투성이인 바닥을.


그녀의 진심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적셔갔다.


.

.

.


"우...우와아아악????"

"이,이게 무슨 일이람?? 콤라드... 히나 콤라드!! 듣고 있는가!!!"

"지진이 일어났다!! 여긴 어찌저찌 버티고 있긴 하다만, 거기 상황은 괜찮은가!!"

"샬레 사무실 쪽에서 폭발이 들린 것 같다만 대체 무슨 일인ㄱ....!!!"


체리노는 말없이 무전기를 떨어트렸다.

저 멀리 길 건너편으로부터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군단들.


"...오, 이런."


수많은 로봇들로 이루어진 군단들의 표면에는 밀레니엄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급해진 체리노는 재빨리 잠든 미사키를 깨우며 히나를 향해 무전을 하기 시작했다.


"오, 이런.... 이런이런이런이런...!!!"

"일어나게! 미사키 콤라드... 지금 잘 시간이 없네!"

"히나, 히나 콤라드... 들리는가??? 적들이 오고 있네!!"

"적들이 샬레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네!!!!"


불현듯 들려오는 포격음에 체리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또 다른 건너편에서 수많은 전차들의 군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히누마 마코토를 위시로 한 게헨나의 기갑부대.

그녀들이 그 웅장한 위용을 태양 아래 뽐내며 샬레를 향해 전속 전진해오고 있었다.

체리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이...이런 젠장...!!"

"모...모두들...!!"


총원 25명. 체리노와 미사키를 합치더라도 27명 뿐.

그녀들 중 어느 하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도합 6대의 전차로 몰려오는 학생들의 군단을 막아내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누가보더라도 패배는 이미 확정이었다.


'...지금이라면 도망쳐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터.'

'어차피 다들 싸우기 싫어하는 표정이고.... 그냥 이대로 퇴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지만.... 하지만....!!!!!'


".....후우."

"스읍....! 후우우우......."


체리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다스렸다.

과거 붉은 겨울이 붕괴할 당시, 쓰러져갔던 수많은 전우들을 추억하며.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토모에... 마리나... 그대들이 느꼈을 중압감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부디 지켜봐다오. 이 엉망진창이자 허울뿐인 서기장의 라스트댄스를....!!'


.

.

.


"....전원. 전투준비!!!!"


"...! 뭐,뭐라구요????"

"하,하지만 체리노 서기장... 이 전투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래. 승률은 0%에 수렴하지."

"...하지만 때때로 지는 줄을 알아도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기 마련이야."


"체리노 서기장...!!! 그게 지금 무슨...!!"


"우리들은 오늘 여기, 이 곳에서 죽는다!!!!"


체리노는 전차위에 올라서서 다가오는 군단들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끝도없이 몰려오는 그들의 권세에 체리노 자신도 잠깐이나마 압도됨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결심을 내린 그녀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기회다! 말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에겐 이미 돌아갈 고향이 없다. 붉은 겨울은 몰락했으니까..."

"그대들은 당시, 우리들이 패주하며 고향을 버리고 뛰쳐나오며 했던 다짐이 기억나는가?"


"..."

"...붉은겨울은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들이 있는 곳이 곧 붉은겨울이다... 였습니다."


"그래, 그대 말대로 붉은 겨울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이 곳 만이!!!! 우리들의 고향, 붉은 겨울인 셈이다!!"

"붉은 겨울의 붉은 군대는, 붉은 겨울을 지킨다. 그것이 곧 우리 붉은 겨울의 정신이란 말이다!!!!!"


"..."


"우리들은 여기서 쓰러질지 언정, 우리들이 불태운 붉은 겨울의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건물로 올라간 그녀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지켜내야만 하는 동무들이 모두 죽는다... 그것 하나만은 자명하다!"

"무너진 캠퍼스 따위, 다시 지으면 돼... 그깟 서기장 따위, 몇 번이고 다시 뽑으면 돼!! 하지만..."

"...하지만 학생들이 없으면. 지켜내야할 동무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때서야 붉은 겨울은 죽는 것이다!!"


그토록 집착하던 서기장의 자리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실각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유지한 서기장의 자리.

그러나 붉은 겨울이 몰락한 지금, 그깟 서기장 직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에잇...!!!"


체리노는 내친김에 서기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훈장을 때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여 동요하는 그녀들을 향해, 체리노는 마지막 힘을 모아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다.


"그러니 다시 묻겠다, 제군들. 그대들은 붉은 겨울인가? 그대들은 붉은 겨울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붉은 겨울의 군인인가!!!!!!"


"..."

"...."

"....."


고요한 적막. 

오직 그녀의 메아리만이 주변에 맴돌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내 진을 다 쏟아버린 체리노는 털석. 하고 전차 위에 주저앉았다.


"...만약 그대들이 정녕 붉은 겨울의 군인이라면... 나를 따라 기꺼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다면."

"그렇다면 이곳에 남아주게... 이건 절대 강요가 아닐세....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 바로 돌아가주게."


"..."


체리노는 두려웠다.

방금 전 연설에서 훈장까지 벗어던지며 외쳤지만, 실은 두려웠다.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어도 그녀는 결국 일개 학생일 뿐.


이에 그녀는 차마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의 친위대를 향해 죽음을 강요할 수 없었다.

당장 자신부터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데, 그녀들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결국, 체리노는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솔직히, 나도 두렵다네. 나도 죽고싶지 않다네..."

"나도... 나도 다시금 서기장실에 누워 낮잠을 자고... 체론카 초콜릿을 즐기며 오락을 즐기고 싶다네...!!"

"하지만....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지 않은가... 붉은 겨울은 무너졌고 우리들은 그저 학원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패잔병..."


"..."


"...그러니 말리지 않겠네. 떠날 사람이 있다면 부디 지금 떠나주게나."

"나도 자네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싶지 않다네... 마음만 같아선 그대들을 살려서 집으로 보내주고 싶다네...!"

"그러니 제발.... 제발 지금 떠나주게나...!!!!!!! 이 곳을 지키는건 전차 한 대 만으로도 충분하니..."

"부디 자네들은 돌아가 자네들의 여생을 행복하게 영위하게나...!!"


"..."


그녀는 서기장.

학원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저야한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남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위대원들은 달랐다.


고작해야 조금 직급이 높은 학생들.

체리노와는 달리 패주의 책임도 없었으며, 밖에 나가면 그냥 일반 학생일 뿐 이었다.

체리노는 그런 그녀들에게까지 싸움을 강요할 만큼 양심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도 돌아가고 싶다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부끄러워서 토모에를 볼 수 없을 것 같거든."


'1 대 수백, 수천만의 싸움이라... 후후.'

'모든 것이 끝나면 전설적인 서기장으로 남을지도? 후후후...'


체리노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과는 달리 푸른 하늘은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이에 피식. 미소를 지은 체리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총원 27명 중 27명. 그들 중 단 한명도 돌아간 인원이 없었다.

이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있는 체리노를 향하여, 그녀들은 무언의 경례를 하였다.


"모두들....!"


"체리노 서기장."

"우리들을 뭘로 보신겁니까?"


"...응?"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이곳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중간부터 말씀하시는게 너무 재밌어서... 그만 끝까지 듣고 말았습니다."

"의외입니다? 저희들을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고..."


"그...그럼 지금까지 다 알고도 일부러...?"


"...애초에 저희들이 왜 친위대겠습니까?"

"모두 체리노 서기장을 보필하는 것이 즐거워서 하는건데..."

"그렇다고 너무 화내진 마십시오. 서기장님의 연설... 이 가슴에 제대로 전해져 왔으니."


말없이 자신을 향해여 미소짓는 그녀들을 보며, 체리노는 눈시울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녀는 차마 더 이상 연설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미안."

"미안.... 미안하네..."

"그리고 나와 함께 남아줘서.... 고맙네... 진심으로..."


.

.

.


이내 웅장한 엔진 소리를 내며, 최후의 전차 부대가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체리노는 그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차에 탑승하여 함께 전진하였다. 

대전차병이라는 명목하에 징집된 미사키는 덤이었다.


"...드디어 오셨군."

"전원.... 산개!! 그들의 전진을 막고 유인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샬레로 향하게 만들면 안된다!!"


체리노는 말없이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멀리서 전진해오는 적들의 위용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자랑스러운 붉은 겨울의 서기장의 명령이다!"

"그대들은 전차의 숨결로 그대들의 적들을 짓밟을 것이며... 그대들의 고향을 지키고!!"

"포탄의 불길로 적들을 꿰뜷을 것이며... 고귀한 정신으로 끝까지 전진할터이니...!!"

"붉은 겨울이여!!!! 부디 저들에게... 그대들의 성스러운 분노를 보여주도록!!!"


그리고 전쟁은 시작되었다.


***



2연참!!

본격 체리노 뽕 그윽한 글.

그리스도를 모티브로 한 선생이 있다면, 적그리스도를 모티브로 한 존재도 등장 해야하는 법이지.

지금까지의 성소, 색채 관련 빌드업은 모두 이를 위한 제물이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시체까지 이용당한 선생 지못미...ㅠㅠ


엔딩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모두들 나와 함께 달려줘!!! 

다 끝나면 서사를 더 다듬어서 노벨피아에도 올릴까 생각중이야! 물론 여기 연재분은 그대로 남겨놓고 말이지.

물론 농담이지만! 그치만 만약 이번달 말까지 미움약이 오지 않은다면 진짜로 올릴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