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


'...뭐하자는거니 지금? 네 상황이 이해가 안돼?'


'너에게 실망했단다. 왜 ...의 절반도 채 따라가질 못하는거니, 응?'


'이렇게 팔자 좋게 ...나 하고 있고, 너도 아직 정신을 차리기엔 멀었나 보구나.'


'너를 ...지 말았어야 했는데...'


.

.

.


"...헛."


두 눈을 떠보니 온 몸이 땀 범벅이었다.

쿵쾅대는 심장과 가빠진 호흡.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허억... 허억..."

"...왜 뜬금없이 악몽을 꾸고 난리야..."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약 2시간 정도 잔 편인데, 그 짧은 시간동안 악몽을 꿀 줄이야.

꿈 내용이 기억 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공포. 두려움.

실망. 그리고 절망.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감정의 연속이었다.

내 옆에는 아직 누나가 세근세근 숨을 쉬며 곤히 잠들어 있는 상태.

어차피 도로 잠들긴 글렀겠다, 나는 누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밑층으로 내려가니 어머니께선 일찌감치 먼저 일어나셔서 커피를 마시고 게셨다.

이윽고 나를 발견하신 어머니는 아직은 비몽사몽한 나를 맞이하며 반갑게 인사 하셨다.


"어머, 깼니? 일찍 일어났구나."

"잠은 잘 잤어? 불편한데는 없었고?"


"...네에. 괜찮았던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싫은건 또 아니었는데..."


"저런, 우리 아들이 아직 잠이 덜 깼나 보구나."

"아직 아침이 되기 까지는 조금 이른데, 더 들어가서 자도 된단다. 우리 아들 피곤할텐데..."


"아... 아뇨오... 흐아아암..."

"...그냥 일어난김에 깨어 있을래요... 누나 아직 자고 있는데 방해하기도 좀 그렇고..."


잠에서 덜 깬 내가 우스꽝스러웠던걸까.

어머니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말했다.


"후후... 우리 아들 벌써 다 컸네. 그럼 엄마랑 같이 커피 마실까?"


"ㄴ...네에...?"


"계속 그렇게 비몽사몽하게 있으면 일찍 일어난 보람이 없잖아? 그렇지 않니?"

"걱정마렴, 네 나이 정도면 다들 마시는게 커피잖니? 후훗, 맡겨줘."


어머니께서는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시며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이윽고 온 몸에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기대었다.


불편하다. 지금 이 상황도 그렇고, 내가 겪고있는 모든것이.

오늘 꾸었던 꿈 때문에 그런건지는 몰라도 어제만큼 충분히 몸이 가볍지 않았다.


어쩌면 어제 누나가 내게 저질렀던 일도 사실 꿈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꿈이었던걸까? 혹시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그 전에, 대체 꿈은 왜 꾼거지?


잠시 뒤, 어머니께서는 양 손에 커피잔을 든 채 돌아오셨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잔을 내미시는 그녀를,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잔을 받아든 뒤 한 모금 들이켰다. 

그윽한 커피향과 더불어 느껴지는 쓴맛덕에 잠은 달아났지만 그것 뿐 이었다.

아까 전 부터 느껴지는 영문 모를 불편함은 끝끝내 사라지질 않은 채, 그대로 내 마음 속 한 켠에 남아있었다.

어머니께서도 이를 알아 채셨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안색이 영 좋지 않네. 무슨 일 있니?"


"네? 아... 그,그게..."


하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는 몰라도 내가 꿈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마다 무언가가 내 가슴을 더욱 옥죄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망설이는 사이, 어머니께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어제 잠을 잘 못 잤니?"

"그럴만도 해... 네 입장에서는 모든게 낮설테니."

"엄마가 미안하구나. 그걸 고려 했어야 했는데..."


"아,아뇨. 그런건 아니고..."


"응? 그럼 왜..."


"...그렇게 신경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별 거도 아니니까요. 헤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뒤,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나의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이도 잠시, 왠지 모르게 편안한 어머니의 손길에 날서있던 경계심도 서서히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아들. 그렇게 말하지 마렴."

"넌 나의 아들이고 가족이잖니. 가족이 가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건 당연한거야."

"그리고 그건 절대 민폐가 아니란다. 오히려 마땅히 해야할 가족의 의무나 마찬가지고..."


"엄마..."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마렴. 뭐든지 이야기 해도 돼."

"뭐... 이를테면 방이 좁다던가, 아니면 나와 지솔이가 어색하다던가 처럼..."


"그...그런건 아닌데 이게..."

"제가... 꿈을 꿔서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에요. 진짜 별 일이 아니라서..."


나는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어머니께 말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 말씀하셨다.


"잠깐... 꿈? 방금 꿈을 꿨다고 한거니?"


"네? 네... 무슨 문제라도..."


"아,아니. 아무것도..."

"그래서... 무슨 내용이었는데?"


"어... 그러니까 그게 확실하지는 않은데..."


나는 조심스레 오늘 아침에 꾸었던 꿈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봐도 당시 느꼈던 느낌만 기억날 뿐, 명확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 하나, 선명하게 기억 나는 모습은 얼굴 없는 누군가가 나를 책망하는 모습 뿐.


"얼굴은 명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군가가 저를 향해서 화내는 꿈이었어요..."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도망칠 수는 없었고..."

"...죄송해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나는 말을 끝마친 뒤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엄마?"


내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아까와 같이 밝은 모습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한없이 친절하고 인자하던 기색도 사라진 채, 오직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친 숨만 몰아 쉬고 있는 그녀.

언뜻 봐도 분명히 정상은 아닌 상황이었다.


이에 어머니가 걱정되었던 나는 그녀를 향하여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때 미세하게 벌려진 손가락 틈 사이로 어머니의 눈빛이 비쳐 보이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야 말았다.


놀라울 정도로 축소된 동공과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눈동자.

그 눈에 생기는 없었고, 안정은 커녕 공포심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 괜찮아요?"


"...어? 으,으응... 잠시 어지러워서..."

"그건 그렇고 잘 됐구나. 꿈을 꾼다는건 뇌 기능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거든."


"그렇... 군요..."


이후 이어지는 정적.

어머니도, 나도.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려고만 하면 아까 보았던 어머니의 그 눈빛이 계속 떠올라 입술이 움직이질 않았다.

한없이 두렵고, 또한 한없이 공포에 질려있는 그 눈빛이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때, 윗층에서 잠이 깬 누나가 배를 긁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먼저 깨어있는 우리 둘을 본 누나는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뭐야... 언제 일어났어?"

"...분위기는 또 왜 이렇고?"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께서 머리가 어프다고 하셔서..."


"..."

"진짜?"


"무,뭐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진짜지... 내가 이런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또 다시 이어지는 정적.

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나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싸해진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뭐라도 말할 필요가 있었다.


"아.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내 뇌 기능이 슬슬 돌아오고 있는 중이래!"


"...뭐?"


"응! 오늘 꿈을 꿨거든. 꿈을 꾼다는건 뇌 기능이 회복되는 증거라고 하셨대."

"멋지지 않아? 이제 곧 있으면 예전 기억들도 다 돌아올지도 몰라!"


"자,잠깐..."

"돌아... 온다고...? 기억이...?"


"응!"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러나 어째선지 내 이야기를 들은 누나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마치 아까전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그녀의 시선에서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잘 됐네... 응. 잘 됐어. 축하해!"


"누...누나...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신경쓰지 마."


누나는 애써 미소지어 웃은 뒤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예상 외의 반응에 혼란스러워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무 신경쓰지 마렴. 누나는 원래 종종 저러니까."

"내심 누나도 엄청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잖니. 괜찮을거니까 지원이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렴. 아침 다 되면 불러줄게."


"네에..."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잔을 들고 누나 방으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

대문 뒤에서 누군가가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아직은 이른 아침.

시간으로 따지자면 오전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하며 나는 문을 열어 젖혔다.


"...앗. 아앗...!!"


문 뒤에는 한 여학생이 서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수수하고도 아리따운 그녀는 날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호...혹시 지...지원....?"


"네? 저 말씀하시는거에요? 네... 전데요? 왜요?"


"아아...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네? 그게 무슨..."


"어...그,그러니까 이... 이거..."

"서...선생님꼐서 전해... 주라고...!!"


이윽고 그녀는 내게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을 건내었다.

회색빛 저품질 용지로 만들어진 그 문서의 내용은 다름 아닌 복학 안내 공지였다.


"...복학? 이거 분명히 올해 안에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어? 그,그런 말 없었는데...?"

"그냥 나중에 시간날 때 학교 와서 서류 작성하면 될걸...? 아마.....??"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자...잠깐...!"


문을 닫고 돌아서려던 그때, 그녀가 문을 잡으며 외쳤다.


"호...혹시 나... 누군지 모르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만 쓰길래..."


"네? 아... 그게 제가 사고 때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때문에 진짜 죄송하지만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아요... 미안합니다."


"그...그런..."

"정말로...? 나 놀리는거 아니지...??"


"네... 제가 왜 처음 보는 사람을 놀리겠어요...?"


"진짜...라고...? 진짜 내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는거야...? 거짓말..."

"아,아직도 그때 그..."


"거기 누구니?"


그 순간, 등 뒤 저 멀리에서 어머니가 외치시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내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얼이 빠져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어머니께서 내 곁으로 다가와 말씀하셨다.


"뭐야? 방금 누가 다녀갔니?"


"네... 어떤 여자애였는데..."

"학교에서 온 사람 같은데요? 괜찮으면 언제든지 복학해도 된데요."


"뭐? 이리 줘봐."


어머니께서는 내 손에 있던 통신문을 낚아채듯 가져가신 뒤 천천히 읽기 시작하셨다.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통신문을 읽는 어머니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 처럼 보였다.

잠시 뒤, 어머니께서는 재빨리 통신문을 구겨버리신 뒤 애써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말씀하셨다.


"뭐,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구나. 우리 아들은 아직 완전히 회복 되지가 않았는데..."

"엄마가 내일 학교에 전화해서 막아...아니. 물어볼게. 지원이는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내일부터 학교 가는거 아니였나요? 막는다니요...?"


"엄마가 말했잖니? 복학 절차가 아직 완료 되지 않았ㄷ..."


"아까 온 친구가 그러던데, 복학 절차는 학교가서 서류 작성하면 끝이라던데요?"

"애초에 절차라는것도 거의 전무한 수준이던데... 거기 통신문에도 나와 있잖아요!"


"...아들. 나중에 엄마가 다 설명해 줄테니 지금은 엄마 말을 좀 들어주렴."

"엄마가 너를 생각해서 이러는거야... 그러니 제발..."


어머니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기엔 수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 만난 그 순간 부터 무언가를 숨기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교. 지금 내게 있어 최우선의 과제는 다름 아닌 과거를 기억해 내는것이기에 학교는 더할나위 없이 중요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어머니께 말했다.


"싫어요. 대체 왜 안된다는건지 이유라도 말해주세요."

"보통 학교에 가는게 정상 아니에요? 왜 안된다고 하시는건데요!"


"아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이가... 학교를 간다고? 지원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누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미처 뒤돌아 보기도 전에, 누나는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소파로 밀쳐 넘어트렸다.


"아악...!"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를 간다니? 왜??"


"으윽... 누나... 왜 이래...??"

"자,잠깐 나와봐... 내 위에서 나오라고...!!!"


"너...너 학교 가면 안돼... 진짜로...!"

"그,그러니까 다른건 몰라도 올해에는 가면 안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아직 미성년자고, 미성년자는 학교를 가야하는 법인데.

아무리 내가 아팠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학교 정도는 보내줄 수 있지 않은가.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게 분명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으니, 내 입장에서는 오직 답답함 뿐 이었다.


"지원아... 누나랑 엄마 말 들으렴."

"나중에 다 알게 될테니 지금은 제발 우리 말에 협조좀 해줘...!"


"읏... 잠깐, 나와 보라고!"


"꺄악!!"


나는 누나를 밀어낸 뒤에서야 가까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누나는 꽤나 당황한것 처럼 보였지만 내게 그런것까지 일일히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될거라니요... 그렇다면 지금 알아도 별 문제 없는거잖아요?"

"대체 왜 그러시는건데요...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저한테까지 숨기시는거에요...?"


"아들... 네 심정은 이해한단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요...? 왜 이렇게 비밀이 많으신건데요...!!"

"정말... 처음 봤을 때 부터 이상한 말만 하시고... 난 아무것도 몰라서 미치겠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지,진정해 지원아... 우리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야...!"


"그럼 대체 왜 그러시는건데요? 대답을 해봐요!"

"저한테... 저한테 뭐라도 좀 알려달라고요 숨기지 말고...!!!"


"아,아들..."


"애초에...!!!!"

"...애초에 제가 진짜 아들이 맞기는 한거에요...? 난 이제 그것도 확신이 안 가요..."


"..!!"


결국 그동안 꾸역꾸역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버렸다.

이럴 생각 까진 아니었는데. 나도 내 행동의 진위를 알 수가 없었다.

엄마와 누나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말없이 바라볼 뿐 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도 믿을수가 없어서... 진짜..."

"정말... 이젠 나도 몰라...으으으"


"아...아들...!!!"


"지원아...!!!"


단기간에 너무나도 많은 감정을 쏟아내서일까. 나는 그만 다리가 풀린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건 그들이 혼비백산 한 채 나를 향하여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 뿐 이었다.


***


'하핫... 바보같아... 개웃기네 이거.'


'대체 무슨 생각 이었던거야? ...이 이래도 되는거야? 푸훗...'


'아아~ 진짜 수치네. 이런 ...이 내 ...이라니.'


'꺼져. 누가 네 ...야? 내 눈 앞에서 사라져!'


.

.

.


"으읏...!!"


문득 눈을 떠보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방 침대에 누워있는 상황이었다.

누나 방과는 다른, 조금 더 고풍스럽고도 적막한 공간. 분명히 누나 방은 아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일으켜 보았고, 아니나 다를까 등 뒤는 또 다시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또 악몽인가...'


얼굴 없는 여성이 나와 나를 매도하는 꿈.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꿈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다.


"허억... 허억..."


심장이 미친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내용이 명확하게 떠올라서 그런가, 전보다 감정의 후유증이 몇배는 오래 가는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강도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로 증폭 된 상태.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던 나머지 도로 침대에 들이눕고야 말았다.


"윽... 으으윽..."


두려웠다. 공포스러웠다.

분명 꿈이었지만 이상하리 만큼 생생했다.

마치 내가 진짜로 매도받고 있는 것 처럼... 아니 맞긴 하다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꿈 속 인데...

뭔가 이상했다. 꿈이 본래 뇌가 경험하는 현실적인 비현실이라지만 이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그때, 방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루엣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어머니인 듯 싶었다.


"...일어났니?"


어머니께서는 자연스레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시더니 내게 차 한 잔을 내미셨다.

나는 말없이 이를 받아 마셨다.


"아까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정말... 걱정했단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빛으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차만 홀짝일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뒤,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보던 어머니께서 먼저 이야기의 말문을 트셨다.


"저기... 미안해."

"우리 아들... 막 퇴원해서 혼란스러웠을텐데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 같구나."


"..."


"있지... 엄마가 그랬지? 다 너를 위한거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와 지솔이의 행동은 너를 위한다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던것 같아.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그 말과 함께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내주셨다.

언뜻봐도 잔뜩 구겨진 흔적이 있는 그 종이는 다름 아닌 오전에 보았던 통신문이었다.


"내일부터 가도 돼. 엄마가 다 이야기 해놨으니까..."

"그러니까 그... '학교'... 말이야."


"뭐라...구요?"


"응... 말 그대로 학교."

"선생님께 허락 받았어. 복학 서류도 이미 다 작성했고, 내일 아침 일찍가서 서류만 내면 돼."


깜짝 놀란 나를 보며 어머니는 살짝 미소지어 보이셨다.

그런데 뭐랄까, 입가와는 달리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매우 슬퍼보였다.


"어,엄마..."


"응?"


"고맙...습니다..."

"제가 그런 짓을 했는데도 이렇게..."


"...아니야. 자식을 위해서 뭐든 못하겠니."


그렇게 잠시 나와 그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괜스래 뻘쭘해진 나는 이불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말리려듯,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자,잠깐... 어디 가니?"


"네? 그,그게 누나 방으로..."

"여긴 누나 방이 아니잖아요...?"


"누나 방은 왜..."


"그,그야 자러 가야할 것 같으니까요...?"


"아마 누나 방에는 못 들어 갈거야... 누나는 지금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거든."


"이,일단 가볼게요...!"


어색한 대화를 나눈 뒤 급히 방을 나서려는 나를, 어머니는 붙잡으셨다.

영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나를 막아설 뿐 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로부터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익숙한 누나의, 질척하고도 소름끼치는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왜...왜 그래...? 엄마랑 함께 자는게 싫어...?"

"엄마가... 엄마가 싫어진거야...?"


나는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와 위층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뒤, 누나 방 앞에 도착한 나는 있는 힘껏 문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 어째서...?"


"엄마가 말했잖니... 누나는 지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까 지원이가 누나를 밀친것 때문에 누나가 많이 슬퍼하고 있단다."

"...그래도 누나와 함께 자고 싶은거니? 엄마는 안 되는거니?"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어머니께서 나를 슬며시 끌어 안으며 말씀하셨다.

소름끼치게 기어오르는 그녀의 말을 대변하듯, 소란에도 불구하고 문고리는 계속해서 잠겨있는 상태였다.


"어...엄마..."


당황한 나는 내 몸을 감싼 그녀의 팔을 풀어해치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들, 엄마가 무섭니...? 아직도 어색하게만 느껴지니...?"

"엄마는... 엄마는 우리 지원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한껏 굳어있던 나의 몸도 긴장이 풀려버리고야 말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아까 전과는 사뭇 다른, 뭐라 말하기 어려운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원이는... 엄마를 받아줄 수 없는거야..?"


"저,저기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이것좀 놓아주ㅅ..."


"싫어...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아..."

"어떻게 찾은 우리 아들인데... 하나뿐인 우리 아들인데..."


조용히 훌쩍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서 왠지 모를 시큼한 향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체취라기엔 다소 화학적이고, 또한 유기적인 이 냄새.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뿐이었다.


"엄마... 혹시 술 드셨어요...?"


"응...? 안 돼...?"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어쩐지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더니, 내 괜한 착각이 아니었던 샘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휘청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녀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여긴... 아까 내가 깨어났던 그 방이잖아...?'


"응... 고마워 아들."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가려던 나를 향해 어머니께서 말없이 두 팔을 벌리셨다.

본래 어머니를 재워드리고 바깥에 있는 소파에서 잘 계획이었기에 내 입장에서는 큰 낭패였다.

더군다나 아까 전 어머니께서 보이신 그 눈물 때문에...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더욱 더 어지럽게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만족하신 듯 피식, 하고 웃으시더니 그대로 나를 껴안으셨다.


"그래~ 착하지 우리 아들..."

"자장~ 자장~"


곧이어 어머니께서는 약간은 어색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느껴지는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하지만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서서히 밀착하여 다가오는 어머니의 몸 탓인지는 몰라도 포근함 보다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녀의 숨결이 나의 귓볼을 간질이는것이 느껴지자, 나는 주의를 돌리기 위해 황급히 말을 꺼냈다.


"어...엄마! 사실은 어제 누나가 조금 이상했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그,그게 뭐랄까... 조금 무서웠다고 해야할까요..."


나는 어제 있었던, 누나가 내게 했던 일을 일부 털어놓았다.

자고 있던 내게 다가와 말을 건 일과 또 다시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킨 일 까지.

누나가 나의 몸을 더듬었다는 말은 그녀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가 대신 사과할게 아들."

"엄마가 내일 누나를 따끔하게 혼내줄게. 너무 걱정하진 마렴."


어머니께선 조용히 미소지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방금 전에 비해 손길이 조금 더 거칠어 진 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 뭔데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절대 여자들과는 엮이지 마렴."


"네?"


비록 순간이지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조용하고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와는 달리 섬뜩하기 그지없는 경고.

이는 슬슬 몰려오던 나의 졸음을 한 방에 달아나게 하기 충분했다.


"엄마와 누나...를 뺀 여성하고는 말도 섞으면 안돼."

"조금은 너무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알겠니?"


"...네."


여기서는 그녀의 뜻에 맞춰드릴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아니라고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답변을 들은 어머니께선 생긋하고 눈 웃음을 지은 뒤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 착하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엄마가 도와줄테니 안심하렴... 쉬이이..."


어머니께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어떤 영문에서인지는 몰라도 깜짝 달아났던 잠이 솔솔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어서일까? 덕분에 너무나도 피곤해서? 그게 아니라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뭐가 어찌되었든간에, 이상한 일 이었다.


***


본래 이 글은 중편으로 계획했었고 크게는 상 중 하로 나누어서 연재할 생각이었음.

쓰다보니 좀 길어져서 장편이 된거다만 아무튼 오늘 분량까지 해서 '상'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임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는 부분인 만큼 잘 읽어줬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