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292A_0120_010_0010



근세(近世)의 학자라고 말해지는 사람이란 우리 학문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며, 또한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도 않는다. 입으로 조잘대고 귀로 들은 것만을 주워 모아 겉으로 언동(言動)을 꾸미는 데에 지나지 않으나, 자신은,


“나는 도(道)를 밝히오. 나는 이치를 궁구하오.”


하면서, 한 시대의 보고 들음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고찰해 보면 높은 명망을 턱없이 거머쥐려던 것뿐이었고, 그들이 본성(本性)을 높이고 도(道)를 전하는 실상에 있어서는 덩둘하여 엿본 것도 없는 듯하니 그들의 마음씨는 사심(私心)이었다. 그렇다면 공(公)과 사(私)의 분별이요. 참과 거짓의 판별이다.


개인적인 해석->아가리로 씨부렁거린다고 다 학문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공적인 이야기로 공평하게 이야기되어야 학문이다.



슬프다! 거짓이 참을 어지럽게 하여 온통 이러한 극단에 이르게 하고는, 마침내 임금으로 하여금 도학(道學)을 싫어하여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이는 거짓과 사심을 지닌 자들의 죄이지 어찌 진유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으랴.


또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위의 파트가 있는데 성리학 원툴이었던 조선 시대에 있어 꽤나 특이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