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얘들아,너희가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할거니?"

여러 제자가 말했다.

한명은 나라를 강하고 튼튼하게 하겠다고 했다.다른 누군가는 앞의 나라보다 조금 더 작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고 했다.다른 누군가는 예와 제례를 담당하는 자리로 만족한다고 했다.

모두가 어느 직위를 얻어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답변이었다.

뒤에서 거문고를 타던 증점에게 공자는 물었다.

"증점은 어떻게 할거니?"

증점이 거문고를 멈추고 답했다.

"저는 조금 다릅니다.늦봄에 봄 옷을 입고 어른들 아이들과 어울려 물놀이하고 바람쐬다 돌아갈 겁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증점처럼 하겠다."



ㅡ!!뇌피셜 주의!!ㅡ


개인적으로 논어의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앞의 제자들이 어떻게 답했는지는 저도 잘 기억이 안납니다.인터넷 보고 베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중요한건 증점의 말이죠.

유교는,유가는 기본적으로 정치 사상으로 출발한 학문입니다.혼란한 시대를 바로 잡기위해 생겨났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유가 정치 사상을 넘어 유교,즉 여러 사람들이 따르는 가르침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증점욕기의 성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증점은 정치를 한다면 권력을 얻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시기에 맞춰 알맞게 지내며,삶을 즐기고,그 즐거움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죠.

동양 철학의 기본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부려서,권력과 재물을 탐해서,내 욕망을 채우려하지 않죠.오히려,만약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꾸로 하게끔 합니다.재물을 원한다면 욕심부리지 말고,권력을 원한다면 권력에 집착하지 말고,극락을 원한다면 극락에 대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하죠.

집착할수록 버둥대고,버둥댈수록 늪에 빠집니다.늪에서 나가려면 침착하고 천천히,한번 움직일 때마다 신중해야하죠.


저는 증점의 의견을 "권력에 심취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으며,가장 먼 길을 통해 뜻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적극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하겠다,저렇게 하겠다는건 권력에 심취해 백성을 쥐락펴락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도가처럼 무위냐면,아닙니다.예로 돌아가야하죠.

권력에 심취하지 않고,내가 백성들보다 위에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합니다.위정자의 예는 그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는 세상의 예를 회복하는 '가장 먼 길'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그 길이지요.

백성을 쥐락펴락 하겠다는 권력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봄에는 봄에 맞는 행위,그 시기에 맞는 행동을 취하는 예를 통해서,그것을 나부터 실천하면서 살겠다는 길입니다.

분명히 이 길은 정말 먼 길일겁니다.법을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이렇게 행동하라고 시키면 정말 쉽겠죠.

하지만 그건,정말로 백성들이 예를 체득한 것일까요,아니면 예를 따르는 형식만 허례허식으로 뜻도 모른채 그저 행동할 뿐일까요?



말이 길었군요.결국 요약하자면,

"증점이 원한 바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었다.공자의 뜻은 이것이었다."

라고 하고싶었습니다.

사람을 휘두로고 다스리는건 왕의 행위지 선비의 행위는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