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은 없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정해진 공식설정이 없다는 것임.

뭐가 되었든 쓰는 사람 마음대로임

재단 사이트 자체가 이야기를 올리는 '창작 플랫폼'이지, 거대한 단일 세계관을 만드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나 거대 인터넷 잉여들의 설정 딸딸이로 보면 곤란함. 

자주 보이는 질문 유형중에 SCP-096(얼굴보면 쫒아와 죽이는 애) 얼굴보고 우주로 가면 어떻게 됨? 주머니차원으로 가면? 소설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식의 질문이랑, 여기서 [데이터말소]된 부분 원래 뭐임? 그래서 SCP-579(자료 전체가 말소되어있는애) 정체가 뭐임? 식의 질문, GOC랑 재단이랑 싸우면 누가이김? 하는 식이 꽤나 많은데, 이 모든것의 답은 바로

자기 생각하기 나름, 작가 마음임.

GOC는 아예 피직스 분과라는 군사 분과가 있으니까 나름 잘 싸우지 않을까? SCP-5000(재단인 인류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평행우주)에서는 나름 잘 버텨주기도 하고?하는 식으로 어느정도 생각하며 유추해 보는것도 재미 있지만, 그렇다고 누가 옳고, 누가 틀린게 아님. 어차피 정해진게 없으니까. ㅇㅇ

작품 외적으로 보자면, 새로 온 사람들이 세계관을 공부하지 않게 하면서, 작가들 입장에서도 쓰는데 제약이 되지 않게 하는 장치임.

작품 내적으로 보자면, 일부 문서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문서다, 혹은 각각 평행우주다(후자의 경우가 더 많은거 같더라) 식임.


SCP-231(괴물을 잉태한 여자아이)에 나오는 몬톡 절차를 예로 들어보자.

SCP-231의 몬톡 절차에선 몬톡 절차가 정확히 뭐인지 설명하지 않고 대충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져버린 의사와 아동성범죄 전과가 있는 D계급이 필요하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주변 사람들은 그 정체에 대해 공포감을 나타낸다. 정도밖에 없음.

우리는 대충 아동 ㄱㄱ같은거 생각하겠지만, 어떤 테일에서는 몬톡절차의 정체가 사실 그냥 별거 없고 D계급 인원 들어가 동화책 읽어주는 거임. 단순히 주변인의 공포감이 231의 출산을 억제한다는 컨셉으로 ㅇㅇ

그렇다면 이게 진짜 몬톡절차의 진실일까?

ㄴㄴ 다른데에선 또 다르게 묘사되기도 함. 그냥 일종의 이야기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는거임. 작가마다 생각하는것도 다르고. ㅇㅇ

또 다른걸 보면, 어떤 SCP는 SCP재단 자체가 한 소녀의 망상세계였다는 전개도 있고, 어디선 스크랜턴 닺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선 세계가 멸망하고, 어디선 재단이 대중에게 들통나 버리기기도 함.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항목이 SCP-001이라고 생각함. 표면적으로는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라는 컨셉이지만, 이렇게 한 당위성 자체도 001이라는 넘버링에 어울리는 작품들 여러개를 다 받기 위함이고, 서로 평행우주다는 컨셉도 있으면서 모순되는 항목도 있잖음. 우린 그냥 보고 즐기는 거임. 거대한 한 세계의 일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ㅇㅇ



이거를 딱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면, 미국 코믹스를 예로 들 수 있을거 같음.

어디서 보면 배트맨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고, 어디 보면 배트맨이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고, 어디서 보면 조커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디서 보면 로빈이 죽고 은퇴한 이후라서 완전히 늙어있기도 하고 그럼.


이 모든 배트맨의 모습은 하나의 세계관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들이 단일한 세계관 정합성에 귀속되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한 예시라고 볼 수 있음.

그리고 때로는 한 유명한 작품의 설정을 여러 작가들이 레퍼런스하면서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 되기도 하고(현재 변화된 조커의 캐릭터성 처럼), 캐릭터의 근간으로 여겨지던 설정을 부정하는 참신한 설정이 제시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통해 서로 상호작용하기도 함.


딱 재단이 이거랑 똑같음. 캐릭터 뿐 아니라 재단에 존재하는 모든 설정은 이렇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절대적이지 않음. 그리고 유명한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며 준-공식설정처럼 되기도 함. 그리고 그런 단단히 잡힌 것처럼 보이는 설정도 얼마든지 깨질 수 있음.

중요한건, 그 설정을 다 익힐 필요는 없다는 것과 얼마든지 모순된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건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하는 SCP재단의 창작 기조에서 비롯된 것임. ㅇㅇ



+

대신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한 세계를 상정하고 어느정도 유추하고 설정을 파는것도 상당히 재미있음. 그래서 재단은 국소적인 공식설정 비슷한 개념으로 '카논'을 제시함. 즉, <카논>이라는 명칭의 광의는 '어떠한 것에 대한 공식 설정'이고, 협의는 바로 이 '사이트에 정식으로 등록된, 특정 요소를 중심으로 글쓰는 글쓰기 테마'가 있음.

이렇게 등록된 창작 테마로는 왓이프(만약 죽음이 사라진다면? 재단이 대중에게 공개되어버린다면?) 세계관이나, 특정 사건/주제에 대한(전설속의 섬이 괴물에게 공격당한 사건, 위스콘신주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 변칙기술에 대한 이야기) 세계관같은 소규모의 세계관에 대한 테일이나 SCP를 쓰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음.

카논 중에 재미있는 거 있으니까 한번쯤 보는 거도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