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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읽고 플라톤 대화편 '이온'의 내용이 생각났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작중에서는 음유시인 이온에게 시인, 극작가, 음유시인, 배우가 하는 일은 기술이 아니라고 논증함. 그런 것은 의식적인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광기에 빠진 상태에서 행해진다고 주장함. 그리고 이 광기는 '뮤즈'와 같은 신적인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얻어짐. 예술적 영감은 광기에 빠진 상태에서 나온다는 것임. 그리고 예술의 출처가 광기이고 광기의 출처가 '뮤즈'이기 때문에 예술은 인간이 아닌 신의 산물이며 예술가는 신의 대행자이자 해설자가 됨.


그 근거로 배우가 연기할 때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면서 저절로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털이 곤두서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비일상적인 것이며 광기의 하나라는 것임. 또한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울고웃고 하는 것도 비일상적인 광기이며 이렇게 자석이 철을 끌어당겨 길게 이어진 고리를 형성하듯이 광기가 뮤즈로부터 극작가, 배우 , 관객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함. 그러므로 예술은 광기에서 나와 광기를 담으며 이 광기에 빠진 사람들은 '뮤즈'에게 씌인 상태, 홀린 상태라는 것임.


나는 여기서 위 글과 묘한 공통점을 찾았는데 플라톤의 주장에서 '뮤즈'를 상위 서사로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거임. 인간이 상위서사를 인식하는 것이 광기이며 예술적 영감은 상위서사와의 접촉에서 나타나고 예술 작품에는 상위서사가 섞여들어가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울고웃고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거지. Are We Cool Yet 관련해서 잘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은 다르게 생각해 델포이의 신탁이나 중세의 점성술, 동양의 사주팔자 같은 예언들의 출처가 상위서사라고 해보면 어떨까? 4차원에서 3차원을 내려다보듯이 예언자들은 상위서사를 인식하는 것을 어느 방편으로 극도로 단련해 상위서사의 하위서사, 즉 자신이 존재하고 잇는 서사의 기승전결을 때려맞추는 것이 예언이라고 하는 거지.


아이디어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에 맞는 스토리가 생각이 안나네. 내가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고 누가 좀 잘써먹어줬으면.


P.S. 다른 생각을 좀 적어보자면 완전튜링머신의 정지 여부를 판단하는 보편적 알고리즘의 존재 유무를 묻는 '정지문제'라는 것이 있음. 이 문제의 답은 '그런 알고리즘이 없다'임. 흥미로운 것은 알고리즘은 정지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인간은 정지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임. 이는 알고리즘과는 다르게 인간이 문제를 문제 밖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메타인지 능력을 가진다는 것임. 그리고 반대로 알고리즘은 알고리즘을 메타적으로 고려할 수 없으며 이것은 컴퓨터가 자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말임.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은 메타인지 능력을, 자의식을 갖는 것일까? 여기에 외부서사를 넣어봄. 인간이 변칙적으로 외부서사를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보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자신이 들어간 서사 밖을 인식할 수 있다면 역으로 그 외부서사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서사의 맥락 밖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인간이 자의식을 가진 것은 실은 외부서사의 존재와 외부서사를 인식하는 능력 덕분이라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