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삼성전기·농협·포스코 등 직원들 극단적 선택 잇따라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되도 직장인 자살사고 2021년 역대 최대
대책에서 열외인 대기업 직원 자살사고...정부, 개별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핀포인트뉴스 김국헌 기자] 대기업 직장인들의 자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업무상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기업들은 사실확인 전까지 기업과 관련없는 자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대기업 직장인 자살사고에 기업과 정부가 더 높은 관심을 갖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삼성전기·농협·포스코 등 직원들 극단적 선택 잇따라


20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한 여성 개발자가 지난해 9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네이버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던 30대 여성 A씨의 유족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19일 밝혔다.

유족들은 지난달 고용노동부에 “A씨가 생전 직장에서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왔다며 네이버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네이버에서는 지난 2021년에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21년에도 5월에는 40대 남성 직원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B씨가 남긴 유서에는 평소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B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 만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직원 A 씨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공식 사과했다. 이 GIO는 올해 안에 경영진의 쇄신도 이루겠다고 했지만 1년 반 만에 또 다시 자살사고가 발생해 할 말이 없어진 상황이다. 

어제인 4월 19일에는 경기도 수원 삼성전기 본사에서 20대 직원이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30분쯤 수원시 영통구의 삼성전기 본사 4층에서 20대 직원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직원은 당시 4층 복도 난간에서 1층 공동현관 쪽으로 투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행히 중상만 입고 구조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구체적인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 7일에는 점심시간 포스코 30대 중반 직원이 대치동 사옥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포스코 측은 포스코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맞으나 회사와의 관련성은 현재로써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현재 경찰은 이번 사고와 직장 문제가 연관됐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올해 1월엔 전북 장수군 농협에 재직하는 30대 초반 직원이 결혼한 지 불과 석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일하던 농협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열심히 해보려 했는데 사무실에서는 휴직이나 하라고 해서 (힘들었다)", "이번 선택으로 가족이 힘들겠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힘들 날이 길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감독 결과 A(33) 씨가 숨진 올해 1월 12일 직전까지 여러 상급자가 면박성 발언을 하거나 27만5천원짜리 킹크랩을 사 오라고 요구해 실제로 받아내는 등의 방식으로 그를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4월 17일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총 15건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실을 확인해 6건을 형사 입건하고 과태료 총 6770만원을 부과했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되도 직장인 자살사고 2021년 역대 최대



직장인들의 자살사고는 2021년 역대 최대를 찍는 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산업재해를 신청한 직장인 정신질환 사망자 수는 158명이었다. 그 중 88명(55.7%)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직장내 괴롭힘이나 직무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는 것이 인정된 것만 한 해 88명이었다는 소리다. 사망했지만 당국에 인정받지 못한 수치는 70명이었다. 이는 2013년부터 작성된 통계 중 역대 최대다.

아직 통계치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에는 더욱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예상이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이후에 직장인 자살사고가 더욱 늘고 있는 형국이다.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지난 3월 3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밝혔는데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여전히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신고 이후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 3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측은 지체없이 조사해야 하며,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에는 징계 조치를 하고 비밀누설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 경우 사측에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현행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은 오히려 사측이 처벌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 사측이 위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즉시 부과하지 않고 14일에서 25일의 시정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태료 처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상황이다. 이 시간동안 신고자들이 불이익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회사는 사건을 은폐하는 경우 역시 많다. 

스트레스와 더불어 장기간 근무시간도 직장인들의 자살을 부추기는 요소다. 한국 직장인에게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 1위는 ‘급성 스트레스 사건’, 2위는 ‘만성적인 장기간 근무시간’이다. 이는 자살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정부는 주 69시간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다 역풍을 맞고 있다. 


 대책에서 열외인 대기업 직원 자살사고...정부, 개별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중요한 부분은 대기업 직장인들의 경우에도 이런 자살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기업을 다니면 높은 연봉과 복지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 마련이지만 '헬조선'인 것은 똑같다. 

높은 물가에 한명만 벌어서는 살기가 쉽지 않아 맞벌이가 강제되는 형국에서 삶의 질은 점점 떨어져 간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과거와 달리 회사가 직원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다보니 극심한 생존경쟁에 노출된다. 대기업은 더욱 성과를 요구하기도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오랜 근무시간과 직장 내 괴롭힘까지 겹치면 자살충동이 더욱 크게 일어날 수 있다. 

자료: 정부

정부도 높은 자살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기업 직장인들은 사실상 열외돼 있다. 

최근 정부는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을 확정했다.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2027년까지 5년 내에 자살률을 30%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번 기본계획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 변화로 자살률이 급증할 가능성에 대비해 지역사회 생명안전망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있다. 직장인들의 자살사고를 막기 위한 뚜렷한 대책마련은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직장인 대책이 있더라도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게만 제도적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기업 직장인들은 소외돼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직장인 자살사고를 막으려면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하고, 특히 대기업 직장인들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며 "또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개정해 조사·조치의무 위반에 대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해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 교수는 “대기업 직장인 자살 예방을 위한 근무시간 조절, 초과 근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제공 등의 효과 분석이 필요하다”며 "정부 역시 대기업 직원들의 자살사고에도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는 사회적 약자에게 제도적 초점이 맞춰져 있을 수 있으므로 각각의 대기업들이 직장인들의 자살사고를 방지하려는 개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를 중시한 대기업에서 더욱 직원들을 채찍질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과만 요구하다가 직원들의 자살사고를 부추기는 결과를 낼 수 있다"며 "직원들이 보다 행복하게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대기업들이 여러 대책들을 마련해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