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미얀마내전과 한국전쟁의 공통점을 적어보고 중국이 국경에 있는 미얀마에 왜 개입하지 못하는지 적어보겠다.


1.민주정부가 상대하는 주적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들



1950년 대한민국 2020년대의 미얀마 모두 당시에 민주주의 정부들이 존재했고 물론 이에 맞서는 주적이 존재하는데 당시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과 김일성 ,미얀마 국민통합정부의 주적은 미얀마 군부로 여기서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들이 상대해야 했던 김일성,미얀마 군부 모두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 규범따위는 뀰까를 외치던 미친놈들인것 김일성은 당시 2차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역사상 큰전쟁이 끝난지 고작 5년밖에 지나지 않고 미소의 냉전이 시작되던 시대인데 불구하고 눈치없이 그것도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켜 우호국들인 소련,중국을 당황시켰으며 전쟁내내 인민재판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명사들을 납북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함 미얀마 군부 역시 코로나 19로 힘들고 민주정부가 미얀마를 갱생시키던 와중에 갑자기 말도안되는 총선부정선거를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평화적 시위를 하는 국민들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민간인 거주지에 폭격을 가하는등 그야말로 둘다 인간말종 집단들이다.


2.민주정부 초기의 열악한 군사력과 적대세력의 강한 군사력


1950년대 남북 군사력

한국전쟁 당시 전방 한국군의 화기

창설초기 시민방위군

초기 시민방위군의 화기 


1950년대 대한민국 정부의 군대는 한국군 국민통합정부의 군대는 시민방위군이지만 둘다 창설초기 무장이 빈약하기 그지없었는데 일단 한국군은 미국제 M-1 개런티,카빈소총이 주력무기였지만 수량도 얼마없고 대다수는 모신나강이나 일제 99식 소총이 대부분이었으며 제일 중요한 대전차 무기 곡사포 같은 무기들은 거의 전무했고 병력도 북한군이 20만명의 상비군을 보유한것과 달리 한국은 총병력이 9만언저리에 불가했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시민방위군 역시 군대는 창설했지만 일부만 M-16 같은 무기들을 가지고 있을뿐 대부분 시민방위군은 위의 사진처럼 사냥용 엽총을 주력무기로 활용했고 병력도 4천에 불과했다.



북한군의 소련제 탱크

미얀마군의 러시아제 장거리 미사일

미얀마군의 중국제 기갑전차


그에 반해 민주정부들인 대한민국 미얀마 국민통합정부가 상대했던 상대하고 있는 북한군,미얀마군은 이들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1950년대 한국군 2020년대의 시민방위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기갑전력과 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때문에 한국군이나 시민방위군 모두 목숨을 걸고 기갑부대나 미사일 부대에 대응하나 결국 밀려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으로 시민방위군은 밀림으로 후퇴하는등 전력의 차이 때문에 멸망직전에 놓이게 되며 우연의 일치인지  당시 북한군의 무기와 식량을 지원했던 국가들은 중국 소련이며 현재 미얀마 군부에 무기와 식량을 지원하는 국가들 역시 중국과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이다.


병력도 한국군 90000명 VS 북한군 200000명 , 시민방위군 4000 VS 미얀마군 3000000명으로 병력에서도 엄청난 열세를 보였지만 병력부족의 이유는 다른데 한국군의 경우 소련 중국과의 충돌을 우려한 미국이 한국군의 규모를 제한한것에 가깝지만 시민방위군의 경우 쿠데타가 갑자기 벌어졌기에 병력을 징병할 시간이 부족했던점이 다르다.


3.미국의 지원(미얀마는 미국이 무기지원 음성적인 지원,한국은 직접적인 지원)으로 인한 무장강화


무장이 강화된 한국군

M-1 개런티로 훈련을 받는 한국군 신병


미국제 소총들로 사격훈련을 받든 시민방위군 병사들


이전보다 무장과 패턴이 단일화된 시민방위군

미국의 군사략 투입이라는 직접적인 점과 간접적 지원이란점이 다르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1950년대 트루먼 행정부 2020년대의 바이든 행정부 모두 민주정부 군대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데 일단 트루먼 행정부는 미국제 대전차 무기 ,대량살상용 무기 ,M-1 개런티 , 카빈소총 같은 미국제 무기들을 대량으로 한국군에 보급하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며 한국군은 M-1 개런티 ,카빈소총등 미국에게 무기들을 대량으로 보급받으며 무장이 강화되며 전투력이 올라가게 된다.


시민방위군 역시 미국의 공식적인 지원은 아니지만 동구권 무기 (조사결과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은 혹여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본국에 동구권 무기들을 잔뜩 들여다 놓는다고 한다,)들과 미국제 M-16, AR 계열 소총 같은 서방권 무기들과 동구권 무기들을 대량으로 지원받으며 위으 사진들처럼 무장이 강화되면서 군복과 무장이 패턴화 되면서 정규군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국군은 병력을 90000명에서 580000명선으로 늘렸고 시민방위군 역시 4000명이던 병력을 30000대로 늘린다.


동맹세력들의 지원과 반격


한국전쟁에 참가한 유엔 참전국들

국민통합정부 지원 안건 때문에 뭉친 소수민족 연합체 


한국전쟁의 한국군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지원을 국민통합정부의 시민방위군은 카친독립군,친국민전선 같은 소수민족 반군들의 지원을 받게된다.


한국전쟁 당시에 대한민국 정부가 소멸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 주도하에 유엔안보리회의가 열리게 되고 당시 상임이사국중 하나인 소련의 불참아래 미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유엔군을 파병해 한국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게 되고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지원역시 시민방위군이 미얀마군의 압도적인 화력떄문에 밀림으로 밀리게되자 국민통합정부가 소수민족 반군들의 지원요청을 급박하게 요청하게 되자 소수민족 반군 연합체 회의가 급히열리는데 당연히 안건은 국민통합정부 대한 지원문제였다.


회의에 참가한 소수민족들은 카친족,카렌족,아라칸족,샨족이었는데 회의결과 아웅산 수치 석방요구와 시민방위군에 대한 군사훈련과 병력지원에 합의하게 되는데 연합체는 카렌족 무장반군인 카렌민족해방군이 공식적으로 국민통합정부와의 연합을 거절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카친족 무장단체인 카친 독립군 (KIA), 샨족 무장단체인 친국민전선(CNA)이 시민방위군에 대한 훈련지원과 병력지원을 맏을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군은 유엔군과 미군의 병력과 무기지원을 받으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게 되고 그결과 1950년 9월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하게 된다.





시민방위군 역시 친국민전선,카친독립군등 소수민족 반군들의 군사훈련 병력지원 (군부를 공격하거나 시민방위군과 연합해 공격하는 형태) 미국의 무기지원?을 바탕으로 미얀마군을 공격하면서 친주,민닷,시가잉 같은 미얀마 서부지역들의 통제권을 되찾게된다. (실제로 10월달에 미얀마군 1592명이 전사하고 552명이 부상을 당했다.)



번외 중국이 한반도와 달리 미얀마 군부를 직접적으로 도울수 없는 이유


중국이 미얀마 군부를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미얀마 일대가 밀림이라 언제든지 소수민족 반군들의 습격을 받을수 있으면서도 미얀마 군부를 직접적으로 도와주었다간 본인들이 주장하는 내정불간섭 원칙에 어근나는등 문제가 많고 소수민족 반군들의 통제지역인 카친주,샨족 자지지역을 본인들의 영토라고 우기는 행태로 인해 소수민족 반군들과의 관계도 최악이기 떄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얀마 군부를 돕기위해 유조차 차량들을 미얀마 국경으로 보냈지만 이를 포착한 카친 독립군 (KIA)이 발사한 로켓포 공격에 유조차 차량들이 모조리 격파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으며 고작 백신지원과 상임안보리 거부권 행사 같은 인도적 지원과 외교적 지원만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