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통일하고 경주 서라벌의 인구 30여만 명을 자랑했던 융성한 국가 신라


하지만 백제 라이징(340년대 근초고왕~380년대 근구수왕)과


고구려 라이징(400년대 광개토대왕~500년대 문자명왕)이 일어나던 당시 신라는 좆밥이었다


이름도 신라가 아니라 사로국


현재의 경주시 일부와 울산 일부 정도에만 영향력이 뻗치는 국가였고


그 외의 지역은 그냥 동맹 수준의 다른 족장국가(Chiefdom)으로 이루어진


고대 연맹왕국 수준의 행정상태였다


똑같은 연맹왕국이었지만


남쪽에 조금 있던(당시 아직 간척이 안 되서 남부에 평야가 많진 않음) 평야를 독차지하고


일본, 낙랑, 백제 등과 교역하며 융성한 경제를 일구는 동시에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철기를 만들던 가야(하라)에게는 한참 밀리는 수준이었다



당시 고구려, 백제, 사로국의 왕 호칭은 이랬다


고구려: 태왕

원래 이 태왕이라는 칭호는 진시황이 쓰려던 칭호임

엄연한 천자의 호칭이었고 실제로 천자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음


백제: 어라하, 건길지

'어라'는 크다는 뜻이며(그래서 한강이 어리수/아리수라고 불림) '하'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고구려어인 '가'에서 온 걸로 추정함

건길지에서 "건(鞬)"은 크다는 뜻이고 길지는 왕이라는 뜻

둘 다 "대왕"을 당시 백제에서 쓰던 말로 바꾼 걸로 보이며, 역시 천자 칭호임


사로국 왕: 이사금, 마립간

이사금은 '잇금'에서 온 말인데 '이빨이 많다'는 뜻임(...) 당시 사로국은 덕이 많은 사람이 이도 많다고 믿는 미개한 나라였음

마립간은 "간 중의 간"이라는 뜻으로, "간"은 추장이라는 뜻. 즉 "추장 중의 추장"이라는 뜻


대충 당시 사로국이 얼마나 위상이 허벌이었는지를 명실공히 보여준다


한 번은



그리고 광개토대왕은 5만 명의 병력을 백제 땅을 통과시켜서 곧바로 서라벌에 밀어처넣었다


어찌나 급격한 기동이었는지 백제는 고구려군이 자기 땅 밟고 지나간 걸 알지도 못했고


순식간에 고구려군은 왜군을 물리치고 가야를 평정해 버린다


이 한 번의 전쟁으로 백제의 동맹국으로서 남방을 지배하던 금관가야는 사실상 멸망하고 대가야가 라이징한다


그리고

(정황상 고구려군은 사로국에 들어와서 상당한 민폐를 끼친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사로국의 내물 마립간은 자기 발로 고구려까지 천릿길을 마다않고 걸어가서


국내성(한반도 최북단)에 도달하여 광개토대왕에게 직접 무릎꿇고 예를 표하는 굴욕 끝에


주둔군 비용 100% 부담은 물론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고구려 장군이 사로국의 내정간섭을 하는 것에 동의하는 치욕을 맛본다


이어서 내물 마립간이 늙어 죽자 고구려는

그렇게 고구려는 마립간 계승서열 한참 아래였던 실성 마립간을 옹립시켜 버린다


그러니까 고구려 마음대로 사로국 왕도 좌지우지하던 시대였음


그리고 실성 마립간이 고구려 말을 좀 안 듣기 시작하니까


또 끌어내리고 눌지 마립간을 앉힌다


그랬더니



사로국의 윾쾌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p.s. 살수대첩 정보글은 아직 자료수집중(중국 쪽 기록이 몹시 부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