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은 현재 1500대 가량의 3세대 전차를 보유하고 있고, 수백대의 3.5세대 전차를 보유 예정인 육군 강국임.


하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전차도입 역사를 한 번 알아보자.



1. 전차도입 이전(1950년대 이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완전히 독립국가로 서기 전, 한반도에는 대한민국 국군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국방부에서 언급하는 의병, 대한제국군, 한국광복군을 언급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랬다. 대한제국군은 1907년에 일본 제국의 강요로 해산, 의병은 1909년 일본 제국의 남한대토벌 작전을 비롯한 각종 탄압으로 국권을 뺏긴 1910년대 이후에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국광복군은 여러 활약을 하긴 했지만, 한반도에 진출하지 못한 채 일본이 패망해 한반도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군과 정부가 완전히 갖춰진 1948년 8월 15일 이후에는 전차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사실 전차를 도입할 수 있을 뻔 했다. 미 군정은 이미 카이로 선언에서 보장한 대로 한반도에 독립 국가를 수립할 생각이었고, 군대를 창설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에 따라 1945년 11월 13일에는 군정청에서 법령 28호로 조선군정청국방사령부를 창설하고, 이 휘하에 남조선 경비대를 창설하게 된다. 이 국방사령부가 국방부, 통위부 순으로 개명했고, 남조선 경비대가 조선 국방경비대로, 1945년 11월 11일에 창설했던 해방병단(海防兵團)이 해안경비대로 바뀌어 통위부 휘하에 들어가는 식으로 초기 군대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경전차 M24 채피를 공여할 의사가 있었지만, 미 군사고문단에서 한반도 지형을 보고 "전차가 적합하지 않다"는 보고를 올려 전차 제공은 무위로 돌아간다. M4 셔먼이나 M26 퍼싱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6.25 초기에 한국군에는 독립기갑연대가 있었는데, 경전차조차 없던 나라에 독립기갑연대가 있었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


당시 독립기갑연대에는 미국이 공여한 기갑장비가 있긴 있었다. 아래 사진이 독립기갑연대가 보유한 기갑 차량이다.



M8 그레이하운드 (정식 이름은 M8 Light Armored Car. M8 경장갑차)


승무원 : 4명 (전차장 겸 장전수, 포수, 운전수, 보조운전수)

전장 : 5.01m

전폭 : 2.54m

전고 : 2.64m

중량 : 7.8t

장갑 : 5~19mm

엔진출력 : 110hp (82kW)

주무장 : 37mm M6 대전차포

부무장 : .50구경(12.7mm) M2 중기관총 1정, .30구경(7.62mm) M1919 1정

항속거리 : 도로 주행시 560km

최고속도 : 도로 주행시 89km/h




M3 하프트랙 (정식 이름은 M3 Carrier, Personnel, Half-Track. M3 보병수송반궤도장갑차)


승무원 : 1명 (탑승자 12명)

전장 : 6.17m (롤러 장착시)

전폭 : 2.223m

전고 : 2.26m

중량 : 9.07t

장갑 : 6~12mm

엔진출력 : 147hp (110kW)

항속거리 : 320km

최대속도 : 도로 주행시 72km/h


보시다시피 둘 다 장갑차다. 그나마도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M8 그레이하운드 27대, M3 하프트랙 24대였다. 한국 정부에서는 몇 번이나 전차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상 거절되었다. 이 상태로 T-34를 앞세운 북한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맞이한 대한민국 국군은 속절없이 밀렸고, 한국 지원을 결정한 미군도 스미스 특수임무대를 시작으로 제24보병사단을 투입해서 참패했다. 이후 일본에 주둔하던 M24 채피 경전차를 투입했지만, 애초에 T-34/85는 중(中)전차. 체급에서부터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당연히 발렸다.


이 시기 한국군은 1949년 1월 3일에 국방부 보병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육군보병학교(1949년 7월 29일 개칭)를 1950년 8월 10일 육군사관학교와 통합해 육군제병학교로 개칭하면서 부산 동래의 동래고등학교와 동래여고를 징발해 이전했다. 1950년 9월 7일에는 이름을 다시 육군종합학교로 개칭한 뒤에 전차부대 창설 요원을 차출하고, 미국이 한국군에게 전차를 지원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교육용 기갑장비를 지원하게 된다.



M36 잭슨 (정식 이름은 M36 90mm Gun Motor Carriage, 혹은 M36 Tank Destroyer. M36 90mm 자주평사포)


승무원 : 5명 (전차장, 포수, 장전수, 운전수, 보조운전수)

전장 : 7.47m (포신 포함), 5.97m (포신 미포함)

전폭 : 3.05m

전고 : 3.28m

중량 : 29t

장갑 : 9.5~127mm

엔진출력 : 450hp (240kW)

주무장 : 90mm 53구경장 M3 대전차포

부무장 : .50구경(12.7mm) M2 중기관총

항속거리 : 240km

최고속도 : 도로 주행시 42km/h


이 대전차자주포는 1950년 10월 말에 6대 제공되었고, 이 장비를 이용해 전차기간장병 교육에 나서지만, 1951년 1월 중순에 미군이 다시 M36 대전차자주포를 회수고, 1951년 2월 16일에 육군종합학교는 다시 육군보병학교로 개칭된다. 그러나 전차의 필요성은 있었고, 대한민국 국군은 1951년 2월 21일에 보병사단에 전차중대를 편제하는 것을 인가한다. 1951년 3월 중순에 미군은 추가로 기갑장비를 공여하는데, 여기는 기존에 회수했던 M36 잭슨 외에 다른 장비가 있었다.



M32 구난전차 (정식 이름은 M32 Armored Recovery Vehicle)


승무원 : 4

전장 : 5.9m (차체), 5.5m (A-frame boom 길이)

전폭 : 2.7m

전고 : 2.94m

중량 : 29.16t

장갑 : 13~51mm

엔진출력 : 350 or 400hp (261 or 298kW)

견인중량 : 9.1t

항속거리 : 190~240km

최대속도 : 39km/h


이 당시 지원된 M36 잭슨은 무려 38대, M32 구난전차는 2대가 제공되었다. 교육용으로 6대 간신히 얻어냈다가 금방 회수당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양. 이후 미군은 전차 제공에도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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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전차 제공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