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아프리카 대륙은 어마어마한 자원 매장량과 덕분에 많은 외부 국가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19세기 유럽 제국들은 고무와 같은 자원들을 채취하고 면직물 등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였고, 오늘날 강대국들은 주로 지하자원을 노리고 접근한다.



그런데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있다. 다른 모든 유럽 제국들이 아프리카에서 힘을 잃을때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힘을 발휘하는 나라, 그 나라는 바로 프랑스다. 이 글은 프랑스 신식민주의의 역사와 원리, 그리고 오늘날 맞이한 문제점들에 대한 글이다.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식민화한건 180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유지비와 미국의 압박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1960년, 프랑스는 식민지의 대부분을 독립시킨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마침내 자유였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파리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한지 60년이 넘어가는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아직도 프랑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옛 식민 제국들 중에서 과거 식민국들에 대한 통제력이 프랑스만큼 강력한 나라는 없다. 그리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은 강압적이었다.


CFA 프랑은 1945년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도입된 화폐다. 이 화폐는 오늘날까지 두개의 통화 연맹에서 쓰이고 있다. 하나는 카메룬, 가봉, 차드, 적도기니, 콩고 공화국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 소속된 CEMAC이고, 다른 하나는 말리, 베넹, 토고, 니제르, 세네갈, 기니비사우,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가 속해있는 UEMOA다. 이 두 개의 프랑은 과거에는 프랑, 현재는 유로에 고정환율제로 엮여있으며 가치가 같다. 오늘날 이 두 프랑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1억 8000만명에 달한다.



1 유로에 667프랑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통제 정책이 도입되었다. 프랑화를 쓰는 나라들은 엄격한 재정 운용 규정을 준수해야하며 따라서 경제적 자율성이 극도로 제한된다.


CFA 프랑의 기원이 식민 시절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화폐가 도입된 이유는 철저히 제국주의적이었다. 프랑스는 이 화폐가 식민지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주장했지만, CFA 프랑은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설계되었다. 이 통화는 프랑스 재정부에 의해 발행되고 통제되었다. 파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화폐를 조작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CFA 프랑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예전에는 외환보유고의 50%를 프랑스 재무부 산하의 '경영 예금 계좌'에 넣어야한다(이조차도 과거 100%에 비해서 낮아진거다). 이 돈은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제 결제를 담보로 입금, 인출이 가능하다.



이론상으로 보자면, 이런 시스템은 프랑스가 일종의 태환성의 보증인 역할을 맡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환이 부족해져 곤경에 빠지는걸 막기 위해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미 엄격한 규정들을 통해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설계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로 보증해주는 체제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이런 기능은 불필요하다.



프랑스가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던 진짜 이유는 자국에게 유리한 무역 관계를 위해서였다. CFA 프랑 덕분에 프랑화 지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대금 결제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카카오 5억 유로를 구입했다고 치자. 프랑스는 그 5억 유로를 자국 내의 경영 예금 계좌에 넣기만 하면 된다. 분명히 타국에서 물품을 구매했지만, 지불한 돈은 프랑스를 벗어나지 않는다.


CFA 프랑은 프랑스의 프랑사프리카 (Françafrique) 정책의 도구로 쓰였다. 대영제국과 다르게 프랑스는 구 식민지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식민지들을 해방시킨 이후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제하려 들었다. 여기에는 나중가서 CFA 프랑에 가입한 비-프랑스권 국가들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도, CFA 프랑 체제에 가입한 적도 없는 국가들도 포함됐다. 프랑사프리크 정책은 명목상으로는 아프리카와 프랑스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끝나지 않은 간접 통치였다.



CFA 프랑화를 통해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구축한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엘리트층에게 접근했다. 부패한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한 프랑스는 매우 저렴한 값에 주요 자원들에 대한 접근을 확보했고, 원활한 제조품 수출 등의 경제적 혜택도 보았다. 자국이 아직도 세계적 강대국이라는 자부심도 누릴 수 있었다. 전성기에는 약 26만명의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석유 산업과 광산업 등지에 종사했다.

물론 때때로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프랑스 및 그 협력자들의 착취와 위선을 비판하면서 권력을 잡았고, 프랑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프랑스는 이런 지도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방법을 써가며 응수했다. 외교적 압박, 경제적 제재, 불안정화 전략, 암살, 쿠데타 사주, 심지어 직접적인 침공까지. 196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프랑스의 개입은 거의 매년 일어났다.


단적인 예는 1960년 당시 기니였다. 기니의 대통령이 프랑화를 버리겠다고 선언하며 자국만의 화폐를 도입하자, 파리는 즉각 위조 지폐를 기니 전역에 살포했다. 기니의 경제는 붕괴했고, 오늘날에도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빈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2년에는 말리가 이탈하자, 프랑스는 주변 국가들에게 말리와의 무역을 제한할 것을 명령했다. 말리의 모험은 결국 화폐 가치가 무너지면서 물거품이 되었고, 프랑화가 재도입됐다.



프랑스의 패왕 놀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는 1963년 자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나려던 토고의 올림피오 대통령을 (아프리카 최초의 쿠데타를 통해) 암살했다. 인근 독재자들과 힘을 합쳐 부르키나파소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토마스 상카1라를 사살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황제에 등극한 보카사를 폐위시켰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민주콩고와 나이지리아의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했다. 르완다의 종족 분쟁에서 거의 100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하는걸 묵인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신식민주의적 개입의 사례는 2011년 코트디부아르 내전이다.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아 야권 지도자 와타라가 이끄는 반란에 직면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프랑스는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와타라를 응원했고, 코트디부아르의 경영계좌를 동결시켜 외국과의 모든 거래를 틀어막았다. 그바그보 대통령이 자국만의 화폐를 창설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려 하자, 프랑스는 군대를 파견해 그바그보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렇듯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대부분 파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했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들도 프랑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아프리카의 피를 빨아먹었다.


이런 프랑스의 활발한 개입주의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발현되었다. 강경 우파에 가까운 샤를 드골의 아프리카 정책들은 좌파 사회주의자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시절에도 지속됐다. 2000년대에 집권한 우파 사르코지는 리비아의 독재자를 몰아내고 코트디부아르에 개입하였으며, 후임으로 온 좌파 올랑드는 말리에 5천명을 파견해 이슬람 극단주의와 싸우며 프랑스의 영향력을 유지시켰다. 두 대통령 모두 식민제국 시절을 미화하며 고압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이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는 법. 근래 들어서 프랑스의 억압적인 정책들은 거센 대내외적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CFA 프랑화는 물론이고 프랑스의 영향력 자체가 아프리카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서민층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프랑스 여론이 퍼지고 있다.



점점 커져가는 현지의 반프랑스 감정은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들이 쉽게 침투할 여건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프랑스의 영향권인 서아프리카에도 대규모 경제적 투자를 하며 프랑스의 패권을 갉아먹었다. 러시아는 점점 프랑스의 군사적 지배를 흔들고 있고, 지중해에서 프랑스와 겨루는 터키도 최근 이 지역과 가까워지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 내에서도 CFA 프랑과 프랑사프리크의 효력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프랑화의 폐지와 신식민주의적 개입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보다 나은 관계 설정이 프랑스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물론 CFA 프랑이 실제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반론도 있다. 프랑스의 엄격한 통화 정책은 프랑을 쓰는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며 경제적 안정성을 선물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파리의 통화적 통제를 받는 국가들의 인플레율은 그렇지 않은 이웃들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학계와 아프리카인들의 주류 의견은 다르다. 제한적인 통화 운용 때문에 프랑화 지역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더 힘들다는 주장이다. 비판론은 다음과 같다.


• 프랑스가 준다는 경제적 안정성은 바로 그 프랑스 때문에 깨질 수도 있다. 프랑스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환율을 조작할때마다 프랑화 국가들은 내부적 혼란에 빠졌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가혹한 조치들을 시행해야했다.
• CFA 프랑은 그것을 사용하는 국가들이 농업, 광업 등의 1차 산업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산업화를 막았다.
• CFA 프랑은 프랑화 지역의 역내 무역과 경제적 통합을 돕기는 커녕 사실상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 부유한 아프리카 엘리트들이 외제품을 사는데만 이익을 줘서 빈부격차와 부패, 프랑스와의 유착을 고착화시킨다.
• 앞서 서술했다시피, 프랑을 쓰는 국가들이 프랑스에 대한 수출로 벌어들이는 유로는 해당 아프리카 국가로 이동되지 않고 프랑스 내에 계속 남는다.


실제로 오늘날 CFA 프랑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도 낮은 인간개발지수(HDI)를 선보이고 있고, 경제 상황도 70년대보다 더 안 좋다. 따라서 프랑화는 아프리카 각국 국민들이 아닌 프랑스를 위한 화폐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실 프랑스 내부에서도 좀 논란이 되는 또다른 이유는 CFA 프랑이 과연 프랑스에 특별한 이득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1960년대 이후 프랑스의 발달하는 경제에서 아프리카 대륙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으며, 오늘날 프랑스의 아프리카 5대 교역국들 중 프랑화권 국가는 없다. 결국 현재의 프랑화 지역은 큰 이익을 가져오거나 하는게 아니며, 따라서 국익의 관점에서도 굳이 프랑화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른게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대승을 거둔 마크롱은 스스로 경제적 우파, 사회문화적 좌파를 표방했으며, 아프리카와의 관계에 있어서 보다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우선, 마크롱은 식민지 시절 통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선거 당시 알제리 식민 통치를 비인간적인 시대였다고 말한 것이다. 프랑스 제국주의 역사에 있어서 알제리는 일제가 조선을 대한 것과 비슷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자국의 일부로 봤으며 끝까지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기나긴 전쟁 끝에야 독립을 인정했다. 그가 프랑스 우익 진영의 강력한 반발과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 알제리 식민화를 비판했다는건 많은 긍정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크롱은 최근에 주요 아프리카 문화재들을 다시 반환하기도 했다.



마크롱 정권은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코로나 판데믹 와중에도 프랑스의 아프리카 원조 금액은 오히려 수억 유로 증가했다. 이런 소프트 파워 투사는 중국으로 대표되는 기타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무엇보다 주목을 끈건 바로 CFA 프랑 폐기 선언이었다. 2019년 12월 21일, 프랑스와 프랑화 지역 국가들은 기존의 CFA 프랑을 에코(Eco)라는 화폐로 대체하는데 합의했다. 외환 보유액의 50% 이상을 프랑스에 넣어야 한다는 조항이 폐지되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보증인 역할을 하며, 유로에 대한 환율 고정도 변함이 없다. 에코는 2027년 서아프리카 국가 8국에 먼저 도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인기는 거듭해서 하락하고 있다. 2021년 Africalead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 프랑스의 호감도는 일본보다도 낮아져 터키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어째서 "개혁가" 마크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고전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는 마크롱 본인의 오만한 태도다. 2019년 말 프랑스 군인 13명이 헬기 사고로 전사하자 마크롱은 서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에게 파리로 날아와 긴급 회의를 할 것을 요구했는데, 신식민주의적 오만함이 드러난다며 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욕을 먹었다.



마크롱은 알제리에게 식민 시절에 대한 배상은 물론 사과조차 할 마음이 없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식민 제국 시절을 호의적으로 보며 알제리 등의 구 식민 국가들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 마크롱 또한 이런 여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프랑화 개혁도 비판받고 있다. 비록 경영 예금 계좌라는 제도는 사라졌지만, 에코는 여전히 프랑스에게 의존적인 화폐다. 프랑스는 여전히 이 지역의 통화 정책을 사실상 통제하게 되고, 에코를 쓰게될 나라들은 여전히 여러 불이익을 받는다. 프랑스는 자국의 영향력이 축소될까봐 두려워 가나와 나이지리아 같은 다른 역내 국가들이 참가하는걸 막았다.


마지막으로 대테러리즘 정책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프랑스는 올랑드 대통령 시절에 테러리스트들을 싸우기 위해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5000명을 파견했다. 하지만 9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테러리즘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지의 여론은 점점 프랑스군에게 안 좋게 변하고 있고, 결국 마크롱은 작년 7월 프랑스군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마크롱의 어설픈 개혁적 정책은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만 낳았다. 프랑스는 여전히 다른 나라들에게 역내 파이를 뺏기고 있고, 반프랑스 감정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중국은 계속해서 아프리카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터키도 협력을 늘리고 있다.

제일 이목을 끄는건 러시아다. 작년 초, 러시아는 프랑스가 개입해있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 사실상 러시아군이나 다름없는 용병부대 바그너 그룹을 정부군 측에 파견했다. 이는 사실상 프랑스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보였다. 중앙아프리카 정부도 민주주의 등의 문제로 토를 달며 정부에 비판적이던 프랑스 대신 러시아를 택했고, 은근슬쩍 반프랑스 선전을 해댔다.



결국 프랑스는 같은 해 6월에 중앙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종류의 지원을 끊으며 강경하게 나왔지만, 정부군은 바그너 그룹의 도움 덕분에 1년만에 전황을 완전히 뒤집는데 성공했다. 러시아도 이에 대한 댓가로 중요 광산들에 대한 접근을 확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가 정치적 불안정성을 이유로 말리 등에서 반쯤 철군하겠다고 하자, 말리 정부는 즉시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바그너 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2020년 쿠데타로 집권한 고이타 대령은 사실상 독재자에 등극했는데, 각종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결탁했다. 그가 독재자에 등극하자, 인근 프랑화권 국가들은 미영프의 지지를 받으며 자체적으로 말리를 제재했다. 러시아는 말리 군부를 지지하며 UN 제재가 통과되는걸 저지시켰다.



두 프랑화권 국가에서 프랑스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한 것은 프랑스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복합적인 이유로 영향력을 잃고 있으며 점점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타 세력들도 해결할 과제들이 많다. 중국의 의도가 신식민주의적이라는게 점점 드러나면서 중국의 이미지도 조금씩 훼손되고 있고, 터키는 근본적으로 프랑스와 겨룰 자원이 부족하며 본국의 경제 상황부터 해결해야하는 처지다. 러시아가 중아공에서는 승리를 거뒀을지 몰라도 사헬에서 똑같은 승리를 거둘지는 불확실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마크롱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마크롱의 아프리카 정책은 지금까지 좋지 않은 성적을 보여줬다. 만약 마크롱이 아프리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처럼 더 대담해지고 뻔뻔해지며 통제적으로 아프리카 패권을 유지하던가, 작정하고 아프리카 나라들과의 새로운 시작을 도박하던가, 혹은 전혀 색다른 접근을 하던가.



프랑스의 아프리카 지배는 폭력적이었고 불합리적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어설픈 시도들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프랑스는 여전히 프랑스다. 경쟁자들에 비해서 문화적 우월성을 가지고 노련하며 민주적인 국가 말이다. 비록 현재 상황은 안 좋아보이지만, 프랑스는 아직 아프리카에서 끝난게 아니다. 엘리제 궁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결론 - 프랑스가 괜히 유럽의 '짱깨', 아니 어쩌면 그 아래다.


출처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409585&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