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인기인중 한명인 여포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연의에서처럼 무력만센 병신이었을까? 아니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내용처럼 엘리트에 머리도 똑똑한 로멘티스트였을까?

 

 


여포(呂布)의 자는 봉선(奉先)이고 (병주) 오원(五原)군 구원(九原)현 사람이다. 효무(驍武-사납고 용맹함)하여 병주(幷州)에서 복무했다. (병주)자사 정원(丁原)이 기도위가 되어 하내(河內)에 주둔하니 여포를 주부(主簿)로 삼아 크게 친근하게 대우했다. 

-[위서 여포전]

 

(병주 오원군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산골짜기 어디쯤 되는 극 깡촌으로 출신조차 제대로 언급이 안되어 있는걸로 보아 그리 좋은 집안 출신이것 같지도 않다. 다만 딱히 미천한 출신이라는 말도 없기에 평균적인 깡촌 사족(士族) 출신으로 보인다.)

 

 

 

하진이 패망하고 동탁이 경도(京都-수도)로 들어왔는데, 장차 난을 일으키기 위해 정원을 죽이고 그 군사들을 아우르려 했다.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 받는 것을 보고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게 했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로 나아가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騎都尉)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하여 부자(父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다. 

- [위서 여포전]

 

(동탁의 회유에 넘어가 정원을 죽인건 사실이지만 정사에는 정원을 아버지처럼 모셨다는 이야기는 없다. 즉 정원이 여포의 양부였다는 말은 과장이다. 하지만 동탁과 부자관계를 맺은건 팩트이다.)

 

 



여포 등이 선언하길 “양인성 성중의 적들이 이미 도주하였으니, 응당 추격하여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놓칠 것이다.” 라 했다.

바로 밤에 진군하였지만, 성중의 수비가 이미 갖추어져 있어 엄습할 수 없었다.
 
이에 관리와 병사들은 주리고 목말라, 인마(人馬)가 극도로 피곤하였는데, 또 밤이 되니 (진영에는) 참호와 보루도 없었다. 갑옷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데, 여포가 또 깜짝 놀라 외치길 

 

“성중의 적들이 나왔다.” 고 하였다. 군사들은 요란하게 달아나 모두 갑옷을 버리고 안장과 말을 잃었다. 10여리를 행군하여 적이 없음을 알자, 날이 밝아올 쯤 다시 되돌아와 병기를 수습하고 진격하여 성을 공격하려 했다. 성의 수비는 이미 견고하고 파놓은 참호도 깊으니, 호진 등은 공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영웅기]

 

(전에는 용감하게 적을 추격해야한다며 진군하다가 밤에는 제풀에 놀라서 나오지도 않은 적이 나왔다고 설레발치다가 아군을 작살내놓는 어쳐구니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끈임없이 보여줄 어포의 종이멘탈은 이미 이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곽사(郭汜)는 성 북쪽에 있었다. 여포는 성문을 열고 군을 이끌고 곽사에게로 나아가 말했다, “군사들을 물리고 다만 (우리끼리) 몸소 싸워 승부를 가름하자.” 곽사와 여포는 더불어 싸웠는데 여포가 모(矛)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와 곽사를 구했다. 이에 곽사와 여포는 각각 그만두었다. 

-[영웅기]
 
(삼국지에 몇없는 일기토 기록 보유자인 여포, 소설처럼 일대 수십을 찍는 장면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용맹과 무예가 결코 평범한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수 있다)
 
 
 
여포는 스스로 동탁을 죽여 원술의 원수를 갚았으므로 그의 덕을 보고자 했으나 원술은 그의 반복(反覆-언행을 이리저리 고침)함을 꺼리어 여포를 거절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위서 여포전]
 
(원술이 여포를 대우하는 모습으로 보아 이미 여포의 인성이 천하에 알려젔음을 알수있다)
 
 
 
여포는 자신이 원씨(袁氏)에게 공(功)이 있다하여 원소 휘하의 제장들을 업신여기며 오만하게 굴고 (그들의 관직이) 함부로 서치(署置)한 것이라 하여 족히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영웅기]
 
(나중에 원소에게 잠깐 의탁했으나 워낙에 처신머리 없이 굴다가 원소에게 죽을뻔하고 도망친다.)
 
 
 
(여포가) 출발하려 할 때 원소는 갑사(甲士) 30인을 보내며 여포를 전송하는 것이라 말했다. 여포는 그들을 장막 옆에 멈추게 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장막 안에서 쟁(箏)을 연주하게 했다. 원소의 군사들이 누워있자 여포는 머지않아 장막을 나와 떠났는데 원소의 군사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밤중에 거사하여 여포의 이불을 베고는 여포를 죽인 것으로 여겼다. 
-[영웅기]
 
(꾀를 써서 원소를 속여넘긴걸 보면 은근히 잔머리는 잘돌아가는 모습이다.)
 
 
유비가 동쪽으로 가서 원술을 공격하자 여포는 하비(下邳)를 습격해 차지하고, 유비가 되돌아가 여포에 귀의했다. 여포는 유비를 소패(小沛)에 주둔하게 하고, 서주자사(徐州刺史)를 자칭했다
-[위서 여포전]
 
(의외로 안유명한 유비 통수치는 장면, 이 통수한방으로 유비는 서주의 주인에서 동네 알거지로 전직했다가 간신히 소패에 발붙일수 있게 됬다)
 
 
 
 “현덕(玄德-유비)은 내 동생이오. 동생이 제군(諸君)들에게 곤란을 겪으니 이 때문에 구원하러 왔소이다. 내 성정이 어울려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나 다만 싸움을 화해시키는 것은 좋아하오.” 
-[위서 여포전]
 
(통수 갈길땐 언제고 이제와서 친한 동생이라 하시는 여포님)
 
 
장패(臧霸)가 소건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소건의 자실(資實-군수물자)을 빼앗았다. 여포가 이 일을 듣고 친히 보기(步騎)를 이끌고 거현으로 향했다. 고순(高順)이 간언했다,  
 
“장군께서 몸소 동탁을 주살하여 이적(夷狄)들에게 위세를 떨쳤으니 단좌고분(端坐顧盼-단정히 앉아 주위를 돌아봄)한다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자연 외복(畏服)할 것입니다.
 
가벼이 친히 출군해서는 안 됩니다. 혹 이기지 못한다면 명성을 손실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장패는 여포의 노략질을 두려워하여 과연 성 위로 올라가 맞서니 여포는 이를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이끌고 하비로 되돌아왔다. 그 뒤 장패는 여포와 다시 화해했다. 
-[위서 여포전]
 
 
(부하말 안듣고 덤볐다가 한번 작살난뒤에 화해하는 모습. 여포는 평생을 그랬지만 적의말은 잘듣고 부하말은 안듣는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선주는 소패(小沛)로 돌아와 다시 군사를 합쳐 만여 명을 얻었다.여포가 이를 꺼려 친히 출병해 선주를 공격했고 선주는 패주해 조공(曹公-조조)에게 귀부했다
-[촉서 선주(유비)전]
 
(그 친한동생이 군사모으는건 싫어서 다시한벅 밟아주는 우리 여포님)
 
 
 


여포가 태조에게 말했다,   “내가 제장들을 후대했으나 제장들은 위급해지자 모두 나를 배반했소.”   태조가 말했다,   “경은 처를 저버리고 제장들의 부인을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   여포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영웅기]
 
 
(로멘티스트라는 말과는 달리 남의 아내 뺏는걸 좋아하는걸 조조에게 지적당하자 아무말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평한다. 여포는 효호(虓虎-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다. 그러나 특출한 지략은 없었고 경박하고 교활하게 반복(反覆-언행을 이리저리 바꿈)하여 그의 안중에는 오직 이익 밖에 없었으니,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가 이멸(夷滅-멸망)되지 않은 적이 없다. 
-[위서 여포전 진수의 평]
 
 
(실로 정확하기 그지없는 여포에 대한 평가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배신은 뭐 말할것도 없는 달인이고 잔머리는 쓸줄 알았지만 장기적인 계획과 그걸 구상할 대가리가 전무했고 성격이 아예 밑바닥을 보이는 인간이었다. 남의 여자 좋아해서 부하들 여자까지 뺏어가는건 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