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609년, 류큐 왕국 쇼씨 왕조 쇼네이왕 치세






저 멀리 바다 건너 일본의 사쓰마 번, 시마즈 가문의 당주, 시마즈 다다쓰네는 씹창나버린 속을 쓸어내리며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지난 날,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맞대결, 일본 전국시대 종지부인 '세키가하라 전투'에 지원병력을 보내지 않고 중립을 지킨 대가로 전투의 승자인 도쿠가와 가문, 즉 에도 막부에 충성심을 보일 지랄옆차기 환상의 X꼬쇼를 펼쳐야하기 때문이다.









그 이벤트란, 바로 명나라 조공국인 류큐 왕국을 정벌하는 것.
당시 류큐 왕국은 조명일 3국 중개무역으로 짭짤한 중개수익을 당기며 외화를 쌓고 있었고 180여 년간 평화체제를 유지한 터라 군사력은 X창난, 그야말로 먹음직스러운 상태였다.





시마즈는 곧장 고블린 3000기를 출병시켜 12일만에 류큐 왕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고 왕인 쇼네이왕은 납치하여 전리품으로써 에도(오늘날 도쿄)로 부리나케 압송시켰다.






시마즈 가문의 출세 프로젝트는 당시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쇼네이왕을 알현시킴으로써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아비를 납치당한데다 고블린들한테 국가를 유린 당해버린 류큐 왕자는 피눈물을 흘렸다








류큐 왕자는 자신이 사쓰마 번주와 직접 얘기해서 아비를 구출해내겠다는 일념으로 사신단을 꾸려 일본으로의 항해를 결심한다.






물론 맨 입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물 독 안에 집어넣기만 해도 저절로 술이 만들어지는 주천석(酒泉石)과 거미줄로 한 올, 한 올 땋아서 세상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만산장(漫山帳)과 같은 진귀한 보물들을 배에 가득 싣고 뇌물로 바칠 생각으로 출발을 한다.








그러던 차, 몽골 형님들도 따인 남해바다의 씹창난 풍랑을 만나버렸고






왕자와 사신단들은 제주도에 조난 당하고 만다








제주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제주목 관아 소속 관군들은 류큐 왕자와 사신들을 잡아들여 무슨 일인지 고하라고 밝혔고







류큐 왕자는 제주목사 이기빈에게 아비가 납치된 원통한 내 속사정을 들어달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 얘기를 들은 제주 주민들은 쇼타왕자의 효심과 딱한 사정에 아래위로 축축해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보물 이야기를 들은 이기빈은 갑자기 주천석과 만산장을 꺼내보라고 하더니 보물을 휙 보고 돌려주지 않은 채 왕자와 사신들을 처형시키라고 명한다.
이후 조정에는 왜구들이 침략하여 참수했다는 장계를 올려버린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아무리 재물이 탐나도 그렇지, 조선 = 소짱깨란 말인가?



















사실 이 이야기는 '쇼네이왕 납치까지'가 진짜고 그 뒤로는 전부 구라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도 기록되었고 조선 사회에 만연히 퍼진 이야기이다.
오죽했으면 조선 후기 때 가서도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이런 개씹새끼짓을 한 이기빈에 손사레칠 정도로 오래도록 전래된 유명한 썰이다.






진실이 궁금한 실학자 정동유는 류큐 사람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진짜 냐고 물어봤었는데 류큐 사람들은 그뭔씹 표정을 지으며 처음 듣는 얘기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외 일본이나 명나라측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그럼 왜 이런 기록이 있는 걸까?












왜긴 왜야, 광해군 다음 임금인 인조가 왕위찬탈하고 광해군을 개씹새끼로 만들고 싶어서 실록인 광해군일기를 주작했기 때문이지.
조선사에서 병신같은 기록이 있으면 대부분 이 새끼나 세조를 찍으면 둘 중 하나가 만든 짓이다.
착한 유붕이들은 외교 ㅈ박고 청나라 황제한테 대가리 세번 조아린 이 병신이 만든 이야기에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