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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종 다른 두 암컷 두루미의 슬픈 '러브스토리'

두루미·큰두루미, 종과 성별 뛰어넘는 사랑… '무정란' 낳아

입력 2010.08.26 02:58




서울동물원의 두루미와 큰두루미가 종(種)과 성별을 뛰어넘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서울동물원에 사는 6살 두루미와, 17살인 큰두루미. 두루미와 큰두루미는 모두 암컷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더니 지난달 큰두루미가 두 개의 알을 낳아 동물원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두루미(red-crowned crane)와 큰두루미(sarus crane)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생김새와 서식지가 달라 야생에서는 만나기도 어렵고 짝짓기도 같은 종끼리 하고 있다. 두루미는 온몸이 흰색이고 이마에서 목까지는 검은색이지만, 큰두루미는 날개 부분이 어두운 회색이며 얼굴 전체가 붉은색으로 모양이 다르다. 또 두루미는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 등지를 오가는 철새인 반면, 큰두루미는 인도에서 필리핀제도에 이르는 남동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등지의 늪과 습지에 사는 텃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서울동물원 큰물새장(직경 90m, 높이 30m)에서 태어나 방사장에서 다른 희귀 조류 170여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지난 4월 말 서로 구애(求愛)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지인환 사육사는 "방사장에 한 마리뿐인 큰두루미가 산란기(7~8월)를 맞아 외로워서 두루미 암컷을 골랐을 가능성도 있다"며 "큰두루미가 두루미 곁을 맴돌며 다른 새들의 접근을 경계하고 섬세한 구애춤을 추고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는 등 사랑을 구하자, 두루미가 큰두루미 곁을 돌며 엉덩이를 보이는 암컷 특유의 짝짓기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급기야 지난달 22일과 25일에는 큰두루미가 큰물새장 안 호수 위에 만들어진 인공섬에 두 개의 알을 낳았고,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알을 품고 있다. 서울동물원은 "둘 다 암컷인 데다 다른 종인 두 조류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알을 낳은 것은 처음"이라며 "실제 짝짓기는 하지 않았지만, 교감을 통한 호르몬 분비로 알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은 부화가 되지 않는 무정란(無精卵)이라고 서울동물원은 밝혔다. 지 사육사는 "부화 기간인 31~35일이 이미 지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두루미와 큰두루미는 건강한 새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며 "어미의 정성을 다해 알을 이러저리 굴려가며 품고 있다"고 전했다.

한 마리가 알을 품으면 다른 한 마리는 철통 같은 경계를 서고 있지만, 이 '연인'들은 조만간 알을 빼앗길 것 같다. 강형욱 서울동물원 홍보팀장은 "알을 보호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큰두루미와 두루미의 건강을 위해 조만간 알을 품에서 빼낼 계획"이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특별한 사랑이 가슴 아프지만,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와 국제 멸종위기종인 큰두루미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