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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스파르타는 소수의 완전시민계급이 군사훈련에 전념하고 다수의 예속민으로부터 부양을 받는 사회구조였음.


이 예속민들은 본래 메세니아라고 스파르타 북쪽에 위치한 도시국가의 후예였음.


기원전 9~8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리쿠르고스의 개혁(이 리쿠르고스란 인물은 한 사람의 실존 인물이 아니고 꾸준히 군사개혁을 해온 스파르타 지도층의 행적을 합친 전설이라고 보는게 정설임)을 거쳐 우생학을 신봉하는 선군사회가 된 스파르타는 메세니아를 점령하고 가혹하게 통치했음.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 끝에 자리해서 산투성이의 험하고 협소한 땅 뿐이었음. 보통 헬라스 도시국가들은 땅이 부족하면 땅 찾아서 배타고 나갔는데 스파르타는 - 흑해 방면 빼고 - 어떤 도시국가들보다 바다로 나가는게 당연했을듯한 입지에 불구하고 바다를 거부하고 북쪽 평야의 이웃인 메세니아를 점령하는 길을 택했음.* 스파르타와 그 라이벌로 꼽히는 아테네은 본래 둘 다 미케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데(스파르타는 도리아인 계통의 미케네 도시, 아테네는 미케네와 같은 아카이아인) 이렇게 전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함.


'리쿠르고스의 개혁' 이전의 스파르타는 다른 폴리스처럼 제전도 있었고 축제도 있었고 심지어 춤과 노래로 유명했었음. 흔히 알려진 스파르타의 이미지 치곤 깬다 싶지만 원래 이들은 남녀 할것 없이 가무와 스포츠를 즐기는 활달한 미케네 문명의 후예임. 뭐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귀부인이 아르테미스처럼 전차 타고 활 빵빵 쏘며 사냥을 즐기던 미케네 문화의 흔적은 탱탱한 스파르타 처자들한테나 희미하게 남아있긴 하다고 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네


스파르타는 영토방위와 메세니아 점령지를 유지하려면 엘리트층 즉 순혈 스파르타인의 역량을 온전히 군사화에 쏟아야 한다고 보고 극단적인 병영국가, 선군사회를 유지했음. 몸을 단련하고 전투력을 키우는것과 상관없다고 간주된 행위은 모두 금지되었음. 이로서 문학, 예술, 철학같은건 말할것도 없고 스파르타 완전시민은 격투기 시합도 금지되었음. 기권이나 항복은 씹게이나 하는 짓이라고 한것도 있고, 전쟁도 아니고 시합따위에 가뜩이나 숫자가 적은 완전시민을 잃는건 말도 안된다는거지. 


침략하지도 침공당하지도 않고, 변치 않고 지속할 수 있는 궁극적 사회구조를 세우려고 했던 스파르타는 그 대가로 아놀드 토인비의 표현을 빌자면 '갑옷을 입고 선채로 죽은 시체'가 되어갔음. 혼자서는 밥도 못먹는 군대개미처럼 경제와 문화가 좆망테크 타서 그 창을 밥먹여주는 메세니아인을 묶어놓는데에 쓸 수밖에 없었음. 스파르타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나오는 메세니아 뿐만 아니라, 스파르타 내에도 스파르타인의 수발을 드는 예속민으로 끌려온 메세니아인들이 이를 박박 갈고 있어서 이 상태에서 본진 비우면 바로 나라 엎어진단 두려움이 강했음. 


이런 일화가 있음.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인들은 허 시발 촌놈들이 싸움은 독하게 잘하네...? 하고 용병으로 콜을 받곤 했는데 스파르타도 콜을 받은 적이 있음.

"그래서 거 얼마나 가야됨?"

"배타고 편도 한달요"

"시발 너 스파이지 새꺄" 


한편 메세니아인은 스파르타에 수백년간 예속당했지만 스파르타가 침략자란 사실을 잊지 않고 이를 갈았음. 스파르타는 메세니아인의 무기를 빼앗고 린치를 가하고 손목...이 아니라 목을 따서 겁박할 줄이나 알았지 문화나 경제력으로 메세니아를 융화시킬 역량이 없었음. 메세니아 잡아두려고 그딴거 애저녁에 포기한거라.


스파르타가 메세니아를 지배하는 동안 두 차례의 메세니아인 반란(2차, 3차 메세니아 전쟁)이 있었음. 이게 수백년간 단 두 번 일어났다고 겨우?가 아님. 10년, 20년 넘게 끌고 인종청소가 벌어지고 그 스파르타인이 농군들에게 학을 떼고 노이로제스러운 탄압을 벌이게 만들 정도면 더이상 그저 그런 노예 반란같은게 아니지비. 그야말로 전 메세니아인이 스파르타를 상대로 맨주먹으로 벌인 전쟁이었던 거임. 


스파르타는 이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첫번째 반란에선 메세니아 탄압 정책을 완성하고 두번째 반란에선 스파르타 본토에서 메세니아인을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살아남은 메세니아인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했음. 화해나 유화정책 쓰기엔 이미 스파르타가 부카니스타 된지 몇 세기나 지난지라, 메세니아한테 얕보이는건 빠른자살각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컸음.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자가 되었지만 스파르타는 원래 방구석 여포였음. 그리고 스파르타인의 그 유명한 자제력은 스파르타 사회에서 찐따 안되려고 기를 쓰던거라, 같은 스파르타인의 눈초리라는 고삐가 풀려버린 스파르타인은 파견된 곳마다 개초딩짓을 하고 다녀서 순식간에 민심을 잃었음.


테베는 원래 아테네 재수없다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입해 싸웠지만 이제는 스파르타가 꺼드럭거리는걸 못봐주겠음+스파르타가 하도 병신짓을 많이 적립해놔서 도와줄 놈도 없음+작금의 스파르타가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던 그 스파르타가 아닌걸 보고 곧 준비에 착수했음. 모든 시민이 스파르타같을순 없지만 당시 스파르타 완전시민 군대와 규모와 훈련강도가 비슷한 신성♂부대♂를 만들어 전투의 중핵으로 삼고 명장 에파미논다스의 신박한 지휘로 남은 스파르타 군대를 털어버리는데 성공했음.


그러고나서 테베가 스파르타를 확실히 고자로 만들기 위해 한 일은 메세니아 해방이었음. 각지의 그리스 식민지에서까지, 스파르타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났거나 도망친 메세니아인들에도 해방 소식을 알리고 불러들였음. 에파미논다스는 메세니아가 스파르타 핵심계급을 먹여살리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갈아마셔도 시원찮도록 미워하고 있단걸 정확히 찌른거임.


메세니아는 니들이 농사 지어보든가?ㅋㅋㅋ 하고 스파르타에 보내던 모든 자원을 끊어버리는걸로 500년만의 복수를 할 수 있었음. 스파르타는 아무리 빡쳐도 미네랄없고 밥집도 다 터진 판에 다른 폴리스들이 전부 븅신ㅋㅋㅋ 꼬시닼ㅋㅋㅋ 하고 메세니아를 편들고 있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음. 그 뒤 스파르타는 반도 끝 바위투성이 산골짜기의 해병 민속촌이 되었고 메세니아는 수백년간 폐허로 방치되어온 옛 도읍들의 터를 찾아 빠르게 재건해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대표하는 폴리스로 그럭저럭 잘 지냈음.


물론 발 좀 펴고 살만해졌다고 사이가 좋아지기엔 원한이 너무 깊어서 메세니아와 스파르타는 그 뒤로도 계속 다툼이 잦았음.


메세니아와 스파르타 사이엔 타이게투스 산(빈유나 허약한 애들 킥더베이비 하던 그 산 맞음ㅇㅇ)이 있는데, 이 산에는 제우스를 모신 신전이 있었음. 스파르타도 메세니아도 여기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신전과 그 주변 땅에 관한 소유권 시비가 끊이지 않았음. 쉽게 말해 서로 꺼지라고 한거


서기 25년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파견된 관리가 이 문제에 관한 소송을 접수했음. 지방관은 양측의 대표에게 신전이 원래 어느 쪽의 소유였는지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음.


스파르타는 수 세기동안 뭘 적어서 남긴단 개념 자체가 증발했던지라 증거라고 제시하는게 우리 할배의 할배의 할배의 할배부터...하는 식으로 구전된 이야기들을 읊는 거였음. 


이때 메세니아 대표단은 메세니아가 스파르타에게 점령당하기도 전에 세운 비석을 제시했음. 800여 년 전 조상들이 세운 비석의 존재를, 내용과 위치까지 알고 있었던 거임. 당연히 이 소송은 메세니아가 이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