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국방력 2위인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는 강군이 된 결정적 원인은 역시나 2014년 부터 진행 되어온 돈바스 전쟁을 꼽을수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돈바스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은 부패한 동구권 군대에서 강력한 서방권 군대로 변한다.


돈바스 전쟁은 루한스크,도네츠크 지방이 우크라이나 정부로 부터 반기를 든 사건으로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은 반군들이 우크라이나군을 공겨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오데사까지 번졌으나 다행히 우크라이나군이 신속히 반군들을 진압 하면서 돈바스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약 8년간 전쟁이 진행되어 2022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번졌다.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전쟁을 통해 강군이 된 이유 1번째는 바로 실전경험과 러시아군 군사교리를 파악으로 우크라이나군의 경우 8년간 진행된 돈바스 전쟁을 통해 다량의 실전경험과 데이터를 쌓을수 있었다.


병사 개개인이 실전경험을 보유한 베테랑들로 변하기 시작해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즈음에는 돈바스 반군들이 우크라이나군에게 밀리기 시작해 러시아군이 개입하기 전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


또한 친러반군과의 전투를 통해 지속적 으로 러시아군에 대한 군사교리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러시아군이 어떠한 방식으러 전투를 진행 하는지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기 시작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 전쟁을 통해 강력한 군제개혁의 필요성을 느껴 미국과 서방과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강력하 군제개혁을 단행 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징병제를 부활 시키는 동시에 나토군 교관들을 자국으로 초청해 우크라이나군 신병들을 훈련 시키게 했으며 또한 돈바스 전쟁을 통해 떠오른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을 초고속으로 승진 시킨다.


또한 신의 한수적인 결정을 하니 바로 민병대 조직인 아조프 연대를 국가방위군 소속 특수부대로 편입 시키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공수군의 규모를 기존 2개 여단에서 8개여단 으로 확충시킨 결정이다.


이는 신의 한수적인 결정으로 전쟁이 터지자 우크라이나 공수군은 호스토멜 공항전투에서 러시아군 스페르나츠를 저지해 키이우 방어에서 공을 세우는 동시에 예하 부대인 제 40 공수여단은 체르노빌 발전소를 탈환 했으며 제 81, 25 공수여단은 우크라이나 가을 공세에서 동부의 요충지 리만을 탈환 한다.


아조프 연대의 경우 마리우폴 전투에서 무려 82일간 항전 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재정비 시간을 벌어 주었으며 부대의 명성이 폭발 지원자들이 아조프 연대에 입대하며 서방과 미국의 무기지원을 적극적으로 받는 부대가 된다.






우크라이나군의 경우 돈바스 전쟁에서 친러반군을 상대 하기 위해 나토국가들로 부터 적극적인 무기도입을 시도 하게 되는데 이때 도입한 무기들이 바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바이락타르 무장 드론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제 대전차, 지대공 미사일, 무장드론을 도입 하는 동시에 나토군 교관들로 부터 이들 무기들 사용법 훈련을 적극적으로 받기 시작했으며 그외에도 다양한 서방제 무기 사용법을 훈련 받는다.


그결과 러시아군 기갑여단들이 수도 키이우로 진군 하자 능숙하게 재블린,NLAW 대전차 미사일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바이락타르 무장드론을 능숙하게 사용해 러시아군의 장점인 기갑 웨이브 전술을 갈아 버리며 수도 키이우를 방어하는데 성공 한다.




적극적으로 무기개발에 매달려 BTR-4 장갑차, 넵튠 대함 미사일 같은 무기들을 개발 하는데 넵튠 대함 미사일은 오데사 방면 우크라이나 해군에 인도 되었으며 BTR-4 장갑차는 아조프 연대에 배치 된다.


넵튠 대함 미사일은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을 수장 시키는 활약을 하며 수병 300명을 오데사 해안에 수장 시키며 흑해함대에 타격을 주었다.


BTR-4 장갑차는 아조프 연대의 주력 무기로 사용되며 30mm 기관포 공격으로 러시아군 T-72 전차 5대를 격파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러시아군 보병들의 저승사자로 활약을 했다.





 돈바스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2014년 크림반도 강탈 때와는 달리 강력한 군대로 성장 하자 올리가르히들과 러시아 관료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 했다.


이전 처럼 친러반군을 지원하자는 것으로 진짜로 국가대 국가의 전면전으로 갔다간 러시아군 사상자 피해도 만만치 않은 데다 우크라이나 같은 규모있는 국가와 전쟁을 했다난 100% 장기전으로 러시아의 경우 소련시절 부터 굉장히 장기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국가로 1980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규모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했다가 실패해 국가적 타격을 받은적이 있다.


푸틴의 경우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분 없이 우크라이나를 공격 했다가 서방제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 히며 원래 목표인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동시에 9월과 11월에 우크라이나군의 역공을 엊어 맞으면서 큰 병력 피해를 보았는데 당장 서방 정보기관들이 추정하는 러시아군 사상자 규모가180000~200000명대이다.  


반면 서방 정보기관들이 추정하는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규모는 100000명대로 그중 전사자가 5만명인데 러시아군 보다 사상자 규모가 적은 이유는 바로 우크라이나군 야전병원 자체를 나토가 지원 해주고 있어 재빨리 치료를 받고 부상병들이 전선으로 복귀하고 있고 또한 우크라이나군의 경우 거의 병력을 온존히 보존하는 선택을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