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제가 후한을 건국해 황제가 된후 역모사건이 터지는데 바로 진정왕 유보와 백읍후 유양이 역모를 꾀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순이라는 신하가 이들을 주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광무제와 혈육들인 전환황족들의 사이는 최악으로 조목왕의 아들 유림과 광양왕의 아들인 유접은 본인의 혈족인 유수를 도와주지 않고 혈육인 광무제를 공격해 당시 광무제의 충격을 샀다,


이에 이들이 이들의 일족을 역모죄에 따라 멸족하라고 요구를 하자 광무제는 고민을 하다 관대한 조치를 넘어 이건 니가 이 혈육을 보호하는거 아닌가 하는 조치를 내린다.


얼마나 자기집안하고 사이가 안좋았냐면 광무제 본인의 조상들이 묻힌 전한황릉들을 도굴한 적미군 잔당을 용서하는 대인배적 행배를 보였는데 정작 적미군 본인들은 죽겠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광무제 유수는 진정왕과 백읍후가 역모를 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이에 진정왕 유보의 아들인 유양 ( 동명이인)을 진정왕에 봉했으며 백읍후 유양의 일족들 역시 처벌하지 않고 작위를 계승하게 했다.


그리고 자기랑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황족들을 죽였냐며 조정신료들을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광무제와 조정신료들간의 갈등이 알음알음 있었다.


진정왕 유보는 광무제에게 협력안 몇안되는 전한황족이었으며 유양은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으로 말만 황족이지 그냥 황성만 쓰는 백성수준이라 이를 안타깝게 본 광무제 백읍후의 작위를 내린 황족이다.


사실 광무제와 조정신료들간의 사이가 그렇게 썩좋지가 않았는데 이전에 본인을 상대로 싸웠던 황족인 유림을 광무제 본인이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했지만 이때 신료들이 나서 처형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지만 전투에서 크게 패해 처벌해야 했지만 그동안 전공을 감안해 용서하려고 했지만 신료들이 나서 군법대로 처형한다.





광무제 본인은 꼬우면 황족으로 태어나는다를 시전하며 백읍후 유양의 일족들을 처벌하지 않아 나비효과 나타나니 바로 백읍후 유양의 일족에서  바로 촉한의 시조 유비가 탄생한다.


삼국지 본기에 따르면 유비의 조상이 바로 백읍후 유양이라고 하는데 유양은 중산정왕의 5번째 서자인 육성정후 유정의 후손으로 광무제 본인이 황제로 있을때는 일반 백성이나 다름없었다.


이유는 조상인 중산정왕 유승이 아들만 120명을 둔 정력가인 동시에 전한이 왕망에게 멸망했기 때문으로 그나마 먼친적인 유수가 한나라를 재건했기에 황족혈통을 인정받아 백읍후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덕에 유비의 조부인 유웅과 부친인 유홍은 그래도 후한시기에 지방 호족정도의 대접은 받고살았으며 유비 역시 유원기라는 친척어르신이 노식에게 교육을 받게했다.




광무제가 재건한 후한이 조조에게 사실상 멸망당하고 조비에게 공식적으로 멸망당하면서 400년 한황실의 제사가 끝나나 했지만 광무제 본인이 혈육이라며 처벌하지 않은 유양의 후손인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며 한황실의 제사를 잊게된다.


유비는 한중공방전에서 조조군을 격파한뒤 한중왕에 오른뒤 촉한을 건국하며 황제에 오르는데 다만 본인은 촉한을 망한 전한-후한의 후신국임을 천명하며 제 30대 한나라 황제에 오른다고 답한다.


광무제의 행동 덕분에 제3의 한나라인 촉한이 삼국의 한축으로 자리잡은것으로 위나라는 한황실의 제사를 끊기위해 촉한은 조상의 땅인 장안을 수복하기 위해 무려 40년동안 전쟁을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