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구한말 최고의 후손과 최악의 후손을 두게되는데 직계후손은 아니고 이들의 모친이 바로 어머니가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다.


1명은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3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1명은 나라를 팔아먹으며 79세의 나이로 사망할떄까지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는데 의병장 안승우와 을사오적 권중현이 외가쪽으로 충무공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다.


안승우는 1865년에 태어났고 권중현은 1854년에 태어났으며 안승우는 안향의 후손인 부친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모친사이에서 권중현은 충장공 권율의 후손인 부친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모친사이에서 태어났다.




1865년에 태어난 안승우는 모친으로 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나라사랑을 교육받으며 자라 일찍부터 이항로 밑에서 학문을 연마했으며 1896년 일본의 한반도 병합야욕이 시작되자 마침내 지평군수 이영춘과 같이 의병을 일으킨다.


한승우의 의병부대는 제천성을 근거지로 하여 일본군을 교전을 벌였으며 한떄 일본군을 격파하고 충주성을 함락해 한성으로 들어갈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연합전선의 지휘관인 유인석 선생이 병크를 치면서 충주성을 버리고 제천성으로 퇴각한다.


그후 일본군의 병참선을 여러번 무력화시키면서 일본은 조선조정에 제천성과 안승우 휘하 의병부대를 진압하라른 압력을 넣는데 조선 관군이 제천성에 이르러 안승우에게 의병을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안승우은 일제와 결탁한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한 의병을 해산하지 않겠다며 관군의 제안을 거절했으며 관군은 제천성을 공격해 의병부대를 격파하고 안승우와 그제자인 홍사구를 사로잡아 사살했으며 이때 안승우의 나이 31세 홍사구의 나이 19세였다.




권중희는 조상들이 충장공 권율 충무공 이순신장군들로 조선판 명문가의 후손으로 일찍부터 가문빨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고종의 명으로 일본을 시찰한 동시에 군국기무처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개화파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독립협회 의원과 의정부 찬성을 역임했으며 을사조약 직전에는 농상공부대신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1905년 을시조약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행보로 권중현은 조상들이 피땀으로 지킨 나라를 일본에 홀라당 팔아버리는 매국노짓을 한다.


즉 을사오적의 일원이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그에대한 보상으로 작위를 수여받는 동시에 중추원 참의을 지내가 1934년 향년 79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죽었으며 형의 행보에 실망한 동생 권중면은 형과 절연했으며 조카는 임시정부에 투신한다.


충신가문에서 저러한 버러지가 나왔는지 의문일 정도이며 본인의 조상님들인 권율과 이순신 장군이 본다면 정말로 때려죽일 정도의 매국너 행보를 보이며 천수를 누렸다.





안승우는 조상인 충무공의 충절을 이어받아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잛은생을 장렬하게 마감했으며 권중현은 가문을 이용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짓을 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는 의병장 안승우와 청년 의병장 홍사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권중현의 재산은 친일재산환수위원회가 모두 몰수하게 된다.


안승우와 권중현의 모친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로 1명은 나라를 지키다 죽은 의병장이 되었으며 1명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되는 아이러히함을 자아내며 얼마나 교육이 중요한지를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