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갈아엎어져서 다행이다 X = 리셋시켜서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 메타가 되었다. O
까놓고, 농지를 모두 자영농으로 나눠준건 이상은 좋았지만, 농업효율로 따지면 병신 그 자체가 되기도함.
안그래도 땅도 좁아서 효율 극대화 땡겨야하는데, 자영농 메타를 돌리고있으니....
정확하게는, 토지개혁 끝나고 2달도 안되어서 북돼지가 쳐들어왔음. 헌데 이 새끼들 지들 땅에서 하던대로 지주들 장대에 메다꽂고 무상몰수 무상분배 당근 흔든 다음 -집단농장-하려고 웃는 낯으로 다가가보니 널려있는 건 감히 내 땅을 니들 멋대로 뺏아가겠다는 거냐며 사상이 아니라 눈이 빨개진 농민들이었고..
왕족은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한게 아니라, 시민의 위에 있는 상위개념임.
사유재산도 결국 보장되고, 이는 법이 보장함. 위에 말한 듯이 그걸 씹는 순간, 법 자체를 무시될 뿐더러,
그딴 선례를 남겨놓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 당신의 재산을 통째로 압류할 수 있습니다. 라고 선언하는 꼴임.
그럼 상류층들, 돈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영국에서 재산쌓아둘까? 아니면 자기 재산들을 외국으로 옮겨놓을까?
저거 날려버리는 순간 바로 유럽 미국 영연방 합심해서 영국에다가 경제 제제 박아버린다
국민 전부 다 아일랜드 꼬라지 나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됨
아 맞다 덤으로 왕실 재산 압류하면 그거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서 영국에 있는 모든 귀족들의 사유재산도 싹다 반납인데 영국 귀족들이 대부분 상하원 의원인건 알지?
글쎄 요순시대를 꿈꾸며 발전을 별로 안하고 하더라도 개혁가들 말로가 안좋으며 한 번 선례가 생기면 선왕이 행한 일이라며 상소러쉬 갈기는걸보면 과거지향적 맞는거 같은데?
단적으로 말해 호구조사를 백성들에게 가혹한 행위라며 욕하는건 고대엔 그럴싸했지 근대로 가는 중엔 별로였음
유교가 평화를 추구했다는건 나도 이해하는데 아무리 수백년 주기로 고인물을 깨버려도 시간 지나면 다시 똑같아졌다고 보임
전설을 모티브로 삼은걸 과거지향적이라 보긴 힘들지..
상소러시는 유교의 '온고지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도 결국 과거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자'라 과거지향적이라 하기에는 글쎄..
너가 미래지향적 과거지향적으로 비교하고 싶은건 알겠는데, 동아시아랑 유럽 상황 비교하는건 이미 많이 나와있으니 인터넷이라도 찾아보는게 좋을듯
글쎄 난 게이 말이 이해가 안가는데 과거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시대를 본받자며 주장하는걸 과거지향적이라 말해도 백프로 틀린건 아닌거 같음
물론 나도 좀 그 시대에 대해 비꼰거고 당장 조세제도나 군역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것처럼 과거에 안주했다 말하는건 아님
다만 뭐랄까 유교는 결국 변혁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모순이 심해져봤자 다시 아름다운 시절을 상기하며 이와같은 모습이 되자 말하는건 암만 봐도 고인물을 추구하는거 같음
게이야 답글 단 다른 게이가 평화를 운운한 이유가 바로 변혁을 두려워한 이유라고. (일단 겉보기엔)잘 돌아가는 제도 뭐하러 바꾸겠음?
그리고 과거지향이라기 보다는 보수적이라는 표현이 맞아보인다. 요순시대는 롤모델이고, 말마따나 과거의 '전설'이기 때문에 그거 하나만으로 과거지향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어보임.
막말로 유교도입 자체가 변혁의 결과물인데 그게 오랜 평화로 고이고 썩어서 게이가 말 하는 단점들이 나타난거지 유교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기엔 왕안석이 잘못한것도 있지만 필요이상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장거정 이전엔 좋은게 좋은거라고 본인들 이익에만 아주 적극적이었고 이후엔 반대파가 죽이려고 칼을 갈아서 오죽하면 삼년상도 두려워서 안치룸
걍 중국이나 한국사 보면 유교란건 결국 상류층의 출세도구 & 자기들 이익 지키는 용도라고 보임
내가 요순시대를 언급한건 실체가 불분명한 허상을 물고 빨며 추앙하며 본받자고 하는데 죽서기년보면 찬탈로 기록되었음
선양도 조온나 웃긴게 연나라때 그런 미담으로 한번 나라 조졌는데도 신나라때 또 그짓거리를 전국에서 지지했다가 그야말로 잃어버린 n년이 됐음
그 이후로 약간 머리가 깨져서 그런가 현실적이 된거 같은데 근데 웃긴건 왕망이 한건 ㄹㅇ 혁명급이긴 했음
걍 유교적 이상주의로 지지하다가 자기네 밥통 건드리니 돌변하는게 과연 진정한 유학자인지는 모르겠음
자, 논지를 좁혀보자면 다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음
"유교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가?"
난 거기에 아니라고 말 하는 입장임.
보면, 게이 말에도 모순이 있음. 유학자들이 요순시대를 이상향으로 물고빠는 광신도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자기 밥그릇 건드는 일에는 개처럼 으르렁대는 실리주의적(+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 게이가 보기엔 둘 중 어느 모습이 진심일 것 같음?
유교는 유학자, 동시에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였고,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네가 마지막에 말 하는 위정자로써의 모습이 진짜임.
애초에 당시 시대상이 계급주의 사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은데, 전쟁으로 땅 안갈아엎어지면 권력자들이 뭘 할 것 같음? 당연히 더 빨아먹으려고 들지 않겠음?
조선 초에 게이가 말 한 대로 행동했다가는 당장에 나라 쪼개질 판인데 그렇게 했겠음? 게이가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조선 중~후기 문제점들이라고. 적어도 빅-유교맨 킹세종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라는거임.
통치 도구라는 건 겉보기엔 그럴싸해 보이고, 실제로 그럴싸하게 작동하면 대부분 문제 없이 돌아가는거임. 유교도 마찬가지고. 근데 할 짓 없이 탱자탱자 놀다보면 군대에서도 후임 갈구는 기술만 늘듯이 통치 도구도 썩어서 변질되는거라고. 이해 됨?
서양이 발달한 이유중 하나는 철학도 있음
신대륙은 그렇다 치고 왜 구대륙에서 유럽만 특출나고 저 제국주의 시대땐 전세계가 서양의 장난감이 됐을까를 논하자면 기본적으로 이걸 다뤄야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나 국민의 기본권 같은 개념이 유교에서 발생했을까를 논하려는 의도도 있음
자세한건 있다 내가 함 정리해서 댓를 달게
있다 답변 못할거 같아서 기본권에 대해 미리 조금이라도 풀자면 저 프랑스대혁명의 3대 슬로건인 자유 평등 재산권이나 형사들이 내미는 영장 같은 존재 자체가 난 과연 유교권에서 나올까 의문임
유교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을 요구하며 계층간 차이를 나눔
거기다 전통적 동아시아 사회에서 상인층의 대두도 별로 없고 오히려 이들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게 기본 마인드였고 따라서 정부와 관료들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갈취하는데만 골몰했지 이들로 본격적인 해외경영이나 확장을 꾀하지 않았음
유교가 주장하는 이상주의적 농촌사회서 과연 대항해 시대가 발생하리라 생각하는건 아니지?
정화조차 거의 잠시간의 일탈이었음
다시 서두로 넘어가 이런 사상 하에서 만민이 평등하네 모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네 재산권이 존중받아야 하네 해봤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밖에 안보임
서양도 왕권신수설이니 계급에 따른 차등을 나눈거 아니냐고 할테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서양에서 유교의 요순시대에 해당하는 위치를 차지한게 고대 그리스였음
공화국이란 너무도 중요한 선례가 존재했고 그 전통은 중세와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다 세계대전 이후로 완전히 메인스트럼으로 자리잡았고
동양의 유교에선 사물에 대한 탐구가 너무 지나치는걸 경계하거나 반성하는 문구가 존재하는데 서양은 그게 과학발전의 씨앗 아니었음?
유교는 격물치지라는게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거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음
단적으로 사농공상이 유교경전에 대놓고 박혀있어 결국 현실정치에 대한 담론은 유학의 범주 안에서만 존재하는데?
1. 서양의 발전 과정에서 철학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바는 동의함.
하지만 동시에 앞서 다른 게이가 말했던 바와 같이, 다양한 국가가 경쟁하며 발전해온 서양과 중국이라는 국가가 하나의 이념으로 자리잡아 평화를 누렸던 동아시아의 차이를 말하고 싶은 것임.
2. 애초에 유교는 상명하복의 조건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 할것을 전재로 함. 한 마디로 왕은 왕 답게, 신하들은 신하 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라는 것임.
유교를 주창했던 공자조차도 왕이 왕답게 행동 못하면 백성들이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 했던 사람인데, 이러한 부분은 후대로 갈 수록 이데올로기화가 진행되면서 덮어지지. 그래서 게이가 말하는 것 처럼 상명하복과 계급에 대한 옹호로 이러지는 거임.
3. 유교는 농촌사회를 이상적으로 바라본게 아님. 앞서 말 했다시피 백성이 백성답게 행동해야한다, 즉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기를 주문했던 것이고, 동시에 탐욕에 대한 경계를 주문한 것이지.
때문에 게이가 말했던 상업에 대한 천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던 것이고, 동시에 같은 이유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건 유교라는 종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여 썩어버린 채 이데올로기화 되어버린 유교에서 찾아야 함.
말 했다시피 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나타나는 현상이고, 애초에 조선은 유교로 인해 굉장히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사회였음.
임진왜란을 예로 들어도 동시기 일본의 농민과 조선의 농민은 세금으로 걷는 비율이 6~8대 1~3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남.
- 물론 이후 후기로 갈 수록 각종비리와 수탈이 일어나는 건 맞음. 말마따나 게이가 문제삼는 부분들은 후기~말기의 상황이라는게 내 일관적인 주장임.
4. 유교사회에서 대항해시대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지만, 자본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었음. 네 말대로 유교가 착취와 부자 평민에 대한 억압이 목적인 종교였다면 조선 말기 양반가의 몰락과, 돈 많은 부농의 등장은 설명하기 어렵지. 이 당시 조정관료가 되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상업을 하기란 더더욱 어려웠던 양반들이 족보 팔아서 생계 유지했다는 말은 게이도 교과서에서 배웠을거임. 조선 말기에 양반이 전체 국민의 70%가 넘었더라는 이야기는 학교에서도 배웠지?
이 당시 유교사회에서 여러 제약이 생기는 양반의 직위를 사기보다는 그냥 부자 평민으로 남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게이 말대로라면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겠음?
5. 애초에 서양과 동양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로 앞더 다른 게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끝없는 경쟁 구도 VS 적당한 차등에 의한 평화로운 구도 이렇게 말 하고 있음.
대항해시대는 만약 유교가 서양에서 탄생했다고 하더라도 벌어졌을 일임. 왜냐하면 애초에 유럽세계 내에서 산업혁명으로 발생한 잉여생산물을 전부 소비할 수 없게되고, 그것을 어떻게든 소비할 구석을 찾아내고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거니까.
솔직히 '유교'라고 이름붙인 사상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그냥 남들끼리 말싸움끝에 결정된 걸 묶어놓은 것에 불과함. 막말로 문제 생기면 고쳐가면서 쓰는거임. 동양에서도 도가니, 유가니 어쩌니 해가면서 말쌈하고, 유학자들끼리도 저마다의 생각으로 말싸움 하는게 일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서양에서 유교가 발생했다는 전제에서도 그냥 적당히 말 바꿔가면서 해외로 눈 돌렸을거라는 거임.
이러면 '애초에 산업혁명은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당연하게도 사람들끼리 경쟁하다보면 일어날 수 밖에 없음. 왜냐? 유교-프랑스는 안되는데 비유교-영국은 했을테니까. 그럼 유교-프랑스가 늘 하던대로 사논공상 상업주의 배격하다가 가만히 영국 식민지가 되었을까? 절대로 그럴리 없겠지? 이런 부분이 바로 서양과 동양의 차이점이라고 말 하고 싶은거임.
영장이니, 기본권이니, 자유평등박애니 뭐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임.
6. 요순에 해당하는 위치가 그리스라고 말 했는데, 이 부분은 맞지만 그리스는 서양 세계에서 단순히 이상향이나 롤모델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음.
애초에 기독교에서부터 그리스/로마를 최후의 제국으로 선포했었고(그 이후엔 예수의 제국이 세워진다고 했음) 후대 유럽나라들 또한 제국이라는 타이틀 쓰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로마와 연관지어야만 했음.
그래서 그리스 있을 당시엔 문신충 나체전사 우가우가 하던 독일도 로마의 후예를 자처라면서 신성로마제국 선포했고, 존나 뜬금없게도 동방의 오스만까지도 그리스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제국놀이했음.
그냥 롤모델 정도가 아니라, 어제도 있어왔고, 오늘도 있어야 하고, 내일도 있어야만 말이 되는 실존하는 국가, 실존 해야만 하는 국가였다는거임. 요순이랑은 그 중요성에서도, 활용성에서도 전혀 다른 나라임.
자아 어제 운동하고 피곤해서 너무 늦게 댓 달아서 미안함 이제 내 주장을 펼칠게
1. 다양한 국가가 경쟁을 하며 발전한게 요인이란건 유교권과 서양을 비교하는걸로 한정하면 맞는 말인데 근데 그럼 다른 지역이 유럽에게 발린걸 제대로 설명을 못함
2. 공자의 가르침은 당대에도 위정자의 입맛에 맞는 방법으로 해석됐고(대표적으로 자로의 죽음) 그의 사후엔 바로 군군신신 부부자자란 스스로의 본분에 걸맞으란 요구는 기득권(주로 윗사람)이 원하는 형식으로 변질되었다고 보는 입장임
방금 언급한 자로가 목숨을 바친 군주의 경우 딱히 군주다운 행동을 했던가도 행보를 보면 살짝 아리송한데?
거기다 본분 제대로 못하면 끌어내린다는 주로 맹자쪽 주장으로 더 인용돼는데 양쪽이 섞인거 아닐까 싶음
3. 유교가 농촌사회를 이상적으로 본건 최소 중세까지 중상주의로 얻는 이득보다 중농주의로 얻는 이득과 통치의 수월함을 목표로 보는게 당장 주원장의 보갑젠지 이갑젠지가 전통적인 향촌사회를 추구했고 유교는 전통적으로 상인층을 까며 사치를 경계했음
서양도 장교에 상인층이 들어오는걸 꺼리는 일부 국가가 있긴 했지만 유교권은 고대부터 유학자들이 상인을 깐게 간단하게 초한삼걸의 장량이 상인출신 장수들은 매수가 가능하다며 조언겸 디스를 할 정도로 뿌리깊었고 조선이 작은 사회를 추구한게 무슨 미덕마냥 얘기하는데 그만큼 문제도 있었고 뭣보다 과전법은 태조시기부터 땅이 모자르단 지적도 있었고 공납에 관해선 세종때부터 말이 많은데 그럼 이건 초기엔 멀쩡했다 말하는건 좀 논란거리가 있을듯?(물론 이 시스템을 조진건 수양과 연산임)
탐욕이란것도 고려때 이규보가 온실에서 채소를 기르는걸 벽안시해 온실을 부수고 조선때 농민들이 좀 더 편하게 일하려고하면 게으르다고 까대는 씹선비질보면 이래서 발전 못했구나 난 그렇게 받아들임
발명이란건 필요에 의해서고 발전이란건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열망 또는 욕구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그저 탐욕을 경계하며 정신수양만 강조하는게 송시열이 그저 마음을 닦으라 말하던거를 보면 난 존니 깝깝하게 보임
4. 미안하지만 난 이거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게 그래서 유교권에서 서양처럼 상인층이 정치권력의 한 핵심 축으로 자리잡긴 했었음?
이거 자본주의 맹아론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유교권에선 상인은 걍 수탈과 억제의 대상이지 무슨 스스로 발생할건지는 난 좀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싶은데?
청나라때 광주 13행인가 뭐시긴가도 은이 그렇게 많다더니만 조정과 관료에게 다수 삥뜯기면 남는게 생각보다 별론데 잘도 수탈하는걸 미덕으로 삼는 체제에서 그러겠네 싶음
자본이란게 벌어들이는 만큼 어느정도 투자가 있어야지 금난전권마냥 특권을 누리면서 그걸 빌미로 뜯기는 데 도대체 무슨 금융이 발전한다는건지 이해가 잘 안감
혹시 난 잘 모르지만 유교권에서 국부론같은 경제학적 사상의 책이 널리 간행돼 센세이션을 일으켰음?
대항해시대가 일어난건 상인출신 귀족들이 포르투갈 왕실을 쪼아서 희망봉 개척이 일어난거고 유교권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좀 사례좀
그리고 간과하는게 조선 말기 유교가 교조화돼며 나라가 개판일수록 참된 선비에 대한 숭앙을 했었는데 그래서 유교를 대체할 또는 개선하거나 보완할 이념의 기반이 뭐였나 싶음
결국 전통과 보수에 목매여 수구적인 태도인데
5. 동아시아에서 중국이란 존재가 블랙홀마냥 주변을 빨아들이는 마성의 존재인걸 이해하는데 1에서 언급했듯이 그럼 다른 지역들도 중국마냥 압도적인 국가가 있어 상대적 평화를 누리며 안주한거냐고 난 묻고싶음
미안하지만 유교에서 대항해시대가 발생했을거란건 지랄 ㄴㄴ라고 말하고 싶음
대항해시대가 누구의 적극적인 주도로 발생했는지 모르는거 같은데 유교가 그렇게 경전에도 박아논 까임의 대상인 상인의 적극적 주도였음
정화의 대원정도 그렇게 극딜해댄 유학자들이 잘도 그러겠네 싶음
산업혁명은 영국이란 존재가 있어 가능했는데 이것도 까보면 외적에게 침공을 안당하니 부의 축적이 가능했고 그게 기술과 금융의 발전으로 꾸준히 일어났는데 동아시아는 중국이 주기적으로 2~300년만에 나라가 망하고 그 안에도 여러 이유로 자본이 흔들리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가능하다 말하는지 난 이해가 안감
혹시 나폴레옹 전쟁시기 프랑스에서 영국 채권을 산것같은 일이 동양에서 일어나긴 했나 궁금함
간다하게 말해서 유교는 기득권이 이익을 누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는데 밑에 내가 들고온 맥아더 쇼군 글 보면 갈음할거 같음
6. 솔직히 위에 쓴 글들 보면 내가 말하는걸 이해 못하고 나보고 유교를 까는거에 너무 치우친다고 하는데 난 님이야말로 그런거 같음
요순시대도 유가에서 꿈꾸는 현실에 있어야하는 사회고 그렇기에 왕들에게 앵무새처럼 요순시대를 떠들음
그래서 서양에 존재한 공화주의의 전통이 동양에 있었냐고 묻는데 왜 이상한 쪽으로 논거를 트는지 난 이해를 못하겠음
지엽적인 문제로 깐다고밖에 안보임
이러한 주장들에 반박할거 있다면 과연 유교권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지 토론해보자
바쁘게 사는구만. 나도 얼른 글 써서 투고해야 하는데 이러고있네...ㅎ...
암튼, 대충 핵심은 나온 것 같아서 내용만 정리하면 될 것 같음.
1. 애초에 게이가 '유교권 동양/서양만 두고보면 맞지만 다른 지역은 말이 안된다'라고 언급한 시점에서 아래 내용들은 큰 의미가 없음. 애초에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그 부분이었고, 나 또한 '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동/서양 사회문화의 차이다'라고 말 하는거였으니까.
말 나온김에 논지를 다시 좁혀보자면, '동양은 유교가 없었어도 결국 중국이라는 규율 아래에서 그대로였을 것이고, 서양에 유교가 있었더라도 다른 이들과의 마찰이나 경쟁으로 인해 알아서 고쳐져 가면서 발전했을 것이다' 라는거임.
더해서, 동/서양이 아닌 다른 지역이라고 말 함은 어디를 말하는건지 의문인데. 근대까지도 부족사회였던 (북쪽 제외)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아닐꺼고, 나일강 원툴이었던 북아프리카? 사막이었던 중동? 인도? 그 외 다른 지역?
서양 만큼이나 근대까지 국가의 밀도가 높았던 지역이 또 있을까 싶은데.
더군다나 게이 말마따나 중상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적당한 비교대상이 있다고 보는건가?
2.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62.html
여기 기사가 있음. 말마따나 당대 정치가, 종교가들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쓰여졌고, 이는 유교가 처음 나타났을 때 부터 유교의 운명이기도 했음.
아래쪽에 쓸 것이지만, 내가 인용한 부분들이나 주장을 주의깊게 보지 않는 것 같아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옴.
<역대 통치자들이 전자의 논리를 억압하고 후자만을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령 명나라의 태조는 <맹자> 가운데서 왕조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불온한 사상을 담고 있는 87개 조항을 삭제하여 <맹자절문>(孟子節文)이라는 누더기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다. 위에서 인용한 제선왕과의 대화가 불온한 발언의 대표 사례로 꼽혔음은 물론이다.>
내가 말 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거라고. 게이는 지금 나랑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거야. 내가 처음 댓글에 그랬잖아. 결국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이데올로기화되는 거고, 게이가 말하는 문제점들은 그런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하지만 일단 그렇게 입맛에 맞게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토대가 있다면(예컨데 킹세종) 작동하는거라고. 아무리 수탈과 억압이 메인이라도 반란이 일상이던 시대에 어쨌든 나라 굴러가게는 만들어야하는게 상식이잖음. 북한 수준의 철권통치가 가능하거나, 아니면 조선말기처럼 썩을대로 썩어서 뒤엎어지기 일보직전인게 아니라면.
맹자쪽 주장을 공자껄로 가져온 건 내 실수가 맞음.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을 듯 함. 유교는 그 위정자들마저 제 역할을 못한다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보았고, 이는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여러차례 이를 빌미로 왕조를 교체했을만큼 당대의 유학자들 또한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음.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74679
여기 논문 설명문단 참조바람.
3. 아래 댓글에 내가 인용한 동양상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의 차이점이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음. 말마따나 유교는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였고, 그들이 원하는 건 말 잘 듣는 농민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중상주의를 배격했는지가 나와야 할 타이밍이기는 한데, 이 부분은 총.균.쇠.에서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는게 어떨까 싶음.
https://www.youtube.com/watch?v=Ymc62Mw9nms&t=151s
여기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영상이 있음. 위의 주장과 연결되는 직접적인 내용은 아니긴 한데, 이에 대해 그냥 이 토론을 정리할 정도로 직접적인 내용이 있어서 이 부분은 따로 설명하겠음.
영상 내용은 동/서양이 재배했던 작물이 사회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대한 내용임. 밀을 재배했던 서양은 개인주의적, 벼를 재배했던 동양은 집단주의적으로 사회가 발전했다는 것.
여기부터는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결국 상업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부를 나에게 옮겨오는 것이라고 생각함.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전통적/원시적 공산주의 개념이 강했던 동양에서는 이를 고깝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게 내 의견임.
- 당연히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토론의 메인이 아닌 곁다리 개인의견이라는 점을 유의해주길 바람.
어쨌든, 과전법이니, 보갑제니 하는 구체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였느냐, 아니냐는 내 논지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주장들임. 왜냐하면 뭘 들이밀던 유교가 아닌 정치의 연장이고, 말마따나 유교는 정신수양이나 계급주의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임.
탐욕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이규보의 사례를 인용했는데, 탐욕하고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음. 하지만 씹썬비 꼰대마인드가 발전을 저해한 것은 개인적으로 맞다고 봄.
앞서 난 유교는 과거지향이 아닌 보수적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었고, 애초에 '백성은 백성답게, 왕은 왕답게'를 강조하는 유교는 이러한 씹꼰대 마인드가 만들어지기 최적의 환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유교가 없었다면 이런 꼰대 마인드가 사라졌을까? 그건 당연히 아니라고 봄. 누차 강조하건데, 유교는 결국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였고, 백성이 말 잘 듣고 빨대 잘 꽂을 수 있게 대가리 딱 대고있기를 바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느 나라나 지역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남. 결국 권력자의 도구가 뭐가 되었건 결론은 같았을 거라는거.
4. 자본주의 맹아론 인용한게 맞아. 그거야. 더 설명이 필요한가?
어디까지나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입장에서 인용한거고, 그래서 대항해시대에 대해서는 딱 잘라 선을 그었잖아?
하지만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계급체계가 무너지고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 부분 아닌가? 솔직히 학교에서 배웠던 것 까지 근거를 가져와야하나 싶어서 이 부분은 패스할게.
다만 게이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첨언하자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라던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정도까지 말 하는 것도 아님. 딱 잘라서 '대항해시대보다는 가능성 있었다' 정도로 말하는것임.
외세의 물리적 개입이 없었다면 어디까지 가능했겠느냐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외세로부터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면서 동학농민운동처럼, 하지만 규모는 그보다 적게, 혁명시도는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입장임. 결과야 당연히 진압당하고 깨갱했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점 유의하시고.
때문에 국부론의 간행이나 희망봉 개척과 같은 사례를 들먹이는 건 3번에서 나왔던 것 처럼 나에겐 전혀 의미없는 주장임. 애초에 난 그정도까지 생각한 적이 없다니깐? 그건 유교이기 때문에 가로막힌게 아니라, 동양사회에서 애초에 불가능했다는게 내 주장임.
5. 이 부분이랑, 아래 영상에 대한 코멘트에서 게이가 내 주장을 제대로 안읽었구나 싶었음. 난 유교에서 대항해시대가 일어났을거라 말한게 아님. 유교가 발생한 서양에서 대항해시대가 일어났을거라 말한거지. 무슨 말인지 이해됨? '유교'가 중요한게 아니라 '서양'이 중요한거라는 거.
애초에 다른나라는 뭐했냐고 물을게 아니라, 서양이 특이했다는 논지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음. 이에 대한 근거로는 앞서 말했던 이에대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인용하고자 함.
https://jesukmun.tistory.com/10
<<총균쇠>의 후기에서 중국, 인도, 유럽의 역사를 비교한 나는(다이아몬드), 모든 나라들에 기술적인 혁신 양상을 적용시켜 봄으로써 ‘인간 단체는 어떤 형태가 최적인가?’를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리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정치적 집단 사이의 경쟁이 혁신을 자극한 반면, 통합된 중국에서는 그러한 경쟁의 부재가 혁신을 주춤하게 했다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유럽보다 정치적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하면 더 좋아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유럽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지만 기술적으로는 덜 혁신적이었다. 나는 이를 보며 ‘최적 분열의 법칙’을 연상했다. 즉,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1
<<총 균 쇠>에서 저자는 적당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던 유럽의 환경 조건이 중국을 앞서게 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이 중국을 능가할 수 있었던 배후에 대부분 역사가들이 제시한 직접적인 요소들(예를 들면, 중국의 유교 대 유럽의 유대 그리스도의 관습, 서구 과학의 발생, 유럽의 중상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생, 영국의 석탄 보유와 결부된 산림 벌채 등)보다는 좀 더 궁극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요소들의 배후에 다름 아닌「최적 분열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적당히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 두 기사의 인용문 중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음.
<적당히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교-프랑스와 유교-영국이었다면 대항해시대나 중상주의의 발전이 없었을거라 말 하고 싶음? 나야말로 지랄ㄴㄴ 라고 말 하고 싶음.
6. 솔직히 유교까는거에 치우친 것 같기는 함. 논지는 '유교가 중요한게 아니다' 인데, 자꾸 '유교라면 이런게 가능했겠음?' 이라는 논지를 들고오니까.
애초에 내가 말했던 편협한 주장이라 토론이 가능하겠냐는게 이런 부분 때문임. 난 게이가 말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반박하는게 아니야. '그건 유교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이었다'라고 말하는거지. 이해 됨?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끝없는 경쟁으로 용광로처럼 달궈지고 벼려진 유럽이었기 때문에 게이가 말하는 대항해시대와 자본주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거임.
나한테 아무리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와도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거기에 동의하거든. 중요한 건 '구체적인 사례'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 발전사 전체'를 봐야한다는거임. "왜 다른 나라는 하지 못했나"가 아니라, "왜 서양만 해냈나"를 봐야한다는거임.
서양에 존재한 공화주의가 동양에도 있었냐고 물어봤자 내 대답은 게이랑 비슷할거임. '개인 철학자의 단위에서는 뭔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의미는 없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함.
솔직히 결론에 유교권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토론해보자고 한 지점에서, 내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확신했음. 내가 뭐하러? 유교권에서 산업혁명이 왜 일어나는데? 나도 똑같은 생각인데 게이는 날 게이의 주장에 정면 반박하는 사람으로 상정한 것 같음. 내 결론은 누차 말했듯, '유교사회였나,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임.
바쁘게 사는구만. 나도 얼른 글 써서 투고해야 하는데 이러고있네...ㅎ...
암튼, 대충 핵심은 나온 것 같아서 내용만 정리하면 될 것 같음.
1. 애초에 게이가 '유교권 동양/서양만 두고보면 맞지만 다른 지역은 말이 안된다'라고 언급한 시점에서 아래 내용들은 큰 의미가 없음. 애초에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그 부분이었고, 나 또한 '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동/서양 사회문화의 차이다'라고 말 하는거였으니까.
말 나온김에 논지를 다시 좁혀보자면, '동양은 유교가 없었어도 결국 중국이라는 규율 아래에서 그대로였을 것이고, 서양에 유교가 있었더라도 다른 이들과의 마찰이나 경쟁으로 인해 알아서 고쳐져 가면서 발전했을 것이다' 라는거임.
더해서, 동/서양이 아닌 다른 지역이라고 말 함은 어디를 말하는건지 의문인데. 근대까지도 부족사회였던 (북쪽 제외)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아닐꺼고, 나일강 원툴이었던 북아프리카? 사막이었던 중동? 인도? 그 외 다른 지역?
서양 만큼이나 근대까지 국가의 밀도가 높았던 지역이 또 있을까 싶은데.
더군다나 게이 말마따나 중상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적당한 비교대상이 있다고 보는건가?
2.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62.html
여기 기사가 있음. 말마따나 당대 정치가, 종교가들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쓰여졌고, 이는 유교가 처음 나타났을 때 부터 유교의 운명이기도 했음.
아래쪽에 쓸 것이지만, 내가 인용한 부분들이나 주장을 주의깊게 보지 않는 것 같아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옴.
<역대 통치자들이 전자의 논리를 억압하고 후자만을 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령 명나라의 태조는 <맹자> 가운데서 왕조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불온한 사상을 담고 있는 87개 조항을 삭제하여 <맹자절문>(孟子節文)이라는 누더기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다. 위에서 인용한 제선왕과의 대화가 불온한 발언의 대표 사례로 꼽혔음은 물론이다.>
내가 말 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거라고. 게이는 지금 나랑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거야. 내가 처음 댓글에 그랬잖아. 결국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이데올로기화되는 거고, 게이가 말하는 문제점들은 그런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하지만 일단 그렇게 입맛에 맞게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토대가 있다면(예컨데 킹세종) 작동하는거라고. 아무리 수탈과 억압이 메인이라도 반란이 일상이던 시대에 어쨌든 나라 굴러가게는 만들어야하는게 상식이잖음. 북한 수준의 철권통치가 가능하거나, 아니면 조선말기처럼 썩을대로 썩어서 뒤엎어지기 일보직전인게 아니라면.
맹자쪽 주장을 공자껄로 가져온 건 내 실수가 맞음.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을 듯 함. 유교는 그 위정자들마저 제 역할을 못한다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보았고, 이는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여러차례 이를 빌미로 왕조를 교체했을만큼 당대의 유학자들 또한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음.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74679
여기 논문 설명문단 참조바람.
3. 아래 댓글에 내가 인용한 동양상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의 차이점이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음. 말마따나 유교는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였고, 그들이 원하는 건 말 잘 듣는 농민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중상주의를 배격했는지가 나와야 할 타이밍이기는 한데, 이 부분은 총.균.쇠.에서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는게 어떨까 싶음.
https://www.youtube.com/watch?v=Ymc62Mw9nms&t=151s
여기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영상이 있음. 위의 주장과 연결되는 직접적인 내용은 아니긴 한데, 이에 대해 그냥 이 토론을 정리할 정도로 직접적인 내용이 있어서 이 부분은 따로 설명하겠음.
영상 내용은 동/서양이 재배했던 작물이 사회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대한 내용임. 밀을 재배했던 서양은 개인주의적, 벼를 재배했던 동양은 집단주의적으로 사회가 발전했다는 것.
여기부터는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결국 상업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부를 나에게 옮겨오는 것이라고 생각함.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전통적/원시적 공산주의 개념이 강했던 동양에서는 이를 고깝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게 내 의견임.
- 당연히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토론의 메인이 아닌 곁다리 개인의견이라는 점을 유의해주길 바람.
어쨌든, 과전법이니, 보갑제니 하는 구체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였느냐, 아니냐는 내 논지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주장들임. 왜냐하면 뭘 들이밀던 유교가 아닌 정치의 연장이고, 말마따나 유교는 정신수양이나 계급주의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임.
탐욕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이규보의 사례를 인용했는데, 탐욕하고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음. 하지만 씹썬비 꼰대마인드가 발전을 저해한 것은 개인적으로 맞다고 봄.
앞서 난 유교는 과거지향이 아닌 보수적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었고, 애초에 '백성은 백성답게, 왕은 왕답게'를 강조하는 유교는 이러한 씹꼰대 마인드가 만들어지기 최적의 환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유교가 없었다면 이런 꼰대 마인드가 사라졌을까? 그건 당연히 아니라고 봄. 누차 강조하건데, 유교는 결국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였고, 백성이 말 잘 듣고 빨대 잘 꽂을 수 있게 대가리 딱 대고있기를 바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느 나라나 지역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남. 결국 권력자의 도구가 뭐가 되었건 결론은 같았을 거라는거.
4. 자본주의 맹아론 인용한게 맞아. 그거야. 더 설명이 필요한가?
어디까지나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입장에서 인용한거고, 그래서 대항해시대에 대해서는 딱 잘라 선을 그었잖아?
하지만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계급체계가 무너지고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 부분 아닌가? 솔직히 학교에서 배웠던 것 까지 근거를 가져와야하나 싶어서 이 부분은 패스할게.
다만 게이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첨언하자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라던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정도까지 말 하는 것도 아님. 딱 잘라서 '대항해시대보다는 가능성 있었다' 정도로 말하는것임.
외세의 물리적 개입이 없었다면 어디까지 가능했겠느냐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외세로부터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면서 동학농민운동처럼, 하지만 규모는 그보다 적게, 혁명시도는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입장임. 결과야 당연히 진압당하고 깨갱했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점 유의하시고.
때문에 국부론의 간행이나 희망봉 개척과 같은 사례를 들먹이는 건 3번에서 나왔던 것 처럼 나에겐 전혀 의미없는 주장임. 애초에 난 그정도까지 생각한 적이 없다니깐? 그건 유교이기 때문에 가로막힌게 아니라, 동양사회에서 애초에 불가능했다는게 내 주장임.
5. 이 부분이랑, 아래 영상에 대한 코멘트에서 게이가 내 주장을 제대로 안읽었구나 싶었음. 난 유교에서 대항해시대가 일어났을거라 말한게 아님. 유교가 발생한 서양에서 대항해시대가 일어났을거라 말한거지. 무슨 말인지 이해됨? '유교'가 중요한게 아니라 '서양'이 중요한거라는 거.
애초에 다른나라는 뭐했냐고 물을게 아니라, 서양이 특이했다는 논지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음. 이에 대한 근거로는 앞서 말했던 이에대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인용하고자 함.
https://jesukmun.tistory.com/10
<<총균쇠>의 후기에서 중국, 인도, 유럽의 역사를 비교한 나는(다이아몬드), 모든 나라들에 기술적인 혁신 양상을 적용시켜 봄으로써 ‘인간 단체는 어떤 형태가 최적인가?’를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나는 지리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정치적 집단 사이의 경쟁이 혁신을 자극한 반면, 통합된 중국에서는 그러한 경쟁의 부재가 혁신을 주춤하게 했다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유럽보다 정치적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하면 더 좋아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유럽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었지만 기술적으로는 덜 혁신적이었다. 나는 이를 보며 ‘최적 분열의 법칙’을 연상했다. 즉,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1
<<총 균 쇠>에서 저자는 적당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던 유럽의 환경 조건이 중국을 앞서게 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이 중국을 능가할 수 있었던 배후에 대부분 역사가들이 제시한 직접적인 요소들(예를 들면, 중국의 유교 대 유럽의 유대 그리스도의 관습, 서구 과학의 발생, 유럽의 중상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생, 영국의 석탄 보유와 결부된 산림 벌채 등)보다는 좀 더 궁극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요소들의 배후에 다름 아닌「최적 분열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적당히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 두 기사의 인용문 중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음.
<적당히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교-프랑스와 유교-영국이었다면 대항해시대나 중상주의의 발전이 없었을거라 말 하고 싶음? 나야말로 지랄ㄴㄴ 라고 말 하고 싶음.
6. 솔직히 유교까는거에 치우친 것 같기는 함. 논지는 '유교가 중요한게 아니다' 인데, 자꾸 '유교라면 이런게 가능했겠음?' 이라는 논지를 들고오니까.
애초에 내가 말했던 편협한 주장이라 토론이 가능하겠냐는게 이런 부분 때문임. 난 게이가 말하는 것들에 정면으로 반박하는게 아니야. '그건 유교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이었다'라고 말하는거지. 이해 됨?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끝없는 경쟁으로 용광로처럼 달궈지고 벼려진 유럽이었기 때문에 게이가 말하는 대항해시대와 자본주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거임.
나한테 아무리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와도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거기에 동의하거든. 중요한 건 '구체적인 사례'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 발전사 전체'를 봐야한다는거임. "왜 다른 나라는 하지 못했나"가 아니라, "왜 서양만 해냈나"를 봐야한다는거임.
서양에 존재한 공화주의가 동양에도 있었냐고 물어봤자 내 대답은 게이랑 비슷할거임. '개인 철학자의 단위에서는 뭔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의미는 없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함.
솔직히 결론에 유교권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토론해보자고 한 지점에서, 내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확신했음. 내가 뭐하러? 유교권에서 산업혁명이 왜 일어나는데? 나도 똑같은 생각인데 게이는 날 게이의 주장에 정면 반박하는 사람으로 상정한 것 같음. 내 결론은 누차 말했듯, '유교사회였나,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임.
솔직히 이쯤돼면 걍 상대방 말 수용할 생각 안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거 같은데 무슨 남보고 편협하니 뭐니 말 할 자격이 있나 궁금한데?
게이가 한 말 다 카운터 쳤더니 이젠 또 저짝 신문 들고와 요상한 말을 하네
내가 어제 분명 바빠서 바로 못단다고 했는데 왜 나보고 시간 많냐고 비꼬고 ㅈㄹ이야
너야말로 이런 글 쓰시는거 보면 졸라 시간 많으신거 같은데 어디 이런 말 들으시면 기분 어떠세요?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난 시간 많다고 비꼰적 없는데. 나도 바쁘게 살아야 하는게 못한다고 한 말이잖아 대체 날 뭐로 보고있는거야;;
그리고 편향적이라고 말했던 댓글 벌써 까먹음?
<그렇다면 넌 '유교가 아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거임?
너무 편향적인 주장인데 이걸로 토론이 되겠음?>
이거 못봤어?
솔직히 말해 자본주의 맹아론 혁파된지 오래고 무슨 유교권에서 상인이 정치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한적 없는데 서양과 똑같은 테크트리 탔을거라며 뇌피셜 씨부리고 무슨 산업혁명 운운하는지 이해가 안가
님 산업혁명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긴 함?
유교권에 국부론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상업에 관한 책이 개항때까지 있던가?
<외세의 물리적 개입이 없었다면 어디까지 가능했겠느냐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외세로부터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면서 동학농민운동처럼, 하지만 규모는 그보다 적게, 혁명시도는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입장임. 결과야 당연히 진압당하고 깨갱했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점 유의하시고.
때문에 국부론의 간행이나 희망봉 개척과 같은 사례를 들먹이는 건 3번에서 나왔던 것 처럼 나에겐 전혀 의미없는 주장임. 애초에 난 그정도까지 생각한 적이 없다니깐? 그건 유교이기 때문에 가로막힌게 아니라, 동양사회에서 애초에 불가능했다는게 내 주장임.>
너 댓글 제대로 안읽었구나?
토론 입장을 정리하자고 제안했는데 안받아들이네? 결국 댓글 읽고내 주장을 정리했는데 거기에 대답 안 하고 있는건 너임. 그래서 내가 논지를 좁혀서 다시 입장을 정리하자고 하고있는거고. 근데 내가 아무리 오해라고 말 해도 넌 싸우자는 말 밖에 안하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된건가?
https://www.youtube.com/watch?v=zAYrjdsZPIk
여기 영상이 있음. 저명하거나 공신력있는 유튜버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나도 오늘 처음 보는 유튜버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느정도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가져왔음.
요약하자면 날씨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농업사회에서 신과 절대왕권 아래에 있던 동양과, 농업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해결 가능한 상업으로 인해 각기 다르게 발전한 동서양의 차이를 말하고 있음.
유교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이 또한 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로는 사용할 수 있을거라 생각함.
여기 영상이 있음. 저명하거나 공신력있는 유튜버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나도 오늘 처음 보는 유튜버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느정도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가져왔음.
요약하자면 날씨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농업사회에서 신과 절대왕권 아래에 있던 동양과, 농업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해결 가능한 상업으로 인해 각기 다르게 발전한 동서양의 차이를 말하고 있음.
유교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이 또한 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로는 사용할 수 있을거라 생각함.
이건 또 신박한 논린데 서양도 만만찮게 신과 절대왕권이 강하던 시기가 있는데?
거의 근세까지 신의 영향력은 너무나 절대적이었고 그렇기에 교황이니 종교문제로 서로 죽이니 마니 하다 30년 전쟁도 일어났는데 서양이 신에게 좀 더 냉담했다고???
글쎄 게이야 유교의 가르침이 뭔지 모르는거 같에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했는데?
물론 유교가 부족한거를 도교나 불교가 채우긴 했는데 서양은 기독교가 거의 유교마냥 위치를 차지해서 더 삶에 강렬한 영향을 줬거만 십자군은 종교에 냉담한 사람들이 일으킨건가 싶음
차라리 리스본 대지진으로 시들시들해졌다 말하면 이해는 하는데 거 참
그리고 왕권신수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함
솔직히 이 댓글에 나온 내용 중 90%는 내가 굳이 대답해야하나 싶은 내용들임. 솔직히 말해보자, 영상 안 보고 내 요약만 보고 쓴 글이지?
애초에 영상의 내용은 농업주의 사회에서 하늘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운명에 순응하는 사상이 발전했고, 서양은 상업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현실적인 사상이 발전했다는거임.
그렇기 때문에 고대 동양은 송나라 하나가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했을 정도로 크게 부흥했지만, 후대에 들어 유럽에 따이게 된 이유도 농업주의와 상업주의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음.
유교니뭐니 하는 건 애초에 나오지도 않는다고... 내가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인용했다고 했는데 왜 유교와 연관짓는지 모르겠네.
영상 보내주면 보겠거니 하면서 대충 요약했는데 거기서 '동양에서는 신과 절대왕권...'하는 부분만 똑 따와서 반박하면 내가 뭐 하러 일일이 수정을 함?
조롱한 적 없고, 누차 강조했듯 내 말의 논지를 자꾸 이상하게 해석해서 한 말이었음.
이번에도 또 그랬네?
내 논지랑 관련없는 부분을 자꾸 끌어오니까 '내 말 제대로 이해한거 맞냐'고 되묻는 거잖아. 넌 저 분량을 보고도 내가 너 까고 폄하하려고 댓글 다는걸로 보여?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임?
공백 제외하고 4,333자짜리 댓글이다. 이게 조롱을 위한 댓글이라고 말 하는 시점에서 난 너와 더 이상 토론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성의있게 토론에 임하려는 것 같아서 나도 그정도는 해야겠다 싶었는데 네 눈에는 그게 안보인다면 내가 뭘 더 말하겠냐. 애초에 지금 이 대화는 토론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화인데.
저기서 바쁘게 사니 뭐니 왜 나오나 이해가 안가고 암만봐도 자기가 보기엔 어제 끝난거 오늘 댓다니 그렇게 말하는걸로 보여서 순간 어글이 끌렸거든
어제도 내 주장에 편협하다고 말했으면서 나중에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냐?
남보고 편협하니 뭐니 말할거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보이는데?
자, 정리해보자.
내가 '편협하다'라고 말 했던 건 '내가 이해한 네 주장'임.
그래서 내가 이게 맞냐는 의도로 따로 정리했잖아.
<그렇다면 넌 '유교가 아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거임?
너무 편향적인 주장인데 이걸로 토론이 되겠음?>
이게 맞냐고 그래서. 근데 주장하는 걸 보니까 아닌 것 같기는 해. 근데 그래서 정확히 뭐냐고. 한 마디로 압축이 안되는 주장인거임?
하... 난 이런 대화는 정말 의미없다고 생각함.
함부로 말 했다고?
잘 봐. '넌 편협해'가 아니라, '내가 이해한 네 주장은 편협해 보이는데 이게 맞냐?' 라고.
아직도 어그로 끌려서 그러는거임? 니 잘못이라고 말 한 적 없잖아.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끌어오는거야? 내가 계속 물어보면서 '이게 맞냐, 진짜는 뭐냐'고 묻고 있는데 어디서 '네 잘못이야'가 나오냐고
제발 결과를 냈으면 좋겠어 나는. 이런 감정적인 대화를 할거였으면 내가 네 말에 뭐하러 4천자짜리 댓글을 다냐고, 나야말로 시간 아깝게. 난 토론이 하고싶은거지 싸우고 싶은게 아냐. 잘잘못 따질 생각도 없고, 널 이겨먹을 생각도 없어. 그래서 네가 말 하고 싶은 주장이 뭐냐고 계속 묻고 있잖아!
게이야 니가 보낸 영상보고 댓 달았는데 나보고 영상 안보고 댓 단거 같다메
내가 보기엔 그 영상 문제가 꽤 많은 걍 역사애호가가 올린걸로 보이는데 이거에 대해 어떻게 보임?
저게 무슨 역사학계의 바이블 그런거냐?
지금도 하... 이짓거리 하는데 보통 남과 대화하는데 한숨같은거 대놓고 팍팍 쉬면 왠만하지 않은 이상 발화자가 교양이 없네란 소리 듣지 않냐?
게이야 니가 보낸 영상보고 댓 달았는데 나보고 영상 안보고 댓 단거 같다메
-> 그런 것 같아보여서 그렇게 말 했음. 난 왕권신수설이나 유일신앙 기독교에 대해 굳이 논의해야 할 필요를 못느끼는데 넌 그걸 얘기해야 한다고 하니까. 내 주장에도 없던 내용이고, 영상에도 딱히 중요하지 않은 내용인데 왜 이게 나오지? 싶었음
내가 보기엔 그 영상 문제가 꽤 많은 걍 역사애호가가 올린걸로 보이는데 이거에 대해 어떻게 보임?
저게 무슨 역사학계의 바이블 그런거냐?
-> 이미 영상 올릴 때 저명하지도, 공신력 있지도 않다고 말 했음. 다만 내 말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만한 참고자료로 썼을 뿐임.
지금도 하... 이짓거리 하는데 보통 남과 대화하는데 한숨같은거 대놓고 팍팍 쉬면 왠만하지 않은 이상 발화자가 교양이 없네란 소리 듣지 않냐?
-> 지금 네가 아무 의미없는 어그로에 끌려서 내 질문에 대답 안하고 엉뚱한 댓글 단게 몇 개인지는 알고 있음?
이런 식으로 꼬투리 잡아가면서 할거면 댓글을 단 의미가 없다고 몇 번을 말 하는데 아직도 감정싸움을 하고싶어하는거임?
그래서 네 결론이 뭐냐고 계속 묻고 있잖아. 난 이미 답답해질대로 답답해졌는데 너도 정신승리니 뭐니 해가면서 감정싸움으로 이끌어놓고 대체 얼마나 끝까지 교양있기를 바라는거임?
이딴 대화는 의미 없다고 이제. 그래서 네 결론이 뭐냐고.
계속 느끼는 거지만, 게이가 진짜로 토론을 하고싶었던건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음. 누차 말하지만 난 내 입장을 정리했고, 이제 네가 답할 차례야.
난 계속 감정싸움은 의미없고, 토론으로 돌아가자고 하고있어. 근데 게이는 그보다는 내가 잘못했다는게 더 중요해보임.
내가 사과할게. 내 내로남불이었고, 더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 부분은 내 잘못이야. 이러면 해결이 된건가? 이제 우리는 4천자짜리토론으로 돌아갈 수 있는것인가?
그래 이쯤돼면 게이가 악의적인 태도를 갖고 그런 기분나쁜말을 한건가 살짝 회의감이 들긴 하네
근데 내가 하고싶은말 이미 했고 게이의 글이 너무 장문이라 살짝 질려버렸고 내가 이 부분에선 편협한건 인정하는데 ㅎㄱㄹ 신문은 별로 안좋게 봐서 저 내용을 근거로 삼으면 나도 좀 음... 그럴거 같음
그 외에 토론을 계속 이어나가는것도 상황보니까 방금 싸운것도 있고 너무 지난하고 에너지를 소모할거 같아서 좀 애매하긴 함
나중에 게이가 남긴 장문의 글 정돈할게
천천히 읽어보고 댓글 달았으면 한다고 말 했었잖음.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고 나도 게이 대답 듣고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음.
어느 부분에서 존중을 안 한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애초에 게이가 내가 주장한 적도 없는 말을 가지고 허수아비 때리는거 보고 답답해서 제대로 보라고 계속 얘기했던거임.
그러고 내가 계속 오해라고 설명하고, 제대로 보라고 말 해도 계속 태도 운운하면서 얘기할 생각도 없어보이니까 천천히 하라고 했던거고.
근데 뭐, 이제는 딱히 기대가 안되기도 해. 정독해보겠다는 말을 지켰을지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 뿐임. 난 계속해서 내 뜻을 밝히고 오해라고 했지만, 게이는 결국 끝까지 존중과 태도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고하고, 종종 올리는 유머글은 앞으로도 종종 잘 보겠음.
비꼬는거 아니고 딱 글에 쓰여진 대로만 생각한 거니까 꼬아듣지 말았으면 함. 고생해.
솔직히 갑자기 내 의도와 다른 주장들이 튀어나와서 너무 피곤함..
난 게이가 생각하는 것 처럼 말 속에 비꼼이나 저의를 숨겨놓는 성격이 아니/거든. 심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게이가 댓글을 달아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천천히 해. 내가 주장했던 내용들 쭉 읽어보고, 네 입장을 정리해줘봐. 솔직히 다른 부분들 다 제껴놓더라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서론 인용했던 부분만 봐도 괜찮아.
솔직히 4천자짜리 댓글 쓰면서 자료 찾고 했던 시간들이 전부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네가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다만 그렇게까지 된다면 토론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거겠지만.
그래서 천천히 읽어보고 댓글 달았으면 함. 난 솔직히 내 글 적을 때 게이가 쓴 글 메모장에 옮겨두고 문장 한 줄씩 확인하면서 뭘 대답해야하는지 보고 적었거든.
글쎄. 난 개인적으로 왕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악이라고는 생각치 않음. 혁명이 진취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왕실이라는 구시대적 가치의 구심점은, 근래 진보를 갈망하는 현 세태의 대척점에 설 수 있단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함.
혁명은 잘해봐야 엘리트주의로 나아가는데, 권한이 축소된 귀족주의는 엘리트주의와 유사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에, 총체적으론 별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