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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咸寧), 태강(太康) 이후로 남총(男寵 남색)이 크게 유행하여 여색(女色)보다 심하니 이를 숭상하지 않는 사대부가 없고, 온 천하가 본받아 심지어 부부마저 떨어져 지낸다.라고 하였다. 심약(沈約)의 참회문(懺悔文)에 기수(淇水)의 상궁(上宮)은 참으로 별것 아니지만, 복숭아를 나누고 소매를 끊은 것은 또한 죄가 많다고 하리라.〔淇水上宮 誠云無幾 分桃斷袖 亦足稱多〕라고 하였고, 도곡(陶糓)의 《청이록(淸異錄)》에서는 “서울 남자들이 제 몸을 팔면서 맞고 보내는 것이 태연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로써 본다면 이런 풍조가 당송(唐宋) 시대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 괴이하다. 혹시 천하만사에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무명자집

 

명(明) 나라 주 문양(周文襄 문양은 명 나라 주침(周忱)의 시호)이 고소(姑蘇)에 있을 때에 남자가 자식을 낳았다는 보고가 있자, 공(公)이 문제자(門弟子)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삼가라. 요즈음 남색(男色)이 여색보다 심하니, 그런 일이 반드시 닥치고야 말 형세이다.”

하였다. 왕사진(王士禛)의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이르기를,

 

“복건총병관(福建總兵官) 양부(楊富)의 아주 총애하는 사내아이가 두 아들을 낳았으므로, 양 부가 그 아이들을 자식으로 삼고, 하나는 천사(天舍) 또 하나는 지사(地舍)라고 이름하였는데, 근자에 악릉(樂陵)의 남자 범문인(范文仁)도 아들을 낳았으니, 남색(男色)의 변(變)이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 송 휘종(宋徽宗) 때에 도성(都城)의 남자도 임신하여 아기를 낳은 자가 있었다. 남자는 아무리 음희(淫戲)를 한다 하더라도 이미 자궁(子宮)이 없고 보면 어디에다 정액(精液)을 저장하여 임신한단 말인가. 이것이 어찌 일대 의안(疑案)이 아니겠는가. 괴이하기 이를 데 없다.”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청(淸) 나라 우촌(雨村) 이조원(李調元)의 《담묵록(淡墨錄)》에 이르기를,

“진유숭(陳維崧)의 자는 기년(其年)인데 의흥(宜興) 사람이다. 건륭(乾隆 청 고종(淸高宗)의 연호) 기미년(1739, 영조 15)에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에 추천으로 17명이 소시(召試)에 응하여 검토(檢討)에 제수되었다. 그는 여고(如皐)의 소민(巢民) 모양(冒襄)의 매화별장(梅花別莊)에서 노닐면서 가동(歌童) 자운(紫雲)과 부부(夫婦)처럼 지냈으며, 자운의 진영(眞影)을 조그마하게 그려서 출입(出入)할 때에 휴대했다.”

하였다. 귀곡자(鬼谷子)의 말에,

“남환(男歡)은 논의가 다하지 않고, 여환(女歡)은 자리가 다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기년(其年)이 남색(男色)의 벽(癖)으로 인하여 오래 살지 못하였으니, 이는 또 이른바 ‘미남(美男)은 늙은 사람을 파멸시키고, 미녀(美女)는 혀[舌]를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우초신지(虞初新志)》에는, 기년이 매화(梅花)에 대한 백운시(百韻詩)를 하룻밤에 지어서 모양(冒襄)의 어머니에게 바치고서 자운(紫雲)을 빌어낸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이를 아주 운치있는 일로 여겼으나, 이는 곧 더러운 풍습이니 가소롭다.

중국의 왕공(王公)이나 사인(士人)들도 모두가 이러하였다.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난양록(灤陽錄)》의 기행시(紀行時) 주(注)에,

“중국의 중서(中書) 장경(張經)이, 호남(湖南) 장사(長沙) 사람으로 경박(輕薄)한 소년(少年)이 얘기한 것을 말하는데, 내용이 창녀(娼女)ㆍ희자(戲子)ㆍ남색(男色)ㆍ부인소각(婦人小脚)으로서, 추(醜)하여 대답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그는 또 묻기를 ‘귀국(貴國)에도 당자(檔子)가 있습니까?’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당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니, 장경이 말하기를 ‘소곡(小曲 속요(俗謠)의 뜻임)을 부르는 자입니다.’ 하였는데, 그에 대한 설(說)이 지극히 비루했다.”

하였다.

또한 간남색(幹男色)을 전기소설(傳寄小說) (소설(小說)에 ‘변이아(辯而丫)’라는 것이 있는데, 즉 간남색을 전기소설로 부연(敷演)해 놓은 것으로, 극히 추하다.) 로 만들었는데, 일본(日本)과 아란타(阿蘭佗)에서도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

 


남자를 임신할때까지 따먹으면 된다.


보추는 임신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