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https://arca.live/b/singbung/86460315


'지상낙원' 개념은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안캡(Ancap) 같은 극한의 자유주의자들과

ISIS 수준의 근본주의자의 낙원 개념이 같을리 없으니 말이다.

살라자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자마다 이견이 존재하지만, 보통 살라자르는 대표적인 초보수주의(Ultraconservatism) 독재자로 꼽힌다.

전통적 질서를 수호하는 것에 맹점을 둔 성향을 뜻하는데, 좀 속되게 말하면 수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초보수주의자로서 살라자르의 '낙원' 개념은 보통, 예를 들어 패붕이들이 생각하는 낙원 개념, 요한의 사지를 자르고 패독 직원들을 24시간 연중무휴로 굴리는 등등, 급진적 변화와 거리가 멀었다.

반면에 살라자르는 전통적 카톨릭 질서 아래, 갈수록 잔혹하게 변하는 세계에서 포르투갈을 '피신 시켜놓은' 후, 평화로이 낙농업과 해운업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낙원이라 생각했다.


즉, 이 낙원에서 살라자르 본인은 이집트의 학정을 피해 유대인을 이끈 모세와 같은 선구자이자 인도자였다.

그러나 살라자르의 낙원을 방해하는 요소가 존재했으니 바로 산업화

빅토 해봤음 알다시피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단순한 경제적 구조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전반적 변혁을 가져온다. 프랑스는 혁명이 터졌으며, 러시아는 아예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변했다.


또한 사회적 변천(또한 급진적인)은 항시 폭력을 수반했다. 살라자르는 이를 대단히 혐오했다.


결정적으로 바로 옆동네인 스페인이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를, 불안정한 국가 체계와 맞물려 고작 인구 2500만 국가에서 내전으로 30만이 넘게 죽어나가자

살라자르의 산업화 혐오는 단순한 혐오감을 넘어 편집증 증세 수준으로 변모했으며, 이때부터 패붕이들도 한번씩 들어본 살라자르의 장기간 우민ㆍ저개발 체제가 완성된다.

위 글의 모든 걸 정리하면, 살라자르는 진심으로 포르투갈을 사랑했다.

그는 포르투갈이 피비린내 나는 소위 '세계 정치'나 '이념 전쟁'에 휘말리길 거부했고

전통적 질서 아래 사람들이 전반적 의식주가 적당이 충족된 상태로 걱정없이 살아가는 본인만의 낙원을 추구한 셈이다.

한편 다소 웃긴 건, 우민ㆍ저개발 정책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항시 4~5% 상태를 유지했단 점이다. 전반적으로 재정 관리를 잘한 탓도 있지만, 2차 산업의 반대급부로 1ㆍ3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서 건실한 경제 성장을 이룬 점은 특기할 부분이다.
(다만 덕분에, 포르투갈 제조업은 코르크 마개 만드는 기업이 1위일 정도로 휴유증이 강하긴 하다)
(또한 사실, 아일랜드처럼 제조업 육성해봤자 규모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로 인해, 아예 제조업 육성 따위 때려치고 금융업 같은 3차 산업에 몰빵하는 국가들은 은근 많다)

두 번째로 재미난 부분은, 살라자르는 인종관이 꽤 옅었다. 포르투갈어를 쓰고 포르투갈 문화를 향유하면 인종 따위 상관없었고

실제로 인력 부족이란 현실적 문제가 제일 컸지만, 살라자르 시기 포르투갈군은 전병력 중 4~60%가 흑인으로 채워질 정도

세 번째로 포르투갈을 (본인만의)낙원으로 만들겠단 목적 덕분에 애국심이 열렬해서 식민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한뼘도 작아질 수 없단 마인드였다. 실제로 인도가 포르투갈령 고아를 점령할 당시 지역 수비대에게 전원 옥쇄하라!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고아 총독은 걍 씹었다)

마지막으로 웃긴 건, 살라자르의 말년을 보다시피 보통 독재자들의 비참한 최후, 혹은 최소한 초라한 몰락 과정을 겪지 않고 본인이 만든 낙원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고 믿은 상태에서 사망했단 점이다.

이미 살라자르의 후임으로 등극한 카에나투가 살라자르 정책들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했음에도 말이다.

이제 글을 마치면서 여러모로 살라자르는 참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를 살아간 18세기 정치인이란 평가부터

어짜피 답도 없을 거, 일찌감치 3차 산업 투자했다고 좋게 평가하는 사람에

유럽 마지막 문맹 국가란 오점을 남긴 최악의 정치인이란 평가까지

현지에서도 극명하게 갈리니 말 다했다.

자신이 꿈꾼 낙원을 위해 노력했고

그 낙원 속에서 사망한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1889~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