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명물 피라미드)




우선 이집트의 민주주의 관련 이야기를 논하자면, 지난 2011년 아랍의 봄과 그 이전부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집트는 과거부터 군사정권 하의 통치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군사정권 하의 강력한 권위주의 방식의 통치를 이루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탄압하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이어나갔다.

(이집트 2~4대 대통령 나세르)
흔히 알고있는 이집트의 국부 나세르 역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며, 나세르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나세르의 오랜 절친인 사다트가 부통령에서 대통령으로 권력을 이어받는다.

(이집트 5~6대 대통령 사다트)
사다트 역시 군인출신으로 나세르와 함께 쿠데타를 주도한 군인이며, 4차 중동전쟁 이후로 그는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1981년에 테러를 일으키면서 결국 나세르를 암살시키고, 나세르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던 이집트군 출신의 무바라크가 대통령으로 승인된다.

(이집트 7-11대 대통령 무바라크)
무바라크 역시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통하여 서방 세계에 지원을 받고 있었으나, 기존 부정부패 혐의가 발각되면서 2011년에 결국 아랍의 봄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민주화 혁명으로 사임하였는데, 무바라크가 사임하면서 큰 문제가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군사정권 통치 하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통하여 정권을 잡기 시작하게 된다는 문제였고, 서방들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미국 및 서방들은 이집트는 군사독재 정권에서 세속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2012년 이집트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보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무르시가 대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그는 이집트를 이슬람화 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무르시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과 군부는 2013년에 쿠데타를 개시한다.



(2013년 쿠데타 당시 사진)


결국 무르시는 사임하였고,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군사정권은 임시적으로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당시 2013년 쿠데타를 주도한 이집트군 원수 엘시시

쿠데타로 무르시를 축출한 이후, 국민들에게 연설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해당 사건을 쿠데타가 아닌, 이집트를 구원한 군사적 혁명이라고 언급하며 이집트 군부를 지지하였다.


이후 엘시시는 군인직을 그만두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96.91%의 득표율을 얻고 사실상 쿠데타로 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엘 시시는 집권하면서 세속주의와 친서방, 친이스라엘 정책을 이어갔으며, 기존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지정했으며, 여성에 대한 인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성들을 판사로 임용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으로 서방 국가들에게 지지를 받아오고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엘 시시는 군인들을 치안 유지에 이어가는 수준으로 군인에 대한 공권을 대폭 강화하여 반정부 시위에서도 군인들을 이용하여 탄압하고 있으며, 특히 그의 세속주의와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정치범으로 체포하여 잔혹한 인권유린을 시도하면서 논란이 되었는데, 특히 그가 쿠데타로 축출한 무르시도 잔혹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논란속에도 2018년에는 97%의 득표율로 2선에 성공하였으며, 2019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기존의 4년이었던 대통령 재임기간이 6년으로 늘리면서 2023년에 장기집권을 선언하였고, 추가적으로 최근 2023년 대선에서 89%의 득표율을 받으면서 2030년까지 집권이 확정되면서 장기집권이 확정되었다.



사실 이집트의 많은 국민들이 엘 시시를 지지하는 이유는 세속주의 때문이지 내면적으로는 이미 실질적으로 군사정권이나 다름없는 권위주의 정권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도 많으며, 이집트의 많은 국민들은 세속적인 민주주의 정권을 요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