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아우슈비츠는 나치의 절멸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운용됨


 제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지만 생존자 수도 제일 많은데, 아우슈비츠는 노동수용소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기에 수감자 중 10 ~ 20%는 강제노동을 위해 동원되었기 때문임


사망자 수 : 110만 명 ~ 150만 명

생존자 수 : 10만 명 ~ 20만 명




마이다네크 절멸수용소


마이다네크는 원래 노동 겸 포로수용소로 지어진 곳이었으나 중간에 절멸수용소 역할도 맡게 된 곳임


원래 학살의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가스실과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유대인들을 모두 죽일 계획이었으나, 철거를 맡은 부수용소장이 우물쭈물한 덕분에 

소련군이 먼저 수용소를 해방하게 되었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


사망자 수 : 8만 명 ~ 13만 명

생존자 수 : 수천 명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바르샤바 근처에 있던 트레블링카는 순수 학살만을 위해 만들어진 절멸수용소였음


 단 15개월만에 약 100만명을 학살한, 나치 입장에서 효율이 매우 높았던 수용소로 알려져 있음


트레블링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는 나치가 시신 처리 등의 업무를 맡기기 위해 유대인 중에서 뽑은 이들이었는데, 트레블링카의 존더코만도 700여 명이 1943년 8월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지만 500여 명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나머지는 탈출했지만 SS의 추적에 의해 사살되거나 하여 전후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67명이었음


이 외에 살아남은 이들은 없다고 알려짐


사망자 수 : 80만 명 ~ 120만 명

생존자 수 : 67명




소비보르 절멸수용소


소비보르 역시 트레블링카와 같은 순수 절멸수용소였는데, 1943년 10월 존더코만도 600여 명이 봉기를 일으켜 그 중 약 300명이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중 대다수가 SS의 추적, 질병 및 굶주림, 사고 등으로 사망해 결국 전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58명이었음


사망자 수 : 16만 명 ~ 20만 명

생존자 수 : 58명




베우제츠 절멸수용소


현재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경 위에 세워졌던 베우제츠에서는 앞의 트레블링카와 소비보르와는 달리 별다른 봉기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때문에 생존자들은 전부 개인적으로 탈출을 시도한 이들이었는데, 희생자들의 유품을 실은 화차에 숨어 탈출하거나, 하수구에 숨었다가 탈출하는 식으로 약 50여명이 탈출함


하지만 대부분이 SS의 추적으로 사살되었고, 전후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는 불과 7명이었음


사망자 수 : 50만 명 ~ 60만 명

생존자 수 : 7명




헤움노 절멸수용소


최초로 지어진 절멸수용소인 헤움노에서도 별다른 봉기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탈출한 이들은 전부 근처 숲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하던 존더코만도들이었음


헤움노에서는 총 7명이 살아남았는데 1942년 5명이 겨우 탈출했고, 나머지 2명은 1945년 수용소가 폐쇄되는 과정에서 증거인멸을 위해 남은 47명의 존더코만도들을 처형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임 


사망자 수 : 18만 명 ~ 20만 명

생존자 수 : 7명





현재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네크는 그 원형이 일부 남아있지만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베우제츠, 헤움노는 나치가 증거인멸을 위해 철저히 철거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음. 대신 원래 수용소 터에 영묘가 세워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을 뿐임.


헤움노의 영묘. 돌에 새겨진 문구는 한국어로 '우리는 기억한다' 라는 뜻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