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비 개발자를 죽이고 싶다'



산나비를 플레이해보고 나서 얼마 뒤의 생각이다.



게임 '산나비' 2d 플랫포머 횡 스크롤 장르의 도트그래픽게임이다. 

게임성은 떠나서 스토리가 멋졌다. 가족애의 절실함을 보여주었다.



게임을 하면서 펑펑 울었고 엔딩에서는 그보다 더욱 울었고 게임을 끄고나서는 조용히 눈을 감고 울었다.



가족애의 진수는 나를 울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지금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이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인디게임 개발자가 나의 꿈이다. 오랜 꿈이고 현재진행형이다. 중학교 때부터 꿈꾸기 시작했고, 고등학교엔 게임개발학교를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게임을 개발하지 못한다. 자그마한 게임을 여럿 만들어보긴 하였으나 그저 유튜브를 보고 따라 만든 것일 뿐이다.



나의 고등학교생활 반년은 '인디게임 개발자의 정상에 서주겠어!' 라는 목표를 처참히 부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고 그저 그런 개발자였다.



물론 대학교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주위 동기들도 '너 코딩 잘한다' '나 좀 알려주라'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그저 3년을 먼저 배운 사람의 익숙함에서 비롯된 실력이고 내가 서있는  이 '실력'이라는 모래성은 무너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도망쳤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내가 올라선 이 모래성이 무너져내린 뒤엔 어떤 반응이 뒤따를지 나는 고등학교에서 경험한 지 오래다. 고등학교 3년간 나는 무너져버린 모래성에 파묻혀 지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어디서 본 만화의 구절이다. 기억은 안 난다. 잠시 내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본 만화 또는 유튜브의 휘발성적인 기억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글귀는 현재의 나를 대변하는 것과 같다. 자위성으로 도망간 이곳은 더욱 끔찍한 곳이었다. 내적으로 개발을 못 하던 아니, 안 하던 나는 이제 외적으로도 개발을 못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1년, 온갖 군상의 인간들을 만나고 하루하루 버틴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쯤 그 게임이 발매되었다. 



'산나비'



개발자 5명이 모여서  만든 게임, 앞서 소개하였듯 2d 도트그래픽의 사슬액션 게임이다.



그 게임이 발매되고 유튜브는 난리를 떨었다. 내가 주로 보는 모든 게임 유튜버들도 한 번씩 해보았다. 이렇게 대박이 난 인디게임 오랜만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그 게임을 해볼 기회가 생겼고 이 작은 3평짜리의 방에서 불을 다 끄고 어두컴컴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1만5천원이라는 값싼 가격 내가 비록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 사기엔 무리가 없었다. 돈을 쓸 곳도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밝은 빛은 어두컴컴한 이곳을 그나마 빛이 들게 하였고 나는 이윽고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10시간 정도 걸렸을까 게임을 모두 플레이한 나는 잔뜩 운뒤에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감정을 오랜만에 폭발적으로 소모시킨뒤에 나오는 현상이다. 



사색에 잠겨 그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 뒤에 나오는 나의 결론은 결국에 이거였다.



'산나비를 만든 개발자를 죽이고 싶다'



이 잔인하고 더러운 욕망은 나를 잠식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대해 또 자괴감에 빠져든다. 나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나와의 관계를 단절까지 하는 그런 피해망상도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자괴감에 점철되고 나는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런 어둠에 오랜만에 오니 오히려 편안했다. 이 작은 방안보다 더욱 작은 그곳이 역설적이게도 훨씬 편했다. 게임을 하고 난 뒤에 생각한 그런 더러운 욕망은 이곳에서 없어진다. 나를 모두가 욕하는 이곳에서 오히려 나는 나를 버티게 해줄 감정을 잡는다. 모두가 나에게 돌을 던진다. 어떤 건 직접 비수를 꽂는다. 나의 가슴은 피멍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나는 몸을 더욱 웅크려 말지만, 이 감정을 더욱 붙잡기 시작한다.



'나는 뭘 하고 싶은가'



나의 머릿속에 있는 가장 커다란 벽, 나의 미래, 나의 꿈, 그것은 무엇인가? 철학적인 질문, 이런 것들을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벽에 등을 기대 다시 한 번 더 사색에 빠진다. 



'나는 나의 게임으로 먹고살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게임으로 알리고 싶다.'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미래... 이것들은 나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다. 이것들이 모래에 파묻혀 있었나 보다. 이미 다 허물어져 버린 모래성 밑에 이것들이 있었나 보다. 



나의 엄마 생각을 한다. '편하게 직장생활 해라 엄마가 너 꽂아줄 능력 안 되는 거 아니다.' 이것이 모성애에서 비롯된 말임을 나는 한없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엄마의 배려가 파도가 되어 나의 모래성을 부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게임을 만들 것이 아니었으면 이쪽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겐 하지 못한 말이지만, 이 어두컴컴한 곳에선 직접 입 밖으로 내뱉는다 하여도 그 누구도 듣지 못할 것이다. 



나의 등을 기대던 커다란 벽에서 일어나 이내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비수를 꽂는 사람을 내쫓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산나비'는 어떤 게임인가?



재밌다. 하지만 간단하다. 



게임을 만드는데 수많은 고생이 들어갔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엄청 작은 프로젝트에서도 이걸 느꼈다. 하지만 내가 못할 거 같진 않다. 내가 이해 못 하는 분석하지 못할 스킬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



이런 스토리, 도트, ost, 이런 부분은 내가 건들지 못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내가 영원히 못할 것 같지는 않다. 도전해도 안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게임이란 큰 배는 보통은 나 혼자 만들지 않는다. 내가 못하는 영역은 다른 사람들이 내 팀원들이 채워줄 수 있다.



다시한번 생각한다. '산나비'는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게임인가?



답은 '아니'다.



'그러면 너도 만들지 그랬어.' '넌 왜 못했는데?'



이런 말엔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엔 틀린 것이 없었을뿐더러 내가 말해보았자 그저 하찮은 변명일 뿐이다. 그러니 무시하는 게 더 낫다. 이런 돌들은 피할 줄 알아야 한다.



돌에 맞은 피멍, 비수가 꽃은 자상 나의 가슴에 있던 상처들이 점점 사라진다.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사라진다. 이 어두컴컴한 곳에 빛이 밝혀진다. 



작은 불꽃, 한없이 작은 불꽃



내가 꺼버린, 내가 모래를 부어 꺼버린 이 불꽃들이 어두컴컴한 이곳을 밝히기 시작한다. 작지만 아주 귀중한 불 나의 모든 것...



이것들에 돌들과 비수를 집어넣고, 아까 내가 기대던 벽도 집어넣기 시작한다. 더욱 크게 타오르는 불꽃은 이내 이 어두컴컴한 모든 곳을 밝히기 시작한다. 3평짜리의 작은 방, 빛이라곤 바탕화면만 보이는 모니터. 아까와 똑같지만 다른 빛이다. 



눈을 뜨고 감고를 반복하다 다시 한 번 더 감고 생각에 빠진다. 어두컴컴하지만 밝게 타오르는 불꽃이 있어 무섭진 않다. 아까보다 더욱 편한 느낌, 이 느낌을 즐기다가 다시 한 번 더 벽을 다잡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못할 사람 아니다.' 



작게 되뇌인다



'나도 게임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나를 알리고 싶다.'



이번엔 크게 말한다. 



자괴감, 자기혐오, 자학, 나를 공격하는 모든 것들을 옆에 있는 불꽃에 집어넣는다. 



"나는 게임개발자다!"



이번엔 입 밖으로 내뱉는다.



다시한번 더 일어선다. 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대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작지만, 한없이 밝은 불꽃을 옆에 두고 한 번 더 일어선다.



언젠간 꺼질 불꽃이다. 나의 경험이 말해준다. 그러나 불꽃은 다시 되살리면 그만이다. 오래전에 잊은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런 기억들 중에 불꽃을 되살리는 방법만 다시 새긴다. 나머지들은 불꽃에 집어넣는다.



나는 나를 알린다. 



나는 나를 이 세상에 알린다. 



내가 살았다는 것을 이 커다란 세상에서 내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린다.



나는 게임으로 나를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