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우울이 들어앉더니, 날 마주 본다.


퍽 우습다. 흘릴 눈물조차, 감정도, 정신도 모두 망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사는 것은 멈추질 않고, 오감은 언제나 모든 걱정을 안겨준다.


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

무언가 만지는 감각도, 사람의 온기도, 아려오는 마음도.


가족과 나눈 식사도, 행복했던 기억도, 퍽 맡기 좋았던 사람들의 마음도.



칼을 꺼내 심장이 뛰는, 그 근처로 가져간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그대로 박아넣는다면.



그렇다면 편해질 것 같다. 이해하고 싶었으나 이해하지 않아야 사는 세상이 떠오르니 미워진다.



한참을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 찌를 용기가 생길까-고민했으나 답은 그리 시원찮다.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날은 무뎌서 손목을 긋기에 적합하지도 않다. 아니라면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 일찍 그만둔 탓이거나.



식칼을 내려놓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었다. 바깥의 온도가 낮은 탓에 이불 속 또한 차가워 한동안 온 몸을 떨어야 했다.



편하게 삶을 끝내지도 못하고 미련히 삶을 탐한다. 무언가 할 의지도 없으나 죽고 싶은 의지는 있다.


한 여름의 꿈처럼 거울은 깨어지고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조각들은 내 미련한 부분을 비춘다.



내게 실망하며 증오하고 절망하며 이해받고 싶기에 우울해 한다. 생각을 곱씹어 볼수록 내 잘못은 늘어나 마음을 덮어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내 상황을 두고 보지 못한 탓인지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죽고 깨어난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잠들고 싶지 않다. 깨진 거울 조각에 내 얼굴이 비친다.



조각을 목에 박아넣은 채, 목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내가 보이고 있었다.


저 거울의 나는 무엇을 바란 걸까. 닿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생각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