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모진 일이 있어보여도 끝에는 결국 복이 온대. 선물로 받은 쿠션을 안으며 청년은 나즈막이 말한다. 너는 비 온 후에야 비치는 무지개구나.


소년은 고개를 돌려 제 뒤를 본다. 가방 안의 책이 가진 무게로 휘청이면서도 기어이 돌아본다. 거기에 청년은 없다. 아마도 있던 것은 인근 공사장에서 한창 먼지 날리며 작업하는 쇳소리였을 게다. 그 현장, 누군가에게는 아마도 그것은 현재일 것인, 아무튼 그 안에 살아 있는 이들을 모르는 소년은 생각한다. 나는 저런 몸 쓰는 일은 하기 싫어. 그렇지만 공부는 더 하기 싫은걸.


소년은 안다. 그 생각이 하등 살아감에 있어 쓸모가 없음을. 넓은 세상에 두 발 뻗고 눕는 사람과 깨금발로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의 위치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이를 가르치는 것이 설령 부모가 아니더라도 환경이 자연스레 교훈을 박아넣는다는 것을. 소년은 주변을 감싼 울타리가 제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알 만큼 크지만 그 울타리에 비좁음을 호소할 만큼 작다. 소년은 제 몸을 옥죄고 싶어 안달이 나기라도 하듯 보채는 어미의 상을 떠올리고는 한숨으로 지운다.


청년은 깊은 밤을 컴퓨터 불빛에 의존해 버틴다. 그의 손에 묻은 책임과 의무는 깊게 배어들어 엄한 자욱을 남긴 채 그의 타자를 방해한다. 그럼에도 청년은 웃는다. 그가 내려다보는 소년의 형상에서 자신을 반추하는 까닭과 상통하다. 소년이 책임질 몫은 먼 훗날의 동기, 혹은 미련.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움직이도록 요하는 탄력에 가까운 반항심이며, 그 몫은 성실히 수행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제의 꿈이 지금을 더 명확히 알게 하듯, 앞으로 꿀 꿈의 내용을 지금 알 도리가 없듯.


청년은 이윽고 전원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선물로 받은 쿠션을 안은 채, 청년은 이젠 쉬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소년을 떠올리며 말을 건다.

어느 순간, 네게 닥치는 아픔들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면 울음을 참지는 마. 

변덕스러운 소낙비가 떠받들고 있는 맑은 하늘은 그 비가 있고 나서야 더 맑아보이는 법이니까.


가장 거뭇한 어둠이 서로를 스치는,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