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장 겨울의 단말마는 피어가는 꽃


평소엔 밝게 빛을 내던 달과 별도 두꺼운 구름에 가려 그날 밤 숲에는 일말의 빛도 비춰지지 않았다. 작은 동물들이 움직이며 들리는 소리는 괜한 공포감을 조성했으며 그마저도 포식자에게 잡아먹혀 외마디 비명만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오직 바람만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와중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동자는 어둠 속 반짝였다. 날카롭고 고요하게.


살아있는 것의 기척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숲 안에서 뜬금없이 들려온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모든 동물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뿐만 아니라 숲 안에 서식하는 알 수 없는 존재들도 아기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눈치 채지 못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일주일도 가지 못해 꺼져 버리겠지. 소리를 들은 대부분의 동물들은 군침을 다셨지만 어느 이는 경계했고 다른 이는 겁을 먹었으며 또 다른 이는 경외했다.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있었으며 그와 반대로 순수하게 아이의 행복을 비는 이 역시 존재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생각한 바는 모두 달랐음에도 모든 존재들이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저 아기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함부로 건드려선 안되는 존재라는 것을 모두가 야생의 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야생에서 지나치게 무방비하다는 것은 그 존재를 지켜줄 또 다른 강력한 존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것과 저 아기는 어딘가 차이가 있었다. 외형은 특별할 것 없는 인간의 아기였으며 지성이라곤 느낄 수 없었으나, 아기가 풍기는 어딘가 신비로우며 위협적인 분위기 때문에 아기가 울기 시작하고 한동안 아기를 잡아먹거나 해코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존재는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두려움이 없는 법.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며칠은 족히 굶은 듯한 한 마리의 코요테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머리로는 있었지만 저 아기를 잡아 먹지 않으면 내일 당장 아사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기에 그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끝까지 주위를 경계하며 아기 바로 옆에 위치한 나무에 숨어 아기를 덮치려고 한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코요테는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꺼져가는 하나의 미약한 생명이여. 어찌 은인의 자식에게 해를 입히려 하는가."


목소리가 얇고 높은 것이 어린 남자아이가 말하는 듯했으나 그 말투와 분위기는 알 수 없는 고상함과 거룩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겁에 잔뜩 질려 얼어버린 코요테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마리의 작은 여우였다. 코요태와 크기는 비슷했으나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고 있던 그 생명체는 잠시 코요테를 응시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겨울의 단말마는 피어 가는 꽃. 아름답게 꺼져가는 계절의 사무침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여우가 말을 끝마친 순간 코요테는 갑자기 숨쉬기를 괴로워하며 힘없이 쓰러졌고 생기가 사라진 그의 살갗을 찢고 이윽고 한 송이의 꽃이 피어올랐다. 코요태의 몸을 찢고 만개했으나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던 하얀 빛깔의 꽃은 이윽고 코요태의 숨을 끊었고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 오도카니 서있는 한 마리의 여우와 그의 꽃은 마치 사라진 달을 대신하는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나버린 참사에 아기도 깜짝 놀랐는지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똘망 똘망 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여우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여우는 잠시 눈을 감고 숲의 일부로 돌아간 짐승에게 애도를 표한 뒤 아기와 눈을 맞췄다.


"너무 많은 피를 보여주는 것은 아이의 정서상 좋지 못할 것 같군.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달려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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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짧은 소설은 종종 올렸었는데 장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생이 좀 바빠서 업로드 주기가 길 수 있지만 첫 장편이니 만큼 이 소설로 무언가 이루어낸다기 보단 그저 내가 쓴 글을 기록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데 의의를 두려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올리려 노력하겠으니 재밌게 읽으셨다면 다시 들러주세요.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절대 기분 나빠하지 않으니 문법이나 띄어쓰기같이 사소한 거라도 읽는데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