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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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잦아들었을 때, 탑의 모두가 구멍으로 보이는 그 모습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4마리의 용이 그들의 앞에 나타나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병사 하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거짓말… 저게 실존하는 거라고?”


아인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용이 네 마리나…”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잔이 말했다.


“아니, 자세히 봐. 덩치가 작은 세 마리는 모습이 달라!”


확실히 수년 전 보았던 ‘창백한 비늘의 용’보다는 작았지만 그럼에도 매우 거대한 하나와는 달리 나머지 세 마리는 앞다리가 없고 덩치가 더 작았다. 카이저가 말했다.


“저 생김새로 보아하니 ‘비룡’인 것 같군, 신화에서는 용이 직접 창조한 생명이라고 적혀있지.”


“그래, 하찮은 것들아. 네놈들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예정보다 일찍 버려야 했지만 상관없다. 나 ‘아바리치아’가 네놈들을 한 번에 끝내주마!”


‘아바리치아’가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순간, 아인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다가가 방패를 들었다. 엄청난 화력으로 인해 아인은 뒤로 조금씩 밀려났지만 불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용의 불이 방패를 뚫지 못하고 있어! 도대체 이 방패는 뭐지?’


‘아바라치아’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오호라, 그게 아직까지 존재할 줄이야.”


그러나 그 뿐, ‘아바라치아’는 대략 50여미터에 달하는 날개를 쭉 펴고선 몸을 돌려 하늘 저 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인이 그를 도발하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야! 어디가, 도망치는 거냐!”


‘아바라치아’는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날 상대하려면 군대라도 끌고 와야 할 거다. 물론 네가 살아 남는다면 말이지, 정리해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룡 3마리가 아인에게 덤비기 시작했다. 손쓸 틈도 없이 ‘아바라치아’는 저 편으로 날아가버렸다. 카이저가 소리쳤다.


“일단 놈들부터 끝내게!”


아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여기서 깜빡 떨어지면 죽어요!”


잔이 손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일단 네가 비룡에게 날아가 붙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저것들을 처리해!”


아인의 손에 푸른빛이 도는 반투명한 장갑이 씌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야. 행운을 빌어.”


아인은 탑 주변을 날아다니는 비룡들을 살폈다. 그 중 한 마리가 뛰어올라 닿을 수 있는 높이에서 날고 있었다.


“그럼 가 볼까.”


카이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심하게, 전설에 의하면 비룡의 꼬리에는 맹독이 있다고 하네.”


“알겠습니다. 카이저 님.”


아인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뛰어올라 비룡의 목을 잡았다.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비룡은 다급히 아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지만 아인의 손은 비룡의 목과 하나라도 된 듯이 달라붙어 있었다.


“떨어지지 않잖아…! 그럼, 잘 가라!”


아인은 칼을 비룡의 목에 찌른 다음 왼팔의 힘으로 용의 등으로 올라옴과 동시에 목을 베었다. 목이 반쯤 잘린 비룡은 녹색 피를 뒤집어쓴 목이 덜렁거리는 채로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인은 다른 비룡의 꼬리를 몸을 숙여 피하며 꼬리에 가시가 없는 부분을 잡았다. 비룡은 꼬리를 흔들어 아인을 떨어뜨리려 했으나 아인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으… 독에 죽기보다 멀미로 죽을 것 같아…”


아인은 비룡의 꼬리를 잡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다음 등에 올라타 오른쪽 날개 죽지를 베어버리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비룡이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추진력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인은 비룡의 정수리에 칼을 박아 완전히 죽여버렸다.


“이놈도 처리 완료. 그리고…”


아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 한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지?”


“아인! 뒤를 봐!”


잔이 다급히 소리쳤으나 이미 늦고 말았다. 아인이 뒤를 돌아본 순간 마지막 비룡의 꼬리가 아인의 오른쪽 어깨를 가격했다. 아인은 고통에 세상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으나 용케 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을 마무리하려 다가오는 비룡의 커다란 배에 칼을 찔러 넣고 그대로 휘둘렀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비룡의 배에서 초록색 피와 창자가 튀어나오며 순식간에 마지막 비룡까지 죽어버렸다.


“마지막… 처리… 완료…!”


아인은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인!”


잔이 가장 먼저 그를 구하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나에게 맡겨!”


마리가 주문을 외우더니 빛의 밧줄이 마리의 손에서 튀어나와 아인을 끌어당겼다.


“아인!”


잔이 아인을 바닥에 눕히고 갑옷을 제거해 상처 부위를 드러냈지만, 아인의 오른쪽 어깨는 이미 독이 퍼지는 듯 시퍼런 반점으로 물들어 있었다. 절망한 카이저가 고개를 떨궜다.


“안돼, 독이 이미 퍼지고 있어. 이건 살릴 수 없네…”


“하지만! 빛의 힘이라면…!”


“잔, 이건 빛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 신화에나 나오는 고대의 독을 해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잔은 무력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아인을 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만 것이다.


“일단 내 방으로 옮기세. 내가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 볼 테니.”


카이저는 주위의 병사들을 불러 아인을 자신의 방으로 옮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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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는 별로 관련 없는, 그냥 있어보이는 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