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런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종이는 누렇게 삭고 페이지에 손때가 잔뜩 묻은데다 그림체가 언제적인가 싶은 정도로 오래되어 보이는 표지까지 아주 세월이 흐른 테가 팍팍 났던 판타지 소설책.


제목은 '홍염과 강철의 악마'였나? 아주 작가의 중2병이 여실히 드러나는 제목이었는데...


뭔가 흥미가 동해서 조금 읽다가, 표현도 플롯도 아주 낡아빠진 것이라 집어치웠었다.


조금이라도 더 읽어둘걸 그랬다.


아니... 이 경우면 '읽지 말걸 그랬다'가 맞는 말인가?


그랬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은 오전 6시 정도,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내가 늘상 등교하던, 원래라면 태양이 밤을 덮고서 아직 나오기 싫다며 밍기적거릴 시간에


하늘은 벌써 밝았다.


게으른 태양을 대신해서 아침을 밝히는게, 별이나 천사의 빛 같은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건 빌어먹을 악마들이었다.


딱 그 소설의 제목대로인, 홍염과 강철의 악마들.


표지의 일러스트와 똑같은 생김세를 한, 강철의 다리로 땅을 딛고 시뻘건 홍염으로 온 도시를 불사르는 미친 파괴자들.


조금은 피곤했던, 하지만 평온했던 나의 일상이 그들에게 처참히 부숴졌음에도,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바로... 


[티에라의 사도시여. 인페르노이드를 이끌고 세상을 불태우십시오.]


내 앞에 나타난... 빌어처먹을 반투명 메세지.


[성공 시 보상 - 인류의 완전한 멸망과 당신의 생존]


[실패 시 벌칙 - 창성신 sophia에 의한 당신의 완전한 소멸]


이 빌어먹을... 메세지였다.